존 로스 좌담회

이 동영상은 2016년 1월 22일 (금) 오후 3:00~5:00에 열린 존 로스와의 좌담회입니다.

좌담회는 서울 서대문구 창천감리교회 부속 엘피스 카페에서 가졌습니다.
John Roth교수님은 인디아나 주 고센에 있는 Goshen College 에서 역사학을 가르치시며, 메노나이트 세계협의회 Mennonite World Conference 에서 Faith and Life Commission 위원장을 맡고 계십니다. 또한 고센 대학 내에 있는 Anabaptist Library 아나뱁티스트 도서관의 관장을 맡고 계십니다.

이 좌담회는 편한 대화 세팅아래 아나뱁티스트에 관심 있는 목회자들의 모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존 로스 소개에 이어 참가자 소개의 시간을 갖고,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에 관한 일반적인 질문은 물론 목회와 관련된 내용을 질의응답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직접 보시고 함께 즐거운 순례의 여정을 걷기 원합니다.

KAC

 

루터란 – 아나뱁티스트 화해의 여정

배경

1980년 독일의 루터란 교회는 옥스버그 신앙고백 채택(Augsburg Confession, 1530년) 450주년을 기념하여 전세계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이를 초교파적으로 축하하기 위해 메노나이트 교회의 지도자들도 초청했다. 그런데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 신자들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루터란을 비롯한 국가 교회로부터 수많은 탄압과 박해를 받은 장본인들이다. 그 때 루터란 교회의 경우 아나뱁티스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 탄압을 정당화하는 결정적인 문서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옥스버그 신앙고백(Augsburg Confession)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루터란이 메노나이트를 초청했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아닐 수 없었다. 아마도 루터란 교회는 메노나이트를 초청하면서 옥스버그 신앙고백 안에 아나뱁티스트를 이단으로 정죄한 죄목이 실려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나뱁티스트 신앙의 후예인 메노나이트 교회를 그런 자리에 초청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메노나이트가 자기 선조들을 정죄했던 문서를 기념하는 자리에 가서 축하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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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제자도의 실현과 평화 공동체 회복이 개혁의 정도(正道)

[선교] 철저한 제자도의 실현과 평화 공동체 회복이 개혁의 정도(正道)_들소리신문 2009-10-14

게시자: KAC Admin, 2009. 10. 20. 오후 10:24   [ 2009. 10. 20. 오후 10:27에 업데이트됨 ]

자신을 붙잡으려는 추격자가 강물에 빠지자 즉시 달려가 살려준 아나뱁티스트 더크 웰렘스.

       그러나 그는 추격자에게 붙잡혀 끝내 처형당했다.  ⓒ들소리신문
루터, 칼빈과 함께 개혁의 선상에 있었던 츠빙글리의
제자들이 주창했던 아나뱁티스트(재세례운동)

유아세례로 자동적 신자가 된 국가 `신자는 많지만 제자 없음’을 반성-제자도 강조
가톨릭·개혁교회들로부터 박해와 핍박으로 4천명 이상의 순교자들이 나오는 역사
신앙에 거룩한 삶 더하는 회복 중요…신앙 증표 만족 아닌 철저한 제자 삶 있어야  계속 읽기

교회 내 갈등, 성서적 해결원칙은 있는가?

초대교회가 가진 여러 가지 정체성 가운데 하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이었다. 초대교회의 구성원은 기존의 유대인이 지켜오던 율법이 아닌 예수를 통해 완성된 새로운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교회 내 갈등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예수는 교인들 사이의 분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두 가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계속 읽기

잃어버린 평화의 전통을 찾아서….

교회, 평화와 화해의 도구로 거듭나기를

YMCA 잡지<꽃들에게 희망을>에 실린글 – 이재영

 

지금처럼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한다. 미국 버지니아 주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조그마한 교실에 앉아 마지막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실제 우리 반에는 매우 흥미 있는 사람들로 가득차있었다. 팔레스타인이 고향이지만 자유롭지 못한 땅을 떠나 시리아로 이주해간 팔레스타인 청년, 자신의 땅에서 난민이 되어버린 필리핀 민다나오 섬의 아주머니, 두 딸을 둔 눈물이 많은 코소보의 엄마, 강한 엑센트로 자기의 다리에 난 총상을 보여주던 북아일랜드에서 온 아저씨, 케냐에서 연극을 통한 평화 교육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름이 “바보“라는 사람, 인도북부의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애쓰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갈랜드라는 나라에서 온 친구 아쿰…. 계속 읽기

교회 내 갈등, 성서적 해결원칙은 있는가?

초대교회가 가진 여러 가지 정체성 가운데 하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이었다. 초대교회의 구성원은 기존의 유대인이 지켜오던 율법이 아닌 예수를 통해 완성된 새로운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교회 내 갈등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예수는 교인들 사이의 분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두 가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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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엔티아

이상규(고신대학교 교수, 역사신학)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쟁이다. 전쟁은 인간에 의해 자행될 수 있는 가장 큰 폭력이며, 파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이룩한 문명이나 도시, 자연의 파괴일뿐 만 아니라 인간성 자체의 파괴이기도 하다. 오늘의 세계는 지구상의 전 인류를 파고기하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양의 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핵무기의 파괴력은 고전적 의미의 전쟁 개념을 무의미하게 한다. 이제 문제는 공존(共存)이냐 무존(無存)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호모 호미니 루프스(Homo homimi Lupus), 곧 “인간은 인간에게 이리이다”는 라틴어 경구는 전쟁사에서 얻은 체험적 경구일 것이다.  계속 읽기

기독교와 평화사상- 이상규교수의 신학읽기(5)

평화(平和, peace)는 인류가 추구해 온 가장 고상한 가치였다. 동시에 그것은 지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난해한 과제였다, 그러나 인류는 거듭된 전쟁과 폭력, 인명살상과 상실, 자연의 파괴와 같은 엄청난 재난을 경험했다. 1차 대전과 같은 대규모의 국제적인 전쟁을 경험 한 이후 서구에서는 반전(反戰)운동과 반전사상이 일어났고, 평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기독교권에서 계속되어 왔던 평화주의(Pacifism)사상과 더불어 192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 중요한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발전했다. 그 후 평화학(Peaceology)은 학제간 연구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제2차 대전 이후 세계 평화에 대한 갈망은 국제연합, UN과 같은 국제기구 창립의 동기가 되었고, 세계교회 협의회(WCC) 또한 평화에 대한 염원에서 발의된 교회협의체였다. 2차 대전 이후 서구학계에서 평화에 대한 연구는 상당한 발전을 가져왔고, 수많은 연구물들이 출판되었으며, 주요 대학에는 평화연구소나 유관 기관, 기구들이 창립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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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평화, 미국의 평화

2002년 10월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지난해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자살 테러 공격은 전세계인을 새로운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미국은 비행기 테러 공격의 주체를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로 이슬람 과격 무장 단체로 지목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곧바로 테러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고 불리는 구체적인 증거없이 힘없고 가난한 나라 아프가니스탄을 향하여 ‘정의로운 전쟁’을 선포, 감행하였고 지금은 그 범위를 더 넓게 확대하려 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이번 전쟁을 반테러 전쟁으로 규정하고 자국에 대한 공격을 문명 대 반문명 세력 간의 전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같이 미국에 의한 전쟁이 정당화되어 거대한 폭력으로서 지구 전체를 뒤덮고 있고 그로 인하여 모두가 신음하며 탄식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샬롬의 회복을 갈구하는 것을 상징하는 언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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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평화, 예수의 평화 pax Romana, pax Christi

이상규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역사신학)

그리스도: 평화의 왕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은 지상의 진정한 평화를 주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의 탄생을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라고 했다(눅2:14).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평화의 시대를 예고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는 우리에게 한 아기가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사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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