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평화사상- 이상규교수의 신학읽기(5)

평화(平和, peace)는 인류가 추구해 온 가장 고상한 가치였다. 동시에 그것은 지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난해한 과제였다, 그러나 인류는 거듭된 전쟁과 폭력, 인명살상과 상실, 자연의 파괴와 같은 엄청난 재난을 경험했다. 1차 대전과 같은 대규모의 국제적인 전쟁을 경험 한 이후 서구에서는 반전(反戰)운동과 반전사상이 일어났고, 평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기독교권에서 계속되어 왔던 평화주의(Pacifism)사상과 더불어 192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 중요한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발전했다. 그 후 평화학(Peaceology)은 학제간 연구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제2차 대전 이후 세계 평화에 대한 갈망은 국제연합, UN과 같은 국제기구 창립의 동기가 되었고, 세계교회 협의회(WCC) 또한 평화에 대한 염원에서 발의된 교회협의체였다. 2차 대전 이후 서구학계에서 평화에 대한 연구는 상당한 발전을 가져왔고, 수많은 연구물들이 출판되었으며, 주요 대학에는 평화연구소나 유관 기관, 기구들이 창립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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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평화, 미국의 평화

2002년 10월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지난해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자살 테러 공격은 전세계인을 새로운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미국은 비행기 테러 공격의 주체를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로 이슬람 과격 무장 단체로 지목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곧바로 테러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고 불리는 구체적인 증거없이 힘없고 가난한 나라 아프가니스탄을 향하여 ‘정의로운 전쟁’을 선포, 감행하였고 지금은 그 범위를 더 넓게 확대하려 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이번 전쟁을 반테러 전쟁으로 규정하고 자국에 대한 공격을 문명 대 반문명 세력 간의 전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같이 미국에 의한 전쟁이 정당화되어 거대한 폭력으로서 지구 전체를 뒤덮고 있고 그로 인하여 모두가 신음하며 탄식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샬롬의 회복을 갈구하는 것을 상징하는 언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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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평화, 예수의 평화 pax Romana, pax Christi

이상규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역사신학)

그리스도: 평화의 왕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은 지상의 진정한 평화를 주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의 탄생을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라고 했다(눅2:14).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평화의 시대를 예고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는 우리에게 한 아기가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사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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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폭력, 비폭력

CrossWalk 모임
2002년 10월 21일

정리 이재영 간사 (KAC)

“기독교인으로써 폭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하여야 하는가?”라는 참으로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에 기독교인은 늘 고민하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악이라고 규정된 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소위 “정당한 무력사용”에는 관대해지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종교나 집단에 대한 폭력의 사용이 교회 안에서도 특별한 논의 없이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연, 이러한 현실에 400년 이상 평화주의 전통을 지켜온 메노나이트를 비롯한 아나뱁티스트들의 신앙과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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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그 후: 초강대국 국민의 자격과 책임

2001년 10월
이재영

“이렇게 폭력적으로 보복을 한다면 나중에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평화적인 관계형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의 무역센터를 공격하고 며칠 후에 The Town Meeting이라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중년의 부인이 나와 이렇게 질문조로 이야기했다. “우리가 이제 보복을 결의한다면 다음세대에서 과연 화해가 가능하게 될까요?” 그러나, 곧 그녀의 목소리는 보복을 외치는 소리에 묻혀 완전히 무시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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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에 기록된 많은 전쟁을 어떻게 이해 할것인가?

구약성경의 전쟁이야기에 대한 성경적 평화주의적 견해

Mennonite Central Committee, By Linda Gehman Peachey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생각할 때 흔히 동산에서 기도하시거나 양 때를 인도하는 또는 어린 아이들을 축복해 주시는 장면 등을 연상하곤 한다.

예수님이 칼을 들거나 기마 전차를 탄 모습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원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사신 것을 받아들인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해 폭력 사용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향한 예수의 가르침이 과연 폭력사용과 전쟁 참여를 거부하는 것 까지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구약 성경에서의 전쟁 이야기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을 일으키게 하고 서로를 죽이게 한 사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따금씩 폭력과 전쟁을 허용하신다는 말이 아닌가? 이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이 확신하는 중요한 관점들을 알아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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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이렇게 물어 주세요

3월 26일 리사 말틴스 (Lisa Martens)

오늘 밤 제가 바그다드 하늘에 “폭축놀이”를 보았는지, 어떻게 느꼈는지는 제발 더 이상 묻지 마세요. 절대 묻지 말아주세요.

대신, 우리 육체가 가진 아름다움 –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손, 관절의 부드러운 움직임, 발뒤꿈치 위의 매끄러운 선, 원만하게 패인 등의 곡선, 조밀하게 짜여있는 우리의 눈 – 으로 너무나 깊은 감동을 받은 저의 하루에 대해 물어주세요. 이런 기적같이 만들어진 우리 신체의 경이로움에 빠져 절대로 다른 사람들의 육체를 해하는데 참여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날에 대해 물어봐 주십시오.  계속 읽기

이라크 전에 대한 이스턴 메노나이트 대학의 갈등변환학 대학원이 발표한 성명서

(Conflict Transformation Program in Eastern Mennonite Univ. Response to War in Iraq)

2003년 4월 10일

CTP 측은 미국 주도의 이라크 공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한다. 이스턴 메노나이트 대학 CTP 소속 직원들과 스탭들은 미국 주도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번 공격을 수년간 전쟁과 압제에 시달려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는 무고한 이라크 국민들을 향한 가중된 폭력으로 본다. 우리가 가진 신앙과 미국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성공적으로 일구어낸 평화,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의 동반자들과 친구들로부터의 가르침 등은 모두 결국 평화와, 정의 그리고 안녕을 건설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계속 읽기

왜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이 전쟁을 지지 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왜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이 전쟁을 지지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이 지난 몇 주동안 내가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던 질문이었습니다.

뭐라 할 말이 별로 없는 것 같더군요.
나는 이 곳 태국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한사람의 미국인으로
분노를 말하고, 불신과 경멸을 나타내지만…
미국인이라는 나의 국적때문에 사람들은 나와의 대화를 짧게 끝내려 합니다.
물론 난 그 사람들을 원망 할 수 없습니다.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