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KAC 정기총회

안녕하세요?
12월 7일 토요일은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가 지난 2019년 1년 동안 달려온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하는 정기총회가 있는 날입니다.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가 한국교회에 바람직한 자리매김과 기여를 하기 위해
여러분의 관심과 열정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정기총회에 함께 하여 주시면 정말로 감사하고 영광이 될 것 같습니다.

시간: 12월 7일 토요일 오후 12:30분 (점심식사 제공)
장소: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 (춘천시 춘천로 34, 3층)
내용: 12:30-13:30 식사 및 교제
13:30-14:30 정기 총회
-감사예배 (남상욱 이사장님 인도)
-총무보고
-2019년 재정 보고
-2020년 예산 및 사역계획
14:30 폐회

2020년 사역계획에 여러분들의 지혜와 조언이 필요합니다.
꼭 참석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9정기총회초대장001

11월 리본모임 보고

11월 리본모임을 끝으로 2019년 리본독서모임을 마무리했습니다.

2019년 마지막 강사님으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김형원교수님께서 오셔서 10여 년 고민하신 주제인 소명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한국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소명’에 대한 교정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나이를 초월한 우리를 일상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받아적은 내용을 올려봅니다. 본 강의와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즐독하세요!b_8afUd018svc11qxsxut49y5u_sp0ezp소명, 그 거룩한 일상

 

김형원 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하나의 교회 담임목사)

 

 

소명이라는 주제는 10여 년 전부터 관심을 가진 주제였습니다.

교회에서 소명스쿨이라는 과정을 6-8주 진행했습니다. 2017년에 성서한국에서 3일간 이 주제로 전체 강의를 했었습니다. 그것에 살을 붙인 것이 이 책 <소명, 그 거룩한 일상>이며, 10여 년의 고민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책입니다.

 

소명은 교회에서 아주 익숙한 주제입니다. 청년들에게도 귀에 익숙한 주제입니다. 보통 vision이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저는 신학을 하면서 목사님이나 강사님들이 말씀하신 소명이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과 ‘맞나’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소명이라는 말은, 제가 신학에서 시작한 사람이면 캘빈이나 루터로부터 시작했겠지만 목회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삶과 연관된 말로 이해가 됩니다.

 

한국교회에서 소명, 비전은 거창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청년집회에서 다니엘이나 요셉은 항상 소환되는 인물입니다. 바울이 소환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전임사역자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 다니엘과 요셉은 전임사역자도 아니고 세상적인 관점에서 봐도 지위가 나라에서 서열 2, 3위로 높이 올라간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이나 베드로는 청년집회가 아니라 선교한국에서 소환되는 사람입니다. ^ ^)

한국에서 ‘다니엘’은 정말 바쁩니다. 다니엘 기도회, 다니엘 학습 등. 둘 다 잘못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별명이 ‘꿈꾸는 자’입니다. 맞습니까?

재미있는 것은 꿈이 꾸고 싶다고 꾸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꿈은 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꿔지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떤 꿈을 꾸고 싶다고 해서 꿈을 꾼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의도와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17살의 요셉에게 꿈을 물었다면 부모님과 함께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라헬의 늦게 낳은 자식이였기에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예기지 못 하게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고 꿈을 해석하다가 총리까지 되었는데 요셉은 한번도 자신이 총리가 되어야지라고 꿈꿀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청년집회에서 요셉을 소환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형제를 보고, 베냐민을 보고 요셉은 통곡을 하지 않습니까? 그게 요셉의 정확한 정서입니다. 요셉은 비전이나 소명과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삶을 살다보니깐 기근이 들고 형제와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야 자신의 굴곡진 인생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내 고향은 저기인데 내가 여기 왜 이러고 있지?’라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형제들을 만난 요셉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는 소심한 복수였습니다. 둘째는 소망이었는데, 베냐민과 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소망이었습니다. 그 때에 비로소 내 삶이 꼬여서 이렇게 흘러온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스 기니스가 ‘소명’에서 우리의 삶이 살아질 때는 잘 모르고, 돌아볼 때야 퍼즐이 풀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며 살아왔는지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뒤돌아 보았을 때,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요셉은 절대로 자신의 꿈을 위해 애쓰고 노력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하신 것을 요셉을 고백합니다. 요셉이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입니다. 한국교회가 청년을 기만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요셉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의 성품, 신실함은 우리가 배워야 할 큰 장점입니다. 언제 그 성실함을 볼 수 있습니까? 바로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입니다.

사실 유혹이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집안의 실세는 보디발이 아니라 아내였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유혹 속에서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도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팔고, 노예신세로 하루 아침에 전락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그 때 하나님이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어떻게 고백할 수 있는가? 라는 회의가 가득할 법합니다.

어쨌든, 요셉은 믿음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들은 그 말씀을 붙들고, 시궁창 속에서도 그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요셉을 사용하시고 붙드신 부분이 이 부분이라고 믿습니다. 요셉은 언약의 그 끄트머리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70명에서 60만명으로 대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실날같은 믿음이 연유가 되어서 말입니다.

여기서 비전, 소명, 특별히 영웅적인 소명을 말하면 안 됩니다.

 

소명과 비전에 대한 또 하나의 오류는 소명을 성직과 관계된 목회적 소명이라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이런 소명에 대한 오해로 인하여 목회자들이 선택받은 특권층으로 있게 됩니다. 종교개혁가들이 만인제사장설을 주창했으며 그것은 종교개혁의 중요한 개혁포인트였습니다. 중세 가톨릭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500여 년이 지나서 한국 개신교는 중세 시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 성직적 소명관을 깨야 합니다.

어떻게 하다가 목사가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을 저는 개인적으로 많이 받습니다. 어쩌다 목사가 되셨어요?는 종종 받는 질문입니다. 거기에는 2가지 뉘앙스가 들어 있습니다. 의도가 뭘까요?

하나는 서울대 나와서 왜 목사가 되었나? 즉 잘 나갈 수 있었는데… 라는 뉘앙스로서 목사를 비하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런데도 목사가 되었다면 엄청난 은혜와 섭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특별한 선택이 있었다고 말하면 힘이 생깁니다. 이것은 속고 속이는 것입니다.

목사는 고생을 하도 많이 했기에 어쩌다 목사가 되었습니까?라고 종종 묻는 것입니다.

저는 정확히 그 대답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그러니깐 부흥이 안 된지!’라고 반응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경영학을 하는 것과 목사가 되는 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소명 중에서 성직적 소명과늘 깨뜨리면 모든 일이 다 소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성경은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나 선교사가 제대로 못 한다면 더 큰 벌을 받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이 주신 소명입니다. 그 일을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섬기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소명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여러분이 가진 직업이 다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이 됩니다. 이 말까지는 맞는 말입니다.

루터는 직업의 고귀함을 재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만 OK!입니다.

 

그 다음에는 직업만이 소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직업이 없는 사람도 있고, 직업적인 활동을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어린 사람들,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

사회에서 직업을 못 가졌다면 하나님 앞에서도 소명이 없는 것이 됩니다.

중세시대나 지금의 제 3국에 가면 어린이 노동이 일상이 되어있습니다. 그 어린이들은 하루종일 일해야 1달러를 법니다. 돌을 깨는 일이 보통입니다. 돌을 깨면 그것이 건축자재가 됩니다. 망치만 쥘 수 있으면 하루종일 아동도 노동을 해야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30대가 되어도 대학생일 경우가 있습니다. 직업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 이들은 하나님의 소명과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인가요?

요즘은 100세 시대입니다. 80세는 일찍 돌아가시는 편입니다. 사회가 변하면서 일의 개념도 바뀌었습니다. 직업이 없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소명이 사회에 구속당하고 있습니다. 소명을 직업 속에만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명은 훨씬 큽니다. 직업이 아닌 것도 통합됩니다. 직업적, 성직적, 영웅적 소명은 모두 오류입니다.

 

소명은 무엇입니까?

소명은 다중적 소명이 맞습니다. 소명은 하나가 아닙니다. multiful calling이 맞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개념의 전환입니다.

소명으로서 우리가 감당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소명과 관련이 없는 우리의 삶은 없습니다.

 

—거룩한 삶에의 소명

우리를 부르실 때, 일을 위해 부르시기 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Doing 보다는 Being이 먼저인 것입니다. 예수가 제자를 부르실 때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가서 뭔가를 하게 하셨습니다. 먼저 하신 일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자훈련의 기초는 Doing이 아니라 Being입니다. 먼저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는 중요합니다. 특별히 호렙산에서 모세를 불렀을 때, “네가 밝은 땅은 ‘거룩한 곳’이니 네 신을 벗으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때문에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뵐 때, 제사장도 목욕하고 규정을 지켜야 했습니다. 지성소를 들어갈 때는 방울과 줄을 매달아서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피조물과 다른 하나님! 범접할 수 없는 존재!

존재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룩함이란 존재 자체가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거룩하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의미입니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를 거룩한 자라고도 하고, 거룩한 자가 되라고도 합니다.

의롭다라고도 하고, 의롭게 되라고도 합니다.

구원을 받았다라고도 하고, 구원을 받으라라고도 합니다. 마치와 ‘왕자와 거지’의 동화처럼 신분은 바뀌었지만 행동이 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우리가 의인임과 동시에 죄인이라고 합니다. 즉 도덕적, 윤리적으로 구별된 자로 살라고 합니다. Being의 측면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인격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품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은사와는 구별됩니다.

은사를 발휘하는 것은 그 사람 자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 사람과 관련된 것은 그 사람의 삶에 연관된 열매인 것입니다. 이런 성품의 열매가 거룩한 삶입니다.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방식 (로마서12:1-2) 즉,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living sacrifice로 살아가라고 합니다.

그 방식은 이 시대의 가치관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높은 자리에서 부려 먹을려 하지만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높은 데 있을 수 있지만 섬기는 삶의 방식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선생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권위를 섬기는 방식으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사자으로서, 교장으로서 각자의 위치에서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어떻든 세상의 고정관념적 사고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한국의 부모는 자녀입시에 대해 올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가느냐는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못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 이것이 아니라면 놓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일상적 소명

진정한 소명과 대조되는 영웅적 소명입니다.

우리는 뭔가 하는 것에만 꽂혀 있습니다. 역할이 있습니다. 집에서나 교회에서 내가 원치 않는데 요구되는 역할과 일이 있습니다.

내 친구가 대학을 못 갔습니다. 우리 시대만 해도 70%는 고졸 후, 직장을 잡았습니다. 내 친구는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한량이라 돈을 가져다 주지 못 했기에 이 친구는 대학갈 엄두를 내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대학을 가려고 시도했다가 원하는 대학에 가기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결국 포기했습니다.

지금 직장생활한 지 38년 째입니다. 10여 년을 친정을 위해서 일했고 나머지는 자녀를 위해 일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희생을 경험한 많은 처자들이 있습니다. 공장에서 일한 여성들, 버스 안내양 등은 대부분 10대 후반이었습니다. 그 분들은 어떻게 소명과 관련된 이해를 자신의 삶을 보면서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분의 삶이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는 삶이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변사람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 즉 수평적으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수직적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힘이 없고 약한 자를 섬기는 것이 ‘나’를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졸이후 38년 째, 쉬지 않고 일한 내 친구가 더 소명의 삶을 잘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사’가 되었는데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쉴 수가 없다고 하니, 더 소명의 삶을 잘 살고 있습니다.

자기의 삶을 녹여서 다른 이를 섬겼잖아요.

일상적인 삶이 거룩이며 소명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경단녀들!“ 엄마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것은 소홀해지기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하나님 앞에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소명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육아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어머님들이 자기 인생을 갈아서 준 것입니다. 이게 소명의 삶인 것입니다. 사회가 알아 주지 않는다고 해서 기독교가 따라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의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사회적 잣대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귀하고 의미있는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세대의 노고를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너무나 귀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일상의 소명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50대 중반의 교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잘 나가는 유망한 교수였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유전적 병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케어를 위해 그의 찬란한 career를 모두 접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계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신학의 꽃을 피워야 하는 그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또 한분도 아내가 류마티즘 때문에 건조한 아리조나로 가야 했습니다. 50대 중반에 유명한 신학교에서 작은 신학교로 옮겨 가셨습니다. 본인의 경력을 아내의 건강을 위해 포기하고 이동하였습니다. 한국사회는 남자의 일만을 소명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multiful calling! 자기 아내를 돌보는 것은 자기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소명이 됩니다.

정말 믿음이 좋은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앙의 저력은 정말로 무서운 것이며, 우리가 따라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공동체에서도 맡은 것이 작아 보여도 소중한 것입니다.

 

 

—비전적 소명

이것은 일상적인 소명을 넘어선 것입니다.

내가 안해도 되는데 부르시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변호사인데 난민들의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난민신청자의 3%만이 난민으로 인정되는 곳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주업이 있으면서도 점점 그 일에 몰입하게 됩니다. 결국 난민담당 전문 변호사가 되기도 합니다.

가정주부도 노숙자나 장애인을 돕기시작하면 vision적 소명이 있는 것입니다. 일상을 넘어 안해도 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이 비전적 소명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직업적으로 왕의 의전담당 장관급 술맡은 관원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장관급으로 살아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너진 성벽을 구축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서 고생하며 성을 완성합니다.

안해도 뭐라하지 않지만 살다보면 그런 message를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소명을 잘 발견하게 됩니다.

 

거룩한 소명, 일상적 소명, 비전적 소명 (다중적 소명 multiful calling)이 맞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좇아야 할 소명에 대한 바른 지침이라고 확신합니다!!!

벌써 대학입시 수능도 끝나고 올해의 첫 눈도 춘천에는 내리고…
2019년도 이제 정리할 시간이 다 되었다고 주변에서 계속 알려줍니다.
우리 KAC도 일년을 정산하고 다가오는 2020년을 내다보는 2019년 정기총회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간 KAC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셨던 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입니다.
특별히 내년의 사역에 진심어린 조언과 비전을 과감히 전달해 주시는 지혜가 넘치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내년에는 아나뱁티스트 신앙을 알리는 아나뱁티스트 아카데미 및 컨퍼런스
시스터 케어 리더십 계발과 연관된 자료 개발,
평화를 알리는 회복적 정의운동(RJI)을 위한 모임,
유학생들을 환대하며 친구가 되어 주는 ISF모임,
책의 저자와 역자 혹은 전문가를 초청하여 함께 하는 리본독서모임,
아나뱁티스트의 신앙을 알리는 책 번역활동 등등 함께 하고 싶은 사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기 총회에 여러분을 초대하오니 함께 하셔서 아나뱁티스트운동이 더욱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힘을 보태 주세요.

장소: KAC 사무실 (춘천시 춘천로34, 3층)
시간: 12월 7일 토요일 오후 12:30-2:30
내용:
12:30-01:30 식사 및 교제
01:30-02:30 정기총회
1)감사예배
2)총무보고
3)2019년 재정보고

  4)2020년 예산 및 사역계획
02:30 폐회
2019년 KAC 정기 총회 초대장001

11월 리본독서모임 안내

2019년 마지막 리본모임을 안내합니다.

11월 리본모임에는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조직신학 교수님이신 김형원 교수님을 모시고 진행됩니다.

특별히 복잡한 세상 속에서 꿈을 꾸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는 듯한 N포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소명에 대한 외침은 이 시대를 향하여 소망과 기대를 품는 하나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내 꿈을 성취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편하고 쉬운 삶을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힘겨운 세상을 돌파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나의 능력에 맞는 소명의 삶을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내게 주신 소명의 삶에 맞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하는 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뿐 아니라,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회복되는 세상, 당신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그 속에서 보게 되는 빛나는 주님의 얼굴을 보면서 매일 매일 경탄할 것입니다. (Philips Brooks의 시를 기초로 하여 변환한 것)”

소명에 대한 3가지 오해를 넘어서 바른 소명에 대한 멘토링이 시작됩니다.

젊은 청년들도 환영하고, 백세시대를 누리며 제 2의 청년기를 맞이하는 분들도 환영합니다.

11월 26일 화요일 오후 7시에 한국 아나뱁티스트센터 사무실에서 만나겠습니다. ^^

 

 

11월 리본 독서 모임 안내001

10월 리본모임의 풍경

10월 리본모임에는 캐나다 평화교육가 ‘권세리’자매님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메노나이트로서 자라며 어떻게 평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평화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언어와 연결되게 되었는지 본인의 경험을 나눠주시면서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제 평화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언어를 한가지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는 충동을 느끼신다면 여러분도 평화를 일구는 언어를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 세리자매님의 강의를 요약하였습니다만 원래 의도와 달리 정리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고 즐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권세리 자매의 <평화여정과 평화를 가꾸는 언어> 이야기

저는 2002년 9월에 한국에 도착한 첫 번째 일요일에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에서 춘천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촌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렸는데 그 때의 말씀이나 음식이나 구체적인 기억은 다 잊어버렸지만 그 공간의 따뜻한 환영은 깊이 기억이 납니다.

그 때의 따뜻한 기억을 추억하며 오늘 저는 메노나이트와 평화신학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룹이라 언어, 평화, 메노나이트라는 이 3개의 지점을 같이 연결하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일방적인 강의보다는 질문도 받고 워크샵처럼 강의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언어학습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지시나요?

완벽한 비유는 없지만 우리의 경험을 넣을 수 있어요. 저에게는 강이 서로 만나는 “합류”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합류한 지점을 보면 처음에는 색깔이 다른데 중간 즈음에 가면 거의 물의 출처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색깔이 흐려지면서 새로운 강을 만나게 됩니다.

언어를 배우면 이런 합류의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언어를 가르치면서 발견한 것은 그 언어가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언어는 생존을 위한 도구보다는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평화와 신앙과도 깊숙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언어입니다.

 

제가 이렇게 평화운동을 하게 된 저의 성장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어떻게 메노나이트, 평화, 언어에 대한 초기경험을 시작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메노나이트로서 성장경험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메노나이트하면 한국에서는 특별하지만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전혀 특별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어떤 의미인지 몰랐고, 교회를 다니면서 주일하교, 메노나이트 청소년 캠프, 캐나다 메노나이트 대학교를 갈 때까지도 메노나이트의 역사나 평화신앙을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공동체를 즐겼을 뿐입니다.

교회에 가면 교회어른들이 우리를 다 함께 키워주셨습니다. 부모님이 교회에 안 계셔도 다른 부모님들이 우리가 잘 못 하는 일이 있으면 확실하게 이야기해 주시며 우리를 키워 주셨습니다.

메노나이트 청소년 캠프에서는 참가자나 직원으로 일하면서 더 깊이 있게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캠프에서 갈등도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갈등 후에 더 깊은 우정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방에서 아이들끼리 말다툼으로 인해 서로 싸울 때, 캠프 직원이 들어오셔서 중재자 역할을 하며 서로 이야기를 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갈등이 마무리 되면서 더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 메노나이트 대학은 제가 가고 싶었던 대학은 아닙니다. 안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여름 camp랑 똑같은 곳이야 라고 말해 주어서 그런 공동체에 대한 추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 말 한마디에 캐나다 메노나이트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외할머니는 캐나다 메노나이트 대학교에 가는 것을 말렸습니다.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신앙이 떨어질 수 있다고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 사촌은 평화에 대한 개념이 없으셔서 군대도 갔습니다. 이렇듯, 메노나이트에서 성장했다고 해서 평화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메노나이트가 평화를 이야기를 하지만 폭력적인 역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캐나다 메노나이트들은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땅을 침범했습니다. 그래서 1876년에 정부와 원주민 사이에 treaty가 만들어져서 원주민과 정착민들이 서로 땅을 분리해서 나눠 갖도록 협의가 이루어졌는데 정부는 그 treaty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외할머니가 사는 땅도 원주민에게 분배된 땅이였지만 원주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찾아 다니는 동안 정부가 그 땅이 비어 있다고 판단하고 그 땅을 메노나이트 사람들에게 주어버렸습니다. 그 당시, 그 땅의 의미를 메노나이트 사람들이 몰랐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 메노나이트들에게는 굉장히 복잡한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꼭 평화를 이야기하고 실천하지 않은 …

우리 사촌과 달리 저는 군대를 가지 않고 평화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평화교육을 주일학교에서도 경험했고, 여름 캠프에서도 경험했습니다. 그 곳에서는 직원으로도 있었습니다. 거기서 갈등해결방식도 배우는 기회를 얻었고 이를 통해 평화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대학교에서도 평화학, 평화신학을 들었습니다. 모든 메노나이트가 다 가는 길은 아니지만 저는 평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런 프로그램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KAC에서 Peace village라고 탈북자들과 남한사람들이 함께 영어를 배우는 평화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KAC를 통해 메노나이트를 아주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국말을 배우면서 처음부터 배워야 했던 말이 “이단 아니예요!”라는 말이었습니다. 메노나이트를 설명하기 위해 이 말을 자주 언급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훨씬 더 많이 평화를 배웠습니다. 모든 교회가 평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제가 만난 첫 호스트 가족은 권오서 목사님입니다. 목사님을 통해서 한국문화, 한국교회를 배웠고 인내심을 많이 배웠습니다. 제 한국성이 “권”이 된 것은 권오서 목사님 덕분입니다. 목사님은 항상 저를 우리집 “딸”이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

그리고 한국교회가 말하는 평화와 제가 배운 평화가 다르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교회도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그 의미는 내적인, 영적인 평화였으며, 뭔가 조화로운 상태를 의미하는 평화였고, 대부분은 남과 북의 평화의 개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가 배운 평화는 더 넓고 깊은 평화였습니다.

두 번째 호스트 가족과 살면서 거기에서 아주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만 보면 교회에서 왜 평화를 이야기해야 하는지 계속 도전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논쟁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와의 대화를 통해가 무엇인지 평화신앙이니지, 무엇이 문화인지, 무엇이 평화교육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분과의 만남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2004년에 Connexus(KAC에서 만든 영어 학원)를 시작했습니다.

평화는 언어랑 같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영어교육과 평화교육이 멀지만 저는 언어랑 평화가 같이 가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Eastern Mennonite University에서 평화를 더 배웠습니다. 평화와 갈등은 관심분야의 테두리를 넘어 학문적인 분야로도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양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새로운 지식을 만들 수 있고 평화에 대한 배움의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제는 저의 언어에 의한 삶의 전환의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영어를 모국어 사용합니다. 우리 조부모님은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독일어을 알아들을 수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숨기려고 할 때, 우리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항상 독일어를 우리 앞에서 사용하셨습니다.

실은 우리 가족은 가족의 언어, 가족의 스토리, 문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어머니쪽은 1890년 프러시아에서 캐나다로 오셨는데 병역거부의 문제로 새로운 땅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쪽에서 1920년 대 쯤 캐나다 난민으로 왔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상상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입으셨습니다. 그런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은 채, 다음 세대로 전달됩니다. 영어로 이런 트라우마를 표현하면 부정확하게 전달됩니다. language loss와 트라우마가 함께 왔습니다.

아버지가 7살 때 즈음, 아버지는 어머니를 잃습니다.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의사소통에 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몸으로 표현하십니다. 독일어도 잃어 버리고 영어로는 정확하게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울기만 하게 됩니다.

저는 크리스마스 선물 때문이라도 독일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불어를 더 빨리 배웠습니다. 2-3학년부터 시작해서 대학교까지 공부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퀘벡의 학교와 교환학생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불어를 쓰는 가정에 홈스테이하면서 6개월정도 머물렀습니다.

언어교육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갖게 되었습니다. 불어는 그저 선생님과 교실에서 쓰는 언어였는데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새로운 이해는 큰 영향을 저에게 미쳤습니다. 언어가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창문이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더 많은 언어를 배우기로 작정했습니다.

이모가 중국에서 사역하셨기 때문에 중국어도 공부했습니다. 처음으로 중국 사천을 방문했고 시골에서 여름에 영어회화를 하는 프로그램을 맡았습니다. 중국어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영어를 가르칠 때도 단순히 과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환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어도 배웠습니다.

아침에는 중국어, 점심에는 한국어, 저녁에는 독일어.

오래 언어를 배울수록 정체성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갈등을 배우고, 이렇게 해결하는 것을 배우고 상처주는 것을 배우고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성격과 정체성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내 안에 깊이 언어가 들어왔습니다. 저에 대해 새롭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re-story하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경험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발음에 대한 교육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이 변화되는 경험 말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요즘 원주민 언어를 부활하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생존을 만드는 과정 뿐 아니라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학교에서도 원주민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기 시작했고 라디오에서도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는 채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메노나이트의 관점에서 언어와 평화에 대한 고찰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는 전환된 개인관계를 점을 짚고 싶습니다.

언어가 바뀌면 관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를 잘 하지 못 하는 상사와 영어를 잘 하는 여직원이 영어교실에 들어오면 관계가 바뀌게 됩니다. 평상시 회사에서는 목소리를 크게 내던 상사가 영어교실에서는 여직원의 말을 더 많이 듣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기존의 관계가 바뀌면서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절대로 한국남자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인을 이해하게 되면서 결국 한국남자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힘의 변화가 생기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공동체가 성숙하게 됩니다.

 

둘째는 전환된 의사소통법입니다.

언어에 대한 인식이 바뀝니다. 언어를 배우게 되면 답답한 경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지게 됩니다. 선입관이 중단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정의로운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가 있게 됩니다.

 

셋째로는 평화와 갈등의 전환된 내러티브를 보게 됩니다.

내러티브를 탐색하게 됩니다. 세계관을 확장하게 되고 언어학습으로서의 평화만들기를 고민하게 됩니다.

 

화해를 위한 영어교육에는 관계(relationship), 역량(skills), 내용 (content)을 평화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하게 됩니다.

언어를 통해서 관계를 형성하게 돕습니다. 그리고 이 언어 연습을 하면서 평화와 화해의 역량을 키워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그런 평화와 화해의 내용을 담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방법론(Methodology)에 있어서도 평화를 추구하는 법을 고민하게 되고 전반적인 시스템이 힘의 논리와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 평화와 관계를 추구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다국어전략이 필요합니다. 강이 만나 합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가지 언어만 쓰게 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힘에 의한 논리입니다. 언어를 배우더라도 우리는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언어를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다리 아래의 언어를 배워봅시다.

다른 언어를 쓰면서 우리는 이해의 폭을 넓히며 약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 한국어가 익숙해져서 다른 언어를 또 배우려고 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평화의 길입니다. 언어를 배우며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평화를 실천하게 됩니다.

 

 

10월 리본모임 안내

10월달 리본모임은 캐나다 메노나이트 가정에서 성장하셨으며 미국 EMU에서 평화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셨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시는 권세리(Cheryl Woelk)자매님을 강사로 초대합니다.

지난 달에 함석헌 선생의 평화학에 대해 우리의 이해를 돕는 시간을 가졌다면 이번에는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성장하며 메노나이트의 평화학을 전공하신 자매님으로부터 메노나이트가 말하고자 하는 평화에 대한 이해의 지경을 넓히고자 합니다. 특별히 평화의 반경 중에, 언어가 평화의 도구로서 사용되어질 수 있다는 시각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특히, 제국주의의 도구로서 힘을 가졌던 영어가 어떻게 평화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통찰력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장소에서 평화를 일구어 내는 창의성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매님이 복음과 상황에 인터뷰한 내용을 링크합니다. 읽어 오시면 더 풍성한 대화와 나눔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http://m.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642

[인터뷰] "평화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10월 리본 독서 모임001
주제: 평화를 일구는 언어
시간: 10월 29일 화요일 오후 7시
장소: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 (춘천시 춘천로 34, 3층)강사 소개: 본명 쉐릴 웰크(Cheryl Woelk), 한국명 권세리. 캐나다 태생의 메노나이트이자 선교사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평화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평화교육가이다. 러시아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메노나이트의 후손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평화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성장했다. 현재 숭실대를 비롯하여 평화대안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작년에 제2외국어로서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평화와 화해, 소통을 추구하도록 돕는 책, 《Teaching English for Reconciliation》(공저)을 펴내기도 했다

11월 7-9일 시스터케어리더십세미나

한국 메노나이트 주최 시스터케어 리더십 세미나를 11월 7-9일(목-토)를 개최합니다. ^^

오랜 전통 속에서 여성이 여성을 돕는 시스터 케어의 노하우를 메노나이트 여성 리더들을 통해서 듣습니다.여성들이 가진 정서적인, 육체적인, 관계적인, 성적인 문제를 남자목회자들에게 나눌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큰 문제로 와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여성은 여성이 가장 잘 도울 수 있습니다!! 여성을 이해하고 돕고 세워 나가는 시스터 케어 리더십 세미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 시스터 케어 리더십 세미나의 목적:
* 여성들이 개인적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
* 여성들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고 감사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 다른 여성들의 필요를 살피고 자신감있고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한다.
* 세미나를 경험한 후에 다시 이 메뉴얼을 교회나 공동체의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2. 시스터 케어 리더십 세미나의 구성
1)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른 사람을 돕는 법을 결정하게 된다.
2) 나와 다른 사람을 돕는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댓가가 따른다: 한계를 정하고 다른 사람을 돌봄과 동시에 나 스스로도 살핀다.
3) 긍휼한 마음으로 듣는다: 긍휼한 마음으로 듣는 일은 상처와 슬픔을 극복하도록 돕는 영적인 일이다.
4) 슬픔에 처한 사람을 어떻게 돕는가: 이미 자신의 경험을 통해 치유를 경험하고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자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치유의 일이 발생한다.

3. 시스터 케어 리더십 세미나의 안내
일시 : 2019년 11월 7(목) 오전 11시부터 등록~9(토) 2박 3일 오후12:30 점심식사까지
장소: 필그림하우스(경기도 가평)
주최 : MCSK (한국메노나이트교회연합)
주관 : MCSK 여선교회(가), KAC(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문의처: kac@kac.or.kr 혹은 033-242-9615

– 1차 등록 : 9월 20일  2차 등록 : 10월 20일
-등록 인원 : 30명
– 등록비: 15만원(교재, 숙식 포함)
통장 : 농협 351-0975-2107-53 한국메노나이트교회연합

관심있으신 분들은 여기를 눌러보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1cSwIM3NdnL6x58rUI3fWkuMLlBd_YwpBEZHn-xBzuH4/edit?ts=5d58d945

시스터케어리더십 세미나에 대한 안내 동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ECGuvuL5Cw

9월 리본모임 정리

지난 9월 24일 김대식 교수님과 함께 하는 “함석헌 선생의 평화론”이라는 주제로 리본모임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함석헌 선생님의 생각을 풀어 주셔서 많이 어려운 듯 하면서도, 생각의 폭이 확장되는 모먼트를 접할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교수님의 강의를 정리하고 질의 응답시간을 정리해서 좋은 분위기를 전달해 드리고자 하였으나 이번 리본모임은 몇 가지 키워드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강의의 본래 의미와 다를 수 있음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기표: 평화와 비폭력의 상황을 기대한다면 무엇보다 ‘기표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표’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표현인데 이 기표라는 것이 함께 공유되지 않는다면 기표표출에서부터 폭력이 발생될 수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리하여 세대와 성별과 신분을 아울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기표를 찾아내고 형성해 가는 것이 비폭력의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화라는 기표를 다양한 형태로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간디의 경우는 비폭력의 형태를 시민 불복종, 납세거부, 불가촉천민의 파업, 비폭력이 언어적 수단, 정서적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나만의 기표를 통해 확산이 될 수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도 아이디어를 얻어 군사정권시절에 단식을 하셨습니다.
퀘이커도 잠시 이야기 했는데 인상적인 점은 폭력적 방식에 대해 비폭력, 저항운동을 취합니다. 핵발전도 같은데서 피켓도 없이 도시락 먹고 행동을 하는데 그것도 기표가 될 수 있습니다. 전혀 없는 것 보다 기표발생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사랑 말하지만 기표를 발생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뜻: 함석헌 선생은 장로교에서 출발하여 무교회주의였다가 퀘이커를 경험하시고 탈종교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저서 중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그 전에 <기독교 관점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기독교관점이라는 말을 뜻이라는 말로 대체하였습니다. 이는 무교회주의자들 조차도 서운하게 생각하였던 부분입니다.
여기서 ‘뜻’이란 보편성을 말하며, 종교를 초월하여 형이상학적 의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뜻이 가리키는 주요언어로는 생명, 평화, 사랑, 생태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뜻(정신이나 하늘, 하나님과 등치됨)은 비폭력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3. 비폭력은 놀이: 비폭력이 권태로서도 기능할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놀이로 봐야 하지 않는가 합니다.
놀이를 할 때는 권태나 지루함이 사라집니다. 놀이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놀이 자체가 놀이의 주체가 됩니다. 놀이가 놀이를 합니다. 어렸을 때, 놀이를 하다보면 놀이를 한다는 생각이 안 들잖아요. 평화도, 비폭력도 그런 것처럼 해방구, 탈출구, 해방감을 맛보게 하는 기구로서 경험되어야 합니다.

함석헌선생은 비폭력은 장치로서의 자리라는 말을 씁니다. 폭력은 위계적 질서나 지배적 관계가 드러나게 되고 체계와 힘의 불균형에 따라 생기는 것으로 보면서 자리를 원본 그 자체로 놔두고 누구의 자리도 될 수 있다고 한다면 비폭력적 놀이가 가능한 것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3. 씨알: 씨알사상에서 씨앗은 아르케라고 불리는데 시원, 시작과 같은 의미입니다. 어떤 것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씨앗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주체가 되어서 폭력을 무화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씨알과 연관되는 것이 도덕적 비판으로 상대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가치를 쇄신하는데 포인트를 두는 것입니다. 같은 종교인이래도 추구하는 가치가 다를 수 있고 폭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비폭력 저항에서는 가치를 쇄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씨알이라고 하는 감성과 평등성을 함석헌 선생은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정치에도 감성의 5감각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행동은 목소리입니다. 모든 씨알에게도 동일하게 있는게 목소리이고 그 목소리가 평등하고 수평적으로 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생명력있는 씨알로 살아가면서 하늘의 뜻을 분별하며 이 땅에 그 뜻의 가치인 평화, 생명, 사랑의 기표를 드러내며 비폭력의 가치로 다른 이와 함께 협화할 수 있는 삶. 그것이 궁극적인 씨알의 삶이라고 조심스레 정리해 보면서~~~ 휘리릭!5_e9hUd018svc1kv53io1ytuzu_sp0ezp

9월 “함석헌의 평화”와 함께 하는 리본모임

9월에는 함석헌의 평화를 전공하신 김대식 교수님께서 오셔서 한국형  평화의 이야기를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통해 들려 주십니다. 함석헌 선생의 존함은 많이 알려졌지만 깊이 있게 함석헌 선생의 평화 사상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 주변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특별히 춘천 출신이신 함석헌 선생의 전문가이신 김대식 교수님을 초대하였습니다.

김대식 교수님은 대구가톨릭대학원 종교학과 겸염교수이며 함석헌 평화포럼 공동대표이며, 함석헌 평화연구소 부소장이십니다.  철학과 종교학 박사로서 종교 간의 대화에도 관심을 많이 갖고 활발하게 활동하십니다.

메노나이트의 평화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우리나라의 함석헌 선생님의 평화이야기를 듣는 것은 또 다른 설렘을 선사합니다.

9월 24일 화요일 오후 7시 한국아나뱁티스트 센터에서 뵙겠습니다.

읽으실 책으로는 김대식 교수님의 저서로 <함석헌의 이성의 해방>, <함석헌의 평화론>, <치명적 자유의 향연: 아나키즘과 함석헌>입니다. 이 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함석헌의 평화론>을 읽어 오시라고  강추합니다. ^^



					

메노나이트와 바캉스

올 여름은 바캉스를 다녀오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대자면 여러 핑계거리가 있지만 가장 정확한 이유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노나이트와 바캉스>라는 주제의 글을 부탁받아서 써보았습니다.
지인들은 바캉스를 다녀와야 진정한 글이 나온다고 우스개 소리를 해 주셨는데, 어쩌다보니 몸보다는 글로 배우고 글로 움직이는 삶이 더욱 용이해지는 현실을 봅니다.
글로만 바캉스인 이번 여름, <메노나이트와 바캉스>글을 이제 링크해 봅니다.
NCCK의 사건과 신학이라는 웹진에 실린 글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견해이기에 다른 메노나이트분들과 다를 수 있다는 점 양해말씀으로 먼저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