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목요 리본모임 안내

  1. 1. 25 (목)

꼭 1주일 남았습니다.

일시: 2018년 1월 25일 (목) 저녁 7시

장소; KAC 사무실

주제: “선교적 부르심과 선교적 교회”
강사: 허성식 목사 (프린스턴신학교 선교학 박사, 장신대, 횃불신학대학원, 숭의여대, 주안대학원대학교 등에서 강의, 주안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교적 부르심과 선교적 교회”[1]

강사: 허성식 목사[2]

강의 내용: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의 의미를 “선교적 소명”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이런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공동체인 교회가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함께 생각하며 나누려 합니다.

준비사항: 참고 도서는 Darrell Guder (허성식 역), 『증인으로의 부르심』(Called to Witness: Doing Missional Theology)이며, 아래의 강의안을 미리 읽어보시고, 2~3가지 질문을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

 

I. 선교적 소명에 관한 성경 묵상 

  1. 예레미야 서에 등장하는 바룩 이야기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이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니라 그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바룩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45:1-5)

  1. 바룩은 누구인가?

바룩은 예레미야서에 등장하는 사람인데, 예레미야의 둘도 없는 동역자였습니다. 바룩이란 이름의 뜻은 “축복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네리야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예언자 예레미야와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예레미야와 바룩이 살던 시대는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유다의 요시아 왕이 이집트와의 전쟁 중 전사하고, 그의 아들 여호야김이 왕으로 등극하여 다스리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야김은 아버지 요시아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고 제멋대로 살았던 임금이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예레미야나 바룩과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핍박을 당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바룩이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예레미야서 32장 12절에서, 바룩이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토지를 매입하여 살 때 돕는 사람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바룩이 예레미야가 가장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벗이었음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예레미야 36장과 43장, 그리고 오늘 읽은 45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내용은 여호야김 재위 4-5년 어간에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바룩은 연금 상태로 갇혀 있었던 예레미야를 대신해서 서기관으로서 그의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주면, 바룩이 서기관처럼 묵을 가지고 양피지에다 그 말씀을 받아 적었고, 그 다음은 받아 적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 말씀을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가서 선포하는 일을 했습니다.

  1. 바룩의 푸념기도

바룩은 예레미야를 도와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 그 말씀을 먹물로 두루마리에 적어서 백성들과 나라의 지도자들, 그리고 여호야김 왕 앞에서 낭독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습니다. 마치 아론과 모세가 한 팀을 이뤄서 동역했던 것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바룩과 예레미야가 처한 상황은 목숨이 위태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두 가지 큰 사건이 예레미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36장에 나오고, 다른 하나는 43장에 나옵니다. 36장에는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유다 왕 여호야김와 유다 백성을 심하게 꾸짖으시면서 심판할 것에 관한 말씀을 주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때, 예레미야가 바룩을 불러서 이런 심판의 내용을 받아 적게 한 다음, 바룩이 이런 내용을 담은 두루마기를 백성의 지도자들 앞에서 낭독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들었던 왕의 신하들이 당황하고 놀라서 이 두루마리를 가지고 여호야김 왕 앞으로 나가 낭독을 합니다. 그런데, 이 때가 겨울이었는데 여호야김이 신하로부터 그 두루마리에 적힌 심판의 예언 말씀을 듣자마자, 칼로 베어서 화롯가에 던져 불태워 버리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는 예레미야와 바룩을 잡아 죽이려 듭니다. 할 수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이런 짓을 하는 여호야김을 피하여 예레미야와 바룩은 몸을 숨기게 됩니다. 두 번째 사건은 여호야김과 그의 부하들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경고를 무시하고 애굽으로 도피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때 예레미야 4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바룩을 통해 왕과 백성들에게 심판의 예언을 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내용인 즉 “애굽으로 내려 가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내려오 다 죽이게 될 것이니, 애굽으로 도피할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와, 유다 백성들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그곳의 우상들을 숭배하는 죄에 대해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백성들이 바룩에게 모든 비난을 퍼부으면서, 바룩이 예레미야를 뒤에서 부추겨서 그들이 애굽으로 가는 것을 말리게 한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렇게 바룩은 예레미야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다가, 도망자의 신세가 되기도 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던 것입니다. 바룩도 처음은 아주 고상하게 기도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자신이 처한 환경은 전혀 바뀌지 않고, 즐거운 일은 하나도 없고 계속해서 괴롭고 힘든 일만 일어날 때,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하게 될까요? 바룩은 “하나님 고통스럽고 슬프고, 완전히 지쳐서, 이제는 맘에 평안도 없어요”라고 푸념했습니다.

  1. 하나님의 응답

본문4-5절을 다시 한번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하나님의 응답은 세 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바룩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세 번째는, 바룩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1. 바룩의 삶을 통해 우리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II. 선교적인 교회란 무엇인가?

  1. 선교적 교회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다

요즘 한국교회에서는 “선교적인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말이 대유행이다. 이것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 “교회다운 교회”로 회복되기 원하는 간절한 바램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크게 우려되는 것은 마치 이런 선교적 교회론이 제자훈련, 알파코스, 두 날개, 가정교회 운동 이후의 또 다른 새로운 교회성장 프로그램으로 은연중에 목회자들 사이에게 인식되면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그럼 과연 선교적 교회는 새로운 교회성장 프로그램 같은 것일까? 사실, 선교적 교회 논의가 점차 확대되고, 이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책들과 논문들이 북미를 중심으로 출간되면서, 최근 들어서는 “선교적 교회”라는 말이 하나의 “건강한 교회 운동” 혹은 “교회갱신 운동”정도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최근 선교적 교회 논의가 여러 영역에서 확대되는 과정에서, 이런 선교적 교회론이 목회자들, 특히 중대형교회의 목회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교회성장의 수단 내지는, 자신들의 교회성장 욕구를 아주 세련되게 표현해주는 시대적인 장치 정도로 이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요즘 들어, 중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개최하는 한국교회 개혁, 갱신, 성장에 관한 각종 세미나나 포럼들에 대한 광고들을 살펴보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선교적 교회”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선교적 교회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유행어처럼 사용되는 선교적 교회란 과연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사용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 선교적 교회 담론이 나왔던 서구 교회의 상황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1. 북미 중심의 서구교회에서 시작된 선교적 교회 논의

    A. 역사적 배경

우선 선교적 교회론이 출현하게 된 서구 교회의 역사적 환경 변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 없이 현재 유행처럼 확산되는 선교적 교회에 대한 구호적 외침은 사실 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선교적 교회에 대한 관심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선교적 교회론이 영국과 북미지역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주목을 받게 된 주요한 역사적인 배경은 “서구교회의 쇠퇴”와 이로 인한 “기독교의 후기기독교사회로의 진입”이라는 새로운 환경(context)일 것이다. 더불어서, 선교의 관점에서 볼 때, 서구교회가 수 세기 동안 해왔던 크리스텐덤(Christendom) 하의 “선교하는 교회”(missionary church) 시대가 이제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 즉 포스트-크리스텐덤 (post-Christendom) 시대의 새로운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로 전환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부여되었다. 이런 논의를 선도적으로 했던 인물은 레슬리 뉴비긴 (Lesslie Newbigin)이라는 영국 출신 인도 선교사였다. 그는 인도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은퇴한 후 영국으로 돌아와서 신학자와 목회자로서 생활하면서, 후기기독교사회(Post-Christendom)로 접어든 영국 사회가 다원주의 사회로 변해 있음을 간파하고, 이렇게 다원주의 사회로 탈바꿈한 서구사회에서 복음을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라는 교회의 과제들을 가지고 씨름하였다. 

B. 복음과 함께 전해진 서구기독교회의 교파주의

레슬리 뉴비긴이 인도에 선교사로 파송되어서 사역했던 때는 인도의 기독교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시기였을까? 인도의 역사와 인도 교회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 때는 인도가 정치적으로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애쓰던 시기였고, 실제로 독립을 쟁취했던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인도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때였다. 반대로 서구의 역사와 서구 기독교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서구의 제국주의 식민지배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이와 더불어 서구기독교의 제국주의적인 선교 또한 빠르게 그 세력을 상실해가던 시기였다. 특히 1940년대 후반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바로 직전의 상황이었다. 간디의 강력한 정신적인 지도력을 받으면서 모든 인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도의 독립을 성취하기 분투하고 있던 때였다. 이런 사회정치적인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서 인도 교회, 이미 지난 수 십 년을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많은 논의를 해오고 있었지만 교회연합운동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인도교회는 인도가 정치적인 독립을 위해 하나되는 마당에 교회가 분열된 모습으로 세상 가운데 비취는 것에 대해 커다란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요청을 맞이해서 인도교회연합운동을 이끌던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은 인도교회의 연합을 위해 마지막 힘을 모으고 있었다. 특히, 연합운동의 중심지였던 인도 남부의 교회들은 인도교회가 선교지 교회로서 서구기독교회들과 선교단체들로부터 전수받았던 교파주의로 인한 교회의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된 인도교회를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뉴비긴이 남인도교회 연합운동의 핵심 지도 그룹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뉴비긴은 1936년 스코틀랜드장로교 선교사로서 인도에 파송되어 활동했었는데, 그가 남인도 교회들의 연합에 기여하게 된 것은 1943년 남인도연합교회(South India United Church)의 교회연합위원회 의장 자격으로 교회연합을 위한 회의장에 참석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의 역할은 남인도 교회들의 연합이 가시화됨에 따라 이에 대해 노골적인 반대에 나선 영국 성공회교회와 신학적인 논쟁을 통해 그들을 설득하는 것뿐 아니라, 연합에 참여한 모든 남 인도의 교회들에게 연합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었다. 이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뉴비긴은 성공회교회와의 신학적 논쟁에서 연합되는 남인도교회가 추구하는 교회론에 대해서 세계 교회가 납득할만한 신학적인 주장을 펼침을 통해서 사실상 남인도교회가 탄생하는데 필요한 마지막 중요한 방점을 찍는 일을 했다는데 있다.

남인도교회의 출범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였던 영국성공회교회를 비판하면서 벌인 뉴비긴의 신학 논쟁은 1947년 남인도교회(Church of South India-CSI)의 출범 직전 발간된 그의 책, The Reunion of the Church: A Defense of the South India Scheme [3]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뉴비긴은 성공회교회가 제안했던 “추가적인 목사 안수례”(Supplemental Ordination) 안을 거부하면서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신학적인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 책 서문에서 뉴비긴은 남인도 교회 연합을 위한 개요(the Scheme)에는 고쳐야 할 것이 많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남인도교회(CSI)를 그의 성령으로 인쳐주셨다고 말한다. 교회 연합 문제, 특히 남인도교회 문제에 대해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영국 성공회교회에 대해 비난을 각을 세우면서, 그는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을 해체시키는 스캔들을 종식시키는데 우리에게 무한정 시간을 주시지는 않으신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재연합된(reunited) 교회들 가운데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볼썽사나운”

(anomalous) 모양들에도 불구하고, 뉴비긴은 분열된 교회들이야말로 그 자체로 가장 “볼썽사나운 것”(anomaly) 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교회가 분열된 상태를 회복시키려는 과정 가운데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볼썽사나운 일이 있다면 그런 것들은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장시간 방치하고 부식되어 생기는 흩뜨려짐(untidiness)과 새로운 성장으로 인해 나오는 흩뜨려짐 사이에는 막대한 차이가 있다고 믿으면서, 남인도교회에서 나타나는 “볼썽사나운 것들”(anomalies)은 새롭게 성장하는 자락 끝에 나타날 수 있다고 예상되는 흩뜨려진 것들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그는 교회의 역사적 신앙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교파주의에 의해 촉발된 교회의 분열이야말로 정말로 볼썽사나운 것이고, 역사 속에서 교회가 만들어낸 진짜 꼴불견(scandal)이 바로 이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다. 이런 분열은 온 세상의 모든 나라와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위해서 반드시 치유되어야만 한다고 그는 믿는다.

뉴비긴은 1947년 저술하여 그 이듬해에 출간되었고, 1960년에 개정판이 나온 책인 The Reunion of the Church 이후에도 1996년에 성만찬에 관하여 쓴 글인 “Lay Presidency at the Eucharist”[4]에 이르기까지 여러 글들을 통해서 영국 성공회교회와 날이 선 논쟁을 계속 이어왔다. 그 논쟁의 핵심은 감독제를 교회의 본질(esse)로 보는 영국 성공회교회의 역사적 감독제에 대한 교회론 이해와 해석은 문제가 있으며, 감독제 자체를 교회의 본질에 속한 것이라 보는 이런 교회론이 성공회교회가 다른 교회들, 특히 감독을 두지 않는 교회들과 연합하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뉴비긴은 거의 5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영국 성공회교회의 교회 이해에 관해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비판해왔다. 그가 비판하는 내용, 특히 남인도교회의 출발 시점에 비판했던 내용들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5]

첫째는 영국 성공회교회가 교회연합운동 세력을 교회 분열을 획책하는 불순하고 불경건한 교회 역사의 이단아들처럼 매도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뉴비긴은 영국 성공회교회가 자신의 신학적인 포용성(comprehensiveness)를 자랑하면서 한편으로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해서 비굴할 정도로 한 울타리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중적인 잣대로 개신교 교단 교회들, 특히 감독제가 없는 교단 교회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려는 행태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어떤 교파적 교리에 의해서도 교회가 분열되는 것은 그 자체가 볼썽사나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 뉴비긴이 비판하는 것은 역사적인 감독제를 교회의 본질로 보고 감독이 없는 교회들을 교회로서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영국 성공회교회의 신학적 입장이다. 이런 입장조차도 영국 성공회는 일관성이 결여된 태도로 보여오고 있다고 그는 비판한다. 세 번째로 뉴비긴이 비판하는 것은 영국 성공회교회가 교회 연합, 특히 남인도 교회의 교회 연합 문제에 있어서 보여온 일관되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태도이다. 시류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달리 표명하는 것 같아 보이는 영국 성공회교회와 그 중심에 서 있는 교회 리더들에 대해서 뉴비긴은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을 가한다. 특히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위해 교회의 연합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있던 뉴비긴에게 있어서 이런 영국 성공회교회의 모습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뉴비긴은 교회는 선교를 위해 하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도라는 선교 지역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뜩이나 모든 면에서 다원주의 사회인 인도와 같은 지역에서 교회의 분열은 그 자체가 가장 볼썽사나운 일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표지(sign)이고, 열매(fruit)이며, 도구(instrument)로서 나타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의 하나됨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청 사항이다. 복음이 교파적인 전통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교회들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연합을 위한 대화에서도 성령의 역사가 중요하다. 그리고 교회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죄인들을 용서하고 불완전하지만 회개하는 교회들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경험해야 한다.

C. 교회성장주의에 입각한 선교 정책

역사적으로 보면 인도는 여러모로 두각을 나타내는 탁월한 선교사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중반 인도 선교를 이해함에 있어서 꼭 알아야 하는 두 선교사가 등장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선교사의 선교 이해, 특별히 선교 현지에서의 교회의 성장에 대한 이해가 서로 충돌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두 사람 모두 선교지의 교회 성장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을 강조했던 선교 전략가인 롤랜드 알랜 (Roland Allen)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른 선교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선교사란 다름아닌 레슬리 뉴비긴과 도날드 맥가브란 (Donald McGavran)이었다. 맥가브란은 WCC를 중심으로 하는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 반면, 뉴비긴은 맥가브란이 시작한 교회성장학파(the Church Growth School)이 주창한 교회성장이론들에 대해 대체적으로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6]

뉴비긴은 모든 나라들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다시 얻음을 통해 교회의 선교적인 본질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교회성장학파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이런 복음 전파를 통한 교회회복과 성장만이 교회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는 교회의 본질 회복은 교회의 하나됨과 성령 안에서 신비스럽게 이루어지는 교회의 성장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 교회 사역은 “선교와 일치”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 두 가지 방향이 바로 성령의 사역의 두 가지 측면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7] 특히 교회 일치라는 성령의 사역의 측면에서 볼 때, 뉴비긴은 교회성장학파의 교회성장이론은 교회의 일치에 해를 가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많다고 생각했다.

뉴비긴과 맥가브란 모두 롤랜드 알랜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이전까지 해오던 서구 선교의 방식인 “선교주둔지 중심 선교”에 대해 반대했는데, 뉴비긴은 이런 선교지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그들이 속한 사회로부터 격리해서 선교주둔지에 거주시키면서 따로 교육하고 생활하게 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사는 곳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였고, 맥가브란은 특정한 선교 지역 전체 주민들이 한꺼번에 회심하도록 하는 전도 운동 (people’s movement)를 통한 교회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두 사람 모두 선교지에서의 교회 성장은 성령의 역사라고 믿었는데, 성령이 역사하시는 방법에 대해서 뉴비긴은 그 방법 자체를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겨야 된다고 믿었고, 맥가브란은 “균질성의 원리”(homogeneous principle)을 발견하여서 이 원리대로 교회 성장을 추구할 때 성령의 역사가 가장 강력하게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교회의 성장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회성장의 리더십을 인간들이 고안해낸 전략들이 아니라 성령께 내어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뉴비긴은 말한다. “종종 우리가 계획하지 않았고, 알지 못했던, 또는 이해하지 못했던 곳으로 성령이 인도하시는 데로 순종하면 나갈 때,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살면서 미리 맛보게 해주시는 성령님 (the living foretaste of the kingdom)의 임재로 인해 가지게 되는 소망을 실현하게 된다.”[8]

교회 성장 문제에 관해서 뉴비긴은 마치 군사 작전이나 종합 상사에서 하는 방식으로 교회가 가진 자원들을 운용하고 분배해서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은 교회에 합당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날 때 하나님께서 사람이 알 수 있는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사건을 언급하면서,[9] 복음 증거는 “십자군 정신”(crusading spirit)을 거부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뉴비긴은 너무나 이론에 의존하고, 숫자에 매달리는 교회성장 운동에 대해 반대하면서 그리스도인의 헌신은 어떤 대의나 프로그램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 분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선교의 중심에는 언제나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소명이 있어야만 한다.”[10] 교회성장 이론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이런 비판의 중심에는 뉴비긴이 지적하고 있는 이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과연 교회성장 이론들은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성장 이론에 집중하고 있는가? 그리스도 중심인가? 아니면 교회성장이 중심에 있는가?”

뉴비긴은 교회가 마치 수적인 성장만 되면 그 존재의 의미가 달성되는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교회성장 운동은 스스로 교회의 존재 목적, 곧 하나님이 세상에 교회를 왜 보내신 것인가에 대해 보다 자기비판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11] 또한 교회가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그 동기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나가는 것이어야지, 교회의 수적인 성장에 대한 “염려”(anxiety), 또는 성공에 대한 “압박”(pressure)로 인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것에 대해 “펠라기우스의 그림자”(the shadow of Pelagius)라고 걱정하면서, 신약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는 복음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지, 그 결과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12]

뉴비긴은 복음 증거는 강제적인 의무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사람들이 묻는 질문들에 대한 응답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러기에 그는 복음 증거는 “강요하는 전도” (forcible evangelism)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첫째, 복음 증거는 그리스도인들이 회중으로 모여서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둘째로, 그런 예배로부터 시작되는 그리스도인의 행위를 통해 새로운 실체의 존재를 사람들이 알게 되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께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 곧바로 치유와 축사의 행위가 함께 따르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현재함에 대한 증거로 삼으셨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셋째로, 이런 새로운 실체는 말씀으로 증명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치유와 축사의 행위는 설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3] 뉴비긴은 바람직한 복음 증거를 위해 다섯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이것은 교회의 크기와 중요성을 증대하려는 그리스도인의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복된 소식을 나누는 것이다. 둘째, 세속 사회에서 복음 증거의 단서는 지역 교회이다. 대중전도집회나 문서 선교, 미디어 선교 같은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들이다. 셋째, 교회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다양한 공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임무를 잘 수행하도록 교회 성도들을 훈련하는 것이다. 넷째, 교회 성도들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자신들이 믿는 기독교 신앙 이야기를 일상의 삶과 연계해서 잘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다섯째, 복음 증거는 개인적인 회심만을 위해 초청하는 것이 아니며, 교회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사회 변화를 위해 초청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전의 기독교세계에서처럼 기독교가 지배하거나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적인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의 이야기가 탁월함의 최고 기준이 되도록 하는 기독교 사회를 향한 소망에 대한 응답이다.[14]

뉴비긴은 교회성장 이론들이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진행된 강압적인 회심과 같이 강압성을 띤 전도 운동이 될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하면서, “맥가브란의 주장 가운데서 좋은 것도 있지만 교회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인 힘의 영향을 통해서 급속도로 성장할 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 극히 힘들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15]라는 말로서 자신의 비판적 입장을 피력한다.

III. 한국적인 선교적 교회란? 

  1. 문제 제기

무엇보다 먼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새로운 브랜드는 한국교회가 또 다시 카피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하는 북미 교회가 중심이 되어 논의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켜오는 교회론인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선교적 교회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면 뭔가 시대 흐름에 뒤처진 것 같은 느낌을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애플의 에어맥을 들고 작업을 하면 뭐 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같은 현상이 선교적 교회에 대한 대화 가운데서도 감지된다. 물론, 새로운 유행은 그런 식으로 찾아오는 것이기에 그렇게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고 인기를 끄는 현상 자체를 뭐라고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이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스타벅스처럼 북미에서 탄생한 것은 맞지만, 스타벅스처럼 북미에서 파는 맛 그대로 한국에서도 북미스러운 맛을 내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선교적 교회는 한국적인 특수한 상황, 한국문화라는 전혀 다른 토양 (context)에서 그 토양에 맞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일은 대단한 인내와 노력, 끈기를 바탕으로 한 부단한 연구와 협업이 필요하다. 한국적인 선교적 교회가 어떤 교회여야 하는가는 어떤 한 가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답이 나올 수 있고, 다양한 모델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왜 그럴까? 먼저, 우리는 서구에서 나온 선교적 교회 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교회의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특별히 서구교회의 선교역사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서구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 뿐 아니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피선교지에서 시작된 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 한국의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한국교회가 걸어온 역사를 또한 알고 있어야 한다. 서구선교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 한국교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과 과제들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서구교회에서 시작된 신학적, 교회론적 담론을 직수입해서 한국교회에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과거의 많은 경험을 통해서 이미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피선교지 교회로서 한국교회는 최근까지도 북미교회들로부터 그곳 문화에서 배양된 온갖 교회프로그램들을 무차별적으로 수입해왔다. 최근에서 윌로우크릭교회와 새들백교회 같은 곳의 프로그램들이 한국교회, 특히 중대형교회들을 지배하고 있다. 소위 성장하는 교회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그러면, 선교적 교회에 대한 논의도 이런 흐름의 하나처럼 한국교회에 수입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을 안 보낼 수 없는 모습들이 계속 보이고 있다. 과연 선교적 교회가 이런 북미 산 또 하나의 교회상품이 되어야 할까? 절대 그렇게 되면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적인 상황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교회 운동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1. 한국적인 토양, 특히 현재의 한국적 토양은 어떤 것일까?

한국교회는 선교 지역에서 출발했다. 한국교회의 토양은 인도처럼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모든 면에서 다원주의 사회였다. 이런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한국교회는 교회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거듭했다. 해방 이전에도 한국교회에 찾아온 부흥은 평양이 제 2의 예루살렘이다라고 감탄할 정도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거치고 현대사의 여러 가지 굴곡을 지나오면서도 한국교회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고, 어느덧 한국사회가 이제“기독교사회”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흥분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한국에 모여있고, 세계에서 인구대비 가장 많은 선교사들을 해외에 보내고 세계에서 아마 신학교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곳도 한국일 것이다. 기독교학문연구회, 경실련 같은 기독교시민운동 등과 같은 활동들을 통해서 기독교사회로 진입하는 것과 같은 신호들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금세기 들어서 급속하게 후기기독교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교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 선교지로서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사회로 변화되는 경험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여전히 다원주의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분열이라는 문제에 대해 해답을 찾아야 한다. 교회 성장을 위한 교회 성장이라는 문제 대해서도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서구 다원주의 사회에서 교회들이 씨름하고 있는 문제들인 세속화,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교회의 공적인 복음 증거 능력 상실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1. 한국적인 선교적 교회를 세우기 위해 당면한 과제- “교회의 공적인 신앙 회복”

한국교회는 해방 후 지금까지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이뤄냈다. 그 결과, 한 때는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들을 해외로 많이 파송하는 나라로 칭송을 받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교회가 여러 가지 이유들, 대부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봐서도 그렇지만, 세상사람들이 볼 때에도 꼴불견이라고 밖에서 할 수 없는 추잡한 교회정치의 타락으로 인해서 사분오열된 상태이다. 현재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조차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대표한다는 기관들조차 내부적인 암투에 휘말리기 일수여서, 교회연합을 주도하는 기관들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이다.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가운데, 대부분의 중대형교회들은 “오직 내 교회의 성장”에만 매진하면서, 세상이 어떻게 되든, 다른 교회들이 어떻게 되는 별 상관을 하지 않고, 내 교회만 성장하면 괜찮다는 식의 지극히 “하나님 나라 복음”과는 상반되는 목회로 치닫고 있다. 전도왕을 선정해서 경품을 주는 교회들이 있는가 하면, 교회를 중대형교회로 성장시킨 후에는 자식들에게 세습시키는 일들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뜻을 파는 파렴치한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자기 교회 성장에만 마음을 기울이고, 교인들 눈치만 보는 가운데, 나라가 악한 정권에 의해 국정이 농단 당하고 국민들이 고통스럽게 부르짖는 그 와중에도, 악한 정권을 비호하는 일에 앞장서거나, 불의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일을 교회들이 했다. 지금 한국교회는 총체적인 위기에 빠졌다. 이런 위기 가운데, 선량한 중대형교회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선교적 교회”를 대안으로 제안한다. 선교적 교회가 주창하는 “교회의 공적인 신앙 회복”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공적인 신앙고백을 하는 “공적인 교회”(public church)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본고에서는 딱 한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한국교회 안에 있는 친일에 대한 트라우마와 빨갱이에 대한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 좌나 우가 아닌, “하나님 나라 복음”에 기초해서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보수적인 정권들에서 친일적인 역사관과 종북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보수 정권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 정권이 교회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순간에, 교회는 그들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대변이 같은 일을 했다. 가장 결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뉴라이트운동 같은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념적인 논쟁에서 왜 자꾸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일까? 그것은 한국교회가 걸어온 역사의 뒤안길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특히, 한국교회가 해방 전후를 통해, 그리고 박정희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화당에서 시작된 보수정권에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보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해방 전후 기간 동안 “친일의 망령”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친일을 했던 많은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 중 아마도 절대 다수가 그리스도인들 이었을 것이다. 한 역사학자의 연구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해방 전후뿐 아니라 70년대까지 한국사회 모든 영역에서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인사들의 절대 다수가 어디 출신인가? 북한의 평양, 신의주 지역인 “서북지역” 사람들이었다고 한다.[16] 왜 이 지역 출신 인사들이 해방 전후뿐 아니라 박정희 정권 때까지 사회의 지도층을 형성할 수 있었을까? 이들은 일제 시기에 일찍 기독교를 받아들여서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신식 교육을 받고 해외유학을 다녀온 지식인들이 되었다. 1910년부터 70년대까지 한국사회를 이끌어간 지도층 인사들은 대개가 서북 출신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교회를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가 무엇일까?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망령이다. 하나는 친일 망령이다. 다른 하나는 빨갱이에 대한 망령이다. 친일 망령은 자신의 부모들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 고통스러운 기억일 것이다. 일제에 부역해서 부자 되고 자녀들 유학 보내고 여유롭게 살던 그런 삶을, 이런 친일 가족들은 한국전쟁 덕으로 전쟁 후에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공산주의와 싸워야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들만한 인재들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 통에 다 죽었으니까. 이들은 그런데 공산주의, 좌익 사상에 대해서는 빨갱이 망령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북에서 공산당에 의해 가족들이 희생당하고, 전쟁을 통해 이산 가족들이 되고 많은 이들이 죽었다. 이북출신의 지식인들에게는 공산주의 이념과 이를 추종하는 자들은 무조건 죽여야 되는 적들이 되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개인사에 얽힌 트라우마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두 가지 망령에 시달리는 이북 출신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는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교회의 대형교회들, 특히 이북에서 온 피난민들이 중심이 되어 세우거나 이끄는 한국교회들이 왜 뉴라이트와 같은 극우적인 기독교 단체에 휩쓸릴 수 밖에 없는지 이제 그 이유는 어느 정도는 밝혀진 것 같다. 여기서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은 최근의 보수정권들이 이 두 가지 망령에 의해 시달림을 받는 한국교회를 등에 없고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계속 이용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정권이 곤경에 빠질 때마다 이 두 가지 망령을 불러내어서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는데 불행히도 이들이 이런 수를 쓸 때마다 잘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사회는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한국사회가 새로운 맥락(context)에 들어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교회는 새로운 전기를 가져야 마땅하다. 그것은 바로 교회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망령에서 벗어나서 “공적인 교회”로 거듭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공적인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참다운 선교적 교회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새로운 역사적 환경을 맡을 준비를 해야 한다. 두 가지 망령을 극복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와 곧 다가올 통일한국시대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적인 책무는 무엇인가? 새로운 정치적인 그리스도인의 삶, 뉴라이트식이 아닌 새로운 정치 참여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지금 시민혁명과 제자의 삶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이 지점에 서 있는 것이 어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우 부자연스럽고 부자유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시민으로서 해야 하는 정당한 역할 수행과 제자로서의 사명을 동시에 조화를 이루며 수행하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의 대다수의 한국교회는 이런 “시민과 제자” 두 가지 역할을 올바르게 감당하는 “정치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잘 지도해주지 못했다. 보수적 교단과 진보적 교단에서 이런 정치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다루는 신학적 입장과 주장이 너무나 상호배타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가 볼 때는, 이런 비정치적인 교회의 형성과정에는 한국교회가 유산으로 물려 받은 친일의 유산과 이념논쟁이라는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망령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적 교회로서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한국교회 내에서 선교적 교회 논의를 하는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1. 나오는 말: “공적인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적 교회들의 출현과 연대를 기다리며”

           한국적인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휘둘리면 안 된다. 교회가 취할 수 있는 정치적인 입장은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는 표시와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게 해주는 공동체로, 하나님 나라 복음의 공적인 성격을 메시지와 공동체의 삶을 통해 일반사회에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뉴비긴의 다음의 말, 교회는 성문 밖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님처럼 기존 체제 밖에 서 있어야 한다는 말은 공적인 교회로 한국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그러면 모든 국가 위에 군림하는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고 구현할 기독교적 책임을 실제로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 내가 잘못 알고 있지 않다면, 오늘날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 주류는   저항의 기조이다. 정치 질서는 온통 이해 관계로 얽혀 있고 자기 이익을 지키고자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에 악의 집결체요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기존 체제 속에  자리잡아서는 안 되고, 그에 저항하는 진영에 몸담아야 한다. 저항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체의 강압적인 수단을 포기하는 이른바 평화주의를 지향하든가, 현재와는 다른 정치 질서를 구현하는 정치적이자 혁명적인 노선을 취할 수 있다. 어느 경우를 택하든지 마땅히 주장해야 할 입장은,  예수가 도시의 성문 밖에서 죽임 당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자리잡을 곳은 언제나 기존 체제의 요새 바깥 그 체제의 희생자 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입장에 설때에만 모든 것을 실상 그대로 볼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하는 것이다.[17]

선교적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교회 운동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교회의 존재(being)과 행위(doings)을 분리해서 존재론적인 의미만을 궁구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교회의 본질 회복은 교회의 존재가 “세상으로 보냄 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선교적”(missional) 인 것에 있다면, 이렇게 보냄을 받은 교회는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다운 행함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적 교회 운동을 마치 교회성장 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보려는 일부 목회자들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 한국교회는 선교적인 교회인가를 점검해보는 질문들##

  1. 교회 안에서 회개의 복음이 전파되고, 들려지고 있는가? 교회 안에서 자기 모든 것을 다 내어놓는 참된 회개가 일어나고 있는가? 교회 안에서 죄인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그런 회개가 일어나는가?
  2. 교회가 사람을 낚는 사역에 집중하고 있는가? (막 1:17, 요 21:1-14) 그리고 교회가 목양을 잘 하고 있는가? (요 21:15-19) 교회가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역에 집중하고 있는가? (마 28:18-20)
  3. 교회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4. 교회가 죄인과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고 돌보는 사역을 하고 있는가?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잘 돌보고 있는가?
  5. 교회 안에서, 겨자씨와 누룩 같이 적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서 가정들과 일터, 한국사회와 나라 전체에게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고 있는가?

[1] 본고의 I장은 본인이 2017년 한 교회에서 설교한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 것이며, II, III 장의 내용은 2017년 예목원에서 주관했던 한국적 신학 모색을 위한 특강 내용을 수정한 것임.

[2]한국외국어대, 연세대국제학대학원, 장로회신학대학교신대원 졸업. 프린스턴신학교 선교학 석사/ 박사 (Th.M, Ph.D), 미국에서 참빛교회 담임목사로 섬겼으며, 귀국 후, 장신대, 횃불대학원대학교, 주안대학원대학교, 숭의여대, 새물결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고, 현재는 주안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및 횃불신학대학원 외래교수. 그리고 새롭게 시작된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하기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3] J.E. Lesslie Newbigin, The Reunion of the Church: A Defence of the South India Scheme (London: SCM Press, 1948).

[4] Newbigin,  “Lay Presidency at the Eucharist,” Mid-Stream 35, no. April (1996).

[5]  Seong Sik Heo, “Missional Debate: An Interpretive Study of Lesslie Newbigin’s Theological Debates with Diverse Partners ”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Unpublished Doctoral Dissertation, 2013), 80-91.  (필자의 미간행 박사학위)

[6] 윌버트 쉥크 (Wilbert Shenk)는 그의 논문에서 1950년대에 선교적 노력의 결과물로써의 교회 성장을 연구한 두 가지 시도가 있었는데, 하나가 바로 1958년도와 그 후 1970년에 뉴비긴에 의해 WCC 안에서 연구되었던 것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맥가브란의 지도력 하에 교회성장연구소를 통해 연구되었던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Wibert Shenk, “Church Growth Studies,” 8.  Wilbert R. Shenk, Exploring Church Growth (Grand Rapids, Mich.: W.B. Eerdmans, 1983).

[7] J.E. Lesslie Newbigin, The Household of God: Lectures on the Nature of the Church (London: SCM Press, 1953), 26.

[8] The Open Secret: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Mission (Grand Rapids: Wm. B. Eerdmans, 1995), 65.

[9] Ibid., 64.

[10] Ibid., 120.

[11] Newbigin, “Does society still need the parish church?” in .A Word in Season: Perspectives on Christian World Missions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4), 58.

[12] Newbigin, “Evangelism in the Context of Secularization,” ibid., 151.

[13] Newbigin, “Evangelism in the Context of Secularization,” ibid., 152-55.

[14] Newbigin, “Evangelism in the Context of Secularization,” ibid., 155-57.

[15] The Open Secret: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Mission, 126-27.

[16] 김상태, “평안도 기독교 세력과 친미엘리트의 형성,” <역사 비평> 45 호(겨울호), 역사비평사, 1998.

[17] 레슬리 뉴비긴,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Foolishness to the Greeks) (서울: IVP, 2005),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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