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 (2011-2012)

나를 자라게 한 소중한 1년 IVEP

 

새로운 시작
2011년 8월10일 떨리는 마음으로 출국을 했습니다. IVEP프로그램에 선발이 되었을 때와는 달리 당시 출국을 할 때에는 낯선 나라로 떠나는 것이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19시간이 넘는 먼거리를 날아와 처음 도착한 곳은 Akron이었습니다. MCC 본부이자, 참가자 전원이 함께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였지요.
그런적은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안녕’이라고 인사를 하면 서로 친구가 되는, 초등학교 이후에는 경험하기 어려웠던 그 경험 말입니다. 23개국이 넘는 곳에서 모인 친구들이 짧은 영어로 대화하며, 또 앞으로 1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MCC를 통해 교육을 들으며 즐거운 1주일을 보냈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후 제가 간 곳은 바로 콜로라도주에 있는 덴버였습니다. LFS(Lutheran Family Service)라는 난민단체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선발이 되어, 함께 일을 하기로 했던 프랑스 친구 알렁과 함께 그곳으로 왔습니다. 설레기 보다는 긴장이 되었습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점도 그렇고, 딴에는 낯을 가리는 성격인지라 그랬던 것같습니다.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리 저는 호스트가족과 함께 살지 않았습니다. 호스트가족의 집이 사무실에서 멀어, 저는 사무실 바로 근처에 있는 다른 루터교소속 자원봉사단체 USC공동체 하우스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큰 집이 었습니다. 11개의 방이 있는 3층집.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과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딸린 거대한 집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프랑스에서 온 친구 알렁과, USC소속의 미국친구들10명과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집에서의 생활은 나중에 나누도록 하지요.

LFS와 난민들과의 만남 그리고 작은 배움들
LFS에 와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은 각 부서를 돌면서 각 부서 담당자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LFS는 미국에 온 난민들의 재정착을 돕는 기관이었는데요, 그 내부는 직업교육, 재정지원, 복지프로그램, 입국관리부서, 사회복지 부서 등등으로 나누어진 잘 갖추어진 조직이었습니다. 전체적인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이후에 저는 Case Management부서와 TANF(사회복지프로그램)부서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류를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구체적인 일들을 배워나갔지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영어능력이 부족해도 제가 이곳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요. 그리고 3개월 정도가 지나서는 TANF부서에서 미얀마 클라이언트와 네팔 클라이언트를 전담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했던 일은 난민분들이 사회복지 기금을 매달 받으실 수 있도록 관련 서류를 작성하여, 구청에다가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은 버스카드를 받을 수 있도록 목록을 작성하여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난민분들이 복지기금을 받는데 문제가 있을시 문제점을 확인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익숙해지면서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는 것이 지겨워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일을 익숙하게 다룬다는 뜻이기도 했었지요. 이후 6개월이 넘어가서는 다른 2개의 부서에서 추가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부담당 부서에서 일주일에 한번 새로이 도착하는 난민가족들을 위해 아파트에 필요한 물품들을 모두 정리하는, 한마디로 말하면 작은 이사를 매주 한번씩 치루었습니다. 더불어 직업교육부서에서 난민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또 영어로 이력서를 작성하는 법, 그리고 면접을 보는 법을 가르치고 함께 연습하며 그렇게 새로운 일을 배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적지만 몇몇 북한 난민분들을 위해서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이분들이 오실 때마다 통역을 하기도 하고, 또 직접 가정방문을 하며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습니다. 특히 복지기금이 끊어져서 상황이 어려웠던 분을 위해 개인적으로 모금을 했던 일은 지금도 그분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의 공동체 USC 친구들
USC단체 하우스에서 11명의 친구들과 함께 살았던 기억은 저에게 참 소중했던 시간입니다. 물론 처음 이 친구들을 만났을 때는 긴장 되기도 하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 스스로 가지고 있던 미국인들에 대한 편견들, 영어가 되지 않아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들. 물론 이런 이유들 때문에 스스로 더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기도 했지만, 한동안은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힘들다고 해서 생활이 어려웠던 것은 아닙니다.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끼리의 생활이어서 우리들끼리 재미있는 추억들도 많이 만들었지요. 코스튬 파티, 할로윈 파티, 오스카 파티 등등 저는 미국친구들이 이렇게 파티를 여는 것을 좋아하는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익숙해지더군요. 매주 월요일마다 함께 모여 서로의 삶을 나누기도 하고, 함께 요리하고, 캠핑을 하며 미국 젊은 친구들의 문화와 생활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주중에는 함께 5km씩 달리기도 하고, 주말에는 공원에서 함께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보니 참 많은 일들을 했더군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머니의 수술로 인해 한참 힘들어 할 때 이 친구 한명 한명이 저를 안아주며 많이 위로해 주었던 일입니다.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어가 늘고, 서로의 대화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 친구들과의 삶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니 참 이기적이었던 저에게 이 친구들은 항상 한결 같았다는 것 같습니다. 정이 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떠날 때는 서로를 눈물로 보낼만큼 가까워졌습니다.. 이 친구들과 만나게 되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이 배웠으니까요.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 하나님은 가장 저에게 맞는 곳을 만나게 해주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제가 더욱 훈련을 받은 것 같습니다.

나를 한걸음 더 자라게 했던 여행
여행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제가 경험했던 1년 중 당연 큰 배움이었으니까요. 저는 4월 말부터 해서 2주간 뉴욕과 뉴욕에 위치한 브루더 호프 공동체 그리고 펜실베니아에 있는 심플공동체를 여행했
습니다.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브루더 호프공동체에선 일주일을 머물렀습니다. 평화롭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방문객이 오면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서로 와서 초대를 하는 사람들, 처음 보는 저를 정말 기쁘게 환영하며 접대하는 이들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요. 그리고 그 누구도 개인의 재산을 쌓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공유하고 나누며, 열심히 일하는 이들의 삶 자체가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2차 대전때 있었던 본인의 경험을 나누어 주신 조지 할아버지의 이야기, 장애인 아이를 공동체가 함께 돌보는 모습들, 전 세계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아 본인들도 하루에 두끼만 먹는 다는 사람들. 불가능 할 것 같은 사람들이 이곳에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뉴욕의 여행은 보다 즐거웠습니다. 시계없이 핸드폰 없이 혼자 여행을 하며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지도하나 들고 하는 여행. 어떤 배움이 없을지라도 그 자체가 스스로에게 많은 격려를 주고 용기를 가지게 했습니다. 물론 여행 하면서 실수도 많이 했었지요. 그것 또한 저에게는 큰 배움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 줄여야 할 것 같네요. 미국에서의 경험은 저에게 참 큰 도전이었습니다. 언어적 한계를 가지고 1년을 살았던 그 경험, 여러 가지 실수 속에서 아프지만 약이 되었던 경험들이었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사람을 나이와 성별과 지위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하던 미국인들의 문화들, 항상 다른 사람을 겪려하는 문화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쉬움들
물론 귀국 할 때에는 스스로에 대한 많은 실망감도 있었습니다. 1년이 지났는데 뭔가 손에 잡히게 쥐고 있는 것이 없다는 실패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1년이라는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집어 넣으려고 했던 저의 욕심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년은 1년이니까요. 제가 손에 쥐고 돌아온 것은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았으니까요. 보다 더 잘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도 남아있습니다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 오늘 하루를 더 현재에 머물러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지금 이곳에서의 삶에서 충실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얼마 전 NARPI에서 주관하는 동북아 평화 교육훈련을 다녀왔습니다. 2주 동안 동북아에 있는 평화운동 활동가, 관심자들이 모여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전체 진행 모두 영어로 진행되는 교육이었습니다만, 별 어려움 없이 과정을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현재 UN이나 여러 국제단체들에서 나오는 영문 자료들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 IVEP덕분인 것 같습니다. NGO단체에서 계속해서 일을 하기 위해서, 또 다른 국제단체들과 협력하기 위해서 소통의 기술로 영어가 필수적인데 이러한 부분을 채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IVEP를 통해 제가 배운 것들 여러 NGO단체들과 공동체를 돌아보면서 배운 것들이 많습니다. 조직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한 가지 일을 진행하기 위해 어떤 지원들과 시스템이 필요한지, 타인을 어떻게 동등하게 대하는지 등등 앞으로 제가 관심있는 시민운동과 관련된 배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경험들이 앞으로 제가 일할NGO분야에 유용하게 쓰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IVEP를 통해서 무엇보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우게 됩니다. 저 또한 기회가 되면 사람들을 교육하고 키워내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저처럼 이러한 기회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받을 수 있도록 저도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마무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귀중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 MCC와 그리고 KAC에 감사를 드립니다. IVEP는 제 삶에서 분명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더불어 전 세계 여러 나라에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키우기를 소망하며 자신의 삶을 다하는 보이지 않는 메노나이트 성도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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