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현 (2010-2011)

저는 MCC의 교환 프로그램(IVEP)을 통해서 2010년 8월부터 2011년 7월까지 캐나다 위니펙(Winnipeg)에 있는 넉스데이케어(Knox Daycare)에서 약 1년간 봉사하고 왔습니다.

3년전에 필리핀에서 만난 친구를 통해 우연히 IVEP(International Volunteer Exchange Program)에 대해 소개를 받았고 인터넷을 서칭하면서 MCC라는 메노나이트 단체와 MCC와 협력 단체인 KAC(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메노나이트”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 프로그램을 지원하면서도 약간에 내적 갈등이 있었지만 캐나다로 가기 전 3개월동안 KAC에서 인턴쉽 과정을 거치면서 메노나이트와 아나뱁티스트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배웠던 귀중한 시간을 가지었습니다. 

저의 1년 여정의 시작은 아크론(Akron)에서 IVEP,SALT,YAMEN 친구들과 오리엔테이션을 갖는 것 이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은 전 세계 나라의 친구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다 보니 만남의 순간순간들이 기대되고 설렜던 것도 있었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문화 충격 속에서 굉장히 힘들어 했던 순간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낯선 미국땅에서 미국인들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각기 다른 나라에서 모인 친구들과 영어로 조 모임을 하며 “미국” 음식을 먹으면서 지내는 시간들은 저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기였에 심적으로 많이 부담이 되었고 또 새로운 환경에 금방 적응하지 못해 혼자 방황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님께서는 저와 같은 고민으로 힘들어 하는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셨고 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많은 부분을 치유하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어리둥절해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도록 즐기는 법을 배웠던 좋은 계기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캐나다로 가는 공항에서 저는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짐바브웨에서 온 영어를 잘하는 친구와 니과라과에서 온 마음이 따뜻한 친구와 함께 서로 머리를 맞대며 그 상황들을 해결해 나갔고 이 사건 이후로 “캐나다”라는 낯선 땅에서 저는 “혼자” 있다는 생각보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면서 타국에서 느끼는 외로움들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위니펙에 도착한 첫날! 예정된 시간에 미국에서 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위니펙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시간을 넘긴 늦은 밤 이였습니다. 저에겐 호스트 가족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호스트집에 도착 했을 때에 아시안계 남자가 문을 열어 주며 저를 반기어 주어 조금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아마 당시 저는 “하얀” 외국인을 바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호스트 아빠는 대한민국 축구팀 옷을 입고 있었고 저녁을 못 먹은 저에게 한국 식당에서 사온 김치와 밥 그리고 고추장을 내어주며 한국식 저녁을 대접해주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첫 끼니를 한국식으로 챙겨준 호스트 가정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이 호스트 가정에 쉽게 마음을 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의 호스트 가족을 소개 하자면 베트남계캐나다인 아빠와 캐나다인 엄마 그 밑에 당시 나이로는 5살 3살 1살짜리 귀여운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가정에 7번째에 IVEPer 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온 “외국인”인 저를 대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어 보였고 자연스럽게 이 가정에 흡수 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특히 제가 겪을 고민들을 미리 파악하고 향후 나아갈 방향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3명의 아이들은 저의 어려운 한글 이름 ”보현”을 곧잘 부르며 매일 저녁 학교에서 배운 노래나 쇼를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저녁 공연은 일을 갔다가 힘들었던 저에게 항상 새로운 에너지를 주곤 했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 그 가정이 저에게 보여준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호스트 가족처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제가 봉사했던 곳은 Daycare center로 한국에 어린이집 같은 곳입니다. 조카도 없을뿐더러 주변에 아이들을 많이 만날 기회가 없었던 저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떤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될지 엄청 궁금했습니다. Knox Daycare에서도 저는 첫 번째 “외국인” 봉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저에게 맞는 스케줄 표가 있었고 일하는 곳에서는 제가 그 환경에 쉽게 적응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분들 모두다 저를 “딸”이나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 주어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마다 저의 영어 선생님이 되어 주기도 하면서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데이케어 에서 주로 했던 일은 오전에는3살이하에 아이들 반에서 그들의 “엄마”가 되어주는 것이었고 오후에는 3~7살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 이였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저스틴 비버”를 두고 아이들과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악당이 되어 아이들과 역할극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데이케어에서의 마지막 날 아이들과 함께 찍은 앨범을 선물 받았는데 이따금 집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한 추억들이 소중해지고 그립기도 합니다. 프로그램 동안 항상 즐겁고 재미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 였습니다.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했을 때, 겨울에 자동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을 때 등의 안 좋은 사건들로 심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때도 있었지만 이런 사건들이 하나님이 저를 더 강하게 단련시키신다는 걸 알고 느끼는 순간 하나님께 더 나아가게 되었고 어려운 상황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하여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많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문화의 다름을 배우고 이를 인정하는 훈련과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1년을 돌아보니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을 어려움 없이 쉽게 해낸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저의 여정의 힘이 되어 주시고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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