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그 후: 초강대국 국민의 자격과 책임

2001년 10월
이재영

“이렇게 폭력적으로 보복을 한다면 나중에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평화적인 관계형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의 무역센터를 공격하고 며칠 후에 The Town Meeting이라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중년의 부인이 나와 이렇게 질문조로 이야기했다. “우리가 이제 보복을 결의한다면 다음세대에서 과연 화해가 가능하게 될까요?” 그러나, 곧 그녀의 목소리는 보복을 외치는 소리에 묻혀 완전히 무시되고 말았다.

테러의 여파로 귀국 행 비행기가 취소되었기 때문에 실망스럽게도 시애틀에 발이 묶여 있던 나는 TV를 보면서 왜 이렇게 미국인들이 분노하고 열분을 토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들이 누가 테러를 했는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이 범인들에게 어떤 처분이 내려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심이 있었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들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일부는 이성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의 논지는 약했고 요점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 고등학생이 화가 나서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이토록 싫어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룬 성과 때문인가요? 우리 경제, 기술 그리고 지금껏 일구어 세운 위대한 국가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는 게 마땅한 건가요?” 그 청년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것이 국민 대다수나 미국의 양심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반응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기들의 극심한 분노 때문에 이번 재난의 원인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제, 미국은 또 한번의 성전(聖戰)을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이 보복 전쟁이 사람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을 향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미공군은 폭탄과 식량을 동시에 떨어뜨리며, 정치 지도자들은 폭탄 맞을 어린이들을 위한 자금 조달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다시 한번 씁쓸한 역사적 아이러니를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공격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들의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미국은 지금 테러리스트들이 했던 일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은 정부와 정책을 공격하는 수단으로서 수천명의 무고한 국민들을 희생시켰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미국 정부만을 향한 공격일 뿐 아니라 미국의 국민들을 향한 공격이기도 했다. 겉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명분은 다름아닌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제는 계획적인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그쳐야 한다. 그것이 테러리스트이든지, 정의를 좇는 사람이든지 간에 말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 우리는 폭력을 사용하여 평화로운 결말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평화로운 결과를 얻고자 한다면 평화로운 과정이 필요하다.

비록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최종 결정권은 최고 지도자에게 속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바로 그 최고 지도자를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따라서,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미국의 대중은 더욱 이성적이어야 한다. 미국인들은 9.11이후로 자국의 지도자들에게 무제한적인 권한을 부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위험의 잠재력을 갖는 것이다. 지금 그 지도자는 사람들이 지겨워 하더라도 이 전쟁은 계속 수행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인류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민족주의가 반드시 맹목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대중매체는 대중들의 합리적인 눈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고 있다.

발달된 첨단무기기술과 넘치는 정보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왔다. 정보와 멀티미디어 세대에게 화면에 보이는 끔찍한 장면은 실제이더라도 비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미국 사람들은 자국의 젊은 군인들이 폭탄으로서 다른 나라와 생존 전쟁을 하면서 건물과 도로를 파괴할 때, 한가로이 야구 챔피언 시리즈를 보면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들의 경기에 흥분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가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 지금 미국인들이 세계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 과연 도덕적인 일인가? 지도자들에게는 높은 도덕적 책임과 보편적 복지에 대한 민감성이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세계는 세계를 이끄는 자랑스러운 국민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인들이 세계를 이끄는 나라의 국민들로서의 그 만한 자격을 갖추기를 기대한다.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대외 정책은 때때로 수 만 마일 밖에 있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미국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실이다. 결국, 세계 초강대국의 국민들의 책임은 그들 자신의 안전과 세계 평화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그 가운데 평화 사역자들의 역할은 아주 결정적이다. 평화 사역자들은 이렇게 세계가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가운데 있을 때 균형 잡힌 대중여론과 비판적 사고 패턴을 조성할 책임이 있다. 외면과 무관심은 또 다른 수천의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권력 오용의 여지를 만들어준다. 브라질의 교육가Paulo Freire가 우리에게 경고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억압은 억압을 받는 피해자만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도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다.”
분명히 테러리즘은 중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모두가 동의하는 바와 같이, 9.11 테러행위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정의 앞으로 불려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 듯이 문제의 근원이 존속하는 한 그들을 찾고 처벌하는 것이 폭력적 테러 공격의 끝은 아닐 것이다. 즉, 미국의 대외 외교정책이 세계 평화 건설의 노력을 해치고 있지는 않은지 재검토해야 될 필요가 있다.

한 나라의 대외 외교정책은 자국의 국민들의 이익을 최우선시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미국 대중들은 다른 나라를 억압하는 미국의 대외 외교정책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을 해 입히기 전에 자기 정부에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당장 발등의 불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살아있는 불씨를 없앨 수는 없다. 결국 문제해결의 열쇠는 미국 대중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Eastern Mennonite Univ.의 갈등분쟁 변환학 대학원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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