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내 갈등, 성서적 해결원칙은 있는가?

초대교회가 가진 여러 가지 정체성 가운데 하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이었다. 초대교회의 구성원은 기존의 유대인이 지켜오던 율법이 아닌 예수를 통해 완성된 새로운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교회 내 갈등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예수는 교인들 사이의 분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두 가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계속 읽기

잃어버린 평화의 전통을 찾아서….

교회, 평화와 화해의 도구로 거듭나기를

YMCA 잡지<꽃들에게 희망을>에 실린글 – 이재영

 

지금처럼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한다. 미국 버지니아 주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조그마한 교실에 앉아 마지막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실제 우리 반에는 매우 흥미 있는 사람들로 가득차있었다. 팔레스타인이 고향이지만 자유롭지 못한 땅을 떠나 시리아로 이주해간 팔레스타인 청년, 자신의 땅에서 난민이 되어버린 필리핀 민다나오 섬의 아주머니, 두 딸을 둔 눈물이 많은 코소보의 엄마, 강한 엑센트로 자기의 다리에 난 총상을 보여주던 북아일랜드에서 온 아저씨, 케냐에서 연극을 통한 평화 교육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름이 “바보“라는 사람, 인도북부의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애쓰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갈랜드라는 나라에서 온 친구 아쿰…. 계속 읽기

교회 내 갈등, 성서적 해결원칙은 있는가?

초대교회가 가진 여러 가지 정체성 가운데 하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이었다. 초대교회의 구성원은 기존의 유대인이 지켜오던 율법이 아닌 예수를 통해 완성된 새로운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교회 내 갈등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예수는 교인들 사이의 분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두 가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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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엔티아

이상규(고신대학교 교수, 역사신학)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쟁이다. 전쟁은 인간에 의해 자행될 수 있는 가장 큰 폭력이며, 파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이룩한 문명이나 도시, 자연의 파괴일뿐 만 아니라 인간성 자체의 파괴이기도 하다. 오늘의 세계는 지구상의 전 인류를 파고기하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양의 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핵무기의 파괴력은 고전적 의미의 전쟁 개념을 무의미하게 한다. 이제 문제는 공존(共存)이냐 무존(無存)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호모 호미니 루프스(Homo homimi Lupus), 곧 “인간은 인간에게 이리이다”는 라틴어 경구는 전쟁사에서 얻은 체험적 경구일 것이다.  계속 읽기

기독교와 평화사상- 이상규교수의 신학읽기(5)

평화(平和, peace)는 인류가 추구해 온 가장 고상한 가치였다. 동시에 그것은 지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난해한 과제였다, 그러나 인류는 거듭된 전쟁과 폭력, 인명살상과 상실, 자연의 파괴와 같은 엄청난 재난을 경험했다. 1차 대전과 같은 대규모의 국제적인 전쟁을 경험 한 이후 서구에서는 반전(反戰)운동과 반전사상이 일어났고, 평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기독교권에서 계속되어 왔던 평화주의(Pacifism)사상과 더불어 192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 중요한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발전했다. 그 후 평화학(Peaceology)은 학제간 연구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제2차 대전 이후 세계 평화에 대한 갈망은 국제연합, UN과 같은 국제기구 창립의 동기가 되었고, 세계교회 협의회(WCC) 또한 평화에 대한 염원에서 발의된 교회협의체였다. 2차 대전 이후 서구학계에서 평화에 대한 연구는 상당한 발전을 가져왔고, 수많은 연구물들이 출판되었으며, 주요 대학에는 평화연구소나 유관 기관, 기구들이 창립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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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평화, 미국의 평화

2002년 10월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지난해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자살 테러 공격은 전세계인을 새로운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미국은 비행기 테러 공격의 주체를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로 이슬람 과격 무장 단체로 지목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곧바로 테러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고 불리는 구체적인 증거없이 힘없고 가난한 나라 아프가니스탄을 향하여 ‘정의로운 전쟁’을 선포, 감행하였고 지금은 그 범위를 더 넓게 확대하려 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이번 전쟁을 반테러 전쟁으로 규정하고 자국에 대한 공격을 문명 대 반문명 세력 간의 전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같이 미국에 의한 전쟁이 정당화되어 거대한 폭력으로서 지구 전체를 뒤덮고 있고 그로 인하여 모두가 신음하며 탄식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샬롬의 회복을 갈구하는 것을 상징하는 언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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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평화, 예수의 평화 pax Romana, pax Christi

이상규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역사신학)

그리스도: 평화의 왕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은 지상의 진정한 평화를 주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의 탄생을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라고 했다(눅2:14).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평화의 시대를 예고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는 우리에게 한 아기가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사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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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폭력, 비폭력

CrossWalk 모임
2002년 10월 21일

정리 이재영 간사 (KAC)

“기독교인으로써 폭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하여야 하는가?”라는 참으로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에 기독교인은 늘 고민하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악이라고 규정된 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소위 “정당한 무력사용”에는 관대해지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종교나 집단에 대한 폭력의 사용이 교회 안에서도 특별한 논의 없이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연, 이러한 현실에 400년 이상 평화주의 전통을 지켜온 메노나이트를 비롯한 아나뱁티스트들의 신앙과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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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그 후: 초강대국 국민의 자격과 책임

2001년 10월
이재영

“이렇게 폭력적으로 보복을 한다면 나중에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평화적인 관계형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의 무역센터를 공격하고 며칠 후에 The Town Meeting이라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중년의 부인이 나와 이렇게 질문조로 이야기했다. “우리가 이제 보복을 결의한다면 다음세대에서 과연 화해가 가능하게 될까요?” 그러나, 곧 그녀의 목소리는 보복을 외치는 소리에 묻혀 완전히 무시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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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에 기록된 많은 전쟁을 어떻게 이해 할것인가?

구약성경의 전쟁이야기에 대한 성경적 평화주의적 견해

Mennonite Central Committee, By Linda Gehman Peachey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생각할 때 흔히 동산에서 기도하시거나 양 때를 인도하는 또는 어린 아이들을 축복해 주시는 장면 등을 연상하곤 한다.

예수님이 칼을 들거나 기마 전차를 탄 모습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원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사신 것을 받아들인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해 폭력 사용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향한 예수의 가르침이 과연 폭력사용과 전쟁 참여를 거부하는 것 까지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구약 성경에서의 전쟁 이야기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을 일으키게 하고 서로를 죽이게 한 사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따금씩 폭력과 전쟁을 허용하신다는 말이 아닌가? 이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이 확신하는 중요한 관점들을 알아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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