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가톨릭도 프로테스탄트도 아닌 아나뱁티즘》

월터 클라센 지음/ 김복기 옮김

옮긴이의 말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은, 지금은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하지만, 종교 개혁이 일어났던 16세기 당시에는 너무 급진적이어서 교회에서는 물론 사회에서조차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성직자가 아니라 평신도들이 교회를 이끈다든가 공동체가 함께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 자연스럽지만, 16세기에는 기이한 일이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를 강조한다든가, 가정 교회로 모여 예배를 드리고 따뜻한 인간관계를 강조하며 교제 중심의 모임을 갖는 일, 목회자가 교회 밖에서 직업을 가지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생각,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의 일관성을 통해 온전한 복음을 전하려는 모습 역시, 16세기 상황에서는 매우 낯설었다. 더 나아가, 국가와 교회의 분리라든가 평화주의를 외친다는 것은 급진적이다 못해 불경스럽게 여겨졌고, 이러한 변화를 요구한 아나뱁티스트들의 개혁은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 책의 저자 월터 클라센은 16세기 교회사가로서 아나뱁티스트 운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평생 아나뱁티스트 운동과 관련 인물들을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수많은 논문과 책을 출간하고 16세기 원전을 영어로 소개하면서, 대학 강단에서는 물론 교회와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아나뱁티스트를 알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 책은 《개략적으로 살펴본 아나뱁티스트 운동 Anabaptismin Outline》과 더불어 그의 위상을 알려 준 대표적인 저작이다.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귀한 책을 한국어로 소개하게 된 것은 옮긴이에게도 큰 기쁨이자 소중한 배움의 기회였다.

한국 땅에서 아나뱁티스트 운동을 시작한 지 이제 사반세기가 조금 넘었다. 역사와 세월의 흐름은 무시하지 못한다 했던가? 그냥 흘러가기만 한 줄 알았던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니, 여기저기에서 자생적인 아나뱁티스트 그룹들이 꽤 많이 생겨나고 있고, 책을 통해서나 북아메리카의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 관련 학교를 통해서 이제는 꽤 많은 사람이 이 운동을 배우고 삶으로 실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저 개인의 호기심에 그쳤던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이제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는 신학생과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관련 책 몇 권쯤을 읽었을 정도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아나뱁티스트 교회론, 공동체 및 평화학 등은 여러 신학교 석사 학위 논문의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고 있고,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기독교 인문학 관련단체들이 꼭 알아야 할 기독교 역사 주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좀 더 깊이 있는 아나뱁티스트 책을 찾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신자들의 교회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교회 운동과 관련하여 항상 1세기와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을 거론한다. 그만큼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원형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막상 초대 교회와 아나뱁티스트 교회의 특징에 대해서 딱 부러지게 설명하거나 요약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 주제별로 나누어 잘 정리해 놓은 책이 바로 이 책, 《가톨릭도 프로테스탄트도 아닌 아나뱁티즘》이다.

기독교 사회 또는 기독교 국가주의의 시대였던 16세기에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급진적인 목소리를 냈던 이들은 제자도를 강조했고, 개인에게 주어진 완전한 자유를 완강히 옹호했으며, 성서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 살려는 순종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또한 이들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낸 급진적인 태도를 감추지 않고 성서에서 배운 내용을 담대히 증거했다. 16세기에 외친 이들의 핵심 주장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로 미국 건국의 이념에도 영향을 끼쳤고, 침례교, 퀘이커, 감리교 등의 교회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사회 복음과 해방신학과도 교감했고, 평화 교회의 산파 역할을 하며 비폭력, 무저항, 평화 신학에 크게 기여했다.

《가톨릭도 프로테스탄트도 아닌 아나뱁티즘》은 작은 책이지만 많은 것을 우리에게 내준다. 부록에 정리되어 있는 아나뱁티스트 중요 인물은, 루터, 츠빙글리, 칼뱅이라는 종교 개혁가들 외에도 16세기에 교회 개혁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 적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좋은 자료이며, 참고 문헌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 책의 내용을 더욱 심도 깊게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분량으로는 소책자지만, 이 책은 내용과 전문성으로 치자면 학문적으로 인용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특히 아나뱁티즘 연구에 평생을 바쳐 온 월터 클라센 교수의 책이기에, 연구하는 사람에게나 아나뱁티스트 운동에 대해 더욱 명확하게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7년은 종교 개혁 500주년의 해이다. 종교 개혁의 발원지인 유럽과 독일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50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미 여러 매체와 신문에서는 특집 기사 및 연재 기사를 쏟아 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시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정신을 살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한 자성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이러한 때에 《가톨릭도 프로테스탄트도 아닌 아나뱁티즘》을 출간하게 된 것은 여간 뜻깊은 일이 아니다. 이 책이 미완의 종교 개혁 또는 종교 개혁이라고 부르는 루터의 개혁, 또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의 한계를 이해하고 대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번역가로서 책꽂이에 한 권씩 번역서를 더해 갈 때마다 드는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행여 오역이 있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하고, 출판 과정 중에 옥에 티는 생기지 않았는지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늘 작은 부분까지 챙기는 KAP의 김수연 편집장과 주변의 자매형제들의 격려에 힘입어 또 한 권의 책을 내놓는다.

부디 한국 교회가 종교 개혁 500년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정한 교회 개혁을 이루는 원년이 되기를 기도한다.

2017년 2월

봄 내음이 나는 춘천에서

김복기%ec%95%84%eb%82%98%eb%b1%81%ed%8b%b0%ec%a6%98_%ed%91%9c%ec%a7%80-%ec%b5%9c%ec%a2%85-2

[신간안내] 《가톨릭도 프로테스탄트도 아닌 아나뱁티즘》”에 대한 답글 7개

  1. 김혜경 2월 15, 2017 / 3:33 pm

    언제 구입할 수 있을런지요…?

    좋아요

  2. Cho 2월 15, 2017 / 9:15 pm

    링크 따라 우연히 들어왔는데, 출간소식이 어제 올라왔군요. 신기하네요.
    흥미를 끄는 책입니다. 재미…. 있겠지요?

    좋아요

    • KAC 2월 21, 2017 / 5:33 am

      재미보다도 흥미롭고, 16세기 종교개혁에 이런 그룹도 있었구나! 이렇게 기독교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구나! 하는 부분을 조금 더 잘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방문 감사드립니다.

      좋아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