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에서의 상념

지난 11월9일부터 18일까지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일본의 세 도시를 방문하면서 여러 가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특히, 히로시마에서의 경험은 저희들에게 좋은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저 희를 초청한 단체는 World Friendship Center (WFC)라고 하는데 1965년 Barbara Reynolds라는 퀘이커(Quakers) 교인에 의해 히로시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Barbara 여사는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원자폭탄(The A-Bomb)의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핵무기를 만들고 투하했던 미국의 시민으로써 정치와 외교적 이유를 떠나 같은 동료인간의 고통과 어려움을 돕고 원자폭탄의 실제적 위험과 전쟁의 참상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WFC라는 평화단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Barbara 여사는 세계의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서로를 죽이는 비참한 전쟁은 다시 없을 거라는 소박하면서도 도전적인 생각에서 World Friendship Center(WFC)라는 이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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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노나이트로 산다는 것

메노나이트가 된지 6년이 되었습니다.
요즘 메노나이트로 산다는 것이 뭔가 많은 고민을 합니다.
겉 껍데기만 보고 사는 건 아닌지?
우리랑 좀 뭔가 다른게 있어서 기웃거리고 그것을 이용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이 최고라고 하면서 여전히 내 모습을 고집하며 사는 모습에 스스로 놀라며,
메노나이트로 산다는 것이 뭔지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메노나이트란 이름을 처음 들었던 건
지금부터 약 9년전 춘천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생경한 이름.
크리스천이면 되었지 뭘 또 메노나이트.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그 관계만 확실하다면 다른 건 문제가 없다면서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것이 믿음인줄로 알고 있는 나의 사고구조.
모든 것을 은혜라는 한 마디 거대한 바다 속으로 풍덩 빠뜨려 버리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나의 모습.
믿음을 말할때 여전히 행위와 별개로 생각하는 믿음구조, 그래서 추상적인 믿음과 구체적인 행위 사이에 늘 왔다 갔다 헷갈리는 나의 믿음 구조.
여전히 내 울타리를 쳐 놓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이 고집스러움.
공동체에 대한 이론은 빠삭하지만, 실제 같이 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내 믿음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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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 Following (믿음과 제자도)

정말 오랜 만입니다.
가끔 방문은 했지만 글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한 2주 전에 그동안 번역을 해오던 Rudy Baegen 의 “메노나이트 이야기 (Mennonite Story)”를 정리 했습니다.
여전히 번역은 어려운 작업이더군요.

그 책에서 몇 가지 좋은 도전을 받았는데,
한 가지 형제, 자매님들과 나누고 싶은게 있어서…..
이렇게 오랜 만의 걸음을 해봅니다.

위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내용은 Faith 와 Following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루터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는 Faith (믿음)이었지만
재세례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는 Following (제자도)이었다는 저자의 설명이
새삼 제 삶에 다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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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사역을 무사히 마치고….

이라크에서 사역하던 SIV 팀의 오혜일, 이안나 자매님께서 무사히 귀국을 하셨습니다.
오혜일 자매님이 몇일 아프셔서 고생을 했지만 모두 건강하게 잘 다녀오셨습니다.
이분들의 소중한 봉사의 경험이 앞으로 개인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 좋은 향기로 남기를 기대해 봅니다.

지금 현지에는 동안교회와 WCF 그리고 장로교 총회 사회부의 오 목사님께서 계속 사역중이십니다.

그리고 이라크 현지에서 유은하 자매님을 도와 동역하시던 살람과 카심씨도 한국에 입국하셨습니다. 8월20일경에 KAC와 모임을 가질 계획입니다.

그동안 기도와 관심으로 지원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나라에 이땅에 이뤄지는데 모두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SIV 1진 귀국

그동안 이라크에서 사역중이던 유은하 자매님과
자매님을 도와 지난 3주동안 알하난의 아이들을 돌보던
김지희, 홍주희 자매님 이경헌 형제님이 사역을 무사히 마치고
지난 7월 31일과 8월2일에 귀국하였습니다.

또한 함께 사역했던 Saalam Iraq Volunteers 팀의
오혜일, 이안나 자매님은 몇일더 이라크에 머무신후 귀국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이분들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 기도하시고 후원하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이라크사역 지원에 대한 방향과 계획은 이분들과 상의하여 정할 계획입니다.
계속적인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넘치는 그날까지…

필리핀 MPI 소식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간이 참 빨리가고 생각보다 이곳 생활이 바빠서 제대로 이메일 한번 보낼수가 없네요.
이제 두번째 과정도 모두 끝나고 이번 주말이면 마닐라로 돌아갑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한국이 정말 많이 발전했고 힘이있는 국가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많은 참석자들이 한국이 이룩한 경제적 부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하 지만, 이러한 경제적 성장과 국제적 지위의 향상의 뒷면에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던 어두운 구석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이곳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무척이나 당혹하게 됩니다. 한국 회사가 자기 마을의 나무들을 마구 잘라버려 자연이 홰손되었다든지, 한국 사람들이 골프장을 만드느라 우리마을이 바뀌도 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수업에서 들으면서 미안하다는 말 밖에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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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MPI 소식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 는 지금 필리핀 남부에 위치한 섬 민다나오 (Mindanao)에서 열리고 있는 Mindanao Peacebuilding Institute (MPI) 2003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MPI은 제가 공부했던 메노나이트 대학의 프로그램 SPI를 모델로 아시아 지역에 생겨난 평화세미나 같은 것으로 올해로 4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총17 개국에서 참석을 하였으며, 한국에서는 이번이 처음 참석하는 것입니다.
한 국에서는 KAC와 함께 평화교육과 갈등분쟁 해소를 위한 활동에 활발이 참여하고 있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가 주축이 되는 CR Korea의 멤버들 6명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시아 각처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화 관련 단체나 대학의 활동가와 교육가들이 함께 모여 주제별 수업에 참석하고 공식,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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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더 교수님, KAC 관련기사 2003-04-11 작성자: KAC

크라이더 교수님의 한국 강연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내일 12일 (토) 고려대학교 (제2 학생회관 소당강)에서 오후 3시부터 서울 마지막 강연이 있습니다.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크라이더 교수님과 아나뱁티스에 관련된 기사가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
호산나 넷 (www.hosanna.net)
한겨례 신문(www.hani.co.kr)
주간 기독교 (www.cnews.or.kr) 등에 실렸습니다.

다음달 “복음과 상황”과 “목회와 신학”에 인터뷰 기사가 실릴 예정입니다.

선교와 포스트 모더니즘에 관한 특강 – Wilbert Shenk 교수님 2003-03-17

안녕하세요?

KAC 에서 사역하는 표 대문 형제라고 합니다. 오늘 아침에 풀러 신학대학교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온 메노나이트 신학자 Wilbert Shenk, Ph.D. 교수님이 한국에 와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1주일 동안 특강을 해주시려고 왔습니다. 내용은 다음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cwmpcts.org 에서 “제5기 선교지도자 교육과정 및 선교학술강좌(영어집중강의) 안내” 누르세요)

참석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누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것인가? – 2003-03-09 작성자: 손장훈

* 아래의 글은 독후감을 쓴 허현이 자신의 글에 스스로 리플을 단 글입니다.

김기현님의 서평을 퍼왔습니다.

[복음과 상황] 6월호에 투고했던 글입니다.

누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것인가?
– 김두식의 [칼을 쳐서 보습을: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와 기독교 평화주의]를 읽고

나는 김두식의 [칼을 쳐서 보습을] 구입하여 읽으면서 몇 가지 감정이 교차하였다. 그것
은 기다림과 감사와 미안함, 의아함이었다. 기다림이란 기독교 평화주의 이해가 척박한
이 땅에서 일구어낸 최초의 성과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평화주의가 신학자의 전유
물은 아니지만, 법학자이자 평신도의 노력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신학하는 사람으로
서 저자에게 감사함이, 한국 교회에는 미안함이 앞섰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아주 산뜻하게 정리된 평화주의에서 무언가 미흡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시 주
의해서 읽으면서 기독교 평화주의 또는 존 요더의 평화주의의 신학적 근거를 보다 선명하
게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평화주의의 신학적 근거는 기독론
과 교회론, 제자도이다. 아나뱁티스트들에게 평화주의는 제자도의 본질이다. 이 점을 확신
하지 못하면 평화주의는 단지 불가능한 이상을 추구하는 완전주의자들의 과대 망상이 되
고 만다. 바로 이점이 라인홀드 니버의 문제점이자 요더와의 차이를 가르는 지점이다. 그
리고 김두식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 끝내 기독교 평화주의를 확신하지 못한 이유도 여
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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