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C 20주년: 기억하라 (Remember)

전도서 12장 1절은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이 있다. KAC 20살, 청년이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여야 하는가. 3가지를 기억하고 싶다. 첫째는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것이다. KAC는 매우 독특한 기관이다.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는 아무나 설립할 수 없는 기관이다. 특수한 파라처치라고 할 수있다. 선교단체와 같은 공동체로서 KAC는 파라처치다. 500년 재침례신앙의 역사에 경산지역에서 MVS 직업학교로 시작된 한국의 아나뱁티스트 경험이 1996년 예수촌교회와 2001년 KAC로 누룩이 퍼지듯 확산된 것이다. 한국의 아나뱁티스트운동은 자타가 공인하듯 자발적/자생적 운동이다. 자생적/자발적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하나님의 개입과 도우심이 있다는 의미다. 1996년 예수촌교회의 탄생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평신도들의 고민과 기도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역사다. 1993년-1996년 3년의 교회공부하기 모임에서 우리들은 교회의 원형을 1세기 교회에서 보았고, 16세기에 등장한 재침례파의 활동에서 역사적으로 재현된 것을 공부하였다. 낮설게 다가온 아나뱁티스트의 씨았이 교회에서 싹트기 시작하였다. 많은 해외의 아나뱁티스트 교인과 신학자와 목사들의 방문과 장기적으로 꾸준히 파송된 선교사들을 통해서 그들의 삶과 사고를 보고 배운 것이다. 필자는 런던의 메노나이트센터와 파리 아나뱁티스트 그리고 도쿄의 아나뱁티스트를 방문하고 한국 땅에 아나뱁티스트 센터 설립의 필요성을 해외의 아나뱁티스트의 친구와 기관들에게 간청하였다. 한국은 교회가 많아서 또 다른 교회 보다는 다른 신학이 필요하며, 신학과 좋은 신앙을 한국교회와 사회에 퍼뜨려야 됨을 역설하였다. 소위 ‘따름의 신학’이 필요한 한국의 상황에서 KAC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지금 기억해보니 가능성은 작고 소망은 큰 요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은 우리의 소망에 응답하셨다. 응답하라 2001이었다. 이것이 첫째로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그분이 하셨다.

둘째로 기억할 것은 20년간 만나고 경험하고 관계된 다양한 사람들이다. 바로 아나뱁티스트인들이다. 교회는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합이다. 그러기에 KAC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합이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분명히 사람들이다. 지체들이다. 즉 Member들이다. member를 연결하고 소환하는 것이 Re-Member다. 우선 역대 총무들의 자발적 순종과 희생은 아무리 기억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역대 총무인 팀, 경중, 복기, 선주 자매/형제들은 우리의 지체들이다. 친구처럼 그들의 First Name을 불러본다. 그들이 Member이기 때문이다. 매우 소중한 지체의 역할을 담당하였기에 그들에 대한 기억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꺼내 본다. 또한 장기적으로 헌신한 선교사들과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통해서 진심 감사를 드린다. 선교사들과 다양한 방문자들의 이름은 우리의 경험 속에 KAC의 역사속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2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만드는 자료집의 주인공들이다.

셋째로 기억할 것은 우리의 미래다. 미래는 기억의 대상이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와 있지만(Already) 아직 도래하지 않은(But not yet) 하나님 나라를 사는 신비한 사람들이기에 우리의 미래를 소환하고자 한다. KAC의 앞으로의 50년과 100년을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미래는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의 연장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가 우리의 ‘내일 거기’를 결정한다. 희년의 KAC는 어떤 모습일까. 제자도, 공동체, 평화의 3 기둥을 세우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100살 KAC는 무엇을 레거시(유산)으로 남길 것인가. 우리가 세우는 평화의 기둥은 어떤 모습인가.

전도서의 말씀을 다시 소환한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스무살 젊은이 KAC는 오늘 지금 우리의 창조주를 기억하여야 한다. 다시 예수의 멤버가 되는 길, 다시 그 분의 지체가 되는 길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것이 진정한 Remember다.

안동규 (KAC 초대이사장, 예수마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