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강남순 교수님과 함께 리본모임 정리

어제 25일은 텍사스 크리스챤 대학의 교수님으로 계시는 강남순교수님이 오셔서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책임적 기독인의 과제>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강의로 채워질 줄 알았던 시간은 실은 우리 크리스챤들이 놓치고 있는 삶의 긍정에 대한 도전들로 더 많이 채워졌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단순한 이해나 오해의 차원을 넘어서 최후의 심판에 판가름의 기준이 되는 삶의 실천 원리들을 간과한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약자를 연민의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그 세심한 시선이 우리가 예수로 부터 배울 수 있는 삶이고 그 삶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도구가 페미니즘이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열심히 옮겨 적어 보았습니다. 함께 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강의내용을 임의로 정리하여 올려 봅니다. 도움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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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 책임적 기독인의 과제

6월 25일 리본모임 강남순 교수

한국에서 교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묻는 사람이 많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집단을 보면 대부분 기독교인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 해체를 위해 항의하러 매일 오는 사람들은 목사님들이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많은 종교 중의 하나라고 하지만 실은 많은 종교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없다. 서구에서 건너온 기독교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서구는 지역적인 서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적 영역의 서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19세기 초에는 영토적으로 서구가 침범해서 식민지를 만들어 나갔다면 지금은 영토는 아니라 할지라도 문화적으로 깊숙이 침투해 있다. 이제는 서구와 비서구의 경계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옷을 보아도 다들 서구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다. 서구는 무소부재한 개념이다.

미국대통령의 영향력을 감안해 볼 때, 문자적인 의미는 아니라 할지라도 전 세계 사람이 미국 대통령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 이유는 그 영향력이 세계 곳곳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 모른 척 할 수 있는 사치는 없다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유수한 인재들은 미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의 전체 1년 예산은 하버드 대학 도서관의 1년 예산 밖에 되지 않는다. 캠브리지에서는 교수라 할지라도 한 번에 몇 십권의 책 밖에 빌릴 수가 없다. 그러나 하버드에서는 한 번에 300여권을 빌릴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지식을 생산하는 미국의 대학들을 볼 때, 사회의 토대를 놓는 일을 미국이 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안에서 기독교를 여러 종교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나?

이런 막강한 파워를 가진 서구의 초석을 놓은 두 사상이 있는데, 하나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이다.

서구에서 온 제도화된 기독교를 말할 때, 우리는 서구가 더 이상 “서구”가 아니라는 점과 기독교는 이 서구 사상의 중요한 초석 중의 하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전제 하에 기독교는 어떤 책임이 있나?

예수 vs.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기독교 안의 예수!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갭이 있다. 우리는 2000년 전의 예수를 제대로 알기도 어렵고, 제도화된 종교 안의 예수를 따르기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둘 사이의 중간 즈음에 있어야 한다.

니체는 제도화된 종교를 비판하면서 the first and the last Christian은 예수라고 말했다. 니체가 쓴 <Anti-Christ>라는 책을 읽어 보면 예수가 보여 준 “How to live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강조한다. 제도화된 교회는 인간의 삶을 부정하고 그 삶을 초월해 있는 무엇인가를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예수는 삶을 긍정하는 존재이다. 생명을 긍정하는 존재가 바로 예수이다.

모든 제도에는 딜레마가 있다. 무엇이든지 제도화하자마자 운동에 위계가 형성된다. 그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고정해서는 안 될 것을 고정시키게 된다. 믿는 바에 교리가 생기고, 조직화 된다. 우리가 믿는 믿음을 조직신학의 미명 아래 여러 갈래로 나누어 놓았다. 신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구원론 등등

글을 쓰지 않고 남기지 않은 유명한 두 사람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소크라테스이고, 다른 한 명이 예수다. 말은 화자의 현존이 필요하다. 그런 화자의 현존이 없는 ‘쓰기’는 오독과 오해에 항상 노출되어 왔다. 나의 강의를 들어도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다 다르게 표현하고 강조점을 달리 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소크라테스는 쓰기는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고, 말하기를 현존적인 것으로 보았다. 쓰기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소크라테스는 의도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고 예수는 아마 쓰기를 못 했기 때문에 쓰지 않았든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든지 간에 남긴 글이 없다.

니체는 포스트 모던 사고방식의 문을 열게 되는 한 구절의 말을 남긴다.

“사실은 없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이다.”

그는 근대 인식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현대 포스트 모던의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나의 강의를 듣고 똑같이 전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자기가 아는 만큼, 자기 그릇의 한계대로 이해하고 그 말을 전달할 뿐이다.

그런 한계를 전제하면서 예수를 만나야 한다. 기독교는 전체 종교의 30%이지만 그 힘은 다른 종교와 비교할 수 없다. 그런 조건에서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알고 있다는 것은 제한된 것을 본다. 결국은 우리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예수가 우리를 구속시켜(redeem) 주셨지만 우리도 이런 선택의 과정을 통해서 예수를 구속시켜 (redeem) 드려야 한다. 예수를 읽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 강의의 제목인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라는 말은 레오나르드 스위들러라는 남성 신학자가 가톨릭 잡지에 1971년에 싣게 되면서 나온 말이다. 여러분은 예수가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대한 대답을 어떻게 하실 것인가?….

이 대답을 하기 전에 생각할 것이 있다. 예수는 어떤 예수를 말하는가? 페미니스트는 무엇인가? 좋은 질문을 가져야 한다.

‘동성애를 찬성하십니까’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편집자 주: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질문은 판단과 정죄를 낳기 십상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을 것을 알면서 왜 그 나무를 만들었나?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시를 읽으며 사실을 구하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

오늘 나의 강의는 예수는 누구인가? 페미니스트는 무엇인가?라는 이 질문을 생각하면서 열어가는 것이다.

예수는 삶을 긍정하며 많은 죄인들과 약자들과 이방인들을 환대했다. 그는 제도화된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다. 최후의 심판을 다룬 성경본문을 보면 종교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 단지 목마른 사람, 배고픈 사람, 갇힌 사람들, 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한 것으로 기준을 삼는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How to live with others와 관계된 기준들이다.

기독교는 이제 혐오와 저주의 교회가 되었다. 목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만약 예수가 목사가 되려고 했다면 그는 바로 1차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그는 세상의 고정관념이나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안식일에 대해 말하면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이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의 눈으로 보면 아주 이단적이다. 그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기도 했다.

따스한 연민을 가진 예수의 시선을 회복하면서 우리도 예수님을 구속해야 (redeem) 한다.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사람들을 살려 내야 한다. 선한 사마리안을 보라. 그는 지금 말로 한다면 무슬림이나, 무종교인이나 성소수자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선한 사마리안을 언급하셨다. 종교적인 경계를 넘어섰던 예수님이시다.

교리라는 것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이다. 참고할 수 있는 사항이지, 절대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실제로 교리는 계속 바뀌어 왔다. 기독교 안에서도 보면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교회,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교회가 있다. 기독교라는 말은 절대 단수가 아니다. ‘기독교들’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될 복수이다.

4복음서의 제한된 소스에서 어떤 예수를 만날 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나에게 누구인가? 예수는 해답이 아니고 질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예수도 제자들에게 질문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모두에게 반말하는 것으로 번역된 한국어 성경은 문화의 산물이다. 예수님은 아무에게나 반말하는 분이 아니셨다.)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말합니까?“ 예수님은 각자의 생각이 어떠한지 궁금해 하셨다.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내 생각은 중요하다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을 이야기하는데는 뛰어나지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은 훈련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했다. 예수는 내가 누구라는 답을 주지 않고 듣기만 했다. 우리는 우리만큼만 이해한다. 사실을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레오나르도 스위들리에게 페미니스트는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썼다. “Feminism is the radical notion that women are people.”

radical이라는 의미는 “going to the root”이다. 근원적인 뿌리에 접근하다는 뜻이다.

여성이 사람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여성도 사람으로서 모든 권리를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상식적인 말인데도 급진적이라는 말을 써야 했나? 그렇다. 너무나 상식적인 말인데도 여성도 사람이라는 말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가부장제에 이 사회가 물들여 있었다.

여성이 가장 먼저 찾고자 했던 권리는 참정권이였고, 그 다음이 교육권이었다. 지금까지도 참정권을 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성인이 되지 못한 미성년자, 금치산자과 같은 사람이다. 이들은 자기 결정을 정확하게 할 수 없는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도 그렇게 열등한 존재로 이해되었다. 교육을 받는다면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교육이 확대되었지만 최근까지 열리지 않는 분야가 있었는데, 법대, 의대. 신학대였다. 이 모든 분야는 생명과 연관된 분야다. 여성들은 열등하기 때문에 이런 생명을 다루는 분야는 쉽게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1955년에 마지막으로 신학대가 여성에게 열렸다.

모든 종류의 혐오사상에는 두 가지 전제가 존재한다. 하나는 열등한 존재라는 생각, 다른 하나는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이다. 여성혐오, 난민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 모든 혐오는 이런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여성혐오는 남성만 갖는 것은 아니다. 가부장적 가치를 내면화하게 된 여성도 여성혐오사상을 갖는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은 여자를 소중한 존재로 보는 입장이며, 모든 여성도 사람으로 보고자 하는 시각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의 페미니즘을 따르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여성의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예수의 주변에는 여성제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부활이 첫 증인들도 여성들이었다.

반면,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여성인식은 어떠했는가?

한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토라가 여성에게 읽혀진다면 차라리 토라를 불태우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사람의 숫자를 셀 때, 여성은 사람 수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당시 성경기자들은 사회상을 반영하였다.

유대인은 하루 3번 기도 할 때, 이방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 무지한 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여성들의 존재는 비존재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왜 존재했는가?

역사를 보면 두 가지 기대가 있다. 하나는 사창가 모델이다. Lookism(외모차별주의)을 통해 여성이 남성들에게 섹스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느낌을 강요받고 있다. 그래서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다이어트 사업과 성형외과는 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다른 하나의 모델은 농장모델이다. 여성을 출산과 육아의 책임자로만 보는 것이다.

시몬느 보봐르는 남성은 주체이고 여성은 타자라고 이 세상을 꼬집어 말했다. 남성은 First sex이고 여성은 second sex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주변의 여성을 보면, 부활사건의 증인도 여성이었다.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사건에도 여성의 역할과 설득이 중요했다. 여성들에게 지적 활동이 허락되지 않던 시기에 예수님은 마르다의 강구에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지적호기심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예수는 혁명적이고 과격한 사람이었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을 페미니스트로 선택해야 한다.

바울은 양가적인 사람이다. 한편에서는 여성을 억압하는 표현을 쓰고 다른 한편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없다라는 말을 했다. 많은 성소수자와 여성혐오자들은 예수님을 인용하지 않고 바울을 인용한다. 다행히도 (물론 약간 위험한 소지의 표현들이 있기도 하지만) 예수님은 노골적인 차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남성인 예수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여성중심주의적 페미니즘 (gymocentric feminism)은 womanhood를 강조했다. 처음에는 ‘여성’과 ‘남성’만 보였는데, 너무나 다양한 intersectionality (교차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한 사람이 백인이고 남성이고, 이성애자이고, 기독교인이어서 모든 면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매우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2-3개의 job을 가지고 힘들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페미니즘의 출발점은 gender였지만 모든 사람과 모든 형편은 교차성 (Intersectionality)으로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사자성만으로는 변혁을 일으킬 수 없다. 흑인 문제도 백인의 도움이 있었을 때 더 큰 변혁을 이끌 수 있었다.

사람중심주의적 페미니즘(humanistic feminism)이 있다. 이것은 humanhood를 강조한다. 이것은 feminism은 본질(essence)이 아니라 입장(position)이라고 본다. sex라는 말은 생물학적 성별을 말한다면 gender는 사회학적 성별을 말한다. 시몬느 보봐르는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다.

당사자성을 강조하는 곳도 있지만 당사자만의 힘으로는 변혁을 불러 일으키지 못 한다. 흑인, 여성 문제는 다 연대해서 일어났다. 동질성(sameness)의 연대에서 다름 (alterity: difference는 기준이 있어서 우열을 가리지만 alterity는 다름 그 자체를 타자로 보면서 그대로 인정하는 어휘)의 연대로 전환되었을 때 변혁의 힘이 생겼다.

우리가 에큐메니칼 운동을 많이 하지만 조심해야 하는 것은 공통점을 보면서 연대를 하다 보니 서로 고유한 다름(alterity)를 간과하거나 축소하게 된다.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절대 말하지 말아야 하는 두 가지 taboo가 있다. 하나는 성 (sex)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소수자문제이다. 균질성을 만들기 위해 편협하게 되는 우를 범한다.

예수를 페미니스트로 redeem해야 한다. 예수가 최후의 심판에서 말한 6가지 기준으로 볼 때, 그를 페미니스트로 만들어야 한다. 주류에 속하지 않은 사람과 연대하는 일이 필요하다. 장애인, 성소수자들, 아이들, 여성들..

책임적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교가 아닌 예수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는 연민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 주변부를 연민의 시선으로 보아야 한다. 연민과 동정의 차이는 무엇인가? 연민은 영어로 compassion이다. 즉 suffer-with의 개념이 있다. 그러나 동정에는 시혜자와 수혜자가 생겨서 윤리적인 위계가 생긴다.

연민은 ‘왜’이런 일이 생겼는가를 묻는다. root question이 정의로 이어진다. 고통의 원인을 변화시키고자 연대하는 된다. 하지만 동정인 구제는 ‘왜’를 묻지 않는다.

둘째로는 책임성으로서의 종교가 되어야 하다. 예수의 최후의 심판을 보면 주변인들에게 어떻게 했는가에 관심이 있지, 교리부분을 확인하지 않으신다. 타자에게 어떻게 책임적인 삶을 살았는가? 교회는 구원 club이 돼서는 안 된다.

셋째로는 불가능성의 열정으로서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 가능성의 축과 불가능성의 축이 있은데 교회는 그 중간에 위치해야 한다. 새로운 소명감과 열정의 장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가 던진 how to live의 교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가 이 문제와 씨름하지 않았다면 죽을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편한 삶을 살기 힘들다. 사유하지 않고, 힘들지 않게 사는 사람은 자기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막는다. 한나 아렌트는 비판적 사고의 부재가 악의 뿌리라고 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악에 가담하게 만든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나의 무지나 비판적 사고의 부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 유한한 삶에 어떻게 유의미한 삶을 살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예수는 노숙자였다.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렇기에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고생길이다. 타자에게 무관심할 수 없고 타자에 대해 책임적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다.

성경에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 수 있는 단서를 하나 주셨다. 그렇다. 바로 “너희가 사랑할 때 (love one another)”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

사랑이 뭔가? 골치 아픈 삶을 사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하나의 도구이다. 지적인 오만에 빠지라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ism은 연장, 도구일 뿐이다. 이것으로 집을 지을 수도 있고 폭력을 가할 수도 있다. 사람을 살리며, 생명을 확장하는 도구로서 -ism을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 특히 페미니즘은 전 분야에 걸쳐져 있다. 예를 들어 약의 용량을 정할 때도 그 기준이 성인 백인 남성을 그 기준으로 한다. 여성은 제외되어 있는 상태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모든 분야의 문제를 볼 때 우리는 지적 패배주의에 빠지기 쉽다. 내가 뭘 할 수 있나? 이걸 한다고 뭐가 변하겠느냐? 등등

그러나 내 방에는 이런 글귀가 써 있었고 지금은 아예 내면화되어 있다.

“Small change can make a big difference.”

대부분의 씨를 뿌린 사람은 열매를 보지 못한다. 그저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이 바뀌고 타자를 보는 시각이 바뀌는 것이 변화이다. 좌절은 조금 하고 변화를 위해 일어서자.

Redeem! 예수를 Redeem해야 한다. 제도화된 교회의 Christian보다는 예수의 삶을 따르는 Jesusian이 되자.

강남순 교수님과 함께 하는 6월 리본모임안내

이번 6월 KAC 주관 리본독서모임은 드디어(!!!!) 강남순 교수님께서 오셔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독교 페미니즘의 주옥같은 말씀을 들려 주실 예정입니다. 강남순 교수님께서는 현재 미국 텍사스 크리스챤 대학에서 교수로 재임중이시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국 신학의 건강한 토양을 위하여 고군분투하시고 계십니다.

6월 리본모임의 주제는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 <책임적 기독교인의 과제>입니다. 강남순 교수님과의 만남이 크리스챤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부르심에 깊은 울림이 있는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이번 리본(Reborn)모임에서는 동녘 출판사에서 나온 <페미니즘과 기독교> 나 <젠더와 종교> 를 읽어 오시면 좋겠습니다. 한 권만 읽으실 수 있다면 <젠더와 종교>를 읽어 오세요. 그리고 12월 초에 출판된 <21세기 페미니스트 신학>도 좋습니다.

춘천에서 만나 뵙기 쉽지 않은 교수님이 오시는 만큼 주변의 많은 관심자들에게도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주제: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책임적 기독교인의 과제
강사: 강남순 교수 (Texas Christian University)
시간: 6월 25일 오후 7시
장소: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 (춘천시 춘천로 34, 3층)

참고)
강남순 교수님 소개: 현재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Texas Christian University Brite Divinity School)의 교수이다. 미국 드루대학교(Drew University)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부에서 가르쳤다. 2006년부터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에서 자크 데리다 사상, 코즈모폴리터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페미니즘과 같은 현대 철학적·신학적 담론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임마누엘 칸트, 한나 아렌트, 자크 데리다 등의 사상과 연계한 코즈모폴리턴 권리, 정의, 환대 등의 문제들에 학문적·실천적 관심을 두고 다양한 국제 활동을 하고 있다.

5월 리본모임의 정리요약

지난 5월 23일 목요일에 ‘춘천 더불어 숲’이라는 기독인문학강좌모임과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주관의 리본모임’이 연합으로 전 감신대 이정배 교수님을 모시고, ‘역사 위의 기독교, 역사의식이 사라진 기독교’라는 주제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교수님의 많은 연구와 고심의 결과로 나누어 주신 귀한 말씀은 정말로 다 받아 적지 않으면 안 되는 소중한 글들이었습니다.
좀 긴 글이긴 하지만 함께 하지 못하셨던 분들도 읽으시면 중요한 통찰력을 얻게 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눕니다.
즐독하세요! (물론 긴글 주의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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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 교수님의 ‘역사 위의 기독교, 역사의식이 사라진 기독교’ 강의내용

세월호 이후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큰 교회가 세월호 가족의 친구가 될 수 없었던 것을 보았다. 오히려 작은 교회가 그들의 새로운 교회가 되었다. 우리 나라는 작은 교회가 희망이다. 그 작은 교회 안에서는 ‘탈성장, 탈성직, 탈교단’의 일들이 이루어진다.
500년 전, 개신교가 가톨릭 교회에 대하여 종교개혁을 이루어냈지만 이제는 개신교 안에서 다시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  2019년은 3.1절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섰는가?’ ‘우리는 독립을 했는가?’ ‘교회는 무엇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가?’
‘나라는 무엇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가?’

이제는 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신학은 이런 질문 앞에 대답할 시기이다.
나는 세월호 이후 거리 신학자요, 거리 설교자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아픈 현장에 가서 거리 설교를 하다 보니 붙은 별명이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 한 설교가 33편의 설교가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리에서 만났다. 이 33편의 설교가 책을 나왔다.

또 학교를 일찍 퇴직하고 나오니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책을 중심으로 책을 읽었고 그 감상문을 에큐메니안 잡지에 실었다. 그 글도 33편이 되었다. 거기에는 분단체제에 길들어진 부분, 자본과 기독교의 싸움, 루터로의 회귀가 아니라 새로운 루터와의 만남, 페미니즘, 생태문제 등 기독교가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써보았다.

십년 전, 오늘 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대하는 어느 장로의 이야기를 듣고 기독교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그 장로는 “노통은 살아서도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주더니 죽어서도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준다”라고 말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연민과 슬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차갑고 냉소적인 기독교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드로전서 3:15에 보면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2가지를 고민해야 한다.
하나는, 우리의 소망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essence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영어는 기독교만을 Christianity라고 말하며 유일한 계시의 종교이고, 나머지는 다 사람이 말한 -ism이라고 표현한다. Buddhism, Hinduism, Islamism. 그렇다면 다른 종교와 분명하게 구별지을 수 있는 차이점 그 essence가 무엇이냐에 대한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소망을 드러내는 방법과 태도에 대한 문제이다.

힌두교는 모든 개체가 신이다라고 믿는 종교이다. 개체 자체가 절대적이다. 이 말은 아무리 비천한 불가촉 천민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나는 곧 신이다’라는 확신이 있는 종교이다.
불교는 그런 힌두교의 절대성에 한계를 느끼고 나온 종교로서, 절대성 보다는 관계를 강조한 관계의 종교이다. 모든 것은 관계 가운데 존재한다라고 믿으며, 개체성을 부정한다. 고통은 집착에서 나온다. 세상에는 집착할 것이 없다. 개체성을 강조하는 실체론적 삶은 집착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관계성을 강조한 불교는 생태학적인 종교이기에 요즘 불교의 생태에 대한 관심이 많은 각광을 받는다. 불교는 상호의존적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떤 종교인가? 힌두교처럼 각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하며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재하신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불교처럼 관계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만큼 그 힌두교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궁극성과 불교의 관계성이 전부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기독교는 이 모든 궁극성과 관계성이 깨진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기독교는 역사성과 우발성의 종교이다. 처음에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세상을 향해 한없는 애정을 드러내셨지만 노아의 시대에 세상은 노아가족만 남고 다 멸절된다.
하나님은 노아와 다시 약속을 통해서 관계를 정리하신다.
노아와 맺은 약속은 하나는 사람들의 눈에서 억울한 눈물을 흘리게 하지 말라는 것과 또 하나는 동물을 피 채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기독교에서의 인간은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하는 한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원초적인 한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근본적인 내용이다. 인간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궁극성과 관계성이 깨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의 출발점인 것이다.

중국한자에 보다를 표현하는 두 글자가 있다. 하나는 볼 見(견),이고 다른 하나는 볼 觀(관)이다. 볼 견은 낮에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을 볼 때 사용하는 글자이고, 볼 관은 밤에 볼 수 있는 것을 뜻한다.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일부만 볼 수 있는 것을 말할 때 ‘관’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예수가 우리에게 말하는 신앙은 바로 이런 ‘관’을 갖는 것이다.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시야를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다.

독일말로 부활은 ‘생물학적 죽음’에서 살아 났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회의 총체적인 불의‘에서 새롭게 되었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90%가 이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기독교의 부활은 사회의 총체적인 불의에 대하여 부활한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궁극성과 관계성”이 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다라는 것을 보고(觀), 세 세상을 꿈꾸는 것이 기독교의 소망이다. 이것이 원죄의 진정한 현실이다. 기독교의 원죄는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짓는 존재라는 의미뿐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궁극성과 관계성이 깨어진 현실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말한다.

베드로전서 나오는 기독교의 소망은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인가? 아니면 죽었다가 육체로 다시 살아나는 것뿐인가?
어느 대형교회처럼 3만5천원의 땅값이 3백5십만원이 되게 해다랄고 기도하는 욕심꾸러기가 되는 것이 소망이 아니다.
기독교는 이 기울어진 세상에 어떻게 관계성과 궁극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는 종교이다.
이제는 태도와 방법의 문제로 넘어가겠다.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
이것은 많은 목회자들이 호소하듯이 감정노동자가 되라는 뜻인가?
소망의 이유를 위해서 감정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것도 포함되지만 우리가 묻고 답하는 모든 신학적 행위는 구체적 시간과 공간 안에서 행해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말하는 신학이 변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때 온유와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바뀌면 우리가 주장하는 신학은 변화될 수 있기에 우리의 소망에 대한 대답은 온유와 겸손을 겸비한 두려움으로 준비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선언문에는 자기 我(아) 자를 쓰지 않고 대신 자기 吾(오)를 쓴다. ‘아’자아에는 창이 들어있다. 이것은 남을 배타하면서 자기를 보호하는 이기심을 드러내는 ‘아’라면 ‘오’자는 창이 없다. 배타하지 않는다. 우리 선조들은 독립선언서를 쓰면서도 압제하는 일본을 배타하지 않는 수용의 마음으로 독립선언을 하였다.
모든 신학적 대답은 시간적인 공간 안에서 일어난다.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많은 교회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고 하지만 정작 무엇을, 어느 시점을 초대교회라 할 것인가?
로마의 국교화가 일어나기 전인, 로마에 의해 핍박받던 시절을 의미할 것이다.
세상은 기독교가 로마를 기독교화 시켰다 생각하지만 실은 로마가 기독교를 로마화시켰다.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그 때 다 사막으로 갔다. 제도권 속에 들어간 기독교는 제대로 된 기독교가 될 수 없다.
국교화되기 전의 초대교회는 2가지 특성이 있었다. 하나는 해석의 다양성, 다른 하나는 복음의 정치학이다.
초대교회 당시는 성서가 정경화되지 않았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도마복음, 마리아복음 등 그들이 따르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그 공동체에서 읽히는 복음서가 있었다. 이런 다양한 해석이 공존했고, 다양성은 존중되었다.
도마의 복음서에서는 잃어버린 1마리 양이 죄인이 아니라, 그 잃어버린 1마리 양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 한다. 교회가 제도화되려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잃어버린 1마리처럼 소수가 되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다. 제도화, 군중화, 교권화되지 말고 자유의 길로 가라는 뜻이다. 함께 공존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리아복음처럼 여성의 복음이 같이 공존했고 그들의 해석이 존중되었다.
초대교회는 마리아를 예수님의 제자로 세웠다. 이런 이야기가 마리아 복음서에서 많이 나온다. 여성에게 이런 역할이 주어졌던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부장적 구조가 더욱 공고히 되면서 마리아의 이름은 점점 지워져 나갔다. 초대교회가 이렇게 해석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안에 그 해석을 하나로 묶어 주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이 복음의 정치학이다.
교회는 로마지배 속에 있었다. 그래도 율법만 있으면 자유인이라고 생각한 유대인들은 스스로 속고 있었으며 ‘진리 안에서 자유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 했다.
로마의 제국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자본주의의 제국의 속박 가운데 살고 있다. 능력이 있으면 마음대로 사람을 부리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수 있다. 그러나 로마식민지에 살던 유대인을 향해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자본주의의 논리대로 살면 안된다고 하신다.
초대교회의 기독교는 종을 부리는 것이 불편해졌다. 종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로마제국에서 사는 기독교인들의 고민이었다. 가부장적 문제도 기독교인들에게는 고민이 되었다. 바울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너 마음대로 하면 안된다고 권면한다. 일방적인 힘으로 아내를 제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법제재는 없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부장제가 불편해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살면 제국주의와 가부장제가 불편해지는 것이었기에 해결해야 한다.
복음의 정치학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로마와는 다르게 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도 자본주의에 살면서 자본주의와 씨름해야 한다. 돈을 펑펑 쓰며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만 기독교인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하면서 포도원주인의 이야기를 비유로 든다. 아침에 온 사람이나, 저녁에 온 사람이나 동일한 삯을 받는다. 하루의 품삯은 누구나 필요한 것이죠. 하나님나라와 이와 같다. 체제 바깥에서 이 체제를 구하기 위해서 오는 삶이다. 교회의 메시지는 체제 밖에서 오는 이야기여야 한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기독교인으로 세상을 살면서 불편하게 없다면 슬픈 일이다. 죄와 자본의 문제가 심각함을 깨닫고 그 체제 밖의 소리를 내야한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획일성과 제국의 틀 안에 갇히고 말았다.
기독교 안에서 자본주의가 나왔지만, 자본주의가 기독교를 자본화시켰다. 기독교의 소망은 체제 밖의 이야기에서 힘을 얻는다. 영과 육을 나눌 수 없다. 신앙과 삶은 분리될 수 없다.
진정한 기적은 이기심으로 움추렸던 손을 펴는 것이 진정한 기적이다. 100세 되신 김형석 선생은 65-75세가 되어서 행복해졌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그때서야 자신의 손이 펴졌기 때문이라 하셨다.

기독교신학을 창조적으로 왜곡한 대표적인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어거스틴이고, 다른 한 명은 루터다.
이들의 사고틀에서 벗어나 다른 기독교를 꿈꿔야 하는 시기에 당도했다. 어거스틴은 제국이 된 로마의 대표교구사제였다. 외부의 야만인들이 로마를 굴복시키는 것을 로마시민들은 목격했고 시민들은 분노에 찼다. 이 상황을 정리한 신학자가 어거스틴이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이 아니라, 저 하늘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원죄의 개념을 강화하여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고 정죄했다. 원죄와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이라는 말은 다른 말이다.
초기 교부들은 창1-3의 말씀을 보면서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어거스틴은 똑같은 본문을 보면서 원죄이야기로 만들어 버렸다. 목회자들에게 머리를 들면 안 되고, 교회는 계속 해서 원죄의 교리로 평신도의 머리를 숙이게 했다.
물론 어거스틴의 공로를 무시하고 싶지 않다. 그에게서 우리가 받은 유산이 많다. 하지만 어거스틴이 한 말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원죄(original sin)보다 창조의 원리(original blessing)을 강조해야 한다.

루터의 문제는 무엇이었나? 루터의 적은 가톨릭의 행위와 유대교의 율법이었다. 그래서 루터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루터의 ‘오직 믿음’이 루터시대의 ‘면죄부’보다 더 타락했다고 말한다.
천년이나 이어져 온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믿은 가톨릭신앙을 쉽게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비용이 적게 들었기 때문에 개신교에 빠르게 흡수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회학자도 있다. 지금은 개신교의 구원비용이 너무 비싸졌다.
루터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 말은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말살하려는 정책에 힘을 보태어 주었고 히틀러는 루터의 말을 인용했다. 물론 그 당시 유대인들이 미움받을 짓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성서는 ‘오직 믿음’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람은 행하는 것만큼 믿는 것이다. 믿음과 행위는 별개가 될 수 없다.
한 종교학자는 어느 한 지역에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 4명 중 1명꼴로 있어도 그 지역사회가 그 종교문화를 갖게 만든다고 하였다.
강남지역의 기독교인은 40%에 육박한다. 그 강남지역의 문화는 실컷 먹고, 실컷 땀빼고, 실컷 즐기고, 실컷 용서받을 데로 가득하다.
기독교는 이런 향락문화에서 벗어나 생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기독교가 자본주의에 철저히 기생하고 있는 문화와 맞서서 싸워야 한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가장 큰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원죄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의 현실에 오셨고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성육신의 신비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재현되어야 한다. 강도만난 사람을 보라! 사마리안은 자신의 원수 유대인을 치료한다. 성육신의 신비는 현장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0_0b4Ud018svc155l6dh5j2kj9_rhh1u0.jpg0_0b4Ud018svcrsnr7qtrvypv_rhh1u0.jpg

광주에서 함께한 평화좌담회 이야기

지난 5월 1-2일은 북장로교 평화좌담회에서 광주에 방문하여 1박하며 호신대 명예총장님이신 차종순교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떤 역사의 경로를 거쳐서 전라도 광주가 좌파의 도시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시면서 진정한 의미의 좌파라기 보다는 역사의 질곡 가운데서 눌리고 밟히고 짓이겨진 사람들의 몸부림이 힘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서 좌파라 불리게 되는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하셨습니다.
여기에 차종순 교수님이 함께 참여한 평화좌담회 사람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정리요약한 내용을 올립니다. 비록 꼼꼼히 다 받아적지 못했고, 제가 오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어 정확한 강의 내용과 차이가 있지만 약간의 이해를 돕는데 사용하시라 올려 봅니다.

우리는 강의가 끝나고 이제는 광주의 아픔보다는 동서의 화합과 통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하는 질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광주시민의 아픔이 충분히 토로되어지고 공감되어지기 전에 화합과 통합으로 나간다는 것은 폭력에 가까운 주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5.18 이후 세월이 벌써 39년이나 흘렀습니다. 이제는 통합과 화합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광주에 와서 광주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지 않고 언론과 보수정당이 흘리는 정보로 광주에 대한 오해를 품은 채, 이제 그만 슬퍼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한다면 그것은 슬픔을 다루는 가장 나쁜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호신대에서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의 트라우마는 유전된 슬픔이었습니다. 그들은 518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지만 그 부모님으로부터 전달되는 슬픔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유없이 광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바깥으로 나가면 위축되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관에서부터 시작되는 형식적이고 이벤트성의 5.18의 기념식으로는 충분히 낼 수 없는 목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이미 39년이 흘렸지만 우리가 시간이 될 때마다 광주에 내려가서 광주의 아픔과 소리에 더 예민하게 반응할 줄 아는 감수성부터 길러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하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실어봅니다.

—-호신대 명예 총장이신 차종순 교수님의 강의 —–

호남, 광주, 목포가 좌익도시라 불리는데 이런 이야기들의 근거는 일제 침략과 미군정이 그 핵심이 된다. 이것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일본이 호남을 가장 많이 탐냈고, 호남 영토에서 지속적인 식량보급을 받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1907년 이준을 비롯한 몇 명 사람들이 일본의 속내를 알고 헐버트 선교사와 함께 을사조약의 허구성을 등사해서 알리고자 하는 노력을 많이 했다. 1904년 황무지 개간법을 고종 때에 일본이 통과시키려고 했지만 고종의 반대로 무산되자, 순종 때 그 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전라도 지방에 측량고등학교를 세워 본격적으로 일본이 우리 땅을 자신들의 땅으로 가지고 가기 시작했다. 1905년에 구식 군대를 해체 시키고 일본이민이 시작되게 되었다. 토지조사 후에 일어난 일이며 일본농사가구를 모집애서 교육하고 한국에 파견하는 절차를 거쳤다. 그 첫 시기에 일본이 한국에 목포를 통해 일본인 10만 명을 한국에 보냈다. 일본은 들어와서 절과 신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자기 동네마다 신사가 있게 되었다. 1913년 광주공원에 신사가 세워졌다. 1930-33년 신사가 다 완성되었다. 절과 신사를 세운 이후로 일본은 창녀촌을 세우기 시작했다.

러일전쟁은 일본이 미국에게 잘 보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선교사들은 하나같이 ‘일제로 말미암아 한국이 잘되고 있다’라고 선교보고를 하였다. 후에 일제시대에 재판과정을 보면서 통역없이 일본어로 진행되는 105인 사건이 얼마나 부당했는지 선교사들이 본부에 보내게 되는 일이 생겼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일제치하가 생각보다 길어지자 변절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윤웅렬 도지사의 아들 윤치호가 감옥에서 나와 가장 많이 변절하였다. 나중에 남작작위까지 받았다. (Baron Yoon)
변절의 7인의 앞잡이에는 최남선과 이광수 같은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 이인직(이완용의 비서)이 쓴 ‘혈의누’는 일본친화정책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순수문학의 가치를 폄훼한 부분이 많다.

다시 땅 이야기로 돌아오면 1907년 본격적으로 토지 측량 조사를 했다. 일본인들은 한국사람의 땅을 헐값에 사갔다. 그러면서 한국인은 직장을 잃고 꿈을 잃고 일본인의 소작농이 되면서 사회적 지위가 약화가 되었다.
결국 가난이 좌파(?)를 형성하게 되었고, 1919-21 YMCA, 신협, 노동공제회(보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동공제회는 1925년 조선 공산당으로 발전되었고 지역단위 하부구조는 기독교인으로 구성되었다. 그 때는 교회가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였다. 그 후에 소작협의회, 소작쟁의가 등장한다.
1921-1927년 3.1 운동후 산미증산계획을 실시한다. 뚝방을 올려 하천계발을 도모하고 농업생산력을 증가했다. 이로 인해 한국인 개간업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한국인 지주들이 나왔다.
1923년까지 제주도에서 오사카에 바로 들어가는 배가 있었다. 일본에서 볼세비키 혁명 소식이 들어와서 좌파 성향을 제주도가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에 붙어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영암대지주의 외손녀가 지금 나경원이다. 한국사람도 땅 개간을 배워 부호가 된 사람들이 현준호, 박흥식 등이다.

호남의 토지 재벌들이 땅을 가지고 등장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소외돈 사람이 좌파계열의 투쟁세력이 되었다. 그 당시, 노동자, 농민, 하층민의 대변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기독교 지식층이었고 기독교 학교가 이에 큰 공이 있는 것이다.
광주에 김현승의 시비가 있는데 김현승씨의 아버지가 광주 양림교회의 목사였다.
그리고 정율성이라는 양림교회 사람이 연안곡이라는 모택동해방군가를 작곡했다. 이 모든 기독교 지식층의 활동 근간에 YMCA가 있었다. YMCA는 한국의 희망은 농업에 있다고 주장했다.

만주국에 일본이 세운 육군사관학교와 대동학원이 있었는데 육군사관출신이 정일권, 백선엽, 박정희이고, 대동학원출신이 최규하이다. 이들은 친일, 친미 제일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친일적인 공화국은 1946년 6월을 기준으로 38선 통행이 안 되게 하는 결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미국 프리스턴 출신의 한경직, 윤하영이 1945.9월 기독교 사회당을 만들었다.
한경직은 북에서 내려와 서울에 베다니 교회와 해방촌교회를 시작했다.
해방 후, 일본의 재산, 적산의 관제국 총책임자는 남궁혁 목사였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모든 종교시설이 기독교시설로 바뀌었다.
북한은 1946년 3월에 토지분배를 하였다. 토지가 만오천평 이상인 사람의 땅을 빼앗아 3천평씩 나누어 분배하였다. 남한도 그렇게 분배하라고 하는 요청들이 생겼다.
또 땅을 빼앗긴 평안도의 지주들이 남한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서북청년단이 되었고 그들의 거점지가 한경직 목사의 영락교회였다.

차종순 교수님은 개인적으로 5.18의 모든 열흘 간의 과정을 눈으로 본 증인이셨다.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거리지 않는가? 한국에 진짜 좌익이 있을까? 다들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호남의 좌익은 좌익이 아니다. 차별에 대한 Strike인 것이다.

세계 병역 거부자의 날에 KAC도 함께 합니다.

5월 15일 세계 병역 거부자의 날입니다.  경의선 홍대입구역 7번 출구 앞 공터에서 시민들과 함께 문화행사를 하고자 합니다.

병역 거부자들의 이야기도 듣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평화를 이루어 가는 한번의 날개짓에 함께 있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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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웽어 쉥크 총장 초청 세미나

미국의 아나뱁티스트 메노나이트 신학대학원의 총장님이 한국에 방문하십니다.
서울과 대전에서 초청 세미나를 열고자 하오니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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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라 웽어 쉥크 Sara Wenger Shenk 총장 초청 세미나
『Anabaptist Ways of Knowing』
일시|2019년 5월 13일(월) 오후 7시 30분
장소|기독연구원 느헤미야 3층
주최|기독연구원 느헤미야, 한국메노나이트교회연합,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후원|느헤미야교회협의회

#대전
제럴드 쉥크Gerald Shenk 교수 초청 세미나
『Peace Theology』
일시|2019년 5월 15일(수) 오후 7시 30분
장소|대전 함께하는교회(유성구 동서대로 130)
주최|기독연구원 느헤미야, 한국메노나이트교회연합,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후원|느헤미야교회협의회, 함께하는교회

 

5월 리본모임 안내

5월 리본 모임을 안내해 드립니다.
5월은 춘천의 기독 인문학 강좌 모임인 더불어 숲과 함께 연합으로 개최하고자 합니다.

일시는 5월 23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장소는 문화소통 공간나눔 (춘천시 삭주로 128 지하 1층)
회비는 1만원 입니다.

강사는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님이시고
주제는 역사 위에 선 기독교, 역사의식이 사라진 기독교입니다.

처음으로 함께 공동으로 주최하는 귀한 모임인 만큼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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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리본모임 스케치

4월말부터 일정이 정신없이 돌아가면서 차분히 앉아서 정리할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습니다. 이제서야 4월의 리본모임을 정리해 봅니다.
4월 23일에는 리본 모임으로 김상덕 교수님을 모시고 <사진과 기억의 문제에 관하여: 세월호 참사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진행되었구요.

그럼 차분하게 4월 23일의 리본모임부터 스케치해 보겠습니다.
기억은 그냥 하나로 ‘기억’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학문은 그 기억을 유형별로 정리를 했더군요.
그래서 개인기억, 집단기억, 문화기억, 대중기억, 기억의 터 이렇게 5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실은 이 기억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정체성을 찾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개인기억에 저장된 기억들이 “내가 누구인가”라고 하는 정체성을 만들어 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한 집단에도 그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매개로 기억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집단기억을 공유하면 그 집단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도 그런 기억이란 매개를 통해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억은 단순한 memory로 정의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더 깊은 것까지 나타낼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기억은 움직이지 않는 정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변동이 되며, 때에 따라 기억이 소멸되거나 극대화 되기도 하는 역동적인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경험한 세월호의 아픈 기억을 조심히 꺼내 보겠습니다. 2014년을 기준으로 팽목항은 그 이전의 팽목항과 그 이후의 팽목항으로 나뉘어집니다.
2014년의 세월호 사건은 국민 모두에게 잊지 못할 큰 아픔의 기억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잊지 않겠다”라는 말로 세월호 사건을 계속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그 잊지 않겠다는 말 속에는 어떤 기억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말은 들어 있을까요? 팽목항에서는 절대로 웃지 않겠다는 것인지, 혹은 세월호 이전의 평범한 바다로 돌아가게 하겠다는 것인지 기억에 대한 방향과 의지는 정확하게 이야기 되지 않습니다.

기억한다고 할 때는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첫번째 기억: 고통- 사고로서의 피해와 해결이 아닌, ‘너의 상실’을 듣고 함께 하며 공감하고 연대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기억하는 방법은 해결이 아닌 ‘듣기’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그들의 마음이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도록 듣기의 과정을 경험케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해결은 아직 시작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번째 기억: 진실-기록으로의 사진은 객관적이기만 할까요? 여러 진실들 속 진실은 어떻게 획득이 되는 것일까요? 많은 사진들이 진실을 다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목격자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사진의 증언과 목격자의 증언이 같이 가야 한다고 합니다. 목격자는 보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고통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그 진실을 함께 보고 느끼고 행동하는 목격자들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번째 기억: 현재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기억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래서 기억의 당위보다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위젤이라는 사람은 구원은 오직 기억 속에서만 발견된다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기억하고 끊임없이 기억하므로 기억은 구원의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해석-용서-치유-자유-화해라는 수순을 밟기 위해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실되고 정의로운 기억을 통해 타자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피해자를 치유하기 위한 기억을 하며 결국은 화해를 추구하는 기억으로 이어지도록 그 기억을 역동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네번째 기억: 미래- 그래서 미래를 기억해라라고 도전했습니다. 그 의미는 미래를 상상하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아픔의 상처가 그대로 상처와 고통으로 남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할 기억의 종착역이었습니다.

기억은 정적인 과거의 변치 않는 고정체가 아니라 기억은 미래를 향해 화해와 치유를 위한 역동적인 유동체로서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엄청난 선물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5월 1일 -2일 광주 518공원을 다녀오면서 기억의 놀라운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광주의 젊은 학생들을 만나면서 느끼고 왔는데 김상상덕교수님의 강의가 아주 적절하게 적용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정리해 보고 싶은 광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
함께 해 주신 김상덕교수님과 참여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4월 리본모임안내

“고통스런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 질문은 한국사회의 수많은 갈등의 역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질문이다. 이른바 ‘기억의 정치’는 현대 사회에서 각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강화하며 혹은 배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더 나은 미래와 평화로운 사회를 세워가기 위한 기억이란 어떤 것일까? 특별히 사진/미디어는 고통스런 과거의 기억의 형성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이는 우리가 접하는 고통스런 사건들의 목격은 주로 미디어를 통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수많은 미디어 목격 가운데 우리는 목격자인가 아니면 관객인가?

4월은 아주 특별한 리본모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평화와 미디어를 공부하신 김상덕 교수님을 모십니다. 교수님께서 오셔서 <사진과 기억의 문제에 관하여: 세월호 참사를 중심으로> 라는 주제로 4.16 을 다시 맞는 우리에게 생각의 골을 더 깊게 해 주실 것입니다.

독서모임 추천도서는 미로슬라브 볼프의 <기억의 종말> (IVP) 입니다. 이미 읽은 적이 있으시면 <사회적 영성: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 (현암사) 도  읽고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이 내용과 관련하여 김상덕 교수님이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아래의 글을 참고하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4월 23일 화요일 7시 KAC 사무실에서 뵙겠습니다.

3월 리본모임을 돌아보며

어제 3월 19일에는 크리스챤 월간지 <복음과 상황>에서 편집장을 맡고 계신 옥명호 형제님께서 KAC의 리본모임 강사로 오셨습니다.

이번 방문은 작년에 출간하신 책의 저자로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름하여, <아빠가 책을 읽어 줄 때 생기는 일들>.
모임 시작할 즈음, 제목이 아빠를 부각해서인지 관중석에 아빠들만 주욱 앉아있는 기현상을 발견하고 자못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통 리본모임에는 자매들이 더 많이 오시는 경향이 있거든요. ^^

자신을 ‘ 3초 조승우’라고 소개해 주신 옥명호 형제님은 제 관점에서는 볼수록 매력이 느껴지시는 ‘볼매’형 편집장님이셨습니다.^^

13년 간 피곤할 때나 지칠 때나 바쁠 때나 거르지 않고 퇴근 후에 자녀들에게 책을 15분간 읽어 주면서 발견하게 된 부모와 자녀,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고 이해하는 통찰력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이기는 힘은 사랑받는 경험에서 나온다’고 힘주어 말씀해 주셨습니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표현되어야 하며, 이해할 수 없게 표현된 사랑은 누군가는 꼭 번역해 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즉 부모의 사랑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자녀들은 표현된 사랑만을 사랑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연령대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여튼 거르지 않고 꾸준히 13년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자녀들과의 관계를 이어온 아버지 옥명호형제님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자녀들과 돈독한 우정과 유대감을 큰 자산으로 삼고 계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친밀하고 좋은 관계를 누릴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며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큰 자산이라고 외쳐 주셨습니다.

우리 리본모임이 늘 지적인 접근이 많았던 반면, 어제 리본모임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정서적 접근이었다는 면에서 새로왔고 다시 한번 내 옆의 자녀들과 배우자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가짐을 배웠습니다.

바로 옆의 그 사람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됩니다!!!

다음 4월달에는 23일 화요일 <평화와 미디어>라는 주제로 김상덕교수님이 오실 예정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