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리본모임 안내

10월달 리본모임은 캐나다 메노나이트 가정에서 성장하셨으며 미국 EMU에서 평화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셨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시는 권세리(Cheryl Woelk)자매님을 강사로 초대합니다.

지난 달에 함석헌 선생의 평화학에 대해 우리의 이해를 돕는 시간을 가졌다면 이번에는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성장하며 메노나이트의 평화학을 전공하신 자매님으로부터 메노나이트가 말하고자 하는 평화에 대한 이해의 지경을 넓히고자 합니다. 특별히 평화의 반경 중에, 언어가 평화의 도구로서 사용되어질 수 있다는 시각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특히, 제국주의의 도구로서 힘을 가졌던 영어가 어떻게 평화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통찰력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장소에서 평화를 일구어 내는 창의성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매님이 복음과 상황에 인터뷰한 내용을 링크합니다. 읽어 오시면 더 풍성한 대화와 나눔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http://m.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642

[인터뷰] "평화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10월 리본 독서 모임001
주제: 평화를 일구는 언어
시간: 10월 29일 화요일 오후 7시
장소: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 (춘천시 춘천로 34, 3층)

강사 소개: 본명 쉐릴 웰크(Cheryl Woelk), 한국명 권세리. 캐나다 태생의 메노나이트이자 선교사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평화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평화교육가이다. 러시아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메노나이트의 후손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평화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성장했다. 현재 숭실대를 비롯하여 평화대안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작년에 제2외국어로서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평화와 화해, 소통을 추구하도록 돕는 책, 《Teaching English for Reconciliation》(공저)을 펴내기도 했다

11월 7-9일 시스터케어리더십세미나

한국 메노나이트 주최 시스터케어 리더십 세미나를 11월 7-9일(목-토)를 개최합니다. ^^

오랜 전통 속에서 여성이 여성을 돕는 시스터 케어의 노하우를 메노나이트 여성 리더들을 통해서 듣습니다.여성들이 가진 정서적인, 육체적인, 관계적인, 성적인 문제를 남자목회자들에게 나눌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큰 문제로 와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여성은 여성이 가장 잘 도울 수 있습니다!! 여성을 이해하고 돕고 세워 나가는 시스터 케어 리더십 세미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 시스터 케어 리더십 세미나의 목적:
* 여성들이 개인적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
* 여성들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고 감사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 다른 여성들의 필요를 살피고 자신감있고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한다.
* 세미나를 경험한 후에 다시 이 메뉴얼을 교회나 공동체의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2. 시스터 케어 리더십 세미나의 구성
1)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른 사람을 돕는 법을 결정하게 된다.
2) 나와 다른 사람을 돕는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댓가가 따른다: 한계를 정하고 다른 사람을 돌봄과 동시에 나 스스로도 살핀다.
3) 긍휼한 마음으로 듣는다: 긍휼한 마음으로 듣는 일은 상처와 슬픔을 극복하도록 돕는 영적인 일이다.
4) 슬픔에 처한 사람을 어떻게 돕는가: 이미 자신의 경험을 통해 치유를 경험하고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자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치유의 일이 발생한다.

3. 시스터 케어 리더십 세미나의 안내
일시 : 2019년 11월 7(목) 오전 11시부터 등록~9(토) 2박 3일 오후12:30 점심식사까지
장소: 필그림하우스(경기도 가평)
주최 : MCSK (한국메노나이트교회연합)
주관 : MCSK 여선교회(가), KAC(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문의처: kac@kac.or.kr 혹은 033-242-9615

– 1차 등록 : 9월 20일  2차 등록 : 10월 20일
-등록 인원 : 30명
– 등록비: 15만원(교재, 숙식 포함)
통장 : 농협 351-0975-2107-53 한국메노나이트교회연합

관심있으신 분들은 여기를 눌러보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1cSwIM3NdnL6x58rUI3fWkuMLlBd_YwpBEZHn-xBzuH4/edit?ts=5d58d945

시스터케어리더십 세미나에 대한 안내 동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ECGuvuL5Cw

9월 리본모임 정리

지난 9월 24일 김대식 교수님과 함께 하는 “함석헌 선생의 평화론”이라는 주제로 리본모임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함석헌 선생님의 생각을 풀어 주셔서 많이 어려운 듯 하면서도, 생각의 폭이 확장되는 모먼트를 접할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교수님의 강의를 정리하고 질의 응답시간을 정리해서 좋은 분위기를 전달해 드리고자 하였으나 이번 리본모임은 몇 가지 키워드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강의의 본래 의미와 다를 수 있음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기표: 평화와 비폭력의 상황을 기대한다면 무엇보다 ‘기표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표’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표현인데 이 기표라는 것이 함께 공유되지 않는다면 기표표출에서부터 폭력이 발생될 수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리하여 세대와 성별과 신분을 아울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기표를 찾아내고 형성해 가는 것이 비폭력의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화라는 기표를 다양한 형태로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간디의 경우는 비폭력의 형태를 시민 불복종, 납세거부, 불가촉천민의 파업, 비폭력이 언어적 수단, 정서적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나만의 기표를 통해 확산이 될 수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도 아이디어를 얻어 군사정권시절에 단식을 하셨습니다.
퀘이커도 잠시 이야기 했는데 인상적인 점은 폭력적 방식에 대해 비폭력, 저항운동을 취합니다. 핵발전도 같은데서 피켓도 없이 도시락 먹고 행동을 하는데 그것도 기표가 될 수 있습니다. 전혀 없는 것 보다 기표발생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사랑 말하지만 기표를 발생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뜻: 함석헌 선생은 장로교에서 출발하여 무교회주의였다가 퀘이커를 경험하시고 탈종교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저서 중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그 전에 <기독교 관점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기독교관점이라는 말을 뜻이라는 말로 대체하였습니다. 이는 무교회주의자들 조차도 서운하게 생각하였던 부분입니다.
여기서 ‘뜻’이란 보편성을 말하며, 종교를 초월하여 형이상학적 의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뜻이 가리키는 주요언어로는 생명, 평화, 사랑, 생태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뜻(정신이나 하늘, 하나님과 등치됨)은 비폭력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3. 비폭력은 놀이: 비폭력이 권태로서도 기능할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놀이로 봐야 하지 않는가 합니다.
놀이를 할 때는 권태나 지루함이 사라집니다. 놀이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놀이 자체가 놀이의 주체가 됩니다. 놀이가 놀이를 합니다. 어렸을 때, 놀이를 하다보면 놀이를 한다는 생각이 안 들잖아요. 평화도, 비폭력도 그런 것처럼 해방구, 탈출구, 해방감을 맛보게 하는 기구로서 경험되어야 합니다.

함석헌선생은 비폭력은 장치로서의 자리라는 말을 씁니다. 폭력은 위계적 질서나 지배적 관계가 드러나게 되고 체계와 힘의 불균형에 따라 생기는 것으로 보면서 자리를 원본 그 자체로 놔두고 누구의 자리도 될 수 있다고 한다면 비폭력적 놀이가 가능한 것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3. 씨알: 씨알사상에서 씨앗은 아르케라고 불리는데 시원, 시작과 같은 의미입니다. 어떤 것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씨앗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주체가 되어서 폭력을 무화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씨알과 연관되는 것이 도덕적 비판으로 상대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가치를 쇄신하는데 포인트를 두는 것입니다. 같은 종교인이래도 추구하는 가치가 다를 수 있고 폭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비폭력 저항에서는 가치를 쇄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씨알이라고 하는 감성과 평등성을 함석헌 선생은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정치에도 감성의 5감각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행동은 목소리입니다. 모든 씨알에게도 동일하게 있는게 목소리이고 그 목소리가 평등하고 수평적으로 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생명력있는 씨알로 살아가면서 하늘의 뜻을 분별하며 이 땅에 그 뜻의 가치인 평화, 생명, 사랑의 기표를 드러내며 비폭력의 가치로 다른 이와 함께 협화할 수 있는 삶. 그것이 궁극적인 씨알의 삶이라고 조심스레 정리해 보면서~~~ 휘리릭!5_e9hUd018svc1kv53io1ytuzu_sp0ezp

9월 “함석헌의 평화”와 함께 하는 리본모임

9월에는 함석헌의 평화를 전공하신 김대식 교수님께서 오셔서 한국형  평화의 이야기를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통해 들려 주십니다. 함석헌 선생의 존함은 많이 알려졌지만 깊이 있게 함석헌 선생의 평화 사상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 주변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특별히 춘천 출신이신 함석헌 선생의 전문가이신 김대식 교수님을 초대하였습니다.

김대식 교수님은 대구가톨릭대학원 종교학과 겸염교수이며 함석헌 평화포럼 공동대표이며, 함석헌 평화연구소 부소장이십니다.  철학과 종교학 박사로서 종교 간의 대화에도 관심을 많이 갖고 활발하게 활동하십니다.

메노나이트의 평화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우리나라의 함석헌 선생님의 평화이야기를 듣는 것은 또 다른 설렘을 선사합니다.

9월 24일 화요일 오후 7시 한국아나뱁티스트 센터에서 뵙겠습니다.

읽으실 책으로는 김대식 교수님의 저서로 <함석헌의 이성의 해방>, <함석헌의 평화론>, <치명적 자유의 향연: 아나키즘과 함석헌>입니다. 이 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함석헌의 평화론>을 읽어 오시라고  강추합니다. ^^



					

메노나이트와 바캉스

올 여름은 바캉스를 다녀오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대자면 여러 핑계거리가 있지만 가장 정확한 이유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노나이트와 바캉스>라는 주제의 글을 부탁받아서 써보았습니다.
지인들은 바캉스를 다녀와야 진정한 글이 나온다고 우스개 소리를 해 주셨는데, 어쩌다보니 몸보다는 글로 배우고 글로 움직이는 삶이 더욱 용이해지는 현실을 봅니다.
글로만 바캉스인 이번 여름, <메노나이트와 바캉스>글을 이제 링크해 봅니다.
NCCK의 사건과 신학이라는 웹진에 실린 글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견해이기에 다른 메노나이트분들과 다를 수 있다는 점 양해말씀으로 먼저 드립니다. ^^

8월 리본모임 정리

69552735_3007170976020881_3671332847710371840_o책 <분별(대장간)>의 저자 박준형 형제님과의 리본모임 정리

 

어제 리본모임은 ‘분별’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습니다. 분별이라는 주제는 한국기독교인들에게는 낯선 주제입니다. 어떻게 분별할 것이며 무엇을 분별할 것이며, 그 결과는 누가 확증할 것이며 온통 난해한 질문일색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어려운 주제를 어제 리본모임에서 가졌습니다. 일방적인 강의형식이 아니라 강사가 질문하고 청중들이 반응하는 내용에 따라 이야기의 내용이 진행되는 형식이었기에 일목요연한 정리보다는 어제 있었던 대화의 흐름을 따라 내용을 정리해서 올려 드립니다. 참석하신 분에게는 재음미의 기회를, 참석하지 못 하신 분에게는 나름의 궁금증해소의 기회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단, 저자의 의도와 말하신 내용과 다르게 정리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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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두 증인 (한 분은 저의 막내누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저의 아내)과 함께 하는 ‘분별’강의라 거짓을 말 할 수 없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

제 책 <분별>은 분별에 대한 교과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이나 외국 서적을 통틀어 ‘분별’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되자는 생각으로 책을 썼습니다. 이 한 권을 위해 전문서적을 수없이 찾아 보았고 그 내용을 정리하고 소화하여 분별에 대하여 집대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이 책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곧 기독교서회를 통해서 후속편이 나올 텐데는 그 때는 분량을 반으로 줄였고 적용면을 강조했으며 동시대성에서 저의 관점으로 시대의 문제를 풀어 놓은 내용이라 보시면 됩니다. 곧 출간될 분별에 대한 두 번째 책이 더 수월하게 읽힐 것입니다.

 

오늘은 저의 일방적인 강의보다는 함께 대화를 나누며 이야기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다른 준비는 없이 어떤 성경말씀으로 시작할지만 준비해 왔습니다.

분별에 관한 최고의 성경구절은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또 다른 하나의 성경구절은 누가복음12:56입니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우리는 분별에 대한 많은 질문을 갖습니다. ‘한국교회는 어떻게 분별하는가?’ ‘분별에 왜 실패하는가?’ ‘시대적 상황-조국의딸-은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왜 미국 메노나이트 중에는 트럼프를 지지하는가? 그들은 과연 어떻게 분별했을까?“ 이런 여러 질문을 마음에 품은 채, 우리는 로마서 12장을 다시 보겠습니다.

 

성경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즉 conforming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순종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즉 이 세상의 pattern에 종속되지 말라고 합니다. 이 시대의 패턴은 무엇인가요? 메노나이트 신학교 AMBS의 예배당은 모든 벽면이 서로 각도를 달리 하여 건축되었습니다. 그 상징적인 의미는 세상에 종속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하십니다. 새롭게 된다는 것을 영어로 transform한다고 합니다. 생각의 변화가 마음으로 변화로 이어지는 원리를 우리를 경험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마음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새롭게 될 수 있을까요? 의지로 가능한 것인가요? 딤후2:15에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고 하는데 진리의 말씀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롬12:2은 무엇인 좋은지, 무엇이 acceptable한지, 무엇이 perfect한지를 분별하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분별을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분별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 중에서 더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이 분별입니다. 선과 악의 구별은 초보수준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단계를 넘어서 많은 좋은 것들 중에서 더 좋은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뭐가 나쁘고 뭐가 좋으냐가 아니라 뭐가 덜 좋고, 뭐가 가장 좋은 가를 구별하는 것이 분별에 더 가까운 개념인 것입니다. 무엇이 더 좋은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청중과의 대화 중: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은 뭔가 욕심 사나운 모양새로 보여서 그런 일에 우리는 머뭇거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더 좋은 것을 당당히 선택할 수 있다는 말씀에 자유가 느껴졌습니다. 에너지를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데 써야 합니다.” “맞습니다. 분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라는 확신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무엇이 acceptable한가? 이 문제에 관한 한 저는 공동체에 의해 acceptable 즉 받아들여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슨 차를 사고, 어떤 옷을 입고 어디서 살 것인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개인적인 결정이 공동체 community에 의해 수용될만한 내용인가 고민하는 것이 분별의 일부라고 믿는 바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즉 perfect은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which is the best to God을 고민하는 것이 분별입니다.

분별을 위해서 Good for the world, Acceptable to the community, perfect to God!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하면 새로워질까요? renew될까요? 새로워지는데 우리가 할 일은 없을까요?

시편 51편에 다윗의 회개가 나옵니다. 새롭게 됨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기도를 보면 새롭게 된다는 것은 비우는 행위입니다. 그 비우는 행위는 회개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이 세상의 것을 채워서 새로워질 수 없으며 오히려 이 세상의 것을 비울 때,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conforming하지 말라는 의미는 서로 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2015년부터 2019년 지금까지 분별을 붙들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분별은 성숙의 표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에게 분별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훈련을 시켜야 할 단계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에게는 분별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별은 종교적 열성으로 가늠이 될 수 있을까요?

종교적 열성과 분별은 상관이 없습니다. 프란치스코단의 더불어 사는 공동체는 사람을 보는 기준을 분별을 잘 하는지 아닌지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분별은 만져지지 않는 것이고 공식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오해와 추측이 난무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분별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 어떤 기대,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시나요?

분별은 선택이나 decision making이나 대화와 혼동될 수 있습니다. 회중들이 같이 논의하는 시간, 지금 한국교회는 월례회라고 부르지만 그것도 분별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체라고 무조건 다 분별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오해입니다.

만장일치제도가 또 하나의 굴레가 되어서 만장일치라는 지리한 경험을 무조건 실천한다고 분별을 잘 하는 공동체가 자동적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분별을 위해 지금까지도 여러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제가 읽는 책들의 제목을 나열해 보면 ‘worshiping a hidden God’ ‘프란치스칸 기도’ ‘ 그리스도교의 묵상’ ‘신의 영역’ ‘My vocation is love’ ‘The role of Benedict’ ‘영혼을 돌보는 영성지도’

이런 책들을 보면서 제가 확신하는 바는 분별은 회의를 통해서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과는 분명하게 다른 것입니다. 분별은 대단한 영적인 수행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묵상의 전통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성경의 씨앗을 불러내면서 나에게는 주시는 감화, 감동이 우선적이 되는 것이 분별입니다. 그러기에 분별은 소위 성인들이 해 왔던 일들입니다.

‘My vocation is love’라는 책의 소화 테레사는 24살의 젊은 나이에 죽어가면서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를 이어갔는지를 보여 줍니다. 분별은 습득되어지지 않지만 우리의 삶에 발견되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신비적인 성령의 활동을 재현시키는 것인 분별은 어린 아이가 할 수 없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분별의 전통은 공동체의 만장일치로 결정되는 단순한 과정이라기 보다는 공동체의 공통분모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필수로 거쳐야 합니다.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 (예수회의 창시자)가 죽게 되었을 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 쓴 책이 ‘영성훈련들’인데 이 책은 500년 동안 공동체의 분별의 교과서가 되어 왔습니다.

결국 어던 기초 foundation 위에서 만나고 이야기 되어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없이 분별을 시도하다가는 무정부상태가 됩니다. 분별하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어떤 공통의 분모를 세울까를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5장이 표면적으로 우리 의사결정, 만장일치제도를 위한 사례가 된다면 그것은 무모한 바보같은 행위입니다. 문자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기계적, 합리적, 상식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퀘이커교도들은 만장일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수 백년동안 만들어 온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화를 세워왔는가를 돌아보지 않고 표면적인 만장일치제도를 급하게 도입하여 적용하는 일은 위험할 뿐 분별의 과정이라고 보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문자주의적인 만장일치로 어떤 일을 결정하면 은혜로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장일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분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대의견일지라도 공동체가 결정한 일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분별하는 거야? 라고 묻는다면 공동체에 순종하기 위해 배우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메노나이트나 회중교회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놓치면 그 또한 우상이 됩니다.

공동체성의 분별은 개인이 훌륭해야 한다. 각 개인이 분별을 잘 하고 훌륭하면 공동체성 분별은 시끄럽지 않게 됩니다. 물질적인 성취나 기복은 분별의 목적이 절대 아닙니다.

 

분별을 위한 원칙을 함께 나누지만 이것을 적용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기에 새롭고 신선하게 실용적으로 자신만의 분별의 원칙을 세워나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별의 원칙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분별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물어라. 분별의 주체이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순종과 순종의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분별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 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함부로 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다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2. 크리스찬의 분별은 혼자 하는게 아니라라는 것을 잊지 말라. 어쩌면 ‘나’가 가장 좋은 분별을 방해할 수도 있다. 악마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공동체와 동행하는 겸손과 순종의 영역이다. 무슨 분별을 하든 고민해 줄 자들을 찾고 자신의 결정이 올바른지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할 믿음의 공동체를 찾으라.

 

3. 선과 악 사이에서 분별은 필요없다. 악은 버리고 선은 취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세상의 윤리와 상식으로부터 자유한 것이 아니다. 도덕이나 윤리나 상식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선이다.

 

4. 크리스챤의 분별이 세상 것과 다른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세상에서 우리의 분별의 시계는 하나님에게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시간에 쫓겨서 결정해선 안 된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결코 서두르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의 초점은 하나님께만 고정되어 있다. ‘바로 결정하지 못해 사라질 기회라면 그건 의미없는 기회일거라고’ 생각하라.

그렇다고 무조건 100%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정 시간이 안되고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라고 생각되면 우선 주님께 기도하고 결정하라.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찾아올 것이다.

 

5. 크리스천의 분별은 이성으로 하지 않고 감정으로 한다. 이것은 내가 배운 최고의 분별의 지혜이다. 성령이 주시는 마음은 늘 변함이 없고 그 끝이 아름답다. 마음의 평화와 기쁨. 이 감정은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우리로부터 빼앗아 갈 수 없다.

 

6. 영적인 낙담이나 절망이나 실망 중에는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다. 마음의 평화와 기쁨이 없다는 것은 결절할 때가 아니라는 적신호이다. ‘충동’, ‘즉흥’이라는 단어는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다.

 

7. 분별의 노하우는 대단한데 있지 않다. 하루를 잘 사는 사람이 소위 가장 중차대한 분별도 잘할 수 있다. 가장 작은 문제부터 분별하면서 우리는 분별의 지혜를 키울 수 있다. 가장 사소한 문제부터 고민하기 시작할 때 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8. 분별은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잘못된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 모든 문제는 새롭다. 모든 문제는 다르다. 그래서 겸손하게 창의적이고 신선한 분별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A-B-C와 같은 기계적이거나 공식적인 방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틀에서 자유로울 때 성령은 우리 안에서 숨을 쉬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

 

9. 완전한 분별은 없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결정할 수밖에 없다. 완벽주의 기질은 필요치 않다. 사소한 결정에도 벌벌 떨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100% 다 알 수도 없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세상은 혼탁하다. 뭐가 되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만을 바라며 결과로부터 자유 해야 한다.

 

10. 그렇다고 분별하는 과정에서 쉽게 타협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의지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결정을 의존한다는 것과 모든 것을 설렁설렁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우리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 그리고 이 문제를 둘러싼 모든 자들로부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란 일체된 동의와 확신을 얻기까지는 집요하게, 단 지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

 

11. 분별할 때 무조건적으로 문제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믿음의 연수가 더할수록 배우는 지혜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서 초연해지거나 영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문제를 통해서 주님을 더 알기를 바라시는데, 그리고 더욱 성숙해지기를 바라시는데 도리어 우리는 스스로 무덤을 계속 파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연습을 한다면 너무 멍청한 짓이 되는 것이다.

 

12.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과 다른 것을 주실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우리의 분별에도 융통성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크시다라는 겸손한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결과중심주의이지만 결과가 당장 좋지 않아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최종 결과와 열매는 주님만 아신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때를 기다리는 게 믿음이다.

 

13. 분별이 안 될 경우 무엇이 분별을 방해하는지 그 원인을 분명히 해라. 무엇이 문제이든 현상적으로 고민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그 문제가 뭔지 알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라는 뜻이다.

뭐가 문제인가? 왜 나는 무엇을 분별하려고 하는가?와 같이 “왜”나 “무엇”에 대해서 분명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속인다면 양심을 속이는 것이다. 자신 안에 있는 깊은 욕망, 욕심, 자만을 드러내라. 하나님 앞에서 가장 양심적인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14. 결정할 때 한 가지 기준(원천)에만 의존하지 말라. 최소한 말씀을 중심으로 2-3가지의 다른 분별의 원천이나 기준에 맞는 것을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중하고 지혜롭다 할 수 있다.

 

15. 분별의 가장 근본적인 권위는 예수님이시다. 분별의 과정은 주님과의 완전한 연합을 이루려는 시도이다. 우리 안의 주님께서 행동하게 하시고, 우리 안의 주님께서 결정하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시라면”이 우리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어야 한다. 분별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평범한 삶이 우리의 삶에서도 재현되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예수님을 살아내야 한다.

 

16. 한번 결정한 문제는 쉽게 번복하지 말라.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인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 우리의 모든 문제를 분별하는 것은 아니다. 분별이 필요없을 때도 있다. 분별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18. 가장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분별을 원하는가? 성인 혹은 영적인 대가들의 삶을 본받으라고 말하고 싶다. 나 스스로 분별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주님에게만 물어보면 된다고 믿는 것도 교만이다. 우리보다 먼저 산, 믿음의 성인들의 삶을 꾸준히 연구하고 모방하려 애써야 한다.

 

19. 분별하는데 가장 간과하기 쉬운 원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침묵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입만 닫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느는 것은 말뿐이라고 한다. 할 말이 너무 많아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 침묵의 목적은 듣기 위함이다. 온 몸과 맘을 다해 듣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에게 몰입하게 된다. 가장 희미하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침묵이 분별이다.

 

20. 마지막 원칙은 여러분이 만드는 것이다.

 

 

정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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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의 강의를 들을 때 우리들 맘 속에는 분별을 잘 하는 스킬을 탐내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별의 강의를 듣고 보니, 분별은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의 원래 모습을 발견하여 그 하나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하나님의 뜻을 나의 삶 속에서 구현해 내는 영적인 삶의 부르심이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쉽고 간단한 묘책을 기대했던 얄팍한 욕심이 부끄럽게 드러난 시간이었습니다. 분별은 하나님을 더 사모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분별하며 삽시다!!

분별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대장간에서 출간한 <분별>을 읽어 보세요.

다음 달에는 9월 24일 화요일에 리본 모임이 있습니다.

강사는 춘천출신이신 김대식 교수님으로 <함석헌의 평화학>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것입니다.

추천도서로는 김대식 교수님의 저서로 <함석헌의 이성의 해방> <함석헌의 평화론>, <치명적 자유의 향연: 아나키즘과 함석헌>입니다. ㅎㅎㅎㅎ

너무 버거우시면 <함석헌의 평화론>을 추천합니다.

 

캐나다 박준형님과 함께 하는 8월 리본모임

회중이 사라진 교회를 위한 공동체적 분별의 지혜를 나눕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혼자 결정해야 하는 우리에게  분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현실에 뿌리 박은 분별말입니다.지난  달에는 리본모임에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번에는 그런 공동체가 없이 살아가기 십상인 우리의 삶에 공동체적 분별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강사를 모십니다. 캐나다에 있는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신 박준형 형제님이 오셔서 메노나이트들의 공동체적 분별의 지혜를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꼭 참석하실 수 있는 분별의 지혜가  8월 27일 오후 7시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장소는 종전대로 KAC 사무실입니다.

읽으실 책은 대장간의 박준형 저 <분별>을 읽으시고 오세요!!

분별의 원칙 12

  1. 분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분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라!
  2. 선과 악 사이에서 분별은 필요 없다. 악은 버리고 선을 취하는 것이다.
  3. 분별은 이성과 상식으로 하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감정인 평화와 기쁨으로 한다.
  4. 영적인 낙담이나 절망이나 실망 중에는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다.
  5. 크리스천의 분별이 세상의 의사결정과 다른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6. 분별의 노하우는 대단한 데 있지 않다. 하루를 잘 사는 사람이 가장 중차대한 분별도 잘 할 수 있다.
  7. 분별은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과거에 묶이지 마라!
  8. 완전한 분별은 없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분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
  9.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주실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10. 분별할 때 한 가지 권위나 원천에만 의존하지 마라!
  11. 분별의 과정을 거쳐 한번 결정된 문제는 쉽게 번복하지 마라!
  12. 분별의 가장 근본적인 권위는 예수님이시고, 그 분의 말씀이고, 그 분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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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준 형

이문화/국제매너 전문가, 저자, 교회사역자
서강대 졸업 후 삼성그룹의 국제화 전도사로 인정받은 그는 방송 및 각종 매체를 통해 이문화 및 글로벌 에티켓(‘원칙 좀 지킵시다!’) 교육의 필요성을 피력해 왔다. 이문화 컨설턴트로서의 폭넓은 경험과 학문적인 토대 구축을 위해, 삼성 시절 독일에 파견되어 유럽 전반에 대해 배웠고, 세계의 많은 나라를 여행/연구하기도 했으며, 국내 거주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단체인 외국인 노동자 대책 협의회에서 전문위원으로 봉사했다. 국내의 대기업들과 정부기관 그리고 서울대, 카이스트 등에서 강의했고, 중앙공무원 교육원 출강 강사 중 최고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02년 미국 동부 버몬트 SIT대학원에서 ‘이문화 관계학’을 공부하고,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해 노스밴쿠버 시청의 ‘다양성 위원회’의 위원으로, 이민자들의 현지 적응과 정착을 돕는 ‘멀티컬츄럴 소사이어티’의 이사로 문화간 적응을 위한 각종 자문을 했다.
다양한 커뮤니티 봉사 경험을 바탕으로 2004년 캐나다 작가들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창의적 글쓰기 사회(CWC)]라는 비영리 교육기관을 설립해 [One Child, One Book: 어린 시절에 책 한 권을 쓰게 하자!]는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사회공헌가가 됐다. 2009-2014년 미국 인디애나 주에 있는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 신학대학원(AMBS)과 밴쿠버 리젠트 칼리지에서 그간 쌓아온 문화적인 지식과 경험을 신학과 접목시키는 공부(M.Div.)를 했으며, 그 와중에 과테말라 어린이들의 교육과 복지를 돕는 글로벌 교육 프로젝트를 런칭했다. 가장 최근까지 밴쿠버 셜부룩 메노나이트 교회 지역사회 개발 및 연계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목회자로 사역했다.
책은 경계 없이 써왔다. 『볼프강의 글로벌 비즈니스 에티켓 1,2』(김영사, 2000), 『나는 매일 매너를 입는다』(한올출판사, 2002), 『변화의 타도를 타라 1,2』(SFC, 2004), 『글로벌 에티켓을 알아야 비즈니스에 성공한다』(북쏠레, 2006), 『내 아이 창의력을 키우는 영어 글쓰기』(웅진리더스북, 2008), 『크로스 컬처』(바이북스, 2010), 영어 eBOOK으로는 『Cultural Detective: South Korea』(Nipporica Associates USA, 2004), 번역서로는 조직의 다양성을 다룬 『팽귄나라로 간 공작새』(진명출판사, 2002)가 있다. 이 책은 그의 첫 번째 신학적인 시도이다.

7월 리본모임정리

조현기자님과 함께한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공동체 강의내용요약

 

이곳에 오니 “예수건물”이 아니라 “예수마음”이 통하는 곳이라 너무 마음에 듭니다. 개인적으로 메노나이트에 마음이 가서 메노나이트에 관련된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몸이 안 좋아서 2-3년 전에 요양 차 1년간 해외 공동체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었고 관심을 더욱 깊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홀로’는 너무 무력한 인간입니다. 침팬지와 인간의 DNA 차이는 1.6%밖에 나지 않습니다. 다만 확연한 다른 점은 침팬지는 태어나면서 뇌의 65%가. 인간의 뇌의 20%만이 완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뇌는 자라면서 계발되고 발달된다는 의미이겠지요.

말은 태어나자마자 10분 후에 발로 툭 치면 두 발로 서서 뛸 수 있고 1년 후에는 수레를 끕니다. 고양이도 1년 키우면 쥐를 잡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1년 키워야 겨우 걷고, 30년을 키워도 요즘 같은 세상은 견적이 안 나옵니다.

사람은 야생에 둔다면 한 입거리 밖에 안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공동체성이 없으면 결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됩니다.

 

50여 년간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를 겪었습니까? 지구상에서 우리 한국처럼 큰 격동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KTX를 타면 그 속도를 체감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속도를 느끼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뇌 속에 그 격동의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6인 이상이 사는 집이 1980년대에는 5집에 하나씩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에는 6인 이상은 1.5%가 되었습니다. 1인 가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요즘 시대는 유희하는 인간을 표방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 유희 이면에 자살, 고독사, 저출산은 왜 함께 등장하는 것일까요?

유독 대한민국만이 자살, 고독사, 저출산이 심한데 그 원인을 3-40년 만에 경험한 격동의 분화에 두고 있습니다.

100배 정도의 경제속도가 1970년에서 2019년까지 이루어져 왔습니다. 1970년이 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지형은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70년 초반 새마을운동이 지붕개량사업을 시작하면서 40년 만에 상상할 수 없는 큰 Gap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세계 1위입니다. 92%가 도시화되었습니다.

1964년 뉴욕 맨하탄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퇴근 후, 아파트를 가는 동안 괴한이 찌른 칼을 맞았습니다. 항거했지만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도망가던 괴한이 다시 돌아와서 그 여성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은 38명이나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러바인 교수팀의 조사(시각 장애인으로 가장하여 도움을 청한 실험)결과에 의하면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 살수록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뜻입니다.

 

해리 할로우의 원숭이 격리실험을 예로 들겠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어린 원숭이를 어미원숭이로부터 격리했습니다. 단, 먹을 것을 충분히 공급해 주었습니다. 어느 정도 자란 다음, 무리 속에 다시 넣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관찰 결과, 어미와 격리된 원숭이는 제대로 된 사회성이 없었기에 무리 속에서 바보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실험에서는 두 개의 모형을 넣어 주었습니다. 하나는 부드러운 천으로 싸인 젖이 나오지 않는 모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부드럽지 않디만 젖이 나오는 모형이였습니다.

원숭이는 부드러운 엄마와 같은 모형에 달라 붙어 하루종일을 보냈고 배가 고파 먹어야 할 때만 부드러운 모형에 달라붙은 채, 입만 젖을 주는 모형에 갖다 되었습니다. 잘 먹지 못 해서 빼빼 말라가면서도 원숭이는 부드러운 엄마 쪽 욕구가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생존의 욕구가 잘 채워지지 않아서 그 욕구를 크게 봅니다. 그 결과, 요즘 세대는 관계회피, 결혼포기, 출산율감소 (0.9%)라는 참담한 현실에 당도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학자들은 고용불안, 남녀불평등, 복지혜택의 부족 등 외적인 이유를 나열합니다. 모두 동의합니다. 그러나 내적인 원인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외적인 이유들이 불충분한 방글라데시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는 높은 출산율이 있지 않나요?

공동체 붕괴, 내적인 트라우마, 내적인 번아웃. 이제는 내적인 것을 일으켜 세워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옛날 우리 윗세대가 살던 시대는 부모님과 대가족을 이루며 마당이나 마을은 사람들이 그저 자연스럽게 모이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시로 몰리면서 맞벌이 부모로 인해 아이들은 오랜 시간 방치되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는 신이고 구원자입니다. 그러나 그 방치된 아이들에게는 신도 없고, 구원자도 없는 것입니다. 내면의 트라우마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자녀들을 친척집에 맡기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들이 주말에 잠시 들렀다. 아이들 몰래 한눈 파는 사이에 도망가듯 일터로 줄행랑치듯 사라집니다. 부모가 말도 하지 않고, 설명 없이 사라지는 일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그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분리공포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상처받은 인간들이며 내면에 통곡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제발전기에 겪었던 방치된 아이들읜 충격은 크나큰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유기당한 세대입니다. 그들에게는 안전기지가 없습니다. 커다란 바다의 돛단배와 같은 인생살이에서 그들은 외부의 시련을 이겨낼 내면의 힘, 안전기지를 확보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애착으로 형성된 안전기지가 평생의 마음 건강을 지배합니다. 그런데 우리시대는 그런 마음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입니다. 위로와 공감이 몹시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불통의 시대입니다. 나만 이렇게 힘든가?

현대인의 가장 큰 고통원인은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 관계를 피하기 위해 ‘혼삶’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상태는 ‘상처받음’의 상태입니다. 상처를 받으면 보통 동굴에서 회복될 때까지 웅크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너무나 오랜 시간 동굴에 머물다가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고독사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자본(기업)은 왜 홀로 살도록 부추길까요?

6명이 한집에 살면 건축가들은 많은 집을 지을 수 없기에 홀로 사는 1인 가족을 부춥니다.

다른 전기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식구들이 함께 살면 그만큼 소비가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질병은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심리적일 뿐 아니라 육체적인 질병도 동반하게 됩니다. 외로움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과 같은 위험성이라고 합니다. 치매도 그만큼 빨리 발생합니다.

 

이렇듯 혼자는 정말 외롭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는 것은 괴롭습니다. 이게 우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접촉을 피하고 ‘접속’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접속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인간 DNA는 접속만으로는 안 됩니다. 반려동물 1천만 시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제 노동도 봉사도 하기 힘들어 그런 일을 로봇에게 맡기는 로봇시대에 당도했습니다.

일본이 우리사회보다 15년이 앞서 있다고 하는데, 지금 일본은 60세 이상의 신규수감자가 3-4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혼자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수감생활을 원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불행한 사람은 인간관계망이 끊어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면, 행복한 사람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인간관계망이 든든히 연결된 사람입니다.

저는 자가면역성질병이 있을 때 민들레 학교 김인수 선생님의 제안으로 태국에 있는 아속공동체에 들어갔습니다. 맨발로 다니고, 관장하고 단식하며 지내다 보니 건강도 좋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도 오로빌공동체도 보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공동체 마을로서, 마더와 오로빌이 세운 공동체입니다.

부르더호프에서는 일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초자라고 봐주지 않았고 다 자기가 맡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학생들을 유수한 대학에 보낸 마운드스쿨이라는 공동체는 다른 학교와 별 다른 점이 없었지만

대걸레를 아이들이 직접 들고 학교를 구석구석 청소한다는 차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야미기시 공동체는 무에서 시작하여 결론을 이끌어 내는 연찬회를 시작한 곳인데 지금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져서, 이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다시 시작한 공동체가 일본의 애즈원 공동체입니다. 이들도 연찬회를 갖고 이를 사이엔즈라고 부르는데 과학적 본질의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입니다. 어머니 도시락 사업으로 생활을 하고 있으며 12년째, 위계나 명령이나 규율이나 상하가 없는 회사를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치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동체에 대해 나눈다면, 공동체의 흐름이 바뀌어서 전환마을형태나, 코하우징의 형태를 갖춘 공동체도 있습니다.

예전의 공동체 형태를 유지하지 못 하는 이유는 집값 상승을 가장 큰 원인으로 뽑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하우징형태를 띈 공동체로 방문한 공동체 중에 가장 밀착형 공동체였던 은혜공동체를 소개합니다. 50여 명이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코하우징형태이고 상담을 전공하신 목사님 내외의 영향으로 핵심멤버들이 대부분 이런 상담에 노하우를 갖고 있어서 서로 상담해 주면서 공동체를 건강하게 이끌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밝은 누리 공동체는 공동체의 가치를 분명하게 공유하고 세우기 위해서 가장 치열하게 공부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파주시 문발동에 공방골목은 전환마을의 특징을 가진 공동체였습니다. 탁구대 하나를 시작으로 하여 여러 다양한 문화활동이나 취미활동이 전개되었고 지금은 치유가 일어나는 장소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남 남한산성 아래 첫마을 논골이라는 공동체는 10평짜리 빌라가 6천가구 모여 있는밀도로 보면 세계 최고의 공동체인데 이 마을에서 자란 윤수인 활동가가 마을에 들어가서 직접 그들의 need를 살핀면서 필요한 활동들을 전개하면서 행복한 공동체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이렇게 함께 살면서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때, 그들이 느끼는 행복지수와 만족감은 혼삶에 익숙해 지고 있는 우리에게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는 PPT를 통하여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기에 지면으로 그 내용을 다 담지 못 함에 대해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 대신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통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는 말씀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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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리본 모임 안내

녹음이 짙게 푸르러 가는 7월의 리본모임을 안내드리고자 합니다.

7월 23일 화요일에 한겨례 종교기자로 일해 오신 조현 기자님을 모십니다.

세계의 여러 공동체를 방문하시고 우리나라의 여러 공동체를 방문하신 후에 책을 한 권 쓰셨는데 이름하여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개인주의 사회 속에서 조현기자가 경험한 공동체는 어떠했고, 그들의 다른 점은 무엇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밑에 책에 대한 소개글을 퍼왔습니다. 읽어 보시고 7월에는 공동체에 관한 책으로 더위를 식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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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동체 18곳, 세계적인 공동체 5곳을
총망라한 단 한 권의 책!! 

세상에서 가장 기운이 좋은 수도 터와 성지들을 다니고
최고의 영성가들을 만나 수행하면서 선(禪)적인 글을 써온 종교전문기자 조현!!
3년에 걸친 공동체 탐사 취재와 3백여 명의 깊이 있는 인터뷰로
함께하는 삶의 가치와 행복의 의미를 짚어보다.

자살률,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 죽지 못해 산다는 사람들,
금수저의 갑질에 분노하면서도 빈곤층 대우를 받기 싫어하는 사람들,
임대주택 사람들과 한 동네에서 살거나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도 거부하는 사람들,
자신이 약자일 때는 정의의 투사이지만 개인으로 돌아와서는
자신도 모르게 차별하고 박해에 가담해버리는 사람들,
혹 당신도 자본주의에 얽매여 반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동서양 문화는 물론 인도와 이집트, 이스라엘과 티베트, 중국과 우리나라의 오지 등을 순례하며 ‘정신의 원형’을 탐구해온 종교전문기자 조현이 자본주의 방식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과 그 비결을 담아낸 책으로 돌아왔다. 신간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는 혼자는 외롭고 더불어 살아가자니 괴로운 사람들에게 함께하는 삶의 가치와 행복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저자는 1999년 대안문명 시리즈로 영국 브루더호프공동체를 신문에 소개하면서부터 최근까지 대안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만든 마을과 공동체를 탐사 취재해왔다. 특히 이 책을 집필하려고 최근 3년간 국내 마을과 공동체를 재방문하여 함께 어울려 살아보았고, 외국 언론들조차도 접근이 어려운 해외 공동체만을 찾아 순례했다. 농사도 짓고, 밥도 해 먹고, 공동체 일자리에서 직접 일도 해보면서 그들의 행복감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 비결을 하나하나 파헤쳤다. 재산과 학력 수준, 능력, 체력, 사회성이 달라도, 서로 의지하고 돌보고 협조하고 힘이 되어주고 위로해주고 사랑해주면서 행복해지고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남녀노소 3백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과의 깊이 있는 인터뷰로 담아낸 생생한 사례와 명쾌한 분석, 시원한 통찰은 힘겨운 시대를 견뎌내는 우리들에게 삶의 가치와 방향,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한국아나뱁티스트저널 18호가 나왔습니다.

한국아나뱁티스트 저널 18호 발행합니다.
아래의 두 곳에서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wkaf.net/board_pZUq18/1761544
http://anabaptist.kr/index.php…

웹버전을 발행하고 종이 저널은 별도 발송합니다.

이번호의 특집은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통일과 평화”의 묵직한 글도 있습니다.

발행인: 남상욱
편집장: 문선주
편집위원: 배용하 한준호 염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