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담 :20년을 돌아보며 새로운 20년을 내다보기

KAC 20주년을 기념하면서 전/현직 KAC 이사장과 스탭들이 모여 2차례의 좌담회를 가졌다. 첫번째는 2021년 10월 2일 (토) 오후 9시에 KAC의 과거를 돌아보는 회고의 시간이었고 두 번 미래를 내다보는 시간으로 11월 6일 (토) 21:00시에 온라인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석자는 권세리, 김경중, 김복기, 남상욱, 문선주, 안동규, 이재영, 팀 프로즈 (가나다 순)이었다. 한국과 캐나다를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시간은 한국시간으로 토요일 오후 9시 (캐나다는 토요일 오전 8시)밖에 없었다. 하지만 토요일 밤 12시가 다 되도록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화상이지만 오랜 만에 만나 반가웠고 과거를 돌아보며 추억에 잠겼으며 미래를 내다보며 새로운 모색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였다.


2차 대담

  • 주제: KAC 20주년을 내다보며
  • 일시: 2021년 11월 6일 (토) 21:00시
  • 참석자: 권세리, 김경중, 김복기, 남상욱, 문선주, 안동규, 이재영, 팀 프로즈 (가나다 순)

2차 대담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1. KAC 현재의 문제점, 당면 과제
  2. 제자도, 평화, 공동체의 3축으로 앞으로 KAC의 과제
  3. 한국사회에서 평화운동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4. 타 기관과의 연대
  5. 어떻게 사람들을 많이 다양하게 관여시킬 것인가?
  6. KAC의 Governance는 어떻게/어디로 ?
  7. KAC의 SWOT 분석 즉 강점, 약점, 위험, 기회 요인들을 다룸
  8. 마지막으로 우리가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이슈나 아젠다는?

사회 안동규: 예, 20주년 기념 일종의 토론에 1차에 이어서 2차를 하게 됐습니다.

지난 모임은 아주 열정적이고 의미 있는 토론이여서 누군가가 나중에 되돌아볼 때 매우 좋은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미래지향적인 주제를 가지고 무엇이 문제이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며, 사역을 하면서 내가 느낀 점들을 나눠주시면 되겠습니다. 한 분이 삼분씩 말씀하신 다음에 또 다음 사람에게 넘어 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우리 남상욱 형제님부터 말씀해 주시면 어떨까요?

남상욱: KAC의 현재 활동에 대해서 문선주 총무님께서도 이야기 해주시겠지만, 우리의 정신은 제자도, 공동체, 평화 이 세 가지구요. 현재 하는 활동은 ‘EAR’라고 정리되어 있습니다. Education, Activity, Resource 세 가지 활동 중 교육에서는 ‘리본 모임’ 즉 정기 독서 모임이 있고 그 다음에 ‘아나뱁티스트 아카데미’로 정기적으로 열리는 교육프로그램으로서 아나뱁티스트 신앙을 소개하는 모임이 있고,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 즉 매년 1월 달에 하는 정기세미나가 있습니다. 활동으로써는 그 아나뱁티스트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여러 활동들을 개발합니다.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는 학교내 평화교육에 참여하고, 대학 캠퍼스에서 외국 유학생들을 환대하며 한국어를 가르치는 평화활동과 여성 리더십을 계발하는 ‘시스터 케어’ 같은 것들이 있고. 자료로써는 아나뱁티스트 관련 자료를 계발하고 보관하지요, 이외에 다른 관련 단제나 개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자료 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과 활동들을 보면서 KAC의 문제점이라고 하는 것은 제자도, 공동체, 평화 이외의 한 영역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개혁 부분이지요. 아나뱁티스트의 역사를 보면 아나뱁티스트 그룹은 교회 개혁에 관한 문제를 기존 교단에게 계속적으로 경종처럼 울려주는 단체였거든요. 그래서 16세기에 종교개혁은 끝났다라고 생각하는 그런 기존 주류 교회에게 ‘아니다, 계속해서 우리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하고 교회는 지속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자도, 공동체, 평화 이외에 교회 개혁이라고 하는 중요한 주제를 우리가 놓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KAC를 찾아오시는 분 중에는 그러한 목마름으로 오시는 분들이 참 많았어요. ‘교회가 요즘 왜 이러냐?’ 이런 것들에 대한 해답을 아나뱁티스트에서 찾고 싶어합니다. 아나뱁티스즘에서 어떤 답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최근에는 21세기 한국 교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보려면 아나뱁티스트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활동이 이제 이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교회개혁 쪽으로 더 넓혀야 되겠다라고 하는 그런 문제의식을 갖습니다. 정리하면,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KAC의 세가지 기둥. 제자도, 공동체, 평화 거기에 교회개혁이라고 하는 새로운 기둥을 심어야 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선주: 지금 현재 총무로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KAC 사역의 문제점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긴 좀 어려울 것 같고, 제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이야기를 하는 게 더 맞을 거 같습니다. 저번에도 한 번 말씀드렸지만은 일단 저는 지금 KAC에서 총무로서 일하고 있는 것이 굉장히 버거워요. 일 자체가 버겁다기보다는 공동체와는 단절된 느낌이 있어요. KAC의 뿌리부터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메노나이트 신학교를 다닌 이력 때문에 KAC 총무로 들어올 수 있었지만, 들어와서 뿌리를 내리고 싶은데, 그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가 발견되지 않았어요. 물론 지금 메노나이트 교회를 매주 출석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시스템자체가 저와 같은 뿌리가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되지 않은 느낌이 있어요. 다시 말하면, 저는 혼자 일하고 있는데, 뿌리와의 관계라든가 또는 지금 운동을 하고 있는 다른 조직과의 관계 속에서 안내 받고, 깊이 있는 교제를 할 수 있는 안전한 장치 자체가 없는 거예요. 물론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계발되어질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안전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모판이나 체계가 없다는 것은 건강하지 않은 부분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내가 적절하게 일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슈퍼바이저할 수 있는 존재나 기관도 없다는 점이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KAC가 20년 이라고 하는 역사에 비해서 지금 현재 남겨진 KAC는 역사만큼 품이 커져 있지 않고, 어느 부분에선가 단절된 느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20주년을 맞이하여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동적으로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인력풀이 굉장히 부족해요. 그리고 그것을 요구하고 요청하기에는 각 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과제가 너무나 분명하고 바쁘기에 한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상태도 아닌 것이죠. 물론 KAC의 현재 과제나 미션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총무로서 제가 지금 느끼고 있는 무게를 나누었습니다. MCSK나 KOPI나 또는 예수촌교회나 예수마음교회나 다 가까이 있지만 이들을 모아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집약할 수 있는 어떤 구조라고 해야 될지, 아니면 이것을 모을 수 있는 역량이 더 뛰어난 사람이 필요한 것인지 그런 부분들은 좀 고민이 되는 지점인 거 같아요.

⏺ 안동규: 총무님이 문제를 잘 파악하신 것 자체가 우리에게 다행인 것 같아요. 총무가 문제를 모르면 정말 우리 갈 길이 없는데, 정말 잘 정리해 주신 거 같습니다. 한 바퀴 돈 다음에 그 이슈를 가지고 갖고 깊이 들어가고자 합니다. 경중 형제님 멀리 있지만 KAC 현재에 대한 이슈를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 김경중: 예, 질문 받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KAC가 나무라면 어떤 상태인가? 나무라면 어떤 토양에서 씨가 뿌려졌으며 얼마큼 뿌리를 내리고 어느 정도 키가 자란 것인가? 세상이라는 환경 속에서, 그리고 독특한 한국의 정치와 분단된 상황 속에서 평화교회를 지향하는 KAC가 생존만 하는 게 아니라 성장하고 성숙하기에는 굉장히 큰 도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면 과제 또한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저도 KAC 있을 때 사람들이 있어야 되는데, 사람들이 왔다가 또 많이 나가더라고요. 그게 참 마음이 안타까웠어요. 지금도 그 여파가 아직까지 우리한테 남아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앞일을 다 알고 가면은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게 한계라서, 당면한 현 상황 속에서 있으면 있는 만큼만 살아내는 것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뿌리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KAC 뿌리는 교회이고 교회 뿌리는 그리스도잖아요? 우리 신앙의 뿌리는 하나님 나라고 하나님 나라의 기초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냥 규모가 작더라도 언제 그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충실하게 사는 수 밖 에 없다는 것이지요. 사실 북미같이 교회가 많은 상태에서는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많고 지원 받기가 좋아요. 하지만 KAC는 교회들 보다 먼저 시작을 하고 (물론 예수촌교회가 있었지만), 교회들이 생겨나기를 바라고 역할을 먼저 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우리가 에너지를 받으면서 자라야 되는데 에너지를 주면서 생존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과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살아내고 작지만 어차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저는 그렇게 믿고 있고요.

평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우리 안에 화해(reconciliation)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절실하게 모든 영역에서 화해가 필요하다라고. 평화 이야기 속에는 화해라는 그런 깊은 주제가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과의 화해, 우리 안에서의 화해. 교회 안에서도 화해, 그런데 이런 화해가 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가끔씩 보는데, 이 화해가 KAC 사역의 중심인 것 같아요.

그리고 공동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KAC가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말은 어떻게 든지 목표에서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든지 서로 협력하고 어떻게든지 하나님 나라의 그런 작은 공동체가 될 수 있게끔 갖고 있는 자료를 최선을 다해서 활용을 하는 것이지요. 지금 공동체 개념이 물리적인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 같진 않아요. 전 세계적으로 줌으로 연결된 기술적인 진보를 현재 경험하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KAC가 팬데믹 이후에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물리적인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교육이지요. 옛날에는 유명 강사를 섭외해서 한국으로 모셔 와서 했는데 지금은 원한다면 줌으로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거리와 공간적인 제약이 없어진 거라 이것은 굉장히 큰 교훈이라고 생각을 해요. 옛날에는 KAC 사무실 공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커넥서스를 운영하면서 월세를 한 달 사백 얼마씩 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큰 지출을 몇 년씩 했는데, 지금은 사실 공간이 필요 없어요. 가상 공간에서는 모든 게 다 가능하다고 보고. 교육도 더 활발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팀 프로즈: (1차와 달리 팀은 영어로 이야기했고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하였다, 편집자 주) 20년은 긴 시간입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것이 변했고, 한국 재세례파 운동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변화 관리 (change management) 라고 생각합니다. 변화는 항상 일어납니다. 그동안 한국어로 된 재세례파 책도 많이 출간되었고, KAC를 아시는 분들이 많이 생겼고 한국사회가 평화 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변한 것과 달라진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환경 스캔 (environmental scan) 즉 밖에 무엇이 있는가 파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20년 전에 하나의 현실로 부터 시작했지만 지금은 다른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생각은 네트워킹 또는 협업에 대한 접근 방식입니다. 현재 우리는 너무 많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KAC를 거쳐간 학생들도 있고, 회복적 정의 운동의 인연도 있고, 책, 모임, 교회 등의 네트워크도 있습니다. 그래서 KAC가 더 큰 교회 활동 네트워크나 활동가 네트워크 안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필요로 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가장 자주 받았던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답을 찾는 것이 어려워서 우리는 종종 ‘어떻게’에 갇히곤 합니다. 하지만 내가 찾던 것은 ‘왜’ 였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우리는 ‘왜’ 그 일을 하고 있습니까?

선주 자매는 지난번에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했고, 경중 형제는 교회의 뿌리는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KAC의 뿌리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는 또한 이 뿌리가 선교(Mission)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교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뿌리와 선교를 생각하면 과거와 미래를 바라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선교를 생각할 때 사명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KAC에서 출간한 책, 각종 강연, 여러 관계와 네트워크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경중 형제는 화해를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쌓아온 것 같아요. KAC가 선교단체로 등록되어서인지 이 관계란 선교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선교란 무엇인가요? 나는 그것이 예수촌교회 리더들이 KAC에 대해 가지고 있던 원래의 비전이었던 한국과 한국 교회에 아나뱁티스트를 소개하고 영향을 미치고 변화하는데 도움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런던 메노나이트 센터의 스튜어트 머레이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에도 그들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런던 메노나이트 센터는 영국 교회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지금 그들은 그들의 센터 건물을 팔고 선교단체인 브리지 빌더 (Bridge Builders)와 평화 교육 단체로 나뉘어져서 더 이상 센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교회개척 네트워크인 어반 익스프레션 (Urban Expression)으로 존재합니다. 어반 익스프레션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가치 선언 (Value Statement)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 고백이 아니라 가치 선언문. 그들은 이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 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짧은 선언이 아니고 25가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관계가 회복되고, 단순하게 살고, 매일 그리스도를 따르고, 관계에서 진실하고 정직하며, 원수를 용서하는 것을 담고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공유하고 사람들을 그 가치로 초대하는 것이 더 쉬운 방법입니다. 가치선언은 신앙고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 사역의 일부입니다.

KAC에 일어난 큰 변화 중 하나는 선주 자매가 KAC에서 혼자라는 것입니다. 아까 선주자매가 솔직히 나누어 주셔서 감사했어요. 제가 KAC에 있을 때는 경중 재형형제가 있어서 역량도 많고 은사도 다양했어요. 그래서 세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참여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경중 형제가 졸업한 콘래드 그레이빌 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 교목을 만날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를 둘러 보게 하면서 이 학교는 목사들이 지은 것이 아니고 사업가, 농부와 주부들이 지은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교회 사역에 대한 접근 방식은 학자, 책, 교육자, 목사를 통해서 이지만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평신도, 사업가, 교사, 주부, 농부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 점이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 우리의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신도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재영 형제가 평화사역을 통해서 크리스챤 외에 학부모, 교사, 공무원 등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처럼 선교가 평신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복기: 우리한테 그런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과연 우리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가 어떤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니면 원하게 됐든,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가는 아브라함이 됐든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가 됐든, 바울이 됐든 우리가 정말 지금 하고 있는 일. 부름을 받은 이 일에 대해서 얼마나 기쁘게 순종하고 나아가고 있는가? 그래서 에너지 레벨과 순종여부를 점검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좀 들고요.

KAC가 자료 센터다, 뭐 교회와 어떤 연관성이 있어야 된다. 뭐 이런 건 다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자리매김을 하는 데 있어서 빼놓지 말고 점검해야 될 것은 그 가운데 있어서 나는 어떤 기여를 할 건가?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사실 KAC가 외부로 에너지를 많이 준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자화상도 있지만 외부에서 KAC를 보면 그들이 너무 고마워하는 게 되게 많거든요. KAC가 물론 받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거에 대해서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하는 생각들이 듭니다. 각 사람의 에너지도 체크를 해야 되겠지만, 또 우리 교회가 갖고 있는 에너지, 또 나름대로 네트워크로서 서로 갖고 있는 에너지 등을 이제 같이 체크해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재영: 저희가 KAC 초창기 때부터 계속 고민하던 주제들이 있는데, 그게 지금 한국 교회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영역이었어요. 진짜 방향 설정을 잘 했다라고 봐요. 평화에 대한 이슈도 그렇고요. 목사의 이중직업 이런 것들, 그 다음에 공동체성이 어떤 의미여야 되는가? 병역 거부도 포함해서. 초창기에 여러 가지 논의를 했었습니다. 그 때는 이게 말이 되냐 한국에서 될 수 있는 상황이냐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KAC가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교회가 앞으로 나갈 방향으로서 이런 주제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일반화되고 있는 걸 봅니다. 그래서 KAC가 나름대로 방향 설정이나 제안 같은 방식으로 어떤 기여를 했다고 봐요. 그런 기여에 대해서는 우리가 같이 축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그런 제안을 잘 담을 수 있는 형태로까지 더 갔었으면 더 좋았겠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두 가지가 양립하는 마음이 있어요. 정말 방향 설정을 잘하고 잘 내다 보았다라는 자부심과 동시에 그걸 잘 구현하지 못한 아쉬움. 그런 주제를 우리가 더 잘 구현해 내었으면, 그런 필요가 있을 시기에 적절한 대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 안동규: 여러분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이 공통점일까 계속 고민하면서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를 분석할 때 문제점은 사람이라고 봐요. 문선주 총무가 본인 혼자서 하는 거 같지만 그렇진 않죠. 우리가 했던 아나뱁티스트 네트워크가 어딘지 모르게 누룩같은 느낌을 있어요. 제주도, 논산, 진해, 덕소, 등 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누룩처럼 가고 퍼져 가고 있고 네트워크로 가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 안에 축적은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천이라는 지역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사실 서울에 있으면 더 힘들었을 거예요. 그나마 저나 남상욱 형제나 교회가 KAC 사역에 대해서 직접 또 간접적으로 많이 도와서 여전히 버티고 있지만, 문제 분석을 해봤더니 여전히 사람입니다.

저도 스튜어트 머레이를 만난 적 있었는데 런던 메노나이트 센터는 지금 건물도 없지만 여전히 임팩트가 있는 것은 대단한 거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갈 길이 사람을 집어넣고 구조를 단단하게 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구조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을 하겠는데요. 제자도, 평화, 공동체 이 세가지 영역에서 제자도와 공동체 부분은 각 교단이나 개인이나 100% 동의하죠. 제일 설정하기 힘들면서도 생각들이 다른 게 평화 같아요. 평화라는 것을 한국적 컨텍스트에서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 특히 이제 평화 영역은 재형 형제가 회복적정의 운동하면서 확산 했듯이 복기 형제가 그 역할을 지금 열심히 하고 있어서 굉장히 감사한데 그러면 KAC는 평화운동을 어떻게 가져가야 되느냐? KAC는 평화를 어떻게 끌고 가야 될까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십시다. 제자도 공동체는 우리가 하던 대로 하면 되지만, 평화 부분은 어떻게 가야될지 정확한 로드 맵이 안 되어있는 거 같아요. 전쟁 문제도 그렇고 핵, 평화, 이런 이슈에 대해 각자가 생각하는 바를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남상욱: 평화 이슈에 대해서는 KAC가 선택과 집중을 해야 될 것 같아요. 평화는 굉장히 다양하고 넓습니다. 그래서 KAC가 온갖 거 다 할 수도 없고 또 다른 영역에 평화, 예를 들면 남북간의 평화는 더 잘하는 단체가 더 많이 있어요. KAC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교회와 관련된 교회 안의 평화, 교회 밖의 평화인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 평화는 화해와 용서의 부분일 거고요. 교회 바깥 평화는 구제와 선교로 나타나게 되겠지요. 이러한 4가지 영역을 우리가 조금 더 집중해서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2022년도에 우리가 지금 관심 쓰는 건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교회와 평화, 이 두 가지 이슈를 가지고 컨퍼런스나 리본모임 (KAC가 매달 주최하는 독서 모임, 편집자 주)을 할까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 문선주: 지금 한국교회는 이미 평화에 물들었다고 생각되고 우리가 평화를 배워야 할 곳도 많이 있습니다. 평화교육 연구소도 있고 평화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단체가 많이 있습니다. 이게 KAC가 뿌린 열매일수도 있고 시대적인 요청일 수도 있습니다. 일전에 김성한 MCC 대표님하고 잠깐 이야기 했었을 때 북미에서는 이미 제자도, 공동체, 평화를 뛰어넘어 그 이상의 이야기를 이제 할 때가 되었다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에 저도 동의가 됐습니다. 우리가 제자도 평화 공동체라는 굉장히 소중한 가치를 한국교회에 전했고, 지금은 그 필요에 대해서 한국 교회가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그것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어떤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 다음에 한국 교회 안에서는 평화에 대해 이야기 단체들에 비해 굉장히 뒤쳐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작업들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교단이 다른 경우에는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고 특별히 교회 내부적인 일일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 부분을 저희가 어떻게 공략하고 어떻게 뚫고 들어가야 되는지 궁금합니다. 이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해야 된다 싶습니다.

⏺ 김경중: 저희가 그 2001년도에 시작할 때부터 팀 형제님 말씀하신 것 중에 하나가 제자도는 사랑입니다. 평화는 사랑입니다. 공동체는 사랑입니다 이었어요. 이 말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겨서 웹 사이트에도 올리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말 잘 안 쓰는 거 같아요. 어떤 한 자매가 저한테 그랬거든요. 평화를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사랑은 어디에 있느냐? 그땐 제가 평화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까 거기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많이 폈던 거 같아요. 그런데 평화를 강조하면 할수록 사랑에 대해 이야기 안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평화와 사랑이 서로 다른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평화를 모르는 사람도 없는 거 같고, 교회에서 평화 이야기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고, 정치적으로도 평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데, 방법론에 있어서 어느 노선을 따를 것인가가 매우 다양합니다. 그래서 이 지점이 KAC가 생각해야 될 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다른 단체는 모르겠는데 KAC라면 평화를 이야기할 때 그리스도를 항상 내세워야 된다 라고 생각해요.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평화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안되지요.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야기할 때는, 그것이 우리의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영어로 surrender, 우리가 surrender하지 않으면 평화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우리 안에서 구현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교회와 KAC가 평화를 이야기할 때 그리스도가 가르쳐지고 또 그것이 사랑으로 드러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제 용서도 화해도 자연스레 나올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너무 프로그램 식으로 운용하고, 활동가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차원에서 평화의 한 꼭지를 담당해서는, 그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한테 주신 의무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았으면 소화해서 나눠야 되는 것이고, 그 결과가 평화이지 않습니까? 평화는 사랑의 결과인 것이지요, 사랑의 결과. 그래서 사랑과 평화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까 안동규 형제님 말씀에 공감하는 게 사람이 너무 중요한데 “사람과 사랑” 딱 받침 하나 차이에요. 이거를 어떻게 우리가 품어낼 것인가? 사람과 사랑하는 관계. 여기서 평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팀 프로즈: 한국 교회의 문제 중 하나가 성경의 한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성경은 에이레네 (εἰρήνη)라는 단어를 92회 사용합니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에서 이 단어를 89번 이나 평화 (peace)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 성경을 읽을 때 성경에서 평화를 봅니다. 그러나 한국의 개역 성경책은 92개 중 3번만 평화라는 단어로 번역합니다 (대부분은 평강 또는 평안으로 번역됨, 편집자 주). “εἰρήνη”라는 단어는 구원이라는 단어 이상입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인들이 성경에서 평화를 보지 못하고 낯선 개념으로 볼 수 도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보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는 모르지만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평화는 의사소통에서 시작되고 의사소통은 갈등을 다루는 방법,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방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바울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그리스도가 평화를 이루는 데 중심이 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존경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여러 번 용서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기독교인에게는 그리스도가 평화와 연결되어 있음을 볼 줄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복기: 지금 회복적 정의나 평화에 대한 것들이 한국과 한국교회에 많이 전달이 된 것 같고 되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KAC의 열매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과거와 현재를 보면 양심적 병역 거부는 헌법 재판소에서 대체복무에 대한 부분들도 생겨났고, 회복적 정의는 여러 단체에서 많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교회라든지 어떤 매스 미디어에서도 이제 평화를 대세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통일은 이제는 관심이 없어졌지만 평화에 대해선 굉장히 관심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평화란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단어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매스 미디어에서도 자주 보는 게 남북한 관계에서 그냥 통일 이야기를 안하고, 남북한 평화 프로세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면 과연 우리 KAC 혹은 우리 아나뱁티스트 교회가 어떻게 이 평화를 교회 내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혹은 실천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저는 독일 교회하면은 두 가지의 큰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사람과 기여입니다. 그중 기여에서 특히 사회에 기여 한 것을 생각하면 나치 상황에 있어서 고백교회가 떠오르고요. 그 다음에 서독, 동독이 통일을 할 때 국경선에서 계속 끊임없이 기도했던 독일 교회의 역할이 떠오릅니다. 과연 우리 한국교회는 이런 모델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가 찾아야 되고 사회 속에서 평화를 이야기할 때에 점검해야 될 지점이 이거죠. 정치적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것이 복음적이냐 아니냐,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맞느냐 안 맞느냐를 질문을 하면서 평화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우리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거창한 것이라기 보다는, 지역에서 눈에 보이는 그런 평화를 사람들이 알고 싶어해요. 그래서 로컬 피스 (local peace)라 부르는, 이런 쪽에 대해서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평화를 실천해야 될 건가 이런 질문을 해야 될 것 같고요. 그 다음에 매일의 일상 속에서 에브리데이 피스(everyday peace)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매일의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그런 평화를 실천할 건가 와 같은 질문을 같이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80년대 같은 경우에는 남북 관계에 있어서 기독교 리더들이 목소리를 많이 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기독교의 목소리, 교회의 목소리는 작은데, KAC가 어떻게 이런 부분들을 계속 고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좀 던지고 싶어요. 이런 고민의 지점을 같이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재영: 한국 사회에서 아나뱁티스트 그룹이 제자도, 평화, 공동체 라는 주제를 가지고 기여를 해왔고, 평화에 대한 부분은 담론이 됐던, 실천이 됐던 지금 여기 계신 분들도 많은 기여를 했잖아요? 그런 면에서 KAC가 기여를 많이 했다 하는 것은 저희가 같이 긍정적 평가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고요. 저는 이제 앞으로 인력의 문제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도전 받고 있는 KAC가 평화의 어떤 쪽에 더 기여 할 수 있을까 말씀드리고 싶어요. 방향 설정만이라도 해야 한다면 저는 이제 세 가지 정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기독교 평화주의 인데요, 여기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실천 영역에 있다 보니까 더더욱 그런데 기독교 평화주의 그런 쪽에 자료 센터 역할은 여전히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기독교 평화주의 본질을 소개하고 성경적 정의와 의미를 잘 파악해내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실천 영역과 편안해 보이는 면으로만 갈 것이 아니고 기독교인 누구에게나 자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대상을 정할 때 교회를 대상으로 하고 교회와 평화라고 하는 그 주제로 더 집중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뭐 어떤 평화냐 그 성격은 무엇이냐 처럼 그 내용적 성격을 규명할 때 저는 정의로운 평화 이 부분에 좀 강조점을 뒀으면 좋겠어요. 평화라는 개념이 워낙 많이 쓰이다 보니까 개념이 너무 광범위해지고 있는 면도 있는데 저는 정의로운 평화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이전 KAC 시절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고 정의로운 평화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팀 선교사님도 반전 운동이 아니고 참평 운동이 돼야 된다라고 했었지요. 그런 의미에서의 적극적 평화 개념은 정의를 키워드로 같이 가는 개념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세 가지 정도는, 어떤 형태로든 방향 설정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봅니다.

⏺ 안동규: 이 부분은 잘 정리가 될 거 같아요. 이제는 제자도, 평화, 공동체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고, 평화 버전 2, 제자도 버전 2 공동체 버전 2를 이야기 할 때입니다. 평화 운동의 방향성을 특별히 재형 형제가 잘 언급해 줬고. 또 에이레네 (εἰρήνη)라는 단어에 대한 번역 상의 오류 그리고 우리가 통전적인 에이레네를 잘 해야 함을 팀이 이야기 해주었고 또 남상욱 형제도 교회 안의 평화. 교회와 관련된 평화를 이야기를 했고요. 김경중 형제도 그리스도 중심의 평화 이야기를 해서 그와 관련된 방향성이 잡혀 있는 거 같아요. 교회 중심. 정의로운 평화라는 표현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로는 조금 더 우리가 고민을 하면서 논의를 하고 누군가가 그 단상을 쓰고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한 번 평화와 관련해서 우리들끼리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거지요. 요즘은 우리 복기 형제님 출간하신 플랜 P를 보면서 로컬 피스에 대해서 배웁니다. 작은, 실현 가능한 교회 중심 그렇게 가는 것이 앞으로 20년 우리의 방향으로 설정이 된 거 같아요. 물론 방향에 대한 약간의 변화와 수정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요.

자 이제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될 거에요. 결론 부분인데 가장 KAC한테 필요한 걸 이야기해도 되고 운영(governance) 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되고 한 가지나 두 가지만 딱 지적을 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묶여지면 공통의 의견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결론이 나올 것 같아요.

⏺ 남상욱: 앞서 이야기했지만 교회개혁 운동이 KAC가 나갈 방향 중에 하나다 라고 다시 말씀드립니다. 문선주 자매님이 말씀하신대로 제자도, 공동체, 평화를 넘어서는 담론처럼 KAC가 20세가 되었기 때문에 또 한 가지 변화가 있어야 한다면 바로 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교회개혁과 관련된 많은 단체들과 네트워킹을 더 강화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목소리를 펼쳐주는 그런 마당으로서 KAC가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까 처음에 말씀한 EAR, resource도 있지만 relationship 그거를 더 강화하는 거죠. 옛날에 했던 네트워킹입니다. 사실 우리 인력도 부족하고 어려움도 많지만 이제는 새로운 네트워킹을 통해서 새로운 동력을 얻어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것들이 20주년을 맞이하면서 또 다음 20년을 내다보는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문선주: 아까 사람이란 단어를 쓰셨는데 저도 사람이고 KAC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저 자신을 좀 준비시키고 저 자신을 훈련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3년 동안 KAC에서 있으면서 발견한 것은 제 목소리를 잃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존 일반 교회에서 가지고 있었던 목소리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곳에 왔는데 이곳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되는지에 대한 갈피를 정확하게 잡지 못하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이유로는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하셨던 이야기들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제자도, 공동체, 평화의 영역에서 우리가 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라는 느낌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총무로 있으면서 어떤 말을 해야 되는지 확신이 부족하고 갈피를 계속 잃고 있다는 느낌을 받더라고요. 고로 지금부터 해야 되는 것은 KAC가 무엇을 강하게 이야기해야 되는지를 사람들과 계속 만나면서 찾아내는 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구비하는 것과 더불어서 아나뱁티스트 사람들 자체가 아나뱁티스트의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는 것, 저는 그런 내부적인 일들에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 김경중: 예, 저는 KAC기 당면한 과제도 많고 환경적으로 뒷받침 되지 않아서 사람들도 부족하고 문제가 있지만, 이 모든 일은 어차피 하나님이 하시는 거 같아요. 바울은 씨를 뿌렸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 자라게 하시는 건 하나님이죠. 20년 동안 그래도 해체되지 않고 이렇게 협력해서 조금씩 뭔가를 이루어왔다는 것 자체가 감사해요. 저는 그냥 감사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아나뱁티스트를 뛰어 넘었으면 좋겠어요. 여기 캐나다에 와서 아나뱁티스트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데 정말 민망할 정도로 교회가 퇴보하고 있는 걸 많이 보고 있거든요. 너무 안타까워요. 아나뱁티스트 비전이 거기에 맞게 머물러 있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나뱁티스트를 넘어서는 비욘드 아나뱁티스트(Beyond Anabaptist)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21세기 아나뱁티스트 교회는 도전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지요.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을 생각하면 그 분들이 그렇게까지 순종할 수 밖 에 없던 이유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봤기 때문인 것 같아요. 목숨도 내놓을 정도였는데…. 우리가 닮아가야 될 부분은 바로 그 초기의 비전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초기에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가 굉장히 소중하다고 보고요. 이 분들은 자기들이 아나뱁티스트라고 주장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아나뱁티스트라고 불러주었잖아요. 아나뱁티스트를 따라가야 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좀 안 맞는 것 같고 아나뱁티스트를 뛰어넘어서 무엇을 어디까지 봐야 되는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아까 재영 형제가 이야기한 것처럼, 성경적인 평화를 이야기해야 하고, 정체성과 방향에 있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계속 기도하면서 가야할 것 같아요. 선례를 보고 간다거나,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간다거나, 그런 건 참고할 수 있을 뿐이고, 하루하루 그냥 씨름하는 게 너무도 당연한 것 같아요. 토양이 받쳐 주는 게 없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고 주어진 환경에서 주시는 믿음의 분량대로 살면서 기도 열심히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도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들 보내 달라고. 추수할 건 많은데 일꾼이 없다고 저도 기도 많이 했었지요. 춘천으로 와서는 막 울면서 기도했어요. 지금도 KAC에 이렇게 문선주 자매님 혼자 있는 게 마음이 너무 아픈데 교회가 더 참여할 수 있게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 팀: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KAC와 20년 이상 함께 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우리가 여전히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금 공유하고 있는 지혜와 열정은 더욱 놀랍습니다. 아주 전통적인 문화에서 아나뱁티스트의 가치를 소개하는 것이 힘든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대안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선구자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하고,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점에서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 몇몇은 젊은 시절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대학 시절 같은 젊은 시절에 그리스도에 대한 비전이 시작되었고, 아나뱁티즘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여러분은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KAC가 젊은 세대에 초점을 맞추어 지속적으로 무엇을 집중해야 할 것인지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것을 추구할 때, 그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그들은 어떤 상상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공이 어떤 것인지 묻습니다. 어떻게 생겼나요? 어떤 활동, 어떤 성격, 어떤 관계, 어떤 일을 하라고 하나님이 부르시는지, 성공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방문한 어떤 교회는 교인을 제자로 성장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었고. 그래서 교회와 교회내 그룹이 하는 활동이 많았습니다. 그때 제자도로 가는 길은 어떤 모습일지 목사와 교인들과 함께 상상해보는 것이 도움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함께 상상하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어떤 모습입니까? 당신의 가정에서, 당신의 관계에서, 교회를 위한 공동체로 가는 길은 어떤 모습입니까? 이것은 프로그램도, 커리큘럼도 아니지만, 상상의 씨앗을 심어 하나님의 영이 말씀하시는 것과 연결시켜 그 길이 어떤 모습인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함께 상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 김복기: 제자도, 공동체, 평화를 넘어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우리가 잡아내야 될 것 같아요. 이제 20주년을 맞이했으니까 내년 1년 동안은 그런 어떤 정체성 내지는 신념, 핵심 운영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정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고 싶어요. 저도 이제 팀 형제님 말씀하셨던 것처럼 차세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선교단체들도 다 쇠퇴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세대를, 혹은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다시금 초청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저희 서울 메노나이트 모임, 한 10명 정도 모이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3분이 KAC의 아나뱁티스트 세미나를 통해서 저희 교회와 연결이 됐어요. 한 분은 터키에서 접속이 되고 있어요. 그 분 중에 한 자매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본인은 굉장히 괜찮은 교회를 다녔는데 이제는 그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고 하셨어요. 세상이 이야기하는 가치보다도 너무 많이 뒤떨어져서 들을 수 없고 기도도 되지 않고 하나님이 정말 교회에 계실까 이런 질문까지 나오더라고 했어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아나뱁티스트를 추구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 아나뱁티스트가 16세기 때 지향했던 지점은 그 1세기의 교회였고 우리가 손가락을 볼 것이 아니라 달을 바라보는 것인데 그 1세기에 그들이 믿어왔던 예수 그리스도라는 건 우리가 분명히 알잖아요? 그러면서 이 자매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것을 다시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지금 두 달째 모임을 나오고 있는데 굉장히 행복해 해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회복적 정의가 갖고 있는 그 소통의 능력과 가치들, 사람들을 초청해서 대화할 수 있게 만드는 이런 것들은 우리들이 갖고 있는 굉장한 자산이예요. 평신도에 대한 존중은 큰 자산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우리가 현실적으로 적용을 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춘천에서 회복적 서클 교육 받은 두 분이 원주 IVF 간사인데 캠퍼스에 들어가서 이것을 청년들한테 한 번 해보겠다는 포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아나뱁티스트의 어떤 가치를 통해서 발견한 것을 적용해 보려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추상적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복음에 의해서 영향을 받은 것을 적용해보려는 그 지점들을 잘 찾아냈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이재영: 저는 처음에 20년 후에 KAC가 지금 이런 모습이 될 거라는 것을 사실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양가감정이 다 있어요. 처음 시작했던 첫 스텝의 한 사람으로서 누가 맞고 누가 책임을 져야 되는 거에 대해서는 저도 여전히 한 편으로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10년 이나 20년 내다보고 이야기할 때 그럼 우리가 또 다시 원래 책임과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그건 또 아니란 말이에요. 그렇게 봤을 때 저는 KAC 20년은 본의 아닌 인큐베이터 역할이었다라고 평가해요.

그게 회복적 정의 운동이 됐던, 또 아나뱁티스트 교회가 생겨나는 것이 됐던, 자료가 나오는 것이 됐던, 저는 다 그게 KAC가 기여한 면이라고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그래서 KAC란 단체를 유지하기 위한 목표가 아니라 인큐베이터 그 이상의 역할을 저희가 하자라고 한다면 지금 이 모임에 있는 우리 모두가 어찌보면 KAC라고 볼 수도 있어요. KAC 뿌리로부터 나왔다고 보면 예를 들어서 KAM (Korea Anabaptist Movement)같은 걸로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좀 있어요. 어떤 무브먼트으로서 역할 또는 network로서의 역할로 여기 우리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가 KAC의 성과로 같이 묶여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단체로 어떤 일를 해야 되는 단체로 계속 존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부담스럽고 어렵다면 그 자체를 계속 어떻게 존속해 나갈까 라기보다는 예를 들어 각자 활동들은 하는데 그걸 묶어낼 수 있는 어떤 구심점 역할, 네트워킹 역할 또는 무브먼트로서의 역할 그런 것들을 찾는 거지요. 그러면 오히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성과가 궁극적으로는 한국 아나뱁티스트 무브먼트에서는 한 파트를 맡는 것이 될 것입니다. KAC 관점에서는 한국의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한 열매가 맺히는 것이고 그 열매로서 또 교회가 건강해지는 것에 기여를 하는 것이고,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도 마찬가지고 이런 것들을 더 쉽게 묶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KAC의 미래는 KAM이나 KAN (Korea Anabaptist Network)으로 갈 수도 있다 즉 성격 규정을 새롭게 해보는 것도 저는 또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브레인스토밍 차원에서 드리고 싶습니다.

⏺ 세릴: 저도 KAC가 지금까지 해온 것이 매우 감사합니다. KAC를 통해서 많은 열매가 있는 것 그리고 제가 과거에 갖게 된 경험도 굉장히 감사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기회가 많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정확하게 어떤 추천이나 제안은 아직 없습니다.

⏺ 안동규: 여러분들의 제안이 벽돌 쌓듯이 잘 쌓여지는 것 같아요. 제가 17년동안 이사장하면서, 그 당시엔 센터였죠, 에너지 팍팍 넘치는 팀, 경중 형제, 재형 형제같은 활동가들이 와있기 때문에 센터가 젊음과 열정을 가지고 많은 일을 했어요. KAC가 이제 20살이 되어 돌아보니 많은 인큐베이팅의 역할을 했습니다. 재형 형제가 이야기를 하니까 기억이 나는데 넬슨 크레이블, 스탠리 그린 인지 제임스 크레이블이든지 그들에게 KAC 만들자고 할 때 우리는 인큐베이터지 플랜터가 아니다라고 했었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면서 지금까지 왔던 것이지요.

지금 KAC 뿌리의 뿌리는 교회 회복운동이었죠. 이 뿌리는 예수촌교회와 예수 마음 교회로 이어집니다. KAC가 한국 교회, 한국 기독교 안에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가 이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여전히 교회 개혁은 중요하지요. 제가 아까 첫째 문제를 사람이라고 말씀 드렸지요, 둘째는 이제 영어 단어 G로 시작 하는 G는 거버넌스(governance)와 G 제너레이션(generation)인 것 같습니다. 아까 재형 형제가 Korea Anabaptist Movement을 말씀 하셨는데 Movement가 시간이 가면 Management가 되고 그게 잘못되면 Monument가 돼요. 그런데 우리가 가만 있으면 Movement가 Monument로 갈 수가 있어요. 지금까지 Movement를 잘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KAC가 커넥서스처럼 코리아 아나뱁티스트 커넥터 (connector)아니면 커넥션 (connection)으로 가야되는 것 아닌가 그래도 KAC입니다 그런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거버넌스 이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물론 문선주 총무가 혼자서 열심히 하지만 혼자만 있는 거 아니죠. 남상욱 형제나 저나 또 도와주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이 거버넌스라는 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내적인 구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거버넌스를 완전히 다르게 가야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앞으로 20년은 어떠한 변화를 주어서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거지요. 지금 팀도 캐나다에 멀리 있지만 1년에 3~4번만 참여해주면 충분히 이렇게 커넥션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G 영역을 좀 다르게 가져가야겠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만 참여하면 이게 monument로 가게 되죠. 그러니까 새 제너레이션을 찾아야 합니다. 20년 전의 경중 형제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죠. 20년 전의 팀이 필요하듯이. 그래서 지금 그런 사람이 없는 게 우리의 문제에요. 그래서 젊은 분들을 조금 더 충원해서 제너레이션을 뛰어넘고 또 포함시키는 그런 거버넌스를 가지는게 앞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올 20년이 그렇게 갔으면 좋겠구요.

오늘 여러분들의 말씀 하나 하나가 다 진국입니다. 서로 다 같이 깊이 느꼈을 것 같고요. 잘 정리되면 좋은 우리의 방향성과 결론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에 한 번 조금 정리를 한 걸 갖고 20주년 행사를 마친 다음에 누군가가 준비를 해서 방향성 정립을 위한 모임이 있으면 합니다. 예수촌교회도 1년 동안 열심히 해서 핵심 가치와 신앙고백 (conviction statement)을 만들었거든요? 저희도 새로운 사명선언문을 한번 만들어 보는 것으로 해서 앞으로 나갈 방향을 한 10개 문장, 한 20가지 가치를 만들어서 재정립을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지금 나왔던 이야기를 잘 정리하고 다음에 그걸 발표하면서 서로 같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모임이 20년 후에 사명선언문 로드맵을 만드는 초석이 될 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KAC가 만들어 질 때 우리는 큰 빚을 졌습니다. 이제 외국의 많은 분들, 팀을 포함해서 KAC를 많이 도와주신 분들께 우리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그들에게 좀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봐요. 우리를 방문한 사람들, 우리의 친구들 우리에게 도움 줬던 분들 이런 분들에게 이것을 나누면서 이제 다음 20년을 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끝내야 할 시간입니다. 혹시 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우리 이사장님 한 말씀하시죠.

⏺ 남상욱: 네 최근에 지금 KAC 자료를 모아 정리해 보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KAC가 2001년부터 정말 많은 일들을 벌였구나, 그러면서 우리가 매년 초청했던 분들의 말씀, 사진들을 보면서 굉장히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KAC가 얼마나 한국교회들에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고 그 척박한 토양에서 애써주셨던 초기멤버인 팀, 경중 형제님, 재영 형제님 그리고 세릴 자매님에게 그리고 이사장으로 섬기셨던 안동규 형제님께 큰 감사를 먼저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예수촌교회와 예수마음교회가 얼마나 큰 유익을 얻게 되었는지 이 자리를 통해서 교회를 대표하여 정말 큰 감사를 드립니다. KAC가 했던 일들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돌아보면 KOPI가 생겨나서 회복적정의운동이 더욱 활발해졌고 이 땅에 많은 유익한 일들을 했고요. 그 다음에 KAF와 MCSK가 생겼던 일 등 한국 교계에 많은 일들을 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제 KAC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어요. 우리들이 지금까지 나눠왔던 것처럼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데 여기에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문제, 제너레이션 문제 또한 거버넌스 문제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나가야 될지 지혜를 모아야 될 것입니다. KAC 초창기에 많은 토의를 거치며 아나뱁티스트의 정신인 제자도 공동체 평화의 영역을 정했던 것처럼 20주년을 맞이하면서 2022년 내년에는 이런 토론의 자리를 마련해 새로운 방향과 목표를 정할 것입니다. 이럴 때 적극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요. 오늘 이 모임을 하면서 저 역시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것들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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