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리본모임의 풍경

10월 리본모임에는 캐나다 평화교육가 ‘권세리’자매님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메노나이트로서 자라며 어떻게 평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평화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언어와 연결되게 되었는지 본인의 경험을 나눠주시면서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제 평화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언어를 한가지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는 충동을 느끼신다면 여러분도 평화를 일구는 언어를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 세리자매님의 강의를 요약하였습니다만 원래 의도와 달리 정리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고 즐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권세리 자매의 <평화여정과 평화를 가꾸는 언어> 이야기

저는 2002년 9월에 한국에 도착한 첫 번째 일요일에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에서 춘천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촌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렸는데 그 때의 말씀이나 음식이나 구체적인 기억은 다 잊어버렸지만 그 공간의 따뜻한 환영은 깊이 기억이 납니다.

그 때의 따뜻한 기억을 추억하며 오늘 저는 메노나이트와 평화신학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룹이라 언어, 평화, 메노나이트라는 이 3개의 지점을 같이 연결하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일방적인 강의보다는 질문도 받고 워크샵처럼 강의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언어학습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지시나요?

완벽한 비유는 없지만 우리의 경험을 넣을 수 있어요. 저에게는 강이 서로 만나는 “합류”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합류한 지점을 보면 처음에는 색깔이 다른데 중간 즈음에 가면 거의 물의 출처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색깔이 흐려지면서 새로운 강을 만나게 됩니다.

언어를 배우면 이런 합류의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언어를 가르치면서 발견한 것은 그 언어가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언어는 생존을 위한 도구보다는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평화와 신앙과도 깊숙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언어입니다.

 

제가 이렇게 평화운동을 하게 된 저의 성장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어떻게 메노나이트, 평화, 언어에 대한 초기경험을 시작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메노나이트로서 성장경험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메노나이트하면 한국에서는 특별하지만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전혀 특별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어떤 의미인지 몰랐고, 교회를 다니면서 주일하교, 메노나이트 청소년 캠프, 캐나다 메노나이트 대학교를 갈 때까지도 메노나이트의 역사나 평화신앙을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공동체를 즐겼을 뿐입니다.

교회에 가면 교회어른들이 우리를 다 함께 키워주셨습니다. 부모님이 교회에 안 계셔도 다른 부모님들이 우리가 잘 못 하는 일이 있으면 확실하게 이야기해 주시며 우리를 키워 주셨습니다.

메노나이트 청소년 캠프에서는 참가자나 직원으로 일하면서 더 깊이 있게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캠프에서 갈등도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갈등 후에 더 깊은 우정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방에서 아이들끼리 말다툼으로 인해 서로 싸울 때, 캠프 직원이 들어오셔서 중재자 역할을 하며 서로 이야기를 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갈등이 마무리 되면서 더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 메노나이트 대학은 제가 가고 싶었던 대학은 아닙니다. 안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여름 camp랑 똑같은 곳이야 라고 말해 주어서 그런 공동체에 대한 추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 말 한마디에 캐나다 메노나이트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외할머니는 캐나다 메노나이트 대학교에 가는 것을 말렸습니다.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신앙이 떨어질 수 있다고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 사촌은 평화에 대한 개념이 없으셔서 군대도 갔습니다. 이렇듯, 메노나이트에서 성장했다고 해서 평화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메노나이트가 평화를 이야기를 하지만 폭력적인 역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캐나다 메노나이트들은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땅을 침범했습니다. 그래서 1876년에 정부와 원주민 사이에 treaty가 만들어져서 원주민과 정착민들이 서로 땅을 분리해서 나눠 갖도록 협의가 이루어졌는데 정부는 그 treaty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외할머니가 사는 땅도 원주민에게 분배된 땅이였지만 원주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찾아 다니는 동안 정부가 그 땅이 비어 있다고 판단하고 그 땅을 메노나이트 사람들에게 주어버렸습니다. 그 당시, 그 땅의 의미를 메노나이트 사람들이 몰랐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 메노나이트들에게는 굉장히 복잡한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꼭 평화를 이야기하고 실천하지 않은 …

우리 사촌과 달리 저는 군대를 가지 않고 평화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평화교육을 주일학교에서도 경험했고, 여름 캠프에서도 경험했습니다. 그 곳에서는 직원으로도 있었습니다. 거기서 갈등해결방식도 배우는 기회를 얻었고 이를 통해 평화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대학교에서도 평화학, 평화신학을 들었습니다. 모든 메노나이트가 다 가는 길은 아니지만 저는 평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런 프로그램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KAC에서 Peace village라고 탈북자들과 남한사람들이 함께 영어를 배우는 평화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KAC를 통해 메노나이트를 아주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국말을 배우면서 처음부터 배워야 했던 말이 “이단 아니예요!”라는 말이었습니다. 메노나이트를 설명하기 위해 이 말을 자주 언급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훨씬 더 많이 평화를 배웠습니다. 모든 교회가 평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제가 만난 첫 호스트 가족은 권오서 목사님입니다. 목사님을 통해서 한국문화, 한국교회를 배웠고 인내심을 많이 배웠습니다. 제 한국성이 “권”이 된 것은 권오서 목사님 덕분입니다. 목사님은 항상 저를 우리집 “딸”이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

그리고 한국교회가 말하는 평화와 제가 배운 평화가 다르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교회도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그 의미는 내적인, 영적인 평화였으며, 뭔가 조화로운 상태를 의미하는 평화였고, 대부분은 남과 북의 평화의 개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가 배운 평화는 더 넓고 깊은 평화였습니다.

두 번째 호스트 가족과 살면서 거기에서 아주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만 보면 교회에서 왜 평화를 이야기해야 하는지 계속 도전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논쟁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와의 대화를 통해가 무엇인지 평화신앙이니지, 무엇이 문화인지, 무엇이 평화교육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분과의 만남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2004년에 Connexus(KAC에서 만든 영어 학원)를 시작했습니다.

평화는 언어랑 같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영어교육과 평화교육이 멀지만 저는 언어랑 평화가 같이 가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Eastern Mennonite University에서 평화를 더 배웠습니다. 평화와 갈등은 관심분야의 테두리를 넘어 학문적인 분야로도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양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새로운 지식을 만들 수 있고 평화에 대한 배움의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제는 저의 언어에 의한 삶의 전환의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영어를 모국어 사용합니다. 우리 조부모님은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독일어을 알아들을 수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숨기려고 할 때, 우리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항상 독일어를 우리 앞에서 사용하셨습니다.

실은 우리 가족은 가족의 언어, 가족의 스토리, 문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어머니쪽은 1890년 프러시아에서 캐나다로 오셨는데 병역거부의 문제로 새로운 땅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쪽에서 1920년 대 쯤 캐나다 난민으로 왔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상상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입으셨습니다. 그런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은 채, 다음 세대로 전달됩니다. 영어로 이런 트라우마를 표현하면 부정확하게 전달됩니다. language loss와 트라우마가 함께 왔습니다.

아버지가 7살 때 즈음, 아버지는 어머니를 잃습니다.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의사소통에 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몸으로 표현하십니다. 독일어도 잃어 버리고 영어로는 정확하게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울기만 하게 됩니다.

저는 크리스마스 선물 때문이라도 독일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불어를 더 빨리 배웠습니다. 2-3학년부터 시작해서 대학교까지 공부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퀘벡의 학교와 교환학생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불어를 쓰는 가정에 홈스테이하면서 6개월정도 머물렀습니다.

언어교육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갖게 되었습니다. 불어는 그저 선생님과 교실에서 쓰는 언어였는데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새로운 이해는 큰 영향을 저에게 미쳤습니다. 언어가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창문이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더 많은 언어를 배우기로 작정했습니다.

이모가 중국에서 사역하셨기 때문에 중국어도 공부했습니다. 처음으로 중국 사천을 방문했고 시골에서 여름에 영어회화를 하는 프로그램을 맡았습니다. 중국어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영어를 가르칠 때도 단순히 과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환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어도 배웠습니다.

아침에는 중국어, 점심에는 한국어, 저녁에는 독일어.

오래 언어를 배울수록 정체성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갈등을 배우고, 이렇게 해결하는 것을 배우고 상처주는 것을 배우고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성격과 정체성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내 안에 깊이 언어가 들어왔습니다. 저에 대해 새롭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re-story하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경험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발음에 대한 교육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이 변화되는 경험 말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요즘 원주민 언어를 부활하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생존을 만드는 과정 뿐 아니라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학교에서도 원주민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기 시작했고 라디오에서도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는 채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메노나이트의 관점에서 언어와 평화에 대한 고찰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는 전환된 개인관계를 점을 짚고 싶습니다.

언어가 바뀌면 관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를 잘 하지 못 하는 상사와 영어를 잘 하는 여직원이 영어교실에 들어오면 관계가 바뀌게 됩니다. 평상시 회사에서는 목소리를 크게 내던 상사가 영어교실에서는 여직원의 말을 더 많이 듣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기존의 관계가 바뀌면서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절대로 한국남자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인을 이해하게 되면서 결국 한국남자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힘의 변화가 생기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공동체가 성숙하게 됩니다.

 

둘째는 전환된 의사소통법입니다.

언어에 대한 인식이 바뀝니다. 언어를 배우게 되면 답답한 경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지게 됩니다. 선입관이 중단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정의로운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가 있게 됩니다.

 

셋째로는 평화와 갈등의 전환된 내러티브를 보게 됩니다.

내러티브를 탐색하게 됩니다. 세계관을 확장하게 되고 언어학습으로서의 평화만들기를 고민하게 됩니다.

 

화해를 위한 영어교육에는 관계(relationship), 역량(skills), 내용 (content)을 평화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하게 됩니다.

언어를 통해서 관계를 형성하게 돕습니다. 그리고 이 언어 연습을 하면서 평화와 화해의 역량을 키워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그런 평화와 화해의 내용을 담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방법론(Methodology)에 있어서도 평화를 추구하는 법을 고민하게 되고 전반적인 시스템이 힘의 논리와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 평화와 관계를 추구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다국어전략이 필요합니다. 강이 만나 합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가지 언어만 쓰게 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힘에 의한 논리입니다. 언어를 배우더라도 우리는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언어를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다리 아래의 언어를 배워봅시다.

다른 언어를 쓰면서 우리는 이해의 폭을 넓히며 약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 한국어가 익숙해져서 다른 언어를 또 배우려고 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평화의 길입니다. 언어를 배우며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평화를 실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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