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리본모임정리

조현기자님과 함께한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공동체 강의내용요약

 

이곳에 오니 “예수건물”이 아니라 “예수마음”이 통하는 곳이라 너무 마음에 듭니다. 개인적으로 메노나이트에 마음이 가서 메노나이트에 관련된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몸이 안 좋아서 2-3년 전에 요양 차 1년간 해외 공동체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었고 관심을 더욱 깊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홀로’는 너무 무력한 인간입니다. 침팬지와 인간의 DNA 차이는 1.6%밖에 나지 않습니다. 다만 확연한 다른 점은 침팬지는 태어나면서 뇌의 65%가. 인간의 뇌의 20%만이 완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뇌는 자라면서 계발되고 발달된다는 의미이겠지요.

말은 태어나자마자 10분 후에 발로 툭 치면 두 발로 서서 뛸 수 있고 1년 후에는 수레를 끕니다. 고양이도 1년 키우면 쥐를 잡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1년 키워야 겨우 걷고, 30년을 키워도 요즘 같은 세상은 견적이 안 나옵니다.

사람은 야생에 둔다면 한 입거리 밖에 안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공동체성이 없으면 결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됩니다.

 

50여 년간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를 겪었습니까? 지구상에서 우리 한국처럼 큰 격동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KTX를 타면 그 속도를 체감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속도를 느끼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뇌 속에 그 격동의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6인 이상이 사는 집이 1980년대에는 5집에 하나씩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에는 6인 이상은 1.5%가 되었습니다. 1인 가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요즘 시대는 유희하는 인간을 표방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 유희 이면에 자살, 고독사, 저출산은 왜 함께 등장하는 것일까요?

유독 대한민국만이 자살, 고독사, 저출산이 심한데 그 원인을 3-40년 만에 경험한 격동의 분화에 두고 있습니다.

100배 정도의 경제속도가 1970년에서 2019년까지 이루어져 왔습니다. 1970년이 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지형은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70년 초반 새마을운동이 지붕개량사업을 시작하면서 40년 만에 상상할 수 없는 큰 Gap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세계 1위입니다. 92%가 도시화되었습니다.

1964년 뉴욕 맨하탄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퇴근 후, 아파트를 가는 동안 괴한이 찌른 칼을 맞았습니다. 항거했지만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도망가던 괴한이 다시 돌아와서 그 여성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은 38명이나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러바인 교수팀의 조사(시각 장애인으로 가장하여 도움을 청한 실험)결과에 의하면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 살수록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뜻입니다.

 

해리 할로우의 원숭이 격리실험을 예로 들겠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어린 원숭이를 어미원숭이로부터 격리했습니다. 단, 먹을 것을 충분히 공급해 주었습니다. 어느 정도 자란 다음, 무리 속에 다시 넣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관찰 결과, 어미와 격리된 원숭이는 제대로 된 사회성이 없었기에 무리 속에서 바보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실험에서는 두 개의 모형을 넣어 주었습니다. 하나는 부드러운 천으로 싸인 젖이 나오지 않는 모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부드럽지 않디만 젖이 나오는 모형이였습니다.

원숭이는 부드러운 엄마와 같은 모형에 달라 붙어 하루종일을 보냈고 배가 고파 먹어야 할 때만 부드러운 모형에 달라붙은 채, 입만 젖을 주는 모형에 갖다 되었습니다. 잘 먹지 못 해서 빼빼 말라가면서도 원숭이는 부드러운 엄마 쪽 욕구가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생존의 욕구가 잘 채워지지 않아서 그 욕구를 크게 봅니다. 그 결과, 요즘 세대는 관계회피, 결혼포기, 출산율감소 (0.9%)라는 참담한 현실에 당도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학자들은 고용불안, 남녀불평등, 복지혜택의 부족 등 외적인 이유를 나열합니다. 모두 동의합니다. 그러나 내적인 원인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외적인 이유들이 불충분한 방글라데시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는 높은 출산율이 있지 않나요?

공동체 붕괴, 내적인 트라우마, 내적인 번아웃. 이제는 내적인 것을 일으켜 세워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옛날 우리 윗세대가 살던 시대는 부모님과 대가족을 이루며 마당이나 마을은 사람들이 그저 자연스럽게 모이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시로 몰리면서 맞벌이 부모로 인해 아이들은 오랜 시간 방치되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는 신이고 구원자입니다. 그러나 그 방치된 아이들에게는 신도 없고, 구원자도 없는 것입니다. 내면의 트라우마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자녀들을 친척집에 맡기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들이 주말에 잠시 들렀다. 아이들 몰래 한눈 파는 사이에 도망가듯 일터로 줄행랑치듯 사라집니다. 부모가 말도 하지 않고, 설명 없이 사라지는 일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그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분리공포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상처받은 인간들이며 내면에 통곡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제발전기에 겪었던 방치된 아이들읜 충격은 크나큰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유기당한 세대입니다. 그들에게는 안전기지가 없습니다. 커다란 바다의 돛단배와 같은 인생살이에서 그들은 외부의 시련을 이겨낼 내면의 힘, 안전기지를 확보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애착으로 형성된 안전기지가 평생의 마음 건강을 지배합니다. 그런데 우리시대는 그런 마음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입니다. 위로와 공감이 몹시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불통의 시대입니다. 나만 이렇게 힘든가?

현대인의 가장 큰 고통원인은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 관계를 피하기 위해 ‘혼삶’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상태는 ‘상처받음’의 상태입니다. 상처를 받으면 보통 동굴에서 회복될 때까지 웅크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너무나 오랜 시간 동굴에 머물다가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고독사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자본(기업)은 왜 홀로 살도록 부추길까요?

6명이 한집에 살면 건축가들은 많은 집을 지을 수 없기에 홀로 사는 1인 가족을 부춥니다.

다른 전기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식구들이 함께 살면 그만큼 소비가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질병은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심리적일 뿐 아니라 육체적인 질병도 동반하게 됩니다. 외로움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과 같은 위험성이라고 합니다. 치매도 그만큼 빨리 발생합니다.

 

이렇듯 혼자는 정말 외롭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는 것은 괴롭습니다. 이게 우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접촉을 피하고 ‘접속’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접속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인간 DNA는 접속만으로는 안 됩니다. 반려동물 1천만 시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제 노동도 봉사도 하기 힘들어 그런 일을 로봇에게 맡기는 로봇시대에 당도했습니다.

일본이 우리사회보다 15년이 앞서 있다고 하는데, 지금 일본은 60세 이상의 신규수감자가 3-4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혼자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수감생활을 원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불행한 사람은 인간관계망이 끊어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면, 행복한 사람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인간관계망이 든든히 연결된 사람입니다.

저는 자가면역성질병이 있을 때 민들레 학교 김인수 선생님의 제안으로 태국에 있는 아속공동체에 들어갔습니다. 맨발로 다니고, 관장하고 단식하며 지내다 보니 건강도 좋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도 오로빌공동체도 보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공동체 마을로서, 마더와 오로빌이 세운 공동체입니다.

부르더호프에서는 일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초자라고 봐주지 않았고 다 자기가 맡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학생들을 유수한 대학에 보낸 마운드스쿨이라는 공동체는 다른 학교와 별 다른 점이 없었지만

대걸레를 아이들이 직접 들고 학교를 구석구석 청소한다는 차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야미기시 공동체는 무에서 시작하여 결론을 이끌어 내는 연찬회를 시작한 곳인데 지금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져서, 이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다시 시작한 공동체가 일본의 애즈원 공동체입니다. 이들도 연찬회를 갖고 이를 사이엔즈라고 부르는데 과학적 본질의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입니다. 어머니 도시락 사업으로 생활을 하고 있으며 12년째, 위계나 명령이나 규율이나 상하가 없는 회사를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치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동체에 대해 나눈다면, 공동체의 흐름이 바뀌어서 전환마을형태나, 코하우징의 형태를 갖춘 공동체도 있습니다.

예전의 공동체 형태를 유지하지 못 하는 이유는 집값 상승을 가장 큰 원인으로 뽑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하우징형태를 띈 공동체로 방문한 공동체 중에 가장 밀착형 공동체였던 은혜공동체를 소개합니다. 50여 명이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코하우징형태이고 상담을 전공하신 목사님 내외의 영향으로 핵심멤버들이 대부분 이런 상담에 노하우를 갖고 있어서 서로 상담해 주면서 공동체를 건강하게 이끌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밝은 누리 공동체는 공동체의 가치를 분명하게 공유하고 세우기 위해서 가장 치열하게 공부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파주시 문발동에 공방골목은 전환마을의 특징을 가진 공동체였습니다. 탁구대 하나를 시작으로 하여 여러 다양한 문화활동이나 취미활동이 전개되었고 지금은 치유가 일어나는 장소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남 남한산성 아래 첫마을 논골이라는 공동체는 10평짜리 빌라가 6천가구 모여 있는밀도로 보면 세계 최고의 공동체인데 이 마을에서 자란 윤수인 활동가가 마을에 들어가서 직접 그들의 need를 살핀면서 필요한 활동들을 전개하면서 행복한 공동체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이렇게 함께 살면서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때, 그들이 느끼는 행복지수와 만족감은 혼삶에 익숙해 지고 있는 우리에게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는 PPT를 통하여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기에 지면으로 그 내용을 다 담지 못 함에 대해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 대신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통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는 말씀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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