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동북아시아 화해를 위한 크리스천 포럼’후기

화해의 여정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 동북아시아 화해를 위한 크리스천 포럼(Christian Forum for Reconciliation in Northeast Asia)에 다녀와서

화해의 여정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특별히 국제관계 속에서 빚어진 국가 간의 원한 속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국민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상대방 국가의 국민들에게 원한을 투사한다. 식민지 정책이나 전쟁의 피해자들이 어떻게 전범국가의 국민들을 대해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아무 잘못이 없지만, 가슴 속에 내면화된 상대방 나라의 국민을 만날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국가가 잘못한 일을 개인적으로 잘못했다면서 용서를 구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하는 질문은 쉽지 않다.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지구 위 어느 지역 못지않게 많은 갈등이 있던 동북아시아의 나라들. 대표적인 나라가 북조선, 남한, 중국, 일본이다. 특히 우리는 일본인을 일본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본놈이라 부른다. 그만큼 원한에 사무쳐 있는 게 사실이다. 중국인은 중국 사람이라 부르지 않고 떼놈이라 불러왔다.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불러왔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용어를 함께 바꿀 필요도 있다.

최근 동북아 정세는 심상치 않다. 북핵 문제와 NLL는 양 국가의 뉴스에 끊임없이 오르내릴 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이라는 국제 역학 관계와 구도로 이어지는 뜨거운 감자다. 개성공단 철수, 탈북자의 처우 문제 등은 남북한의 문제만이 아니라, 접경국가인 중국과의 외교관계로까지 그 영역이 넓어진다.

일본 위안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 피해자에서 한국인 7만이 제외되어 있는 사실 등의 이슈는 7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본질적인 내용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채 세월만 흘러가고 있다.

비단 한국 일본과의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중국과 한국, 미국과 이 동북아시아의 나라 관계는 표면에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특별히 누가 무엇을 용서하고 어떤 모습으로 화해를 해야 하는지는 이따금씩 정치적으로 이용될 뿐, 참다운 인류애가 발현되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화해로 나간 적이 없다.

이러한 때에 제3회 동북아시아 화해를 위한 크리스천 포럼 Christian Forum for Reconciliation in Northeast Asia에 참석한 것은 큰 축복이었다.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미국에서 온 55명의 그리스도인들이 5월 23일부터 28일까지 홍콩의 the Divinity School of Chung Chi College 캠퍼스에 모여 함께 예배하고, 토론하고, 화해를 실천하는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은 듀크대학과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가 공동 주최하는 모임으로 매년 각 나라를 순회하며 개최된다. 처음 발기인 모임은 2012년 듀크 대학에서, 그리고 제1회 포럼은 2014년 경기도 가평의 필그림 하우스에서 가졌다. 2015년 나가사키 모임에 이어 올해는 홍콩에서 포럼이 열렸다.

포럼에 처음 참석하였지만,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와 화해를 실현하려는 꿈이 있어서인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첫 날 예배를 시작으로 옛 친구와 새 친구들이 만나 교제를 시작하였고, 둘째 날부터 우리가 무엇을 화해해야 하는지 질문하며, 우리가 처한 상황, 각 나라의 상황 속에서 따로 또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셋째 날 수요일에는 마카오를 둘러보면서 역사와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여정을 함께 걸었다. 특별히 마카오에 처음 선교사로 오셨던 분들이 잠들어 있는 성 앤소니 교회와 인근 공원의 김대건 신부 동상을 방문한 것은 한국 그리스도인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카오는 아시아 선교의 관문으로 우리가 아는 예수회 소속 가톨릭 신부 마테오 리치가 중국어와 한문을 배운 곳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우리 안에 있는 상처와 슬픔을 다룰 것인가를 시편 3, 22, 88편을 통해 함께 슬퍼하며 애통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듀크 대학의 학장이시자 엘렌 데이비스 구약학 교수님의 애통(Lament)에 대한 간단명료한 설명은 우리가 누구에게 어떻게 불평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며 부르짖어야 하는지, 고통과 슬픔 중에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별히 단순한 불평과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며 부르짖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통찰력과 결국 우리의 슬픔을 하나님 앞에서 시로, 노래로, 울부짖음으로 표현하는 것이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닌 예술적 승화가 필요함도 배우게 되었다.

목요일, 금요일에는 보다 더 깊은 관계 속에서 교제하고, 각 나라별 모임을 가지면서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런 면에서 나라별 모임은 많은 유익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모임 이후, 각 나라에서 어떻게 서로 협력할 것인지에 대한 일말의 연결고리를 찾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이 모임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은 매일 아침을 열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예배시간이었다. 예배 음악은 물론 하나님 앞에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부둥켜안고 우는 시간은 지난 역사의 아픔을 하나님 앞에서 슬퍼하고, 애통해 하며, 원수로 존재하는 각 나라의 상황을 그리스도인의 가슴에 품고 화해로 나가도록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것이 아쉬우리만큼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짧았다. 그렇지만 2017년 제주모임을 기약하며 우리는 화해의 사신이 되어 각자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렇게 잘 알고 있던 고린도후서 5:17~19절이 떠오르더니, 지금까지 새로운 화해의 메시지가 되어 머리를 맴돌고 있다. 화해의 여정은 그리스도 안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말인가 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19) 아멘.

KAC 총무 김복기동북아화해포럼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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