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여름 (2011-2012)

2011년 8월-2012년 5월 Placement : Hinkletown Mennonite School, Teacher and Library aide

2012년 6월 Placement : Silver Cliff Ranch, Camp staff

이번 한 해는 나에게 있어서 모두 새로운 경험들뿐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도 처음, 외국에 사는 것도 처음, 모르는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것도 처음, 혼자 여행을 계획하고 가 보는 것도 처음, 전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처음.. 이렇게 처음 뿐인 한 해를 무사히 또한 풍성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올 한 해 동안 하나님은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다. 실제로 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정확하게 어떤 경험들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던 한국에 있었던 사람들, 때로는 소통이 되지 않아서, 때로는 문화가 달라서 부딪힐 때가 있었던 미국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 모두 너무나 고맙고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내가 가장 외롭고 힘들 때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셨던 분은 하나님이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올 한 해 나를 도울 많은 사람들을 보내셨기 때문에 내가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었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과 함께했던 한 해였다.

오리엔테이션
처음 Akron에 도착했던 날, 처음 학교에 간 날을 떠올려보면 정말 까마득한 옛날 일 같다. 처음Philadelphia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였는데 내리기 직전까지 어떻게 MCC Staff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다.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공항에서 나왔을 때 우리를 반기던 사람은 Chris였다. 뭔가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매우 친근한 인상에 바로 안심을 해 버렸고, 그 뒤에 도착한 Yushan, Lanhua (중국 IVEPer들), 그리고 Shenouda (이집트 IVEPer)와 함께 Akron으로 향했고, 도착하고나니 딱 자정이었다. 차 안에서 영어보다는 각자 모국어로 이야기하면서, 서로 말 하는데도 조심스럽게 말하려고 온 신경을 쓰고 있었고, 3시간 후 Akron에 도착했을 때 차 밖으로 나와서 내가 처음 본 것은 MCC Welcoming Place 라는 팻말과 넓은 밤하늘이었다. 그렇게 넓은 밤 하늘은 처음 봤는데 정말 별이 하늘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너무나도 멋진 모습에 앞으로 이런 모습을 매우 보겠구나 하고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넓은 하늘을 보면서 두근거렸던 것이 미국에 온 첫 인상이었는데 그 때 두근거렸던 마음을 확 엎어버린 일이 생겼다. 다음날 아침, 먼저 도착해있던 몇몇 IVPer들이 같이 산책을 나갔다. 브라질, 중국, 한국, 독일, 라오스 등등 일단 누가 어디서 왔는지 외우는 것 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웠고, 서로 영어가 그다지 능숙하지 않아서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문화 차이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마냥 신나서 산책을 나갔는데 처음으로 하는 말은 모두 “사람들이 다 어디있는거야?” 였다. 정말 길거리는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처럼 아주 조용하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라고는 우리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차도 다니지 않아 정말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곳 저곳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즐겁게 지내고, SALTer들과 함께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동안 Akron이 정말 집처럼 느껴졌고, 여기에서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 오리엔테이션이 끝났다. 꼭 이번에 헤어지면 못 볼 사람들처럼 울먹거리는 여자애들도 있었고 헤어지는 게 마냥 아쉬워서 계속 끌어안고만 있기도 했다. 그 때는 이미 문화 차이는 가볍게 건너뛴 후.

첫 번째 호스트 가족 : Hoovers

첫 호스트였던 Hoover 가족이 휴가를 가서 학교 선생님인 Kevin Boll의 집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일단 Kevin의 첫 인상부터 미국인에 대한 선입견이 와장창 무너지는 걸 느꼈다. 금발의 멋있고 사교성 많은 사람을 기대했던 것과는 매우 다르게 나이도 좀 있고, 사교성은 찾아보기 아주 힘든 조용한 성격의 Kevin이 나를 데리러 왔을 때 솔직히 실망도 좀 했고, 어색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Kevin의 부인인 Beth는 한국에서 입양되었었는데 올해 내가 얻은 정말 소중한 인연 중 하나이다. Beth는 그 동안 한국에 대해서 전혀 모르다가 나를 통해서 한국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마지막에 내가 가져간 한복을 주고 오는 그 순간까지 미국 생활 동안 내가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고, 또 함께 시간을 보내면 너무나 즐거운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다. Kevin과 Beth의 아이들 Kaiya와 Cheyton도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정말 동생같이 여기게 되었다.

몇 일 후 Kevin의 집에서 Hoover 가족의 집으로 옮기게 되었을 때 처음 딱 들었던 생각은 ‘그래, 이게 미국인이지!!’ 라는 것이었다. 금발의 약간은 덩치가 큰 Sharon이 정말 호탕하게 나를 반기면서 바로 안아주기부터, 뭔가 이 가족은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호스트 아빠인 Dwayne, 동생들인 Deric과 Dustin. 이 가족들과 함께 정말 잊지 못할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다. 물론 처음에 좀 힘든 점도 있었다. 왜냐하면 이 가족은 호스팅을 많이 해 보았기 때문에 그 경험으로 나를 대하고 또 진짜 가족처럼 대했지만 내 머리 속에는 ‘이 사람들은 내 진짜 가족이 아닌데 왜 이렇게 간섭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남은 반 년도 잘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가족에 대해 써 오라고 했을 때 내 이름까지 써서 누나라고 소개하던 Deric, 학교 갔다 와서 방문을 열면 내 침대에 누워 있거나 때론 장난감 뱀, 벌레를 침대에 넣어와서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막냉이 Dustin. 다음 호스트 가족으로 옮겼을 때도 가장 많이 보고 싶었던 건 Dustin이었다.

밤마다 Sharon과 Walmart로, Goodwill로 또는 Target이나 Thrift Shop으로 쇼핑을 갔던 건 정말 즐거웠다. 그 덕분에 원래는 쇼핑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나도 쇼핑이란 취미를 가지게 될 정도였으니까. 내가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맛있는 걸 사먹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Sharon이라 같이 영화관도 가고, 비디오를 빌려 지하실에서 같이 새벽 2시까지 영화를 보기도 했다. 대부분 Sharon이 먼저 잠 들어 내가 깨워야 했지만..
다른 사람이 날 보면서 누구냐고 물어보면 우리 딸이라고 나를 소개했었는데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그렇게 말을 안 해주면 섭섭할 정도였다.

Thanksgiving, Halloween, Christmas가 지나고 두 번째 가족으로 옮기는 시간이 왔다. 떠나기 전 날 나를 위해 깜짝 송별 파티를 해 줬었는데 파티가 다 끝나고 Sharon이랑 마지막 Goodnight을 하면서 서로 우리 어짜피 또 볼 거니까 울지 말자고 했지만 이미 눈시울은 둘 다 붉어져 있었다.

두 번째 호스트 가족 Martins
두 번째 호스트는 Martin 가족이었다. Hoover가족보다 아이들이 2명이 더 많고, 아이들의 나이도 6th grade부터 4살까지 다양했다. 처음에는 나에게 전혀 간섭하지 않는 이 가족이었기 때문에 “이야!!! 드디어 자유다!!!” 라고 했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그 것 때문에 오히려 Hoover 가족이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여자애가 하나 있어서 좀 더 편할 줄 알았는데 딱히 그것도 아니었고, 뭔가 같이 있는 내내 나에게 매우 친절하지만 나는 가족이 아니라 항상 손님인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Martin 가족으로 옮기고 Homesick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가족 역시 매우 좋은 가족이었고, Sherry의 조부모님이 정말 Old Order Menninite였던 덕분에 Mennonite 문화를 보고 경험할 수도 있어서 좋았다.

학교 동료들
당연히 호스트 가족들과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나를 지탱해 주었던 사람들은 학교 동료 선생님들과 다른 IVEPer 친구들이었다. 특히 같이 일했던 사서 Lori나 Pre-K 선생님 Phyllis, 3학년 담임Cheryl, 음악 선생님인 또 다른 Cheryl 등등 많은 사람들이 나를 챙겨주고 신경 써 주고, 북돋아 주면서 내가 다시 활기를 얻을 수 있게 도와줬다. 가끔 한국말이 쓰고 싶거나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 나를 조용하게 도와준 분은Rika였다. Rika는 일본 분인데 대학생 때 한국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한국말도 잘 하시고 한국 음식도 만들 줄 알았다. 나 역시 일본어를 연습하고 싶기도 해서 가끔씩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얘기를 했는데 그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었다.

IVEPer
IVEPer 친구들 중에서는 Yushan과 Sotheavy, Wendy, 그리고 Tiktok 정도가 아마 나랑 이야기를 많이 한 친구들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들과 안 친했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속에 있는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고 했던 친구들이고 특히Sotheavy는 ‘캄보디아 큰언니’라고 내가 부를 정도로 정말 내 고민 상담도 많이 들어주고 조언도 많이 해 주었다.

IVEP EC(IVEP East Coast)가 모이는 시간은 항상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 같이 모여서 때로는 미국인들의 뒷담화를 하기도 하고, 재밌었던 이야기나 슬펐던 이야기, 화가 났던 이야기, 외로웠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서로 위로도 되고 ‘난 혼자가 아니다’ 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EC 코디네이터인 Kim은 내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코디네이터인 것 같다. Kim을 처음 본 건 IVEP 60주년 기념 비디오에서였는데 그 때 당시 난 Kim이 전IVEPer라고 생각했었고, 그런 Kim을 코디네이터라고 소개 받았을 때 깜짝 놀랬었다. Kim과 일 년 동안 정말 가까운 관계로 지냈고, 지금도 Kim에게 내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하고 싶은 마음이다.

첫 번째 Assignment : Hinkletown Mennonite School
내가 일했던 곳은 Ephrata에 있는 Hinkletown Mennonite School이라는 곳이었다. 나는 그 곳에서 Pre-k aide와 Library aide였고, 오후에는 각 학년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에 대해서 수업을 했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해 나도 모르던 사실이 정말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또 더 많이 알아가게 되었다. 그 수업 중 아이들의 관심을 가장 끌던 것은 명절에 관해 설명하는 시간, 정확히 말하자면 명절에 관해 설명을 하면서 내가 한복을 꺼내는 시간이었다. 분명히 여자 한복이라고 말하는 데도 불구하고 여자, 남자 안 가리고 얼마나 다들 입어보고 싶어하는지, 몇 일에 나눠서 매 수업 끝나기 10분 전에 시간을 따로 주어야 했을 정도였다. 또 관심을 끌던 것 하나는 음식이었다. 음식 중 특히 산낙지의 이야기를 할 때면 질문이란 걸 기대할 수 없었던 8학년마저도 손이 번쩍번쩍 올라가서 질문을 할 정도였다.

Pre-K에서 27명의 아이들(월수 10명, 화목 10명, 화목 오후 7명)과 보내는 시간은 가끔씩은 힘들기도 했지만 너무나 즐거웠다. 학기 마지막 날 아이들의 사진으로 만든 비디오를 보면서 울 뻔한 걸 꾹 참느라 정말 애썼다. 하나 하나가 모두 기억에 남고 또 말썽부리던 아이들마저도 너무 보고 싶은 천사 같은 아이들이었다.

인상 깊었던 기억
올 해 내가 가장 많이 했던 건 아마 짐싸기와 짐풀기, 그리고 발표가 아닐까 싶다. 특히 막판 3-5월에는 거의 매 주말마다 발표 부탁이 들어와서 짐을 싸고 어딘가에 가서 자고 다음날 교회나 단체에 가서 발표를 해야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발표 내용은 주로 한국에 관해서와 IVEP 경험에 대해서로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분위기나 발표하는 곳의 규모에 따라 긴장이 되기도 하고 괜찮기도 했다. 물론 처음에는 엄청 떨어서 Hoover가족의 교회에서 발표를 해달라고 부탁 받았을 때는 강단에 올라가서 가족 사진을 보자마자 울어버리기도 했지만 이 것도 하다 보니 긴장감이 풀려서 나중에는 하기 직전까지 좀 조마조마하지 막상 하기 시작하면 신나서 하고 싶은 대로 발표를 하고 내려오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200명의 Amish들 앞에서 발표를 한 일이었는데 그 때 역시 반응이 딱히 없던 Amish의 관심을 한 번에 사로잡은 것은 산낙지였다. 산낙지가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사람들의 반응을 휘어잡을 수 있었을까 싶다. 사실 그 때도 나는 50명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중에 그게 200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오히려 그 때 50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발표를 많이 하다 보니 덤으로 얻게 된 것은 자신감!! 내가 영어가 그 사람들보다 딸리는 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고 또 질문해주고 관심 가져준다는 것, 그리고 처음에 Hoover가족들의 교회에서 발표를 했을 때 내가 울어버린 순간 Sharon이 나를 안아주고 또 다른 사람들도 다 감싸주었던 일은 나에게 정말 큰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아, 내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해 주는구나’, ‘내가 말하는 것을 관심 있게 들어주려고 하는구나.’ 이런 생각들은 내가 더 자신 있게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수업을 하니 더 재미있게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 아빠한테 전화를 할 때도 그렇고, 다른 IVEPer 친구들이 보면서도 “너 되게 달라진 것 같아.”, “너 매우 당당해 진 것 같아” 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당연히 나 자신을 예전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감도 많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Assignment : Silver Cliff Ranch
학기가 끝나고 Camp에서 있었던 일들 역시 매우 새로운 경험들이었지만 정말 재미있는 일들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던 서빙 일이나 계산대 일을 정말 원 없이 해 본 시간이었다. 그 곳에서는 미국 십대들과 일을 하게 되었는데 Pennsylvania와는 완전 다른 Colorado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높은 산과 바위들, 항상 등산 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밑에 있는 계곡으로 가서 마음껏 소리치기도 했는데 특히 다른IVEPer들과 함께여서 더욱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행의 추억
또 올 한 해 내가 새롭게 경험한 것이 있다면 혼자 여행하는 것!! 사실 이건 정말 내가 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일 중에 하나였다. 대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도 혼자 일본 여행 갈 계획을 다 세웠다가 엄마의 반대로 무산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이번이 처음으로 가는 여행이었다.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동안 DC를 가기로 결정을 하고 이미 한 달 전부터 DC에 관련된 자료를 싹 다 모으면서 계획을 짜고, 숙소를 예약하면서 내 마음은 이미 들 떠 있었다. 한가지 정말 다행인 것은 내가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 NYC에 갔을 때도 혼자 알아서 잘 돌아다니면서 지냈지만 불편한 점은 사진 찍기가 불편하다는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DC에 있는 Air and Space 박물관은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 나오는 장소로 내가 꼭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기대를 하면서 계획을 짜고 아침 일찍 호스트 아빠가 태워주는 차를 타고 기차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Philadelphia를 갔다. DC와 Philadelphia를 둘 다 돌아볼 욕심으로 버스 시간을 늦게 잡았지만 막상 가니까 짐이 무거워서 그렇게 막 돌아다니기가 힘들었다. 긴 줄에 서서 기다려서 본 Liberty Bell은 생각했던 것 보다 작아서 실망스러웠고, 가고 싶었던 Rodin 박물관은 내부 수리중이라 12년 8월까지 휴관이었고.. 그래도 이 곳 저 곳을 보면서 버스를 기다려 (그 버스도 사실 1시간 반을 늦게 왔다.) DC에 도착하게 되었다. 한인민박을 찾아서 예약을 했었는데 아주머니께서 매우 쌈박하신 분이셨다. 이제는 낯선 침대에서 자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고, 다음날 여행을 위해 잠을 잤는데 이게 왠 일, 그 다음 날부터 비가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딱 한 번 잡은 이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그 와중에 비를 맞으면서 여기 저기 뛰어다니며 보고 싶었던 박물관은 결국 다 가본 바쁜 여행이었다. 하지만 원래 여행을 하면 그렇듯이 또 가고 싶은 마음만 잔뜩 생기게 된 여행이기도 했다. 특히 내가 원래 기대하고 있었던 Air and Space 박물관은 재미가 없어서 실망이 컸고, 딱히 생각하지 않고 있던 National Gallery와 사랑에 빠져서 그 다음에 DC에 가도 National Gallery에서 있는 시간의 반은 보내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반복하게 되었다. 또한 National Gallery 때문에DC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면서 유학의 꿈을 불태우기도 했다. 꼭 George Washington 대학에 가서 National Gallery의 죽순이가 되겠노라고…. 또한 정말 보고 싶었던 Lincoln Memorial의 뒤로 보는 해돋이와 석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있었다. East Coast에 있었던 덕분에 그 근처 NYC, Baltimore, DC, Philadelphia는 원 없이..라고 할 수야 없겠지만 정말 많이 가보았다. 하지만 가도 가도 또 가고 싶고 봐도 봐도 볼 게 더 있는 게 여행이라고, 아직도 내가 가서 봐야 하는 목록은 아주 길다.

일 년을 돌아보며
일 년을 돌아보고 한 마디로 정리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라는 질문에 내가 적은 대답은 ‘Awesome, Amazing, Adventure’ 였다. 정말 매 순간 순간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고, 새로운 것 투성이였지만 그를 통해서 나의 생각이 넓어지고, 세계관이 넓어졌다. 그 동안 기껏해야 한국 안에서의 일만 생각하던 내 사고가 이제는 다른 나라에까지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또한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이제는 그냥 남의 나라가 아니라 내 친구의 나라의 이야기로 듣게 되었고, 서로 다름에 대해서도 인정할 줄 알게 되었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것은 그 동안도 많이 들어왔고,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 것은 정말 몸 소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올 한 해의 경험이었다. 또한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셨던 것이 얼마나 좋은 길이었는지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놀랍고 아주 좋은 모험이었다.

앞으로의 계획
IVEP에 참여하고 난 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가고 싶은 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또 그 동안은 많이 이 곳 저 곳을 헤매고 있었다면 이제는 좀 더 뚜렷하게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이름은 아직이지만 다른 문화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끄는 일을 하고 싶다. 그 것이 MCC에 돌아가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단체에서 일을 하게 될 수 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은 열심히 주어진 상황 속에서 대학 생활을 활용하면서 나 자신을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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