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송주 (2008-2009)

 

지난 1년간 IVEPer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크나큰 특권이었습니다.

24개국에서 온 63명의 친구들과 하나 되며 저의 지경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고바쁜 환경 속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자라온 환경과는 판이하게 다른 아미쉬 마을에서의 생활은 여유로과 풍요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시간들은 제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고 부족한 영어였지만 저의 마음을 나누며 누렸던 교제들과 만남은 앞으로 제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마음의 고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는 제가 받았던 섬김과 축복들을 정리하며 저를 선한 길로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Work
저는 미국 북동부 오하이오주 Kidon이란 인구 1000명 정도 되는 작은 마을의Central Christian School에서 음악교사로 섬겼습니다. 이 학교는 메노나이트 사립학교로서 음악교육을 매우 중시에 300명 정도 되는 정원의 학교에 4명의 음악선생님들이 계시고 전교생은 모두 음악수업에 매일 참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졸업할 때면 전교생이 한 가지 이상 악기와 수준급 합창실력을 갖게 됩니다. 저는 오케스트라 수업과 음악이론 (저학년) 또 고등학교 합창단에서 반주자로 활동했고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이나 합창대회 또 연례행사인 뮤지컬, 콘서트 등에 참석하며 교내외로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특별히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가 매우 수평적이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으로 하나된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매주 화요일은 5명씩 그룹을 지어 교직원 기도모임을 가졌는데 저의 그룹은 선생님3분, 비서, 주방요리사로 이루어진 그룹이었습니다. 꼭 선생님에 국한 된 기도모임이 아니라는 것에 인상을 받았고 저도 이 시간을 통하여 어려움과 기쁨을 나눔으로서 위로받고 힘을 얻곤 했는데 5개월쯤인가… 저에게도 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향수병이 찾아왔습니다. 식욕도 잃고 불면증에 시달릴 때 기도모임을 통해 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야기가 전해지고 전해져 모든 교직원이 저를 볼 때마다 안아주며 집으로 초대해주고 마침 그 주에 있었던 고등학교콘서트에서 저의 생일을 어떻게 알고 깜짝이벤트로 콘서트가 끝난 후에 모든 불이 꺼지고 “Happy Birthday to you~~”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이런 사랑 속에서 전 조금씩 다시 웃음을 찾을 수 있었고 이렇게 공동체 일원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돌봐주고 보듬어 준 성숙한 공동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Host Family
저는 6개월씩 다른 호스트 가족과 함께 생활했습니다.첫 번째는 50대의 학교 여선생님이셨는데 남편과 2년 전에 사별하시고 자녀들은 이미 출가하여 애완 고양이와 강아지와 사는 분이셨습니다. 전형적인 미국인 답게 200kg에 육박하는 몸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 2번씩 꼭 walmart에 가서 약을 받아와야했지만 냉동식품을 저녁으로 먹는 등…특별히 건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않아 다른 문화에는 관심이 없어 보여 대화소재나 의사소통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했던 집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산책하며 저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랜 자취생활로 혼자만의 생활이 익숙했는데 두 번째 호스트집으로 가기 중간단계였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호스트가족은 전통적인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자란 스티브, 리사 그리고 2명의 딸 로이나, 에마(12살,10살) 이렇게4가족이 단란하게 살고 있는 전형적인 가족이었습니다. 조용하고 외로웠던 첫 번째집과는 다르게 매일 저녁마다 새로운 요리가 차려졌고 토요일 밤이면 같이 영화를 보고 카드게임을 하며 디저트를 먹는 생활은 저에게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또 특별히 두 분은 20년전에 SALTer로 타지 생활 경험이 있으셔서 IVEPer호스트를 4년째 계속하시며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굉장히 높으셔서 대화하는 내내 저는 항상 신이 나곤 했습니다. 매주 수요일은 한국요리를 하는 날이었고 제가 불고기,잡채, 유부초밥등을 만들면 다들 맛있게 먹었고 이 후에 옆집에 가서도 출장요리를 하는 등..저의 요리는 매우 인기가 좋았습니다. 이 밖에도 주일 오후면 자전거를 같이 타러간다거나 서울에서 온 저를 위해 가끔씩은 주변의 대도시인 columbus 나cleveland에가 시내구경을 하며 가족중심인 두 번째 가정에서 저는 안정을 찾아갔고 저에게 미래 가족상을 그려보게 할 만큼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꼭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Mennonites
제가 살았던 곳은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 아미쉬 마을이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가정은 아미쉬가 아니었지만 이웃들은 모두 아미쉬었기에 환경은 거의 흡사했습니다. 인터넷환경은 전무했고 쇼핑을 갈 때에도 1시간 정도 달려야 Walmart가 나오기 때문에 주로 식료품은 주변 아미쉬 이웃의 집에서 해결하곤 했는데 가끔 전화를 빌리러 저희 집에 올 때 딸기나 계란을 전화비로 가져오기 때문에 특별히 장을 봐야 할 때가 없었고 <Fair trade>를 강조하기 때문에 되도록 대형마트를 가지 않고 조금 비싸더라도 지역마트를 이용하려고 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한 달에 2번씩 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은 교회에 보여 퀼트나 이불을 만들고 그것을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Annual Sale>에 팔고 그 수익금으로 제 3국에 구호물품을 보내거나 제가 참여한 IVEP 프로그램을 후원하기도 합니다. 제자도, 평화, 섬김 이 세 가지를 모토로 하는 메노나이트의 정신을 보고 느끼며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던 1년인 것 같습니다.

서면의 한계로 다 나누지 못하지만 목요일마다 했던 바이블 스터디와 여러교회를 방문하며 연주했던 시간들, 또 Mennonite Convention에 워십 밴드로 참여했던 소중한 경험등이나 가까이 있던 IVEPer를 방문해(시카고, 뉴욕) 여행하고 또 캐나다 미드,엔드 컨퍼런스에서 소중한 추억을 남겼던 시간들…. 낯선 곳의 1년이란 시간의 속도는 한국의 시간의 속도와 달랐습니다.이방인으로써 항상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고 조심스럽고 긴장됐던 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까지 당연한 줄 알고 받았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주변사람들에게 대한 감사의 마음도 새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해보니 기대한 것 그 이상으로 채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허락하신 소중한 시간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제가 받은 섬김을 기억하며 앞으로 섬김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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