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화 (2008-2009)

 

귀국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선명한 지난 1년의 기억은 기대하지 못했었던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주변에서 기도해주시고 격려해 주신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과, 매 순간 순간을 제게 꼭 필요한 곳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자비였음을 고백하며 저의 지난 생활을 나누겠습니다. 

저는 6개월 동안, 세 개의 평화단체로부터 갈등 중재 관련 실습도 하고, 홍보물 만드는 일을 제안받고 켄자스의 뉴튼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켄자스’는 ‘오즈의 마법사’의 배경으로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미국내에서는 후덕한 농부들의 인심으로도 유명한 이지요. 미국으로 가기 전, 국내에서는 광우병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한창이었고, 이전부터 교회공동체를 통해 식의주에서 시작되는 생활 영성이 신앙의 기본이라 교육받았던 터라 저는 제 몸과 마음을 잘 단속하는 다짐으로, 채식을 결심하고 떠났습니다. 1주일 넘게 계속된 오리엔테이션 합숙 훈련을 마치고, 켄사스에 도착해보니 도로시가 왜 회오리 바람을 타고 날아갔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켄자스에 뭐 볼 거 있냐고 그런다지만, 형형색색의 오로라빛 노을은 가히 탁월합니다.

아름다운 환경과는 달리 켄사스에서의 생활은 결코 녹록치만은 않았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생기는 문화충격도 상당했고, 난생 처음 보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야하는 것도 긴장되는 일이었습니다. 저의 호스트가족은 4살과 6살짜리 두 꼬마, 그리고 집 채만한 강아지를 포함한, 네 개의 애완동물이 정신없이 뒤엉켜(?) 사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말이라도 통하면 꼬마친구들과 이야기라도 하겠는데,도대체 뭐라고 하는 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답답한 날이 많아지면 괜히 더 주눅이 들곤 하였습니다. 그래도 나의 젊은 호스트엄마는 외국인에게 굉장히 개방적이고, 한국 문화나 음식에 대해서도 존중해주는 친절한 분이셨습니다. 특히 호스트아빠는 매운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차려냈던 저의 한국요리와 김치를 무척 좋아해서, 크림수프같이 안어울리는 음식에까지 김치국물을 들이부어 먹을 정도였지요. 그러나 한국에서 늘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가, 저녁 8시면 소등하는 조용한 시골마을에 와보니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석양을 즐기러 산책을 하거나, 달리기를 하고, 기도와 서예, 성서묵상을 하며 따분함을 달랬습니다. 물론 때때로 달콤한 ‘쿠키’에 중독되어 그 자리에서 한 통을 해치우기도 하고, 혼자 농구를 하거나 도토리묵을 하는 등, 한국에서는 해보지도 않았던 엉뚱한 들을 시도하기도 했답니다.

이런 울적한 생활에 활력을 준 것은 교회 모임과 일터에서 알게 된 분들과의 친밀한 교제였습니다. 제가 일했던 세 곳의 일터는 제게 일만 시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저의 성장에 전폭적 지지를 해주었습니다. 그 덕에 지역센터에서 영어도 공부하고, 대학교에서 개설한 강좌도 듣게 되어 실질적으로 일하는 시간은 얼마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IVEP 참가자들과 달리 제게 매우 과분한 배려를 베풀어주신 저의 담당자, 리비에게 이 자리를 표해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제가 일했던 OVM(Offender Victim Ministries-가해자 피해자 중재센터)은 교도소의 수감자와 일반일들을 1:1로 엮어 교제하게 하고 죄수들의 문화활동도 독려하고 있는 단체였는데, 덕분에 여러 겹의 철창을 통과한 뒤, 미국의 교도소에 들어가 수감자들이 하는 연극을 관람하는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곳은 메노나이트 대학인, 베델대학교 안에 위치한 켄사스 평화연구소(KIPCOR-Kansas Institute for Peace and Conflict Resolution) 였는데, 저는 ‘CPT(Christian Peacemaker Teams)가 탄생하도록 영감을 준 ‘로날드 사이더’와 ‘스쿨 오브 아메리카’로 명성이 대단한 ‘로이’신부님의 특별 강의를 홍보하는 포스터를 만들면서, 때때로 그 분들의 강의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은 갈등중재에 관한 강의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안타까운 것은 그 귀한 교육의 기회를 갖고서도30% 정도밖에 소화하지 못하는 의사소통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집에 돌아와 영어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세 곳 중 마지막 한 곳은, Peace Connection이라는 동네 평화센터 같은 곳인데, 특별히 이 곳의 책임자인 ‘모나’아줌마는 나중에 제가 어머니로 여길 정도로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멘토가 되어주셨고, 저에 대해 아낌없는 애정을 퍼부어주셨습니다.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언어의 한계에서 오는 부끄러움도 잊어버리고, 교회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동네 배구팀에서 배구도 하고, 지역 영어교실에서 만난 남미 친구들과도 즐겁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전쟁세를 거부하는 모임’에 참여하며, 25년간 꾸준히 평화활동을 해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도 깊은 깨달음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밖으로 나도는 바람에 호스트가족에게 소홀해지면서 관계에 어려움이 생기며 마음 고생을 좀 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은 저의 잊지못할 ‘미국 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2학기부터는 CPT(Christian Peacemaker Teams)라는 기독교 평화단체로 일터를 옮겨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IVEP참가자들은 1년 동안 같은 지역에서 인턴생활을 하지만, 메노나이트 교단과도 깊은 연관이 있고, 한국에서 5년넘게 일해온 저의 사역지와 자매 단체이기도 한, CPT의 대표가 직접 메노나이트 중앙회에 요청을 하여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시카고는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미국내에서는 풀뿌리 시민 운동과 활발한 흑인인권운동, 또 서민적 이미지와 독특하고 세련된 문화활동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시카고로 옮기게 되면서, 저는 50년 넘게 도시 공동체로 대안적 삶을 살고 있는 메노나이트 공동체인, ‘리바플레이스 공동체’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리바플레이스’에서의 생활은 제 IVEP 생활의 꽃이라고 할 만큼 너무나도 황홀한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없이,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간에, 모든 소유를 나누며 평등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욕심없는 생활은 무척 감동적이었고, 그들의 환대 또한 그 만큼 특별했습니다. ‘리바’로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철저하게 상업화된 연휴의 이벤트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시끄러운 명절도 소박하게 보내는 반면, 사순절이나 고난주일, 부활절등은 마음껏 지키면서,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였습니다.

동네 도서관에는 저의 영웅이었던 여성 평화활동가 ‘케시켈리’가 강연을 오고, 미시간 호수를 따라 자전거를 타며 시카고 시내를 누비는 것도 엄청난 행복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미시간 호수까지 달렸다가 일몰을 보는 것도 저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매주 화요일 있던 공동체모임과 기도나눔으로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고, 격주 금요일에 있었던 장애인 식사공동체를 통해 얻는 사랑도 감동이었습니다. 한 평생을 바쳐 장애인과 주변의 약자들을 돌봐온 지체들의 사랑은, 모나고 공격적이던 저를 충분히 감싸고 치유할 만큼 깊고 성숙한 것이었습니다. 어려움이 있건, 즐거움이 있건 한국교회 지체들과 인터넷으로 소통하며 함께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나눔을 하였는데, 그 것 역시 1년을 은혜속에 보낼 수 있었던 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지난 1년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연회와 같은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희망을 보게 된 것이 저의 가장 큰 감사의 제목입니다. 앞으로도 지난 1년의 시간이 개인적인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그 분의 계획이었음을 기억하며, 제가 받은 은혜를 잘 누리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제게 이렇게 값진 시간을 허락해주신 한국 아나밥티스트센터분들과 메노나이트 중앙회 스텝들, 그리고 힘들때마다 한 마음으로 기도해준 교회와 사역 공동체 가족들, 가족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나의 이 여행을 물심양면 지원해준 가족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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