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주 (2009-2010)

미국, 필라델피아 Oxford Circle Christian Community Development Association, after-school program coordinator

미국에 간 이유
저는 미국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의 친구들이 있는 가난한 나라들이 미국에 의해서 구조적으로 물질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평화교육에 관한 일들을 하면서 미국에서의 경험이 행여라도 제 시각의 균형을 놓치게 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한국에 많은 삶의 방식이 자본주의와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아왔고 그것이 알게 모르게 제 안에 내면화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거부하고 싶었고 또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 컸었는데 미국에 갔다 오게 되면 미국을 좋아하게 되어 버릴까 그게 걱정이 되었지요. 처음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저는 대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였는데 그 때는 영어를 배우러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4년 이란 시간 동안 저는 많이 변했고 더 이상 미국이라는 나라가 저에게 매력적이지 않게 되었지요. 그 때 마침 먼저 IVEP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가 있는 제가 사는 공동체의 언니로부터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네가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라는 언니의 말은 저의 생각을 새롭게 정리하게 했고 지원 마감일에 가까워 지원서를 내게 되었지요. 미국 가기 전과 갔다 온 다음 저는 또 달라져 있는 것 같습니다. 

다름과 차이에 대한 생각
미국에 다녀와서 내가 지난 1년 간 미국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해왔습니다. 미국이 가진 단점과 한계는 이전부터 알고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실제 그곳에서 확인 하게 된 것들도 있고 또 오해했던 것을 풀게 된 것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그 곳에 간 것은 미국을 제대로 알고 오해와 편견을 풀기 위함이지 잘못을 더 각인시키려 한 것은 아니었지요. 그렇기에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큰 배움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다양성은 눈으로 확인될 정도로 그들의 삶과 터전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물론 시골 지역은 조금 예외지요) 전 세계에서 온 이민자들, 다양한 인종, 종교, 심지어 언어까지. 미디어를 통해 백인과 흑인으로만 여겨져 온 미국이란 나라는 제게 뜻밖에 놀라움과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제 친한 친구들은 아이티,이라크, 자메이카,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들이었지요. 아쉽게도 여전히 소위 말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에서는 백인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도 운명적인 만남처럼 저는 백인임에도 열린 사고와 차별 없는 환대를 해주는 좋은 친구들을,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유색인종의 편견을 뛰어넘고 사회에서 한계로 여겨지는 자신들의 특성들을 더 큰 힘으로 끌어내어 살아가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만남의 장에서 저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문제를 보면서도 그것을 풀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동시에 만났고 또 그 한 구성원으로 있던 저에게 좀 더 유연한 사고와 다양한 생각과 시각에 대해 품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그런 경험으로 인해 저는 한국사회를 다시 돌아보고 또 제 자신을 다시 확인해보게 되었습니다.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차이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가 된다는 것, 다름과 차이를 조율하고 또 합의로 이끄는 연습을 계속해서 해나고 있는 미국인들로부터 앞으로 제가 놓여있게 될 차이로 인한 갈등과 폭력이 존재하는 곳에서 나의 역할에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지요. 정말이지 저의 조금 다른 생각을 저의 미국친구들은 새로운 생각을 여기며 창의적이다 고 했지요. 그런 격려를 받고는 저는 세상의 시각에 의해 강요된 단점들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지요.

호스트 가족과의 추억
저를 가족으로 초대해준 앤은 30대 초반의 3살, 5살 남자 아이 둘을 둔 엄마입니다. 2년 전 남편이 병으로 죽고는 두 아이들을 혼자 돌보며 살고 있지요. 음악선생님이고 교회에서 찬양리더인데 음악에도 소질이 있지만 다방면에 관심도 많고 책도 많이 읽고 해서 제가 이야기를 꺼낼 때 마다 흥미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지요. 앤이 아이들 돌보고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공부하고 집안일 하느라 바빠서 이야기할 시간이 많지 않았지요. 계속 일상을 지켜보다 결국 내가 앤과 친해지는 일은 아이들과 친해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아이들의 놀이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말도 안 통할 때도 많고 계속 똑 같은 놀이만 반복해야 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놀고 있다 보면 놀랍게도 복잡하고 외롭던 감정들이 정리가 되고 아이들에게 있어 제 존재감은 커져갔지요. 나중에는 아이들이 제가 안보이면 늘 정주가 어디 있냐고 물어봤다고 하더군요. 아빠를 너무 어렸을 때 잃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집에서 엄마와 살다가 외국에서 온 까만머리의 이모뻘 되는 제가 살게 된 건, 지금 돌아보면 그 아이들에게 커서 꽤 흥미 있는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이 되네요. 아주 많은 걸 함께 했습니다. 거의 일상을 함께 보냈다고 할 수 있지요. 자전거타기, 아이스크림 사먹기, 어린이박물관 가기, 운동하기,술래잡기 하기, 한국노래 함께 배우기, 책읽기 등등..

아주 감동적이었던 건, 제가 떠나는 날이 가까워 가자 앤과 아이들이 저를 점점 더 가족으로 깊이 느끼게 되었다는 겁니다. 마음으로 그것이 느껴졌지요. 처음엔 내가 그저 손님으로 지내다 떠날 줄 알았는데 우리는 정말 가족이 되었습니다.

내가 만났던 아이들
제가 했던 일은 지역커뮤니티센터에서 방과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었지요. 제가 살았던 곳은 필라델피아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으로 이민자들과 저소득층의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부임대주택 바로 옆에 센터가 있어 방과후 학교의 아이들도 대부분 그곳에 왔지요. 흑인들이 많았는데 그래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지요. 아이들은 대부분 편부모 가정이나 조부모 가정의 아이들이었어요. 학교에서 정학처분을 받기도 하고 조금 과격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저에겐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아이들이었지요. 1년 간의 시간 동안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누구보다도 나를 찾아주고 나를 보듬어 준 그 아이들이 없었다면 낯선 이방인으로 그 곳에서 안정감을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가진 힘은 그래서 커다란가 봅니다. 방과후 학교에서 아이들이 저를 찾기 시작하자 그곳에 있던 선생님과 단체 간사님들도 저에게 큰 신뢰를 가져주셨지요. 다른 여느 아이들처럼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티비의 폭력적인 내용에 노출되고 주변의 깨어진 관계들 속에서 동시에 사회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자라는 그 아이들의 미래가 부디 부디 희망적이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제가 갈등해결수업을 했던 공립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꿈을 물었더니 한 명을 빼고 모든 아이들이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가난과 소외를 경험한 아이들이 자신감을 찾고 당당히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돈이 되는 지금 이 시대, 사회가 원망스러웠지요.

평화운동
미국에 가기 전에 하던 일이 평화활동과 관련되어서 인지 미국에 있는 동안 가능하면 많은 평화활동 단체나 공동체들을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인상적이었고 또 감동적인 곳들이 여러 곳 있었는데 제가 방문했던 곳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Catholic workers, Jonah House(Washington D.C/Baltimore), Pendlehill, Shalom House, The Simple way, Circle Process, Alternative to Violence Project(Philadelphia), Christian Peacemaker Team(Denver), Presbyterian Disaster Assistance(New Orleans), Summer Peace Institute(Harrisburg), Amish Village(Lancaster), Bruderhof(New York) 등 이 외에도 작은 평화시위 대화모임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많은 만남들을 경험하면 무엇보다도 그 분들이 역사를 통해서 그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짧게는 10년에서부터 수십년까지 평화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된 작은 모임이 이제는 역사의 작은 물줄기를 열어 계속 해서 그 길을 만들어 가고 있더군요. 평화에 대한 마음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노령의 나이에도 전쟁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추운 겨울에 거리로 나서는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며 내가 과연 저분들처럼 나이가 들어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젊은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한국에 많지 않는 것 중에 하나라 부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
미국에 다녀와 벌써 세 달이라는 시간이 되어 갑니다. 아직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와서 인사를 드려야지 하고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하며 몸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사람들이 묻습니다. 1년 동안 어떤 것을 배웠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하고요. 단연에 영어가 많이 늘었는지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행히 영어가 많이는 늘지 않았지요. 용기가 부족한 탓에 영어가 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많이 아쉽고 후회가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외려 그것이 잘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영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제가 미국에 간 건 영어를 배우러 간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미국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고 미국을 알고 싶어서 갔으니까요. 이제는 그 배움을 삶으로 살아낼 일만 남았네요. 미국에서 생각하고 생각했던 것들. 후회와 반성 그리고 격려와 동기부여. 가슴과 생각으로 고이 담아왔던 그것들을 이제 제가 있는 이 터전에서 풀어내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보여준 우정과 사랑 그리고 또 미국 속에서 발견한 미국에 대한 안타까움. 그것은 저를 그리고 한국사회를, 세상 속에 두고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 될 것 같습니다. 두고 두고요.

1년 이라는 시간은 길지도 않았고 짧지도 않았습니다. 처를 초대해준 그 크신 그 분의 뜻대로 알맞은 분량으로 채워진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기회를 주시고 미국에 있을 때 살펴봐주신 KAC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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