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경 (2006-2007)

시작하며…

저는 지난 1년간-2006년 8월 부터 2007년 7월 까지- 국제구호개발단체라고 성격을 정의할 만한 MCC(Mennonite Central Committee)의 IVEP(International Volunteer Exchange Program)에 참여하고 돌아 왔습니다. 이 IVEP는 MCC가 약 55년 째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북미를 제외한 전 세계, 즉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여러 나라의 청년들을 초청하여 1년간 북미에서 생활하며 배우도록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새로운 환경과 다양한 사람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직장, 내 자신을 발견하던 시간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가득했던 지난 1년을 감사함으로 되돌아 봅니다. 

 

1. 다른 IVEP참가자들과의 만남

미국에 가기 전 저는 단지 나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는구나” 라고만 생각했습니다그러나 도착한 순간부터 마지막 공항을 떠나 한국으로 오기까지 나는 IVEP 라는 나라에 왔구나” 라고 줄곧 생각했습니다지난 1년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전세계에서 온 다른 IVEPer들을 만났다는 것입니다저는 미국 생활에서는 특별히 Culture Shock을 받지 않았지만 다른 IVEPer들과의 관계 속에서 Culture Shock을 받았습니다그만큼 그 관계가 농도 짙은 소중함이었다는 것입니다제가 참여했을 때는 전 세계 23개 국에서 52명의 참가자들이 왔는데 그만큼 다양했고 다른 면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늘 도전인 만큼 큰 즐거움이었고 창의성과 창조성의 조합이었습니다혹시 미국 생활 중 Host family, Work 등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솔직하게 우리의 상황을 나누고 격려할 수 있는 친구들 역시 바로 이 다른 나라에서 온 IVEPer 들이었습니다처음에는 모두들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서툰 영어로 서로 대화해야 했으므로 내용에 한계도 있었지만 점점 깊은 친구들이 되어 갔습니다.

저희들은 처음 오리엔테이션 때 1주일간 만났고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습니다미국캐나다 전역으로 흩어졌는데 어떤 IVEPer들은 3~5명 정도가 같은 마을에 배치 되기도 했고 어떤 IVEPer들은 혼자 동떨어지게 되기도 했습니다그리고 6개월 뒤 아름다운 눈의 나라 캐나다 중부에서 Mid-Conference 로 다시 모였는데 그때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를 더 나누고 이행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이집트에서 온 한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가 이슬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했습니다라오스에서 온 한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가 불교 승려이며 자신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고 했습니다이렇듯 깊어지는 친구들의 나눔 속에 저는 제 자신또는 우리나를 넘어 내 친구들의 나라인 세계 곳곳을 더욱 간절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또한 이 Mid-Conference때는 지역 메노나이트 교회 성도님들을 초청하여 “International Worship”을 함께 드렸습니다우리 각 참가자들이 대륙별로 전통 의상을 입고 각 나라의 문화에 맞는 예배를 드렸는데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혹은 부유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도 있고 혹은 너무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지만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하나였고 진심으로 동등했고 자랑과 유머가 넘쳤습니다.

이 Mid-Conference 후 우리는 또 다시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가 생활했고 다시 6개월 뒤 마지막 Conference를 위해 모였습니다. 이 마지막 시간 동안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에도 가고 깊은 얘기와 댄스파티 등도 벌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편 지난 우리의 1년을 진지하게 나누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헤어지는 시간들을 아쉬워 하기도 했습니다. 너무도 진한 1년을 함께 보낸 우리들, 그러나 전세계 23개국 에서 온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혹 그렇지 않더라도 기도 중에 우리는 늘 만나게 될 것입니다.

2. Host Family

1 년 동안 가장 중요한 관계 중 하나는 Host Family 와의 시간입니다. 근무 후 저녁의 그 긴긴 시간들, 주말들, 모두 Host family와 보내야 하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대중 교통수단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개인적 이동이 쉽지 않고, 또 시골에 살 경우 한계가 크기 때문에 Host family와 좋은 관계 속에 집에 지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처음 7개월을 12, 14살 두 딸이 있는 가정에서 보냈습니다. 아빠는 목사님이셨고 엄마는 간호사였는데 모두가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제 방은 공주방처럼 아주 예뻤고 뒷 정원이 바로 연결되어 있어 밤 마다 숲 속에서 잠 드는 듯한 큰 행복감을 느꼈습니다.미국 시골의 부유함과 평온함을 한껏 경험한 것입니다. 정말 이 곳의 집 뒷뜰은 조금 과장한다면 우리 나라 공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 속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과 특권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 고등학생 지음 되는 이 두 딸들도 우리나라 청소년과는 정말 다른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이 집에서 공부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숙제를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스트레스 받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큰 얘는 CrossCountry(약 7km 정도의 오래 달리기), 작은 딸은 축구를 특기 생활로 하고 있었는데 종종 주말이면 가족 모두가 딸들의 운동 시합에 다같이 가서 응원하곤 했습니다. 어린 두 딸이지만 이렇게 운동 하고 여유롭게 보내는 만큼 아이들의 몸과 정신이 아주 건강하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등 명절 때는 할아버지 댁에서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고 얘기 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국의 부유함 때문이겠지만 이곳은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아주 젊고 건강했으며 증손자를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호스트패밀리와의 중요한 생활 중 하나가 식탁 교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먹었고 한편 미국 음식이 얼마나 달고 지방 투성인지를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할아버지,할머니 댁에서 초콜렛을 녹여 기존의 과자나 사탕 등을 초콜렛에 다시 입혀 말리고, 비스켓 사이에 penut butter-땅콩버터-를 발라 말리곤 했는데 그냥 먹어도 충분히 단 것을 왜 또 이렇게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항상 크리스마스 때면 온 가족이 모여 이렇게 과자를 만들고 선물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즐거운 가족 모임의 하나인 것이이죠. 아무튼 저는 미국에서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홈메이드 쿠키, 파이, 케잌 등도 많이 먹고 그 지역에서 자란 유기농 야채, 과일 등을 충분히 즐겼습니다.

제 첫번째 호스트 아빠는 목사님이셨기 때문에 아나뱁티스트 관련 세미나 등이 있으면 함께 가서 강의도 듣고 토론도 했으며 , 엄마는 독일에서 왔기 때문에 독일 문화도 함께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아이들이 독일어를 잊어 버리지 않도록 독어, 영어를 함께 썼지만 제가 있을 때는 꼭 저를 위해 영어를 사용해 주었습니다.

약 7개월 후 저는 새로운 호스트 가정으로 옮겼습니다. 이 가정은 처음 지냈던 곳에서 약 15분 떨어진 소도시에 있었습니다. 도시는 시골과 정말 달랐습니다. 지난번 살던 시골이 백인 중산층 마을이었다면 이 곳에는 보다 다양함이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집은 그 도시에도 조금은 유명한 Ann Street, 흑인 지역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그들이 틀어 놓는 음악과 춤 등으로 거리가 시끄럽고 들썩들썩 했습니다.그러나 저의 호스트 엄마는 전혀 편견이 없으셨고 누군가는 위험하다고도 하는 그 길을 내 씩씩하게 걸어 다니며 이웃들과 얘기하고 웃으며 지냈습니다. 저는 이런 호스트 엄마가 너무 좋았고 제가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참 미국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 미국은 결코 백인들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흑인들과 히스패닉, 그리고 아시안계 모두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집은 지난번 살던 시골에서 처럼 집 간 간격이 떨어져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주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습니다. 이 엄마, 아빠는 늘 정원을 온갖 꽃으로 치장했고 시금치, 상추, 허브 등 30여 종의 야채들을 길러 늘 신선한 요리를 먹도록 했습니다. 저는 두번째 가정에서 봄과 여름을 보냈기 때문에 딸기, 체리 등을 따러 농장 등에 가기도 했고 아름다운 도시를 맘컷 여행하며 지냈습니다.또한 이 호스트 아빠는 MCC 남미 본부의 Director였으며 이 가정이 남미의 두 나라에서 10년간 살다 왔기 때문에 그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3. Work

저는 미국에 가기 전 한국에 있을 때에도 국제구호단체에서 일했기 때문에 특별히 MCC에서 일하고 싶었었는데 그 기회가 주어져 참 기뻤습니다. 이것은 정말 큰 축복이었습니다. 저는 MCC 에서도 아주 유명하고 큰 책임을 맡고 있는 Ken Sensenig 저의 Supervisor였던 것은 큰 감사였습니다.Ken  MCC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고 일정이 많았지만 늘 저에게 큰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 주었습니다저의 job title Communication Assistant 였지만 이것 저것 일들이 생길 때마다 staff들을 도왔습니다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한계가 컸지만 staff들은 제가 연관된 일이면 제게 와서 물어보고 꼭 회의에 합석 시키고 계속 책임감 있는 일을 주었기 때문에 한국에 오기 직전에는 점점 할 일들이 많아져 바쁘기도 했습니다저 는 전화 받기, Board Meeting 준비하기, MCC 웹 프로그램에서 후원자 관리 하기우편물 정리하기다른 IVEP들과 모임 정하기자료 찾기 등의 간단한 일을 주로 했으며 supervisor와 함께 여러 교회들아미쉬, Old Order 메노나이트 교회 포함– 방문회의 참석 등을 같이 했습니다 supervisor는 아나뱁티스트 역사와 교회일에 아주 해박했기 때문에 늘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보수적이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전통 메노나이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크리스마스 때에는 MCC를 크게 후원하는 아미쉬 가정에 꽃을 사들고 함께 배달을 나가기도 했습니다전기전화자동차 등을 사용하지 않으며 아주 오래된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한없이 순수하고 맑은 그들의 신앙 생활은 참 도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Lancaster 지역에 살면서 말 타고 달리는 그들을 보는 것 자체가 참 경건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제가 한 일들은 간단한 것이었고 반복된 것이었지만 그 주제가 늘 달랐고 스토리가 있었기에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 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supervisor와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중이었습니다그 분이 차 안에서 제게 온갖 재미있고 유용한 얘기들을 다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Ken은 정말 유머가 넘치고 대화를 잘 이끌어 냈는데 Ken과 찍은 대부분의 사진은 그것을 보여 줍니다즉 그는 사진 찍히는 순간에도 늘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Ken은 제가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 집에 있는 피아노 키보드를 제 방으로 옮겨 주었고 자전거도 주어서 근무 시간에도 언제나 원할 때 bike하면서 아름다운 미국 자연환경을 즐기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MCC 는 한국에서 경험하던 조직 생활과는 아주 달랐습니다직위의 상하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편안하게 농담하고 웃으며 지냈고 개인적 생활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 등이 감동적이었습니다저도 이런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고또 동료들에게 이렇게 대해야 겠다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MCC는 제가 늘 관심 있던 국제구호개발의 전문 기관이었기 때문에 매주 Chapel이나 Tea time, 아주 많은 오리엔테이션 등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회장님 비서실은 제게 아주 closed되어 있는 미팅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까지 했습니다즉 이 단체의 국제개발프로그램 가령, HIV/AIDS,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등 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재무이사회 등 보다 큰 개념 등도 배우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또한 그들이 일하고 있는 평화, Racism, 차별” 등의 이슈를 MCC내에서도 얼마나 적용하려고 노력하는지를 보게 된 것도 큰 감동이었습니다아무래도 북미 메노나이트의 많은 수가 백인 중산층이므로 그들의 역할이 크지만 MCC내에 다양한 인종나이대를 두어 이 조직이 보다 평등하고 역동성 있게 움직여 지도록 이사회가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특 별히 이 MCC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한국에 들어와 약 20년간 Mennonite Vocaational School(메노나이트 직업학교)을 세우고 한국의 고아들을 도왔는데 당시 이 MCC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분들이 지금은 어른이 되어 제가 그 곳에 있을 때 MCC를 방문해 왔습니다이것은 제게 큰 감격이었고 당시 그 곳에서 일하던 분들의 얘기를 듣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헌신된 자원봉사자들이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MCC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이들은 Meat Can, 담요옷 등을 만들었고 멋진 Quilt도 만들어 경매로 팔고 있었습니다이것을 통해 큰 수익을 냈고 이것을 MCC에 기부하고 있었습니다많은 할머니들이 Quilt Room에서 아주 멋진 이불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이것은 경매에서 한장에 2~300만원 정도의 값에 팔리는데 비싼 것은 1천만원 이상의 돈에 팔리기도 합니다저도 몇번 Quilt Room일했는데 이런 멋진 담요는 못 만들었지만 벽걸이를 두개 만들어 경매에서 각 각 30만원 정도에 팔리게 되었습니다.

4. 새로운 나라미국미국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부유한 나라였습니다모든 생활이 편하고 쉬워 보였습니다그러나 점점 이것이 미국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갔습니다미국은 다양한 인종정말 다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백인 뿐 아니라 그들 모두 때문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나라와는 다른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그곳에서 인종차별다인종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느낀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넓은 대륙아름다운 자연환경수많은 관광거리소비도시들시골들모든 것이 매력적이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고 정말 축복 받은 땅임을 또한 큰 책임감 가져야 할 땅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5. 휴가

저에게는 3주간의 휴가가 있었습니다처음에는 그랜드캐년에 가 보겠다고 휴가 계획을 세웠지만 그것이 동부에 있는 저에게는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그래서 1주간은 태국에서 온 IVEP 참가자와 함께 NewOrleans 지역의 허리케인 Katrina 피해복구 MDS(Mennonite Disaster Service)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낮에는 강도 높은 작업페인트칠을 하고 저녁에는 시내에 놀러 나갔는데 이 친구와 아주 돈독해 지는 기간이 되어 감사했고 또 의미 있는 휴가를 보내 기뻤습니다자신들의 휴가를 반납하고 스스로 경비를 내어 20시간을 운전하여 이 곳까지 내려와 봉사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은 참 기쁜 일이었습니다특별히 저와 태국 친구는 이 곳에 갈 때 비행기를 놓쳐 꼬박 하루를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던 악몽 같은 시간이 있었는데이를 통해 이 친구와 더욱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1주는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시카고 코스타에 참석했고 다른 1 주는 워싱턴,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버지니아 등 근교를 다니는데 사용했습니다. 이 동안 미국 Sojouners가 주관한 포럼에도 참석하고 많은 대학들과 유명 관광지 방문, 친구들 방문 등을 했습니다.

마치며다 른 나라에 1년간 있다는 것 이것은, 다른 많은 IVEP 참가자들, 호스트 패밀리, 직장 동료들, 교회 분들이 있었지만 분명 저 혼자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내가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등을 스스로 결정하여 할 수 있었지만 이 곳에서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의존해야 했습니다. ” 저 채 태워 줄 수 있어요? 이것 읽어봐도 되요? 전화 좀 쓸께요? ” 이렇게 모든 것을 물어봐야 했습니다.그러면 저는 늘 물어볼까 말까 한참 고민했고 이런 상황과 제 자신이 싫었습니다. 이것 물어봐도 될까? 차 태워달라고 하면 태워줄까? 싫다고 그러면 어쩌지? 그러나 그들은 늘 저의 부탁에 기꺼이 응해 주었고 혹시 되지 않더라도 늘 긍정적으로 웃으면서 답해서 저의 마음을 녹여 주었습니다. 외국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여 산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경험하면서 그러나 저들이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을 경험하면서 나도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다른 외국인들과 소외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많이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한계가 많았지만 늘 좋은 사람들이 제 주변에서 웃으면서 함께 해 주었고 자신들의 다양한 경험을 나눠 주었고 어떨 때는 속마음 까지 떨어 놓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셨고 늘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지난 1년을 큰 기쁨과 감사로 그리고 다짐으로 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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