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란 – 아나뱁티스트 화해의 여정

배경

1980년 독일의 루터란 교회는 옥스버그 신앙고백 채택(Augsburg Confession, 1530년) 450주년을 기념하여 전세계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이를 초교파적으로 축하하기 위해 메노나이트 교회의 지도자들도 초청했다. 그런데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 신자들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루터란을 비롯한 국가 교회로부터 수많은 탄압과 박해를 받은 장본인들이다. 그 때 루터란 교회의 경우 아나뱁티스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 탄압을 정당화하는 결정적인 문서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옥스버그 신앙고백(Augsburg Confession)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루터란이 메노나이트를 초청했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아닐 수 없었다. 아마도 루터란 교회는 메노나이트를 초청하면서 옥스버그 신앙고백 안에 아나뱁티스트를 이단으로 정죄한 죄목이 실려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나뱁티스트 신앙의 후예인 메노나이트 교회를 그런 자리에 초청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메노나이트가 자기 선조들을 정죄했던 문서를 기념하는 자리에 가서 축하할 수 있겠는가?

그 후 메노나이트 세계 협의회(Mennonite World Conference)는 루터란 세계 연맹(Lutheran World Federation)을 상대로 옥스버그 신앙고백에 실린 아나뱁티스트를 정죄한 문항들을 되짚어 보고 그것이 과연 정당했는지에 대한 신학적 논의의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메노나이트 교회(MWC)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루터란 교회(LWF)는 옥스버그 신앙고백이 담고 있는 아나뱁티스트와 관련된 모든 조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나뱁티스트 신자들이 종교개혁 이후 겪었던 했던 고난의 역사에 동참하고 그들의 상처 입은 기억을 치유하며 두 교단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 이 문제를 루터란 교단의 최상위 그룹에서부터 심도 있게 논의하기로 결정하였다. 다음은 1980년 7월 11일 루터란 세계 연맹에서 발표한 선언문의 일부다.
“우리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아나뱁티스트 신자들에 대한 탄압과 박해를 합법적으로 성문화했던 특정 조항들이 루터란 교회가 (1530년) 채택했던 옥스버그 신앙고백 문서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를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당시의 아나뱁티스트를 정죄했던 죄목들이 오늘날 더 이상 (아나뱁티스트 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음을 인정합니다. 비록 두 종파간의 교리적인 차이점들이 아직까지 남아있긴 하지만 우리는 이것 조차도 함께 극복할 수 있음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자유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며 루터란 교회가 물려받은 공동의 유산을 축하하는 다른 모든 멤버 교회들을 감사와 인내의 마음으로 섬기고자 합니다.”
1980년 7월 11일, 루터란 세계 연맹 (Lutheran World Federation)

 

루터란 교회(LWF)와 메노나이트 교회(MWC)가 취한 용서와 화해의 움직임은 두 교단을 대표하는 학자들의 공동 조사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논의는 프랑스(1981-1984), 독일(1989-1992), 미국(2001-2004)에서도 아주 광범위하면서도 심도 있게 이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화해의 물결은 드디어 2010년 7월 22일 독일, 슈트트가르트에서 열린 제 11차 루터란 총회에서 놀라운 결실로 나타났다. 이 두 교단이 지난 480년 동안의 갈등과 정죄를 씻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형제와 자매로서 용서와 화해, 협력을 선포하는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루터란 세계 연맹(http://www.lwf-assembly.org/) 홈페이지에도 잘 나타나있다.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신앙 운동의 의의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원래 예수님과 제자들이 품었던 신약교회의 비전을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고 실천에 옮기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복음주의적 프로테스탄트 운동이었다. 그것은 실로 루터와 쯔빙글리가 원래 추구했던 만인을 위한 진정한 기독교를 되찾고자 했던 운동이었으며 종교개혁의 최고 정점에 있었던 일이었다고 역사 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처럼 고무적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나뱁티스트신앙 운동’을 토마스 뮌처와 농민전쟁, 또는 뮌스터의 비극을 일으킨 광적인 무리들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당시에 아나뱁티스트의 이름으로 탈선의 길을 걸었던 아주 폭력적이고 사회 전복적인 사상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대부분의 아나뱁티스트 신자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고자 했던, 그래서 원수를 포함한 모든 이웃과의 평화를 추구했던 선량한 시민들이었다.
불행하게도 역사는 권력을 손에 잡은 자들에 의해서 정의와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쪽으로 흘렀다. 16세기 종교개혁의 한계가 국가교회의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요구하며 비폭력과 평화 교회를 추구했던 아나뱁티스트의 국가교회를 초월하고자 했던 신앙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로 하여금 오히려 아나뱁티스트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는데 부족하지 않았다.  결국 아나뱁티스트 신자들은 루터란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과 국가교회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압과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1521년 아나뱁티스트 신앙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불과 25년 동안 박해로 죽은 신자들이 2,000명을 넘었으니 그들이 받은 고통과 비애의 역사는 이루 다 말로 설명할 길이 없다.
비판과 정죄를 넘어서
당시 아나뱁티스트 교회를 핍박한 권력의 중심에는 루터란 교회가 있었다. 루터란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아나뱁티스트를 이단으로 정죄했고 박해에 가담했다. 그렇다면 이 두 교회의 관계는 오늘날 어떠해야만 되는가? 아나뱁티스트가 박해 받은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과거로부터 상처 받은 기억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면 그 기억만큼은 치유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하심 같이 우리도 타인을 사랑하고 화해를 향한 여정에 열려 있다면 우리의 아픈 기억만큼은 정말 치유 받을 수 있다. 화해를 향한 여정에 참여하는 사람에 제한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과거의 원수도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전에는 마치 둘 사이에 벽이 가로놓여 있는 것 같았으나 이제는 그 미움의 벽이 허물어졌다는 것은 더 이상 이방인과 유대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 대 교회의 깨어진 관계에서도 성립하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루터란 세계 연맹(LWF)과 메노나이트 세계 협의회(MWC)는 각각의 교단을 대표하는 최상위 기관이다. 이 두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화해를 향한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라는 소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화해의 일치를 향한 부르심
하나님께서 가장 슬퍼하시는 것은 당신의 백성들이 시기하고 증오하며, 갈등과 분열로 서로 상처 입고 하나되지 못하는 일이다. 그와는 반대로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용서하고 화해하는 가운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구원의 최대 기쁨이요 추구하는 바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바로 전,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것도 바로 이 목적을 위함이 아니었던가?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믿는 사람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고,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하셔서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영광을 이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제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십니다. 부디 그들로 온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세상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신 것과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요 17:21-23).
주님께서 교회에게 원하시는 것이 사랑과 용서,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교회는 자기만의 의로운(?) 종교적 신념을 유지하는 가운데 성경을 예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는 아나뱁티스트와 같은 다른 종파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판과 정죄를 서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그 안에서 하나가 되기는커녕 분열되고 갈라지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의 루터란 교회와 메노나이트 교회가 지난 450년의 상처를 씻고 30년 동안 대화의 과정을 거치고 용서와 화해, 협력을 선포하는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메노나이트 교회(MWC)는 이러한 용서와 화해의 작업을 가톨릭 교회(Catholic Church)의 관계에 있어서도 실천한바 있다(2003년).
오늘날 분열된 한국 교회가 본받아야 할 치유와 회복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은 교회가 없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 안에 진정한 신자들이 많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다. 진정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교회다. 진정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화해를 구하고 화해하는 교회다. 비록 이 땅에 많은 교회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 된 지체로서 하나님의 사역(Missio Dei)에 참여하길 원한다면 먼저 이웃과의 관계는 물론 원수와의 관계에서도 승리하고 하나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때 화해를 위한 희생이 불가피하다면 교회는 마땅히 그 대가를 치를 수 있어야 한다.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서 나 보다는 남을 섬기고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할 때 우리는 진정한 화해와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교회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 하나됨을 실천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루터란과 메노나이트 교회가 그리스도안에서 화해의 여정을 시작한 것처럼 한국 교회와 공동체 교회 협의회의 모든 회원들도 이웃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 원수와도 관계하고 화해할 수 있는 여정에 오를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한다.
김경중
이글은 한국공동체교회협의회(한공협) 계간지 2011년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