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에서의 상념

지난 11월9일부터 18일까지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일본의 세 도시를 방문하면서 여러 가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특히, 히로시마에서의 경험은 저희들에게 좋은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저 희를 초청한 단체는 World Friendship Center (WFC)라고 하는데 1965년 Barbara Reynolds라는 퀘이커(Quakers) 교인에 의해 히로시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Barbara 여사는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원자폭탄(The A-Bomb)의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핵무기를 만들고 투하했던 미국의 시민으로써 정치와 외교적 이유를 떠나 같은 동료인간의 고통과 어려움을 돕고 원자폭탄의 실제적 위험과 전쟁의 참상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WFC라는 평화단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Barbara 여사는 세계의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서로를 죽이는 비참한 전쟁은 다시 없을 거라는 소박하면서도 도전적인 생각에서 World Friendship Center(WFC)라는 이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WFC 의 도움으로 히로시마 평화공원과 원폭 생존자(히박샤)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바로 그 지역은 지금은 평화공원이 되어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그 곳에서 둘러본 사진과 이야기들은 저희를 엄숙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지금은 고령이 된 원폭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그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중 학교 3학년의 나이로 원폭의 피해자가 된 히로부 모리시따라는 생존자는 생사를 넘나드는 그때의 경험이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하늘처럼 떠 받들던 천황에 대한 믿음이 허무와 배신으로 바뀌게 되면서, 변하지 않는 내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문학도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원폭 이후 생긴 병으로 인해 대학을 2년 쉬어야만 했고, 병원에 있는 동안 한국전이 발발하여 공산군이 남한을 점령하고 일본에도 곧 들어 닥칠 거라는 소문을 들었다. 그때 나에게 강하게 든 생각은 비록 공산군이 이곳까지 온다고 해도 그들과 맞서 싸우느니 차라리 내가 희생을 당하더라도 총을 들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이었다. 왜냐하면, 전쟁으로는 그 누구도, 또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중학생 때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 폭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이곳에 오기 전 방문했던 나눔의 집 (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사는) 할머님들의 증언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아 어찌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자신의 입은 피해 때문에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는 인류가 이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일본과 한국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 속에서 평화는 감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절실한 절규이고 증언이었습니다. 전쟁이라는 국가적 폭력의 최대의 피해자인 이분들을 보면서 전쟁은 피해자나 가해자에게나 똑 같이 잔인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공통된 소망은 평화라는 것입니다. 이분들의 신념은 아주 확고해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쩌면 이분들은 몸으로 평화를 배운 가장 철저한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 지만, 생존자들의 이렇게 많은 눈물과 호소를 뒤로하고 지금의 동아시아 국제정세는 조금도 평화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 못합니다. 많은 가시적인 결과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대치와 긴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경제성장의 모터를 단 중국은 군사 대국화를 향한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일본정부는 지금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2차 대전 패전 후 제정되었던 평화헌법을 수정하려고 하고 있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아래 이를 승인해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중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을 긴장시킬 것이고 결국 동아시아 지역에 극심한 군비경쟁을 야기시킬 것입니다. 전쟁과 핵폭탄의 희생자들의 세대가 아직 채 가기도 전에 우리는 또 한번 역사적 망각의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국 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가져온 결과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보아 왔습니다. 이제는 자발적이고 선별적 불복종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틀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손을 잡는, 피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행진하는 세상이 필요합니다. WFC의 창설자인 Barbara 여사는 “나도 원폭 생존자! (I am also a survivor!)”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실은 우리 모두다 원폭의 생존자들입니다. 지금 지구상에는 히로시마의 원자탄보다 몇 십에서 몇 백배가 넘는 파괴력을 가진 핵무기가 수 만개가 있습니다. 전 인류를 죽이고 불구로 만들고도 남는 숫자 입니다. 이런 현실속에서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원폭 생존자”입니다.

전 쟁은 또 핵무기는 그 누구에게도 영구한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지금 각 나라가 역량을 집중해야 할 일은 맹목적인 무기경쟁이 아니라 동시 다발적인 무기감축 입니다. 이것은 그저 공상이 아닙니다. 코스타리카에서 군대를 없애고 군대 없는 국경을 최초로 이뤄냈던 오스카 아리아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처럼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지고 평화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가능해 질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길만이 인류와 자연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조물주에 대한 인간의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종교인으로써 전쟁과 폭력의 사용을 지지하고 적극 동조하는 사람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목사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열광하고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라고 인공기에 불을 지를 것이 아니라, 북한과 이라크, 미국과 영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똑같이 요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인 류에게는 이제 새로운 세대(A New Generation)가 필요합니다. 국가간의 국경과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고 피부색과 성별을 뛰어넘는 진정한 박애와 평화의 세대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멸의 위기 앞에 놓인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새로운 세대의 탄생의 선두에 기독교인이 당연히 서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는 개인과 전쟁, 핵무기와 평화에 대한 기독교인의 역할에 대한 어쩌면 당연한 의무감을 다시 한번 강하게 느끼게 해준 일본 여정이었습니다.

이재영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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