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하 자매님 소식-6 2003-03-14

“존귀한 주의 보혈 날 구원했네
내 모든 죄와 허물이 그 피로 씻겼네
존귀한 주의 이름 우릴 구속했네
내 죄를 위한 십자가 주님이 지셨네
영원히 감사하며 주 의지하리라
존귀한 주의 보혈 그 놀라운 사랑
생명 주신 사랑”

솔 직히 그저께(11일) 아침은 눈을 뜨기 싫었습니다. 5명의 사람들이 떠나고 난 후에야 여기 홀로 남겨졌다는 게 실감나기 시작했거든요. 물론 몇 명의 팀원들이 있고, 팀장도 있지만, 귀국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번에 이라크로 들어간 사람들도 방문 후에는 곧 귀국할 것 같은 분위기고, 남겨진 사람들도 언제 어떻게 헤어지게 될지 모르게 되니까, 게다가 여기 와서 많이 의지하게 된 영신 간사님이 가시니까 더욱, 여기 와서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숙 소로 쓰는 방 3개가 시끌시끌, 일본인 학생들과 미국사람, 기자 등이 한데 섞여 출발을 준비하다 새벽 3시 반쯤, 부랴부랴 4명의 팀원과 기자 하나가 이라크로 떠났고, 소파에 아무렇게나 잠들어있던 일본학생 중 2명은 5시쯤 다른 차로 이라크행, 1명의 일본인 여학생은 팔레스타인으로 갔습니다.(여긴 팔레스타인이든, 이스라엘이든, 시리아든, 다 이웃동네처럼 느껴집니다..^^;;) 위층에 사는 한국인 유학생들도 자주 왔다갔다 하고, 엊그젠가는 요르단 대학의 여학생 2명이 여기 한국인들이 뭐하나 싶어서 찾아왔다가 격려해주고 갔습니다^^* 하도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니까, 뭐랄까, 야전 사령부 같기도 하고 옛날 상해 임시정부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회의를 막 진행하고 있다가, 바그다드에서 전화 한 통을 받으면 급히 사안이 바뀌어서 처음부터 논의를 다시 해야 하는 긴박함이 흐르는, 여긴 참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어쩌면 일생 다시는 경험해보지 못할 것 같은.

방 금 두 번째 팀(5명)이 떠났습니다. 관광비자를 통해서 가게 된 박기범, 성혜란, 이해종, 정재원, 그리고 기자 한 분이 포함되었네요. 미국은 개전을 17일로 잡고 있지만, 영국이 잘 협조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어서일까요. 1팀을 보낼 때보단 좀더 신나게, 숙소 앞길에 바그다드로 가는 차를 세워놓고 ‘반전평화 파이팅!’ 기분 좋게 외치고 떠나보냅니다. 그토록 밟고 싶어했던 땅으로 다시 들어가는 분들의 표정을 보내 제 마음도 푸근해지네요.

이 제 숙소에 남은 사람은 모두 다섯 명, 오김숙이 팀장, 전승로, 배상현, 주재일, 그리고 저입니다. 무엇을 바라고 나는 아직 요르단에 남아있는 건지. 관광비자를 같이 신청해놓고도, 실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개전 이전에 영영 들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좀 심란하더군요. 그래도, 대사관 직원 아저씨들의 선한 눈빛과 그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아니 혹시나 내일도 비자가 안 나오고 이곳에 계속 남아 있다가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 하더라도, 휴먼쉴드로 가겠다는 주방장 상현이와 어설픈 주재일 기자(뉴조 분들께 죄송^^*)를 내버려 두고 어떻게 이라크로 들어가버리겠습니까^^;;(솔직히 중요한 제 임무 중 하나는 상현이가 휴먼쉴드 가는 걸 막는 데 있습니다. 솔직히 간다고 해서 곧바로 H.S에 지원할 수 있는 건 아니겠고 지원서 같은 거도 있겠지만 안 가르쳐줄랍니다. 같이 다니자고 끝까지 꼬셔야지요.^^

민 지원사업에 대하여

어 제 오전에는 대사관에 갔다가 점심 먹고 UNDP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한인 선교사님들을 통해서 준비되고 있는 난민사역 관련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인데요, 한국에서 떠날 때야 요르단에 유엔이 들어와 있는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막상 준비 없이 회의에 들어가 보니, 수십 명의 난민지원 사업관련 NGO 분들이 와 있었습니다. 이런 전문 모임은 처음이라 모르는 용어도 많고 이제까지의 논의과정을 전혀 알지 못해서 좀 어리둥절해 있었습니다. 대강 알아들은 건 개전이 되면 암만의 UNDP를 키프로스로 옮기고, 이라크 인접국인 이란, 시리아, 요르단 등지에 난민 캠프를 설치하고, 이라크 내륙에까지 지원의 손길을 뻗친다는 것이었습니다. UN은 예상되는 전쟁의 당사자인 이라크와 미국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미군과 UNDP에 속한 NGO 활동과의 관계 설정과 안전 보장 문제, 이라크 정부에서 제안한 ‘Oil for Food’ 프로그램 등에 대해서 논의하였습니다. 이 회의는 각 분과별로 계속되는데, 개전 시 난민지원에서 전후 본토 복구까지 이라크의 식량, 의료, 교육, 교통, 자원개발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세밀하게 대비를 하고 있더군요. 회의를 참석하면서, 저를 비롯한 한국 사람이 참 작아 보이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전쟁을 막겠다고 이 땅으로 오는데, 이 사람들은 전쟁 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준비하고 있고, 특히 회의에 참석한 미국인의 경우, 어떻게 UN과 미군과의 관계를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 (민감한 문제인 만큼?)아주 복잡하고 어렵게 이야기하더군요.(못알아 들었다는 얘깁니다..ㅠ.ㅠ) 누군가가 계속 날카롭게 질문하는 데 대해 쩔쩔매며 대답하는 그 사람을 보며,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 왜 누구는 파괴하고, 누구는 복구해야 하나. 특히 왜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고 한편으론 난민지원을 준비하는가.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란 말이 여기 와 있는 제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더군요. 전쟁 반대를 하러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이후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슬펐고, 그 자리에 한국 NGO가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런 건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안 그러면 전에 아프가니스탄처럼 상황 다 종료된 이후에 뒷북 치게 되는거죠. 도움은 가장 필요할 때 줘야 하는 거잖아요.

통곡의 벽

어 제 오전 비자 문제로 대사관에 갔다가 저녁에 전화하라고 해서 전화했더니 빨랑 오라고 하더군요. 급히 달려갔더니 담당자 아저씨는 안 계시고(하두 제가 찾아오니까 여기 직원들이 다 알아봅니다-.-), 망연히 앉아 사람을 기다리는데 왠일인지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비자를 신청하러 온 외국인들이 참 많이 있었는데, 요르단 전통 복장에 까만 반전평화팀 조끼를 입은 동양 여자가 대기실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까 의아해 하는 눈치였습니다만, 전쟁이 며칠 안 남았다는데, 여기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땅에 들어가지조차 못한 현실이, 그 땅에 벌어질지도 모를 상황들이 눈에 보이는 듯해 더욱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던져왔던‘과연 내가 거기 간다고 해서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별로 긍정적인 답이 안 나와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Waiting…just waiting’이라고 중얼거리면서요.

그 러던 중 최병수 씨가 그린 ‘Nest of Savage’라는 그림을 무대 삼아서 춤을 추는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이 위출혈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농담 비슷하게 한 말이 있었거든요. ‘그 그림말이죠. 6미터 8.4미터면 무대로는 충분하거든요? 그냥 그림만 걸어놓으면 너무 정적인데요, 그 위에서 짧은 공연, 그야말로 퍼포먼스를 하면 어떨까요. 땅을 치고, 그림 속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미사일 밭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아픈 춤을 추는 모습 말이죠. 그 때 수첩을 꺼내어 몇 자 적었습니다.

춤 출 수 있을까

북을 둥둥 울리며
미사일 밭을 밟으며
바스러질 듯한 지구 표면을 걸어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통곡하며,
그렇게 춤출 수 있을까

내 눈물을 마셔라
나의 아이들아
너희를 찌른 이 못이
내 발바닥을 뚫는구나

내 보듬는 뺨마다
네 눈물이 씻기고
네 목숨과 내 목숨을
바꿀 수 있다면
내 몸은 물이 되어 쏟아지고
춤은 불이 되어 타버려도 좋으리

둥둥둥 어화둥둥
내 아기들아
이리와 춤을 추자
네 사는 이 땅이
알에서 깨고
여린 날개를 들어
절뚝이며 절뚝이며 날아가도록
불꽃 같은 웃음으로 펄럭이도록

이 렇게 기다리던 중 저를 안쓰럽게 본 한 직원이 저를 안으로 불러들이더군요. 저희 담당자인 아함좌랄라 씨는 오늘 안 들어오는데 바그다드에서 연락이 왔는지 알아봐주겠다며 데려간 곳은 대사관 반 지하 쪽에 있는 영사관이었습니다. 바그다드에서 허가 연락이 오면 실제로 비자를 내 주는 곳이죠. 거기 소파에 앉아 또 망연하게 기다리는데, 여기저기 전화를 해 보던 그 아저씨가, ‘정말 미안하다. 아직 바그다드에서 연락이 안 왔댄다. 내일 다시 오렴’ 하고 제 여권을 돌려주기에, ‘슈크란(감사합니다)’하고 돌아서서 나오려는데, 제 표정이 이상했던지 그 아저씨가 왜 그러냐고 물어서, ‘나 정말로 이라크에 가고 싶어요’ 말하다가 느닷없이 울음이 터졌습니다. 당황한 아저씨랑 놀란 영사관 직원들이 달려 나오고, 저는 계속 대사관 벽을 치며 통곡하고, 아저씨들이 ‘왜 우냐, 제발 울지 마라, 우리 맘이 아프다. 비자 문제 정말 애쓰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다오’하고 저를 달랬습니다. 기다리는 게 서글퍼서 그런 게 아닌데, 내가 가기도 전에 전쟁이 나면 어떡할까 싶고, 여기 대사관에서 속이는 게 아니라 바그다드 상황이 급박해서인지 허락이 안 떨어지는 건데 어쩌랴, 그게 아파서 우는 건데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인사를 하고 대사관 바깥으로 와서는 길옆에 주저앉아 엉엉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좀 풀릴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라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우는 것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되었네요.

그리고 오늘(12일)이로군요. 아침 밥 든든히 먹고 대사관에 가면서 작전을 새로 세웠습니다.

일급 비밀: 유은하의 이라크 비자 얻기 작전*^^*

1. 무조건 찾아간다(호텔에서 전화만 해서는 되는 일이 없다)
2. 대기자 소파에 불쌍한 표정으로 앉아 있거나 데스크 근처에서 계속 얼쩡거리면서 왔다갔다 하는 직원들에게 말 시켜서 귀찮게 한다. 그럼 안으로 들여보내준다^^v
3. 일단 이름을 알게 된 담당자 방에 가서 안 나가고 소파에서 계속 버틴다.(그럼 손님인 줄 알고 누가 차도 갖다 준다.^^*)
4. 담당자가 제대로 일을 하나(팩스 제대로 쓰는지, 전화통화는 했는지, 뭐가 문젠지)감시한다. 조금만 이상한 게 있으면 마구 질문한다.
5. 그러다가 좀 기분 나빠 할 것 같으면, 애교작전^^갖고 온 반전버튼 같은 선물을 준다.
6. 가끔 들어오는 외국인들이나 이라크 사람들하고 농담 따먹기 하면서 시간 죽인다.
7. 평화운동가 비자 안 주면 관광비자로 들어가겠다고 협박한다.-.-
8. 그래도 내일 다시 오라고 하면 엉엉 울어버린다.ㅠ.ㅠ

마 음 먹고 가서일까요. 대사관에 앉아있는데, 금방 들어오라고 하더군요(또 울까봐?-.-;;) 우리의 아함좌랄라(원래 이름은 아함마드 좌라 일라^^)아저씨가 말씀하시길, 아직 바그다드에서 허락은 안 왔는데, 미국인 때문인 것 같다. 왜 이 사람이 너네 리스트에 있냐, 실수다. 그리고 정확히 너네 팀 이름이 뭐냐. 왜 직업이 제각각이냐 등을 물어보더니 다시 바그다드로 팩스를 보내더군요.(제가 하두 집요하게 물어보니까 팩스 내용을 읽어주더군요. ‘이렇게 이렇게 썼다. 됐니?^^’)

아 함 아저씨 방에 앉아서 기다리다 보니 정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남부 프랑스에서 오신 카톨릭 휴먼쉴드 지원자 아저씨의 순박하고 따뜻한 웃음도, 같은 프랑스에서 온 젊은 작가(이슬람, 기독교, 유대교에 대한 책을 썼다고)의 자신만만함도-‘나 꼭 이라크 가야해. 내가 한 마디 하면 이라크 TV에 쫙 뜨고, 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다니까?’ 이라크인 두 사람과의 대화도 재미있었답니다. 하도 시간이 늘어지는 것 같아서 아함 아저씨한테 말했죠. ‘솔직히 전쟁이 언제 날거라고 예상해요? 전쟁 막으려고 여기 왔는데, 내가 요르단에서 시간 보내고 있으면 아깝지 않냐고요. 17일 개전설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네?’ 했더니 ‘오늘 아침 영국이 미국에게 협조하지 않으려는 의사를 밝혔다는 뉴스가 나왔어. 17일에 유엔 안정보장 이사회가 있고, 좋은 조짐 아니니?’ 하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맘을 달래주느라고 후세인 얼굴이 새겨진 단추를 선물로 주더군요^^; 하여간 내일 다시 찾아가 봐야 한답니다. 이러다 여기 아저씨들이랑 정들겠어요.

유엔, 무대뽀 정신으로 찾아가다

앞 의 비자 얻기 작전은 다른 데도 그대로 적용이 되더군요. 저의 Broken English로도 살아남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는 걸 알아낸 저는, 11시 반까지 UNDP(UN development program)의 Food& nutrition 분과 회의가 있다는 장소로 찾아가려 했습니다. 대사관에서 들을 때는 거기서 별로 안 멀어서 걸어가려 했는데, 워낙 길치인 저로서는 한번 헤매면 정신이 없고 시간도 없어서 일단 택시를 탔습니다. 우산은 없는데 비도 많이 오구요. CITY BANK(쑨니 싼니)로 가자고 했더니, 알았다고 해서 제대로 가나보다 싶었는데, 엉뚱한 은행에 내려주더군요. 허걱..시간도 늦었는데 내가 막 따졌더니 ‘여기 은행 많잖아’ 그러잖아요. 기가 막혀서..그래서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City Bank 본점을 찾아갔죠. 그런데, 어제 그 길이 아닌 거에요. 큰일이다 싶어 그냥 숙소로 돌아가야지 하고 택시를 탔는데, 이 사람은 UN 있는 곳을 안다는 거에요. 그럼 그리로 가자고 했더니 ‘그런데 어떤 UN?’ ‘어..UN 건물들이 다 비슷한 데 모여있는 거 아닌가?’해서 일단 UNDP로 가자 했더니 ‘거기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UN 건물 아는데로 데려가줄게’ 해서 내려준 데가 UNRWA(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nency: 팔레스타인 난민구제 사업기구) 건물 앞이었습니다. 가끔 팔레스타인 분들이 왔다갔다 하시고..비도 오는데 마음이 짠~하더군요. 일단 들어가서 물어봤죠. 여기 뭐하는 데에요? 저는 팔레스타인 난민 아니라, 이라크 난민 지원하는 데 가고 싶은데 UNHCR(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 사무소)이 거긴가요? 근데 저는 어제 UNDP 회의 참석했는데요, 오늘도 회의 있다는데…우물쭈물 하니까 ‘UNDP랑 UNHCR이 다른 건물에 있거든? 택시 일단 태워줄테니까 알아서 해봐’ 그러더군요.

그 렇게 해서 찾아간 데가 UNHCR이었습니다.(내려줄 때까지 저는 UNDP 가는 줄 알았음ㅠ.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UNDP 회의는 물 건너 간 거구요. 일단 들어갔더니 어떻게 왔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반전평화팀 명함 보여주고 한국 사람인데 이라크 전쟁시 난민 사업에 관심이 있다고 했죠. 한국인 혼자 찾아온 게 좀 신기했는지 뭐라고 쑥덕쑥덕 대더니, 좀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기다리는 덴 선수니까^^v 가만 앉아있었죠. 좀 있다가 위에서 어떤 여자분이 내려오시더군요. 그래서 또 설명을 하고 좀 도와달라고 하니까 알았다고 하면서 지금 담당자가 없는데, 여기다 편지 써놓고 갈래? 라고 하면서 종이를 주더군요(나보고 영작하라구?@.@). 그래서 열심히 편지를 Sten Bolonee에게 쓰고 있었답니다. 거의 다 써 가는데, 갑자기 잘 생긴 남자분이 인사를 하시더군요. 뉘신가 싶었는데, 위로 올라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갔더니만, 뭘 도와줄까? 그래서 쓰다 만 편지를 보여드렸죠. 그랬더니 알았다고 하시면서, ‘나는 Douglas Osmond라는 사람인데, 지금 요르단 난민 예상 규모보다 신청한 NGO가 많아서 더 이상의 티오는 없을 것 같다. 혹시 Health Care 쪽에 일본인 단체가 있는데 그쪽이랑 함께 일해볼래? 아니면 개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줄까? 하고 도와주시더군요.

용 기를 얻은 저는 난민 캠프 위치며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더글라스 아저씨(라고 하긴 좀 젊은)는 천장에 붙은 커다란 지도며, 벽에 붙어 있는 난민 캠프 준비사진 등을 다 보여 주면서 브리핑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나야 할 아줌마 Mrs. Megon의 연락처까지 주었답니다. 얼결에 들어왔지만 참 친절한 아저씨를 만나서 기분이 좋았는데, 나중에 숙소에 들어와서 들어보니까, 그 사람이 UNHCR 책임자이더군요..@.@ 난민지원사역을 준비하는 선교사님과 주재일 기자가 UNDP를 통해서 소개 받아 만나야겠다 마음먹은 사람을 제가 얼결에 만나버리고 온 것입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더군요. 숙소로 돌아와서 매건 아줌마한테 전화를 했더니 지금은 시간이 없고 토욜날 한번 만나자고 해서 그러마 했습니다.(그때까지 제가 요르단에 있을지는 의심스럽지만) 그리고 이라크 들어가기 전에 CPT 분들을 한번 만나고 싶어서 시카고 본부에 전화를 했더니, 이미 암만으로 나오신 10명은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하더군요. 19일에 5진이 암만에 도착하구요. 대신 메노나이트 교회(MCC)소속으로 바그다드에 2달 동안 있던 Edward라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재영 간사님을 통해 연결된 것 같아요. 내일쯤 뵙고 바그다드 상황을 좀 들어야겠습니다.

한인 그룹, 난민지원 사역 준비

오 늘 저녁에는 현지 선교사 세 분과 숙소에 남아있는 오김숙이 팀장과 주재일 기자와 제가 잠깐 만남을 가졌습니다. 요르단의 한인 선교사 그룹을 중심으로 일단 UN을 통해서든, 요르단의 하쉬메이트를 통해서든 NGO를 등록해야만 난민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구요. 여기는 목요일이 주말이고 금요일이 휴일이므로, 이번 주 토요일인 15일까지 NGO 등록 요건을 알아보는 문제, 아직은 독립적으로 UN 등에 등록하긴 어려울테니 이미 UN에 등록된 단체와 파트너십을 가지면서 난민 사역을 하면서 역량을 키우다가 이라크 국내의 전후 복구 시점이 되면 독립적인 NGO로 등록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문제가 거론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역할 분담을 했고, 한국의 반전평화 지원연대와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한국의 단체들이 이라크 난민을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지원방법 등을 알려주고 요르단 및 UN과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사람들이 두 번째 팀까지 떠나고 난 다음, 방 3개중 하나(23호)에 몰아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일단 한숨 자고 낼 대사관으로 출근해야죠^^*

P.S 이라크에 들어가게 되면 지금의 이메일은 못 쓰고, purehand@jinbo.net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한글은 읽을 수 있다고 하는데(Palestine Hotel의 경우) 쓰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하네요.

기도해 주세요

1. 비자가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의 사역을 잘 준비하며 3명이 오늘 밤쯤 들어가는데, 일정과 활동계획을 잘 조정할 수 있도록

2. 아버지 부시가, 유엔 동의 없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을 반대한다면서요^0^ 어떻게든 전쟁은 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측하고 있지만, 그래도 저는 끝까지 기적을 기대하고 싶네요. 군수물자를 소비하지 못해서 부시정부가 쪽박을 차는 일이 있어도(군수물자를 이미 주문생산했기 때문에 전쟁이 나는 것보다 안 나는 데 10배 이상의 비용이 든다네요. 저는 이해가 안가지만..ㅠ.ㅠ) 무고한 생명을 다치는 건 정말..

3. 일단 난민이 발생하게 되면 이란(70-100만) 시리아 30만, 요르단도 시리아 정도의 규모라고 예상되지만 그 이상일 가능성도 크죠. 이들을 돕는 일에 많은 단체들이 명목상이 아닌, 사람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며 받아 안을 수 있도록(이란과 시리아는 난민 유입을 어느 정도 허용하고 있는데, 요르단은 국경 지역에 머물게 할 거랍니다) 그것을 조정하는 UN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4. 난민 지원 사역을 준비하는 한인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한인회가 NGO 등록을 순조롭게 하며, 한국의 반전평화 지원 연대를 통한 여러 단체와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도록, 평화를 위해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슈 제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5. 취재비자와 관광비자로 들어가 있는 1,2팀의 여행 가운데 안전을 지켜 주시고, 꽉 짜여진 일정 속에서도 준비한 퍼포먼스나 반전 시위 등이 적절히 준비될 수 있도록, 2팀이 현지에서 만날 수 있도록.

6. 바그다드의 CPT 5명을 잘 만나서 사역에 합류할 수 있게 하시고, 전쟁 이후에 계속 남게 된다 할지라도 이라크의 모든 반전평화운동가들과 민간인들을 보호해 주셔서 그들이 각 나라에서 평화의 증인을 살 수 있도록.

7. 여기 와서 안 좋아진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코입니다. 자주 막히고 안 쪽으로 피가 고이는데, 주께서 치유해 주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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