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하 자매님 소식 – 3 (암만에서 보내온 내용) 2003-03-09

이라크로 떠난 유은하 자매님께서 자신의 홈페지로 전해온 첫번쨰 소식입니다.

주님 자매님을 비롯한 무고한 생명들을 지켜주시고,
주님 우리 인류를 귱휼이 여겨주소서!
위하여 기도합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주님 곁으로 날 이끄소서
나 주께 경배 드리며 주품에 안기기 원하네
나의 참 소망 그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사랑
더욱 알기 원하네 주님 곁으로 날 이끄소서
주님만이 내 모든 것 되시니
주님만을 더 알게 하소서”

사랑하는 믿음의 동역자 여러분께 주님의 평강을 전합니다.

저 는 요르단 암만에 어제(3월 7일 밤 12시 55분에 도착했습니다.(한국보다 6시간이 느립니다) 인천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1시간, 2시간 기다려 비행기 갈아타고 4시간을 더 비행했죠. 2월부터 미리 와 있던 한국반전평화팀과 요르단의 김동문 선교사님(한겨레21 전문위원)께서 마중을 나와 계셨습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짐을 대강 풀고 잠을 청했을 때는 이미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여기 하루 다섯 번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온 도시를 덮는 거 아시죠?^^)

요르단에 있는 한국반전평화팀원은 총 14명이며 바그다드에 한상진 팀장(1진)이 있습니다. 1진 2명(이영화, 남효주)은 이미 귀국했습니다.

2 진: 허혜경(사회당원, 29세) 박은국(경희대 한의대, 예비 양심적 병역거부자, 사회당원, 23세), 전승로(경희대 관광대 대학생, 22세), 성혜란(대학생신문 객원기자, 26세), 김력균(경인방송 PD), 오김숙이(여성운동가, 34세)
3진: 이윤벽(신부, 외국인노동자인권 모임, 42세),박기범(동화작가, 31세),임종진(한겨레신문 기자),최혁(사회당원, 37세)
4진: 임영신(성공회대 NGO 대학원, 34세), 주재일(뉴스앤조이 기자, 29세), 백상현(노동자, 경남 평화연대, 28세), 이해종(노동자, 경남 평화연대),최병수(설치미술가) 그리고 저입니다.

이 중 이윤벽 신부님은 어제 밤에 한국으로 출발하셨고, 허혜경 님은 내일, 박은국 님은 다음 주에 귀국합니다.

어 제 아침 9시 정도 일어나 아침 식사한 후에 지금까지의 한국반전평화팀이 경험한 일들에 대해서 브리핑을 듣고 회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임종진 님께서 이라크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대해 짚어 주시고, 한국팀의 지난 활동에 대해서는 박기범 님이, 국제 평화운동가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허혜경 님이, 앞으로의 한국팀 계획에 대해서는 최혁 님이, 요르단 적응을 위한 기초 정보에 대해서는 박은국 님이 말해 주었습니다.

그 러면서 한국에서 듣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이라크 현지 분위기는 이미 전쟁 준비 태세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이란 쿠웨이트 요르단 등의 인접 국가에 각 2만 이상의 병력을 배치했고, 3월 5일 한국팀이 이라크를 나오는 때에는 이미 바그다드 시내에 이라크 탱크들이 다니고 집집마다 4개월 어치의 식량과 전쟁준비 물품을 배급한 상태라고 합니다. 터키에 미군 주둔지를 만들려고 했다가 실패했는데 다시 터키 쪽에서 협상 테이블로 나옴으로 인해 긴장은 더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 에 따라 이미 들어가 있던 평화운동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대표적인 두 단체, Human Shield와 IPT(이라크 피스메이커 팀)이 서로 다른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휴먼 쉴드는 115명 정도, IPT는 스무 명 정도밖에 안 남아 있고, 현재 요르단에서 이라크 비자를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40명 정도입니다. (어제 암만 시내를 다니다가 이라크 비자를 받아서 들어온 멕시코 출신 휴먼 쉴드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휴먼 쉴드 사무실에 가서는 일본인들을 만났고요) 휴먼 쉴드(H.S)와 IPT는 운동성격에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 H.S는 자발적으로 인간방패를 자처하여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아주 느슨한 네트웍을 가진 모임이라고합니다. 멤버들이 제각각이고 젊은 대신 역동적이라고 하네요. IPT는 본부는 시카고에 있고 비폭력 직접행동의 원칙이 뚜렷하고 자국 내 후원그룹을 가지고 있는 북미 중심의 단체입니다.

먼 저 휴먼쉴드 쪽은, 이라크 정부가 정해 준 폭격예상지점 60곳에 분산배치하라는 지시에 대해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용은, 그 60곳 중 군사시설과 정부시설 등을 제외한 5개 지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 우리가 언제 머물고 언제 떠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라크 정부는 아직 대답이 없고, 지금 그 5개 장소(발전소 2곳, 정수 시설, 식량창고, 석유 정제시설)에 20명씩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자진해서 갈 경우 숙박비를 이라크 정부가 댄다고 하는군요.-.-;;) H.S 안에서도 이라크 정부에 이용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만일 협상에 실패할 경우 철수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습니다.(이에 대해 정부가 그들을 체포해서 강제 배치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고, 낮에는 자유롭게 활동하다가 밤에만 그 장소에서 자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 유학생 한명도 H.S에 소속되어 지금 식량저장창고에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다 음 IPT 쪽은, 이전부터 계속 해오던 대로, 학교를 방문하고 대학교에서 영어 가르치고 아랍어 배우든지, 병원, 고아원 등에서 이라크 주민의 삶과 보조를 맞추는 식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중 반 정도가 CPT멤버지요. 분쟁지역에서의 활동경험이 풍부한 그들의 원칙은 ‘개전되더라도’ 이라크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라크 정부나 미국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전쟁의 피해자의 입장에서 전쟁을 함께 겪겠다는 것이 그들의 의지입니다.

“We will live among the Iraqi people.(우리는 이라크 사람들과 함께 살 것이다)
We will be with the Iraqi people during any aggression directed at them, including continued economic sanction.(경제 제재를 포함해 어떠한 공격이 그들에게 가해지더라도 함께 있을 것이다)
We will use our presence and non-violent actions to protect, if we can, both the civilian population of Iraq and those facilities(e.g., water purification plants) which make daily life possible for the Iraqi people.(우리의 존재와 비폭력 행동으로 민간인과, 정수시설처럼 그들의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시설들을 보호할 것이다.
We will use our experiences to speak truthfully, from Iraq and through in the U.S., to all who will listen about the effects of sanctions and war on the people of Iraq.(우리는 경제 재제와 전쟁이 이라크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들에 대해 우리가 겪은 것들을 경험을 진실하게 말할 것이다)- [Call for Iraq Peace Team] 중에서-

저 는 이런 원칙에 동의하고, 먼저는 바그다드 안에 있는 CPT 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재영 간사님을 통해 소개 받은 Lisa Marten와 기적적으로 통화가 되었고, CPT도 IPT의 원칙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임없는 질문들

무작정 떠나오기는 했지만 비행기 안에서 계속 밀려드는 질문은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첫 번째 생각은 제 자신에 대한 것입니다.

‘네 가 간다고 상황이 달라지니?’ ‘네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니, 아랍어를 잘 하니 평화운동 경험이 있니, 아님 메노나이트 정신과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길 하니, 몸이 튼튼하길 하니, 그렇다고 네가 지금 아주 성령충만해 있는 상태이길 하니(기타 등등)..그런데 가서 뭐하겠다는 거니?’ 감정이나 열정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미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내려놓습니다. 마침 출애굽기를 묵상하고 있는데, 모세를 부를 때도 그의 능력 때문에 부르신 것이 아니고 단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일에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일 뿐이다..그 정도로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떠 나기 며칠 전 전우섭 목사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을 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부시 혼자 저러는 것이 아니다. 걸프 전 때도 기독교 쪽의 예언적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발전소를 먼저 치라’고 조언했고, 그게 먹혀 전쟁에 승리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폴 케인 목사는 ‘이라크를 치는 것은 신의 뜻이다’라고 했고, 빌 헤이몬도 신디 제이콥스도 직간접적으로 공격에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이장로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인간의 악함 때문에 전쟁은 계속되었다. 구약은 전쟁의 역사다. 전쟁이 안 났으면 좋겠지만, 전쟁 중에라도 인간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해야 한다’

이 런 말들을 듣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에게는 이런 말씀을 보게 하시고 이런 마음을 주신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라크를 치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이 전쟁에 동의하시는가’ ‘이라크도 미국도 선하지 않지만, 이라크의 악이 찼기 때문에 미국을 들어서 이라크를 치시는 것인가’ ‘이 전쟁은 과연 정당한가’ ‘나는 그냥 이곳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내가 그곳에서 반전활동에 참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인가’ ‘혹시 내가, 그리고 거기 이미 들어가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전쟁을 통해 희생된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전쟁에 반대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인가’ 등. 아직도 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슬퍼집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 번째 질문은 이라크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 라크를 직접 갔다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도 그런데, 이라크 민중들은 미국도 싫어하지만, 사담 후세인에 대해서도 찬성과 반대의 생각을 반반 정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의 통치기간 동안 이라크 경제는 더 힘들어졌고, 전쟁의 위협은 더해져 가는데, 이라크 내의 반 후세인 세력들은 이번 전쟁을 기회로 정권교체의 기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편도, 이라크 정부 편도 아닌 이라크 사람들의 편에서 생각할 때, 어떤 것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길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만일 인간방패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후세인 정권은 그냥 유지될 것이고, 결국 이라크 정부 편을 들어준 꼴밖에 되지 않을까. 전쟁이 나더라도 이라크 인들은 가족끼리 모여서 전쟁을 담담히 맞을 작정이라는데, 그 틈에 묻어서 전쟁을 함께 겪는 것(어쩌면 그들에게 폐가 될 것을 무릅쓰고서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등

이 외에도 수많은 질문들이 제 머리와 마음을 채웁니다. 그러나 모두 지금 답을 얻을 수는 없는 것들입니다. 저는 그냥 한 가지 음성 ‘가야 한다’는 데 응답해서 온 것뿐,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니까요. 평생 짊어지고, 풀어나가야 할 질문들 같습니다.

주께 모든 것을 맡기며

4 진을 맞아들인 한국반전평화팀은 다소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은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준비나 훈련 없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라크 비자를 받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고, IPT 비자가 나오지 않아(그것은 이라크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평화운동을 해왔던 IPT의 기준을 자원자 중심의 한국팀이 만족시키지 못한 까닭이 큽니다) 결국 오랜 시간을 기다려 관광비자로 이라크에 들어갔지만 비밀경찰과 가이드의 감시 등으로 하려고 준비했던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팀원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으면서 평화운동이라는 게 순수한 동기나 의지만으로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들을 계속 들으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임 영신 간사님과 대화하다가 “우리는 어쩌면 실패를 경험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는지도 몰라”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라크 비자를 받기도 전에 개전되면, 입국은 불가능해지고, 옆 나라에서 전쟁을 지켜보면서 말 그대로 절망감과 무력감, 그리고 사상자가 계속 발생할 때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평생 지닐 것 같다. 만일 우리가 이라크에 들어가게 된다면 한번도 전쟁을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말 그대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패닉을 겪을 수 있다. 국제연대 경험이 별로 없는, 특별히 NGO는 많지만 평화운동 쪽 경험은 이번이 처음인 우리나라로서는 이번의 참여가 시작으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곳에서 여러 가지 안내를 받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없다”는 말입니다. 오기 직전 안내를 받았던 Human Shield 비자도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며칠 전 미국인 군인 2명이 민간인 복장으로 다니다가 적발되었는데 그들이 H.S 비자로 입국한 것이었답니다. H.S 비자만 믿고 온 우리는 전 팀처럼 발이 묶이는가보다 싶었습니다.

와 서 만난 김동문 선교사님도 이라크 입국을 지금 해서 달라질 상황은 없다, 차라리 이곳에서 대규모로 난민사역을 준비하는 게 낫다고 하시고, 임종진 기자님도 ‘생각보다 상황이 안좋으니 남아있는 게 어떻겠냐 내 말을 들어라’고 하셨습니다.(황모 군에게 부탁을 받았다고..-.-;; 반성하라~황석주!) 뭐, 비자가 안 나오면 핑계로서는 딱 좋은 거지요.

그 런데, 어제 밤, 한국에서는 그렇게 연락되지 않던 바그다드의 CPT와 전화연락이 되면서, 가능성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한국 아나뱁티스 센터에서 파송받았고 CPT short term delegation 신청서를 낸 사실을 알자 매우 반가워하면서 그쪽에서 비자를 추진해 보겠다고 연락이 온 것입니다. 몇 시간 뒤에 한상진 팀장님께 전화를 받았는데, 이라크 정부를 통해 스페셜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리고 어제 암만 시내를 다니다가 일본인 휴먼 쉴드 몇 명이 ‘시민감시단’의 이름을 빌어 비자를 얻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전 11시에 H.S 사무실에서 그들과 미팅하고 우리의 여권정보를 주고 비자 가능성 여부를 저녁에 통보받게 해 놓았습니다. 만일 가능하면 결과가 몇 시간 안에 나올 수도 있겠네요.

여 러 가능성은 있지만, 이곳 교포 분이 그러시더군요. ‘아무 약속도 믿지 말아라. 비자는 손에 쥘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다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지요. ‘누가 어떤 비자를 받았다더라’ ‘어떤 팀이 오늘 이라크로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무성하고, 지난 한국팀도 비자를 얻기 위해 이런 식으로 몇 주 동안 발품을 팔다가 지금은 지쳐있는 것이지요. 4진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비자가 나올 수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비자가 나와도 입국 전에 전쟁이 날 수도, 이라크 안에서 전쟁을 맞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주님을 의지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전환점, 새로운 과업

이 곳에 와서 듣고 접하는 상황은 한국에서 출발 직전의 소식과 또 다릅니다. 개전 7일설, 10일설, 17일설이 분분한 상황에서 전쟁 억제는 물 건너갔으니 이쪽에서 난민사역을 준비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몇 가지 가능성과 제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비자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이 나는 경우입니다.

저 는 떠나오기 전부터 이라크에서의 반전활동, 요르단에서의 난민 사역 둘 다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왔기 때문에, 비자가 안 나오는 경우에 난민구호를 위해서는 UN 등에 미리 신청해 놓아야 하는데, 지금은 상황이 워낙 급하니까 이곳 한인사역자들을 중심으로 관련 NGO를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 그를 위한 회의에 들어가거나, 국내와의 연락을 담당하든지, 그도 아니면 응급 처치 등의 훈련을 받고 난민 캠프에서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려 합니다.

두 번째, CPT를 통해 비자를 받고, 그 팀에 합류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 럴 경우 한국팀과 헤어져서 단독으로 이라크에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먼저 CPT의 사역 현장과 이라크 가정을 방문하고, 제가 있어도 팀과 가정에 큰 무리가 없는 상황이라면 그들과 함께 전쟁을 겪으려 합니다. 혹시 팀과 그 팀이 함께 하고 있는 가정이 전쟁 발발 직전에 피난을 떠나면 함께 나오고, 아니면 같이 그곳에 머물겠습니다.

세 번째, 일본 시민감시단을 통해 비자가 나오는 경우입니다.(10일 비자)

이 경우, 두세 명을 제외한 한국팀 전체가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가서의 상황인데, H.S와도 행동을 같이 할 수 없고, IPT와도 힘들기 때문에, 한국팀 단독으로 활동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의논된 사항으로는 ‘일단 9명이 함께 움직이기는 힘들다. 개전이 조금 늦게 된다면 해방광장에서 함께 마지막 반전 퍼포먼스를 한다(지금은 모든 반전시위가 그치고 사람들이 철수하는 상황입니다.) 이후 영어가 되는 사람을 중심으로 두 팀으로 나뉘어 민간인 단체를 찾아다니면서 활동을 하다가, 전쟁 직전(15일 예상) 철수할 팀과 이라크에 끝까지 남을 사람들을 결정한다.(지금 상황으론 종군 기자처럼 활동하실 임종진 기자님, 한상진 팀장, 그리고 저 정도일 것입니다) 나머지는 나와서 난민 캠프에 합류하고, 전쟁이 마무리될 쯤 다시 이라크에 들어가든지 한국에 나와서 활동한다.(임영신 간사님의 계획)

** 이에 대하여 여러분께 부탁을 드립니다! 한국에서 여러분께서 기도하시고 또 준비해주셨으면 하는 것은, 만일 전쟁이 나고 수백만의 난민들이 발생할 경우, 이곳에 와서 몸으로 뛸 사람들, 구호물자와 자금을 준비하는 일을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한국팀의 이윤벽 신부님이 한국으로 들어가셨는데(016-551-3300) 그분을 만날 기회를 만드셔서 현지 상황을 듣고 어떻게 반전평화운동의 연장에서 난민사역을 할 수 있을지, 아마 수많은 단체들이 각자 자신의 활동영역을 확보하려 경쟁적으로 일을 할 것 같은데, 그 중에 기독인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위에 대하여

4 진이 출국할 때 준비해 온 시위용품과 팀의 유니폼, 버튼, 현수막 등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듭니다. 시위에 참여해 본 적은 있지만 주도해 본 적은 없는 저로서는, 반전평화 메시지를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별로 없습니다. 버튼을 가방과 옷에 잔뜩 매달고 구호가 적힌 조끼를 입고 시내를 다니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버튼이나 명함을 나눠주고, 여인들을 버스에서 만나면 붙어 앉아서 아랍어 회화책을 들이밀고 좀 읽어달라고 하거나^^가끔 이라크 사람들을 만나면(시장에서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더 반갑게 ‘앗쌀라무- 알라이쿰’(평강의 당신에에)이라고 인사하는 것밖엔 말이죠. 그러다가 문득문득 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게 뭔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손을 더디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제가 좋아하는 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Rome 5:8)

예 전에 설교를 들을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데모하셨다는 말을 들을 때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야 좀 느껴집니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가장 강력한 데모방법은 죽음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택한 방법이었고, 메노나이트 등의 재침례파 분들이 택한 방법이겠지요.

상 황이 막바지로 몰리면서, 비자를 진행하고 계시는 한상진 팀장께서도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물으시더군요. “이라크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냐’고요. CPT조차 12명 철수하는 상황이고, 협상과 이라크 정부에 항의하고 있는 휴먼쉴드는 추방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곳으로 오기 전 한국에서부터 계속 제 마음을 눌렀던 것은, ‘버림받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출발 이틀 전에야 여러분께 알려드린 것은 혹시나 걱정과 염려 때문에 저를 만류하실 때 제 마음이 약해질까봐였는데, 그렇게 모질게 마음을 먹고 왔어도, 막상 이라크를 눈앞에 두고 보니, 어쩜 나는 이라크 정부로부터도, 미국으로부터도, 혹은 이라크 민중으로부터도(전쟁 났는데, 제가 오히려 짐이 되면 어떡하나요), 한국 정부(IPT는 귀국하면 최소한 구속이나 많은 벌금을 문다고 하더군요, 우리 정부는 파병 준비하고 있다고 하죠..)혹은 한국교회로부터도(공항에서의 기독교 쪽 인터뷰나 뉴죠의 제 기사에 대한 반응 등을 볼 때)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와 오늘 돌아다니면서 비자를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막 이라크로 들어가는 멕시코 휴먼쉴드의 표정과 그들의 마음, 역시 같은 목적으로 온 19살 짜리 일본인 크리스천 학생들을 만날 때, 우리의 마음이 통하는 것은, ‘우리처럼 미친 사람들이 또 있다’는 반가움 때문일 것입니다. 멕시코 팀 중 한 사람과 얘기하다가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쪽으로 가면, 가벼운 한숨 끝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샬라”(신의 뜻대로)”

넘치는 감사꺼리

이 곳에서 한국과 통화하면서 여러분들이 기도 가운데 저를 기억해 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격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와 임영신 간사님이 호텔에서 같은 방을 쓰고 있습니다. 암만에 어느 정도 머물지 알 수 없지만, 저희 방을 깨끗한 ‘평화의 방’ 분위기로 꾸며 놓았습니다. 간사님이 들고 오신 작은 크기의 반전 피켓 종이를 책상에 세워놓고, 아프리크 치마에 평화의 비둘기를 그린 것을 창에 걸어놓고, 제가 아나뱁트스트 센터에서 받아온 “Let the christians of the world agree that they will not kill each other”라는 문구가 포스터 와 4진으로 함께 온 설치미술가 최병수 님의 그림 “nest of savage(미사일로 된 둥지에 알로 표현된 지구가, 그리고 고통 받는 각 나라사람들이 들어있는 모습)을 붙여놓았습니다.(사실 팀이 쓰고 있는 방들의 분위기는 뭐랄까..80년대 총학생회실 분위기입니다. 상상이 가시지요^^;; 회의할 때는 너구리굴이구요^^)

4 진 6명 중 믿음의 사람이 3명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고 든든한지요. 특히 임영신 간사님과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팀이 나눠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지만, 가능한 매일 아침과 저녁에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오 늘 아침 8시에는 영신 간사님과 둘이 방에서 짧은 기도모임을 가졌습니다. 찬송가를 가져오지 않았으므로 떼제 찬송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를 개사해서 “전쟁과 폭력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지금 이곳에 우리와 함께 하나님께서 계시도다”고 반복해서 부르다가 어느 순간 둘 다 통곡해 버렸습니다.

의 지할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비자가 나올 길이 다 막힌 것 같고, 우리의 능력은 전쟁을 막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어쩌면 넋 놓고 전쟁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기가 막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이 땅에 불러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길을 열어주시도록,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교만과 비교의식과 죄악과 좌절과 깨끗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주께서 정결케 해 주시도록,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면 기도했습니다. 이 작은 호텔 방이 주님을 예배하는 장소요 기도실로 구별되길 기도합니다.

기도해주세요

1. 한국반전평화팀을 위해서

– 그들 안의 지침과 좌절과 긴장감들이 감해지도록,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마음을 모으고 규칙적인 시간활용과 역할 분담을 통해 이곳에 온 목적들이 달성될 수 있도록 그 안의 3명의 기독인들이 식사 청소, 대화 등을 통해 그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2. 비자와 이후 일정에 대해서

진행되고 있는 CPT를 통한 스페셜비자와 일본의 시민감시단을 통한 비자가 잘 진행 될 수 있도록, 꼭 봐야 할 것, 만나야 할 사람, 겪어야 할 사건들을 잘 겪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난민 사역을 위한 준비를 잘 하도록

3.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는데, 한국에서 앓다 온 감기몸살 기운이 남아있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해 피곤해 지고, 입 주변에 조금씩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되기도 전에 체력이 바닥나면 팀으로 함께 생활하기도 어렵고 일을 감당할 수도 없겠죠. 특히 전쟁이 닥치면 음식물 섭취가 아주 어려워질 수 있는데, 장시간 단식을 하게 되어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주세요.

4. 순간마다 깨어있을 수 있도록- 아무리 바쁘고 긴장되더라도 말씀과 기도생활을 잊지 아니하도록, 3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중보기도자로 이 땅에 서 있을 수 있도록, 십자가의 길을 걸을 있도록.

5. 주님을 찬양해 주세요- 오기 전에 좀더 시간이 있었다면, 제가 갖고 있는 모든 CD의 찬양 곡들을 mp3로 담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때때마다 주님을 기억하고 찬양하고 싶은데,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 애통함 속에 간구하시는 것도 중요하시만, 이 모든 일의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해 드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도록, 그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의 신실한 사랑을 의심하지 아니하도록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찬양이 제게도 전달될 것입니다.
6. 이라크 사람들을 위해- 많은 분들이 저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 주심은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제가 깨닫는 것은, 제가 죽거나 상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그 마음으로 이라크의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7. 한국 정부를 위해서- 한국 정부가 이라크 전에 파병하지 않도록 파병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방향을 바꾸어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지원 사역에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창구를 단일화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떠나 오면서 저를 사랑과 믿음으로 보내주시는 여러분들과 함께 꼭 한번 부르고 싶었던 찬양의 가사를 적습니다. 이것이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순전한 고백이 되길 소원하면서요.

온 땅의 모든 만물 주님 기다리네
나무들은 기뻐 손뼉치리
산들도 주님 앞에 굽혀 절하며
메마른 땅 위에 꽃은 피리라

주가 진실로 속히 오리니
주님 오심을 만물이 보리라

온 성도 모두 함께 주님 기다리네
주 보혈이 우릴 씻으셨네
거룩한 사랑으로 하나 되어서
주님의 신부로 선포하리라

주가 진실로 속히 오리니
주님의 길을 예비하리라

온 세상 모든 나라 주님 기다리네
열방은 그 발 아래 엎드려
예수는 그리스도 만유의 주님
모두 소리 높여 선포하리라

왕이 오시네 왕이 오시네
영광의 주님이 다시 오시리
왕이 오시네 왕이 오시네
위엄과 공의로 통치하시네

– 주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은하가 드립니다.
2003/3/8

* 추신: 제가 밖에 나가 있는 동안은 한국의 후원관리자께서 저랑 통화하거나 메일로 받은 내용을 그대로 제 이름으로 올리기로 했는데, 다행히 숙소 근처의 PC방에서 웹 상의 한글 입력이 가능해서 지금은 제가 직접 올리고 있습니다. 제가 가져간 노트북으로 글을 작성하고 그것을 텍스트 완성형으로 저장한 다음 인터넷에 복사하는 방식이죠. 요르단 대학 근처만 이게 가능하고, 일단 이라크로 들어가게 되면 인터넷 사용이나 기타 연락이 상당히 어려워질 것입니다. 메일 연락도 영어로만 가능하겠죠. 사랑합니다.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