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을 이용한 교리

서 론

신 학이란 하나님이나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그 분야의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신학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모든 크리스천들이 해야 할 활동이다. 어린아이들은, “엄마 나는 어디에서 왔지?” 하거나,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가지?” 하고 질문을 하는데, 실제로 이러한 질문은 신학의 중심을 이루는 질문들이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 자유, 그리고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을 갖고 씨름을 하는 젊은이들은 사실상 신학의 가장 중심에 놓여있는 주제들을 놓고 씨름을 하는 것이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부터 가장 중요한 것에 이르는 모든 것들, 그리고 보이는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 이르는 모든 것들이 신학적인 관심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신학적’이게 하는 것은 신과의 관련성에 달려있다. 물론 이러한 것은 “신이란 무엇인가?” 혹은 “하나님은 누구인가?” 와 같은 궁극적인 질문들을 요한다. 따라서 이러한 질문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신학적인 질문들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그러한 신이 있기나 한 건지 끊임없이 의심을 해 왔던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기간동안에 특별히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한 학생은 신이 실제로 존재합니까? 하는 질문을 하였었다.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은 존재하지요” 하고 말할 때, 그들은 별난 방법으로 말을 한다. 보통 우리가 존재하는 어떤 것에 대하여 말할 때에 우리는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어떤 물체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에 대한 정의는 시간과 공간 안에 있지 않다. 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는 어떤 물체들 옆에 존재하는 또 다른 어떤 존재로서 신을 제안하는 셈인데, 이것은 신의 존재에 대하여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신은 어떤 물체가 아니라 모든 시간과 공간, 모든 물질의 근원이나 본질이 되는 어떤 실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험에 있어서 “빛,” “에너지,” 혹은 “사랑”은 물체도 아니고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 것들로써,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보이지 않는 실체들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예들이다. 신비적인 신에 대한 가장 일관된 성경의 표현은 “하나님은 영이시다” 라는 것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설명이다. 우리는 이러한 용어들을 통해 어떻게 성경이 이러한 하나님의 본질 (영) 을 관계와 윤리 (사랑)와 연결을 시키는지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하는 문제와 “우리가 다른 사람들 및 물질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메노나이트들에게 특히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신학적 고찰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하여 가능한 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며 이는 종종 “교리 (혹은 가르침)”라고 불린다. 주로 교리는 성경,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창조, 구원, 교회, 사랑, 지옥, 하나님나라, 말세, 그리고 역사와 같은 주제들을 다룬다. 이 책의 제목 “상상력을 이용한 교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잘못된 견해들을 불식시키고자 붙인 것이다. 즉 필요한 신앙고백, 교리, 교의, 그리고 신조들 (신앙에 관해 “올바른 생각”에 관련된 모든 단어군)이 “교조적인,” 혹은 “독단적”이라는 말로 흔히 표현되어 경직성, 불변성, 편협성을 의미하게 된 것에 맞서기 위해 붙인 것이다. 기독교 초기에 교리, 신조, 교의는 믿음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일종의 상징들로서 생각되었다. 사실 이러한 교리, 신조, 교의는 “역동적인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라고 부제목을 붙여 놓은 것처럼 상당히 역동적이었다.
나는 이러한 역동성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스크래블 게임에 신앙을 비유하고자 했다. 소설과 시 같은 문학, 회화, 음악, 건축, 그리고 다른 형태의 예술 분야에 종종 나타나는 암시들은 우리가 상상력의 세계에 들어갈 때 사용하는 신학적 언어가 어떠한 것인지를 상기시켜줄 것이다. 영적인, 비경험적인 실존의 차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학적 언어는 유추, 은유, 비유, 우화, 신호, 경구, 표적, 상징, 역설, 그리고 변증들과 같은 다양한 언어 및 의사소통 방법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현대 언어학 이론은 어떤 것이 일어나도록 하는데 사용되는 언어의 힘인 “말의 역할”에 대하여 강조한다. 예를 들어, 저주와 축복이 단순히 어떤 것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실재를 창조하는 하나의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말에 대한 이러한 서로 다른 방법들은 성경에서 쉽게 발견된다.
고대 사람들 (고대와 중세의 신학자들을 포함해서)은 성경의 본문을 네 가지 방법으로 해석을 하였다. 문자적 해석 (직해와 혼동을 막기 위해 정직한 읽기라고 의미를 밝힘), 상징적 해석 (영적인 혹은 신비적인 읽기, 소위 영해라고 함), 비유적 해석 (도적이나 윤리적 읽기), 그리고 신비적 해석 (미래주의적 읽기)이 그 방법들이다. 따라서 성경을 읽거나 신학적으로 생각할 때, 신학이 생물학이나 어떤 사물을 다루는 방식과는 아주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책에 실려있는 글들은 일상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경이롭고 특별한 차원에 대한 신학적 사고에 흥미를 느끼도록 독자들을 격려할 것이다. 무엇보다 신학적인 고찰이 세상을 바라보는데 있어 역동성과 상상력의 감각을 부여해 줄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2003년 2월 제임스 라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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