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노나이트로 산다는 것

메노나이트가 된지 6년이 되었습니다.
요즘 메노나이트로 산다는 것이 뭔가 많은 고민을 합니다.
겉 껍데기만 보고 사는 건 아닌지?
우리랑 좀 뭔가 다른게 있어서 기웃거리고 그것을 이용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이 최고라고 하면서 여전히 내 모습을 고집하며 사는 모습에 스스로 놀라며,
메노나이트로 산다는 것이 뭔지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메노나이트란 이름을 처음 들었던 건
지금부터 약 9년전 춘천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생경한 이름.
크리스천이면 되었지 뭘 또 메노나이트.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그 관계만 확실하다면 다른 건 문제가 없다면서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것이 믿음인줄로 알고 있는 나의 사고구조.
모든 것을 은혜라는 한 마디 거대한 바다 속으로 풍덩 빠뜨려 버리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나의 모습.
믿음을 말할때 여전히 행위와 별개로 생각하는 믿음구조, 그래서 추상적인 믿음과 구체적인 행위 사이에 늘 왔다 갔다 헷갈리는 나의 믿음 구조.
여전히 내 울타리를 쳐 놓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이 고집스러움.
공동체에 대한 이론은 빠삭하지만, 실제 같이 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내 믿음의 현주소.

지 금부터 약 9년전 춘천에서 처음 들은 그 메노나이트의 이름이 이젠 제 아이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머리 속의 지식과 삶의 어느 부분은 바뀌어 있지만, 아직도 “넌 멀었어” “아니 구제 불능이야” 하는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습니다.
메노나이트의 할아버지에 할아버지가 나타난대도,
여전히 그들이 닮고자 하는 건 “예수”요 그 이름 하나 밖에 없음을 여기 저기서 목격을 하며 나는 아직도 30% 메노나이트 밖에 되지 않는구나 생각을 해 봅니다.
다시 말해 나는 아직도 30% 크리스천 밖에 되지 않는구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제 믿음의 분량입니다.

메노나이트로 산다는 것.
그건 올바른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올바른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
그건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겠다는 걸 의미합니다.
30%가 아닌 100%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고민합니다.
성령이 하시지 않는 한,
새 술로 오신 성령을 담는
새 부대로 살지 않는 한,
크리스천은 말짱 도루묵일 수 있다는 걸,
정체된 썩은 사해와 같을 수 있다는 걸,
터져버리고 말 헌 가죽부대일 수 있다는 걸.

메노나이트 이면서도 메노나이트를 강조하지 않는 이들을 보며,
내가 가진 30%짜리 메노나이트 삶(누구는 예수님 짜리라고 우겨대겠지만)을 부끄러워하며,
여기 저기 흩어져 사는 메노나이트에 기웃거리는 사람들에게
약함을 고백합니다.

약함과 아픔의 눈물을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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