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평화의 전통을 찾아서….

교회, 평화와 화해의 도구로 거듭나기를

YMCA 잡지<꽃들에게 희망을>에 실린글 – 이재영

 

지금처럼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한다. 미국 버지니아 주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조그마한 교실에 앉아 마지막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실제 우리 반에는 매우 흥미 있는 사람들로 가득차있었다. 팔레스타인이 고향이지만 자유롭지 못한 땅을 떠나 시리아로 이주해간 팔레스타인 청년, 자신의 땅에서 난민이 되어버린 필리핀 민다나오 섬의 아주머니, 두 딸을 둔 눈물이 많은 코소보의 엄마, 강한 엑센트로 자기의 다리에 난 총상을 보여주던 북아일랜드에서 온 아저씨, 케냐에서 연극을 통한 평화 교육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름이 “바보“라는 사람, 인도북부의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애쓰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갈랜드라는 나라에서 온 친구 아쿰….

25명 정도였던 우리 반은 마치 전 세계의 모든 분쟁지역의 사람들을 모아 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모두 개인과 사회가 다른 사연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소였다. 그들 중에 나의 관심을 특별히 끄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20대 여성과 이스라엘 출신의 40대 아주머니, 그리고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을 대표하던 젊은 남녀였다. 이들이 나의 관심을 끈 이유는 책과 미디어를 통해 들어온 이 두 그룹들간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늘 국제뉴스에 빠지지 않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끝없는 분쟁과 1994년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해당한 르완다 제노사이드의 역사는 이들과 한 공간에 함께 앉아 있는 나마져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여름학기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되자, 늘 옆자리에 앉기를 좋아했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온 두 여자는, “우리는 지금 너무나 가까운 친구사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면 우리는 이제 서로를 탱크와 돌맹이 너머로 보아야한 하는 사이가 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의 불안한 얼굴이 서로 교차하면서 어색한 미소가 똑같이 떠올랐다. 슬프고도 미안한 침묵이 교실을 한동안 떠돌아 다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르완다에서 온 친구들의 순서가 되자 둘은 교실 한가운데로 나와서 서로를 부둥켜 앉고 말없이 한동안 그대로 서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우리는 지금 막 여러분에게 화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실로 화해했습니다. 하지만, 고향의 우리의 친구들은 이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것이 슬픈 현실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로 돌아갔다.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말로 나의 소감을 피력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되새긴 기억은 난다. “부럽다. 그래도….너희들은 여기에서 만날 수는 있잖아. 우리는 50년이 넘게 서로 만나지도 못하는데….”

그날 이후로 한동안 나는 평화와 화해라는 말을 사치스럽게 받아드리게 되었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들이대고도 평화와 통일을 외쳐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나 중동과 아프리카의 현실이 뭐 별반 다를게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점점 평화와 화해를 말하지 전에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고정된 생각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국가와 안보, 종교와 정치, 역사와 교육, 그리고 우리와 그들….

평화와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무수히 많은 개념과 구조들이 변하고 고쳐져야 한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일은 바로 이 개념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킬 평화의 사람을 길어내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람을 상해할 수 있는 폭력의 마음과 몸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사람은 누구나 화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평화의 몸과 마음도 가지고 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리 선택이다. 하지만, 선택의 책임은 모두 개인에게 달려 있지 않다. 바로 공동체에게 달려있다. 혼자서 평화로울 수는 있어도 평화와 화해를 이룰 수는 없다. 참선과 기도를 통해 평화를 느끼고 평화로움을 옆으로 전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를 만들려는 적극적인 노력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평화와 화해를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공동체는 무엇일까? 이념적 뿌리를 같이하는 정치집단인 정당일까? 아니면, 국가간 분쟁을 조절하는 UN일까? 혹시 제3의 파워라고 하는 NGO의 연합체는 아닐까? 나는 감히 교회라고 굳게 믿고 싶다. 기독교 교회야 말로 이 땅에 평화와 화해를 만들어가기에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이다. 이는 교회가 다른 세상의 기관이나 집단보다 더 우월하거나 힘이 세서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약한 사람들의 모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 살고자 부름받은(ekklesia) 사람들의 모임이다. 따라서 예배만을 위한 성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맛을 미리 보는 이 땅의 천국 대사관이다. 천국의 통치원리는 무엇인가? 다름 아닌 바로 샬롬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눈물과 탄식이 없는 영원한 평화만이 존재하는 곳 바로 천국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할 것을 가르치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기를 소망하는 것을 포함하셨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진다는 이야기는 곧 샬롬이 통치원리가 되는 땅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웃이 왕따와 가정폭력으로 가난과 기근으로, 전쟁과 학살로 고통당하고 죽어 가는데 어떻게 이 땅이 천국이 될 수 있겠는가? 지금을 사는 기독교인은 자신이 속한 가정, 학교, 직장, 사회, 세계 속에서 화평케하는 자(peacemaker)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자녀라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불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독교의 폭력 정당화에 공헌한 사실을 역사 앞에 고백하고 반성하는 일이다. 기독교는 폭력의 종교일 수 없고 비폭력의 예수의 가르침이자 생활방식이었다. 그를 따르기 때문에 크리스쳔(Christian)이라고 불리는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예수의 실천적 생활방식을 따르고, 그가 몸소 보여준 자기희생을 통한 화해와 평화를 본 받아야만 한다. 또한 교회 안에 존재하는 분쟁과 갈등을 우선 해결하는 노력이 없이는 교회는 세상 속에서 평화와 화해의 도구로 결코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 스스로 평화를 이루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나에게 Y는 교회로 이해된다. Y는 기독교 신앙과 정신을 생활방식으로 변형시키고 실천해온 세상속의 빛과 소금이 되온 진정한 교회이다. 언제나 새로운 기독문화를 창출하고 이끌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를 주도해 왔다. 여기에 한국의 청년들은 매력을 느꼈고, Y의 향기에 취해갔다. 하지만, 교회가 평화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화해의 도구가 될 수 없듯이, Y도 정체성을 지켜나가지 못한다면 향기를 잃은 꽃과 같이 되고 말 것이다. 나는 Y가 생활교회로써 평화와 화해의 도구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평화와 화해의 도구로 자리매김 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Korea Anabaptist Center)는 제자도, 평화, 공동체를 주제로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정교가 분리되는 근본적 교회개혁을 요구했던 아나뱁티스트의 주장을 근간으로 초대교회의 전통을 한국교회에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출판사(KAP) 운영을 통해 초대교회의 신앙특징과 전통, 공동체 교회, 기독교 평화주의에 기초한 자료를 보급하고 있으며, 학생, 교사, 교회, NGO, 기관 등을 위한 폭력예방과 평화적 갈등해결을 위한 평화교육(peace education)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평화의 정신과 기독교육에 기초한 영어어학원 커넥서스를 운영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kac.or.kr 이나 www.connexus.co.kr 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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