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엔티아

이상규(고신대학교 교수, 역사신학)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쟁이다. 전쟁은 인간에 의해 자행될 수 있는 가장 큰 폭력이며, 파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이룩한 문명이나 도시, 자연의 파괴일뿐 만 아니라 인간성 자체의 파괴이기도 하다. 오늘의 세계는 지구상의 전 인류를 파고기하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양의 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핵무기의 파괴력은 고전적 의미의 전쟁 개념을 무의미하게 한다. 이제 문제는 공존(共存)이냐 무존(無存)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호모 호미니 루프스(Homo homimi Lupus), 곧 “인간은 인간에게 이리이다”는 라틴어 경구는 전쟁사에서 얻은 체험적 경구일 것이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주의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기독교는 인간생명의 천부적 가치를 인정했고, 생명의 존엄성만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평화로운 삶을 중시해왔다. 기독교는 전쟁만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폭력이나 미움, 보복, 앙갚음까지도 반대해 왔다. 이런 기독교 전통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속에 나타나 있다(마5:39, 44, 눅6:27ff. 35 등). 예언자들의 말씀도 무력사용을 반대하는 근거로 이해했고(호7:11, 사30:15-6),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비젼(사2:4, 미4:3-4)을 중시했다. 이런 정신들은 ‘샬롬’이라는 용어속에 이미 잘 나타나 있다. 히브리어 ‘샬롬’은 흔히 평화라고 번역되지만, 그것이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안녕’, ‘복지’, ‘온전함’과 ‘완전함’, ‘공의와 질서’ 등 인간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의미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탄압을 받았고, 폭력을 당했으며, 폭력에 동참하도록 강요당했고, 전쟁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들은 폭력으로 자기를 방어하거나 비폭력의 원칙을 포기하기보다는 자기 희생의 길을 갔고, 때로는 죽음을 선택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격렬한 수난에 직면했을 때 폭력에 대한 특기할 만한 대안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라틴어로 저술활동을 했던 초기 교회 지도자들은 이러한 태도를 파티엔티아(patientia)라고 불렀다. 영어의 인내(patience)라는 용어가 이 단어에서 기원하지만, 인내라는 의미는 라틴어 파티엔티아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 파티엔티아라는 용어는 악행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도 악에게 저항하는 확고 부동한 인내를 의미한다. 이 의미가 요한계시록 13:10과 14:12에서 인내(endurance)로 번역된 단어이다. 악하고 파괴적인 압박과 박해에 대한 확고하고도 영구적인 저항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형태의 폭력도 기독교신앙, 곧 사랑과 배치된다고 믿었다. 이 사랑의 힘은 미숙한 힘에 의존할 필요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그들은 비록 폭력적인 사회에 살았지만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자기들 편에 있음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이나 폭력, 보복, 앙갚음보다는 악에게 길이 저항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런한 태도는 그리스-로마사회의 가치와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후일 터툴리안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확고부동안 인내, 곧 악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을 좀더 조직적인 방법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그의 변증(Apology)에서 “기독교인들은 죽이는 것보다는 죽임을 당할 자유가 더 많이 주어질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 희생적인 비폭력을 주장했다.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낳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보복과 앙갚음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 해결의 첩경일 수 없다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확신은 비폭력적 저항을 가르치신 주님의 교훈에서 얻은 논리적인 결론이었을 뿐이다.

이번에 미국이 입은 테러의 상처는 그 어느 것 보다 크다. 그러나 응징과 보복이 최선의 길은 될 수 없다. 전투기 1대의 1회 공습에 50만불이 소요된다면, 적어도 전투기 100대가 필요하고 하루 3번 출격한다고 보았을 때 하루에 1억 5천만불이 소요된다는 계산이다. 되지도 않을 여유라고 생각하겠지만,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상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이 거금으로 테러방지와 평화를 위해 투자하겠다고 선언한다면 미국은 군사력으로 얻을 수 없는 최강국의 지도록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시인 콜리지(S. T. Coleridge)의 말은 진실이다. “평화는 세상의 모든 축복 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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