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파 증언

1.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 – 1531)

만약 여러분이 아나뱁티스트 신자들의 삶과 행위를 조사한다면
우선 나무랄 데 없고, 경건하며, 겸손하여 이 세상 누구보다도 그 삶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을 비방하는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삶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If you investigate their life and conduct, it seems at first contact irreproachable, pious, unassuming, attractive, yea, above this world.
Even those who are inclined to be critical will say that their lives are excellent. (S. M. Jackson, Selected Works of Huldreich Zwingli (Philadelphia, 1901), 127)

 

2.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불링거는 재세례신자들을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는 악질 원수들”이라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세례신자들의 탁월한 생활을 인정하면서 스위스 형제단(Swiss Brethren)이 다음 내용을 가르쳤다고 증언했다.

“누구든지 믿음을 받아들이도록 다른 사람을 강요하거나 힘을 행사할 수 없고 행사해서도 안 된다. 이는 믿음이 하나님께서 자의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강요하거나 힘을 행사하는 것, 혹은 어떤 사람의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죽음에 처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형태든지 간에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 대신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세상에 속한 나라는 교회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며, 세상에 속한 어느 통치자도 교회에서 권위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단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지 힘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않으셨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고난을 받고 박해를 견뎌나가는 특징을 갖고 있을 뿐, 그 누구도 박해하지 않는다.” (재세례신앙의 비전, 20)

불링거가 스위스 형제단에 대해 이러한 내용을 보고한 이유는 이들의 신앙을 칭찬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이들을 더욱 더 강하게 억압할 필요가 있다는 비난의 차원에서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재세례신자들의 가르침을 조목조목 논박했으며, 재세례신자들을 사형에 처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고 단언하면서 글을 맺고 있다. 그러나 종교적 자유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재세례신자들의 공헌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불링거가 취한 재세례신앙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으로 하여금 재세례신앙 운동의 본질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ibid, 16, 20, 22)

재세례신자들이 마치 살아 있는 성자들이나 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뒤를 따르는 것에 대해 불링거의 한탄하는 모습(1531)은 그의 초기 저작에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3. 카피토(Capito : 스트라스부르그의 개혁가), 1527년 스위스 형제단에 대해 남긴 글 

“대부분의 재세례신자들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이들이 열정적이며 독실하고 거룩한 반면, 그들이 불성실하다는 그 어떤 의혹도 나는 발견할 수 없다. 도대체 이 땅 위에서 무슨 유익이 있기에 추방, 고문, 말할 수 없는 육체의 형벌들을 참아내도록 희망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에 대해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뭔가가 있다고 믿는 이들의 지혜를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증거할 수 밖에 없다.” (ibid, 80)

4. 세바스챤 프랭크(Sebastian Franck, 1531)

“재 세례신자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들의 가르침이 곧 나라 전체를 뒤덮을 것만 같다. 그들은 아주 빠르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가득 찬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들은 아주 신실한 사람들이다. …… 비록 이런 두려움이 전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들의 숫자는 너무나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온 세상은 그들에 의해 동요가 일어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ibid, 26)

“재세례신자들은 …… 곧 수많은 추종자들을 얻었으며 ……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는 많은 신실한 영혼들을 이끌어내었다. 이는 그들이 오직 사랑과 믿음과 십자가만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각자가 매우 겸손하였고 엄창난 고난 아래에서도 인내했다. 그들은 연합과 사랑의 증거와 더불어 서로 떡을 떼었다. 그들은 모든 박해를 인내와 겸손으로 받아들이며 순교자로서 죽어갔다.” (ibid, 86)

5. 프란츠 아그리콜라(Franz Agricola, 1582), 재세례신자들의 끔찍한 실수들에 대하여….

“현존하는 이단 분파들 중 재세례신자들보다 더 겸손하고 독실한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 분명하게 드러난 그들의 공적인 삶을 살펴볼 때 그들은 전혀 결점이 없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속이지 않고 맹세하지 않으며 싸우지 않으며 거친 말을 사용하지도 않으며 무절제하게 음식을 먹거나 마시지도 않으며 개인의 생활을 외부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러한 것을 그들 중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거룩한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모습으로서 겸손, 인내, 정직, 청결, 절제, 단도직입적인 솔직함은 어디에서나 발견되고 있다.” (ibid, 82)

6. 캐스파 슈벤크펠트(Caspar Schwenkfeld)

“나는 진실하고 독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지역이라면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아나뱁티스트들 때문에 설교가 및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 또한 재세례신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비방을 받고 있다.” (ibid, 86)7. 죽이면 죽일수록 점점 더 많이 생겨나는 아나뱁티스트들1528년 Swabia에서 아나뱁티스트들을 찾아서 죽이기 위해 400명의 무장 경찰을 급파하나, 너무도 많은 아나뱁티스트, 이단들을 처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경찰 병력을 1,000명으로 증원해서 보낸 일이 있었다. 이단자들을 발견 즉시 (혐의도 적용하지 않고) 처단하기 위해 파견된 경찰 사령관의 말(이미 350여명의 아나뱁티스트들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 “what shall I do, the more I kill, the greater becomes their number.”

1542년에 기록된 후터라이트 문헌에 의하면 2,173명이 사람들이 순교자들의 행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