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의

평화의 뿌리들

예 수의 제자들은 처음 시작부터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에 대한 분명한 길잡이로서 예수와 함께 고통을 받아야 하며, 그들은 폭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한 재세례신자들이 있었다. 아주 초기의 재세례신자들 중에 그리고 그 이후에 생겨난 모든 그룹들에게 검을 취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고 확신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었다.

종말론적 예언의 도전
<그림 1 라이덴의 존>

그러나 초기에 그들이 종말의 시대에 살고 있고, 예수께서 몇 달 후에 혹은 몇 년 후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었던 재세례신자들이 있었다. 이들 재세례신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른쪽 뺨을 치거든 다른 쪽 뺨도 돌려 대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예언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종말이 도래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하늘의 뜻과 새로운 계시와,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선택된 사람들은 도래하는 새 예루살렘을 준비하기 위해 이 마지막 때에 검을 취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불행히도 이러한 예언들은 아주 비극적인 거짓 예언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많은 재세례신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칼에 의해 죽었다.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끔찍한 사건이 뮌스터(Muenster)라는 북부 독일의 도시에서 발생되었다. 이 도시는 무장된 재세례신자들에 의해 점령되었고, 거의 1년 반 동안이나 방어되었다. (1534-35)

고통스러운 교훈

<그림 2 메노 시몬스>

뮨스터 사건은 비극이었고 아주 끔직한 참사였다. 그러나 결국 이 사건은 재세례신자들에게 폭력에 대한 의문을 완전히 해결해 주었다. 뮨스터 사건 이후로 재세례신자들은 제자도에 있어 그리스도의 말씀과 모범이 최종적인 답이며, 그 말씀과 모범이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취소하시지 않는 한 결코 무시될 수 없다고 일치를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무오의 안내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이 그리스도 중심의 분별 원리가 받아들여지자, 재세례신자들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무조건적으로 검의 사용은 피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이 아주 분명한 입장이 되었다. 이와 같은 입장은 아래의 설명에서 자세히 보여진다.

무엇보다도, 내 뜻 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셨던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서 모범이 되셨기 때문이다. 만약 가이사에게 저항해야만 하는 비슷한 선택이 주어진다면, 예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것과 같이 하였을 것이다. 즉 저항하기보다는 대신에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여기에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폭력을 금지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명확한 성서적 명령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폭력에 참여하게 되면 신자들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도록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 살아야 한다는 전인적인 영적 삶의 원리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철과 쇠로 만든 무기가 아닌, 영적인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1540년, 재세례신자들은 중생하여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폭력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할 것이라는 폭 넓은 일치를 보였다. 그러나 어떻게 평화주의 그리스도인이 악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 적절히 대응할 것인가 하는 방법에 관한 끊임 없는 질문이 남아 있다.

무저항

대다수의 재세례신자들은 마태복음 5장 39절의 말씀인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다. 그들은 이 말씀을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라, 그러면 그 통치와 상관이 없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 무저항의 재세례신자들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아주 다른 종류의 분리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정부를 제정하셨다고 믿는다. (로마서 13장)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완전함을 따라 살아야 하며, 세상 사람들을 위한 통치를 떠나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정부는 기독교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필요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하는 명령을 하지 않는 한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무저항주의를 취하는 재세례신자들에게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과 분리되며 그것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나라의 전초 기지를 이 땅 위에 세우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들은 이러한 공동체에서 예수의 제자로, 예수의 길을 따르는 자들로 살아가기를 희망하지만 영원을 위해서라면 이 땅에서 고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폭력
<그림 3 필그람 마펙>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12장 21절)

평화주의 재세례신자들 중에는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분리되어야 하는 것은 그렇게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었다. 필그람 마펙(Pilgram Marpeck)은 비폭력을 지지하는 명확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는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의 전초 기지로서 하나님 사랑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선교의 차원을 더욱 깊게 생각했다. 이것은 미묘하지만 그 강조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변화이다. 필그람 마펙의 해석에 있어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마치 순수한 성을 방어하려고 하는 것인 양, 그들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분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문들과 창문들을 열어 놓아야만 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어오도록 그들을 초청을 해야 한다.

그 러나 필그람 마펙의 이러한 교회에 대한 적극적인 비전은 16세기 당시 소수에 불과 했다. 당시 대부분의 재세례신자들은 대부분이 아주 혹독한 박해를 참아 왔기 때문에 교회는 인간적으로 가능한 한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그 결과는 골치 거리들을 피해서 사는 분리주의자들, 내면을 중시하는 자들, 그리고 아주 조용한 교회의 전통을 낳게 하였다.

제자도

마침내, 폭력에 대한 어려운 논쟁이 예수의 모범이라는 내용과 함께 제자도의 원리에 따라 정리되었다. 중생한 제자들은 예수를 따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증거하며, 진리로 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세상적인 물질을 요구할 권리를 포기하고, 그들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고, 선으로 악을 갚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방법들은 재세례신자들이 전인적인 영성과 영적인 삶의 총체이며, 매일의 삶에서 살아 계신 성령 하나님을 드러내며 살고자 하는 삶이다.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