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뱁티스트

순례하는 교회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신자들은 아나뱁티스트 신앙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국가 교회와 정부로부터 무수한 탄압과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박해를 피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은밀한 장소에서 만나 예배를 드려야만 했다.   위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텔 강에서 아나뱁티스트 신자들이 배에서 예배 드리는 장면이다.  1569년 이 배에 탔던 Pieter Pietersze Bekjen 와 Willem Jansze는 아나뱁티스트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형 당했다.  잔 루이켄(Jan Luyken: 1649-1712)   [소스 자세히 보기]
이들은 왜 죽음을 맞이하기 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과연 아나뱁티스트 신앙이란 무엇인가?
아나뱁티스트 신앙은 당시 국가교회 또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추구했던 신앙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아나뱁티스트(Anabaptist)란?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재세례신앙) 운동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철저한 제자도의 정신을 기초로 초대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소수 급진종교개혁자들의 진정한 교회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재세례신앙(anabaptism, rebaptism : 다시 세례를 주었던)의 신자들은 교회가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가로부터의 자유로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세례는 개인의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관습적인 유아세례는 제자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히려 교회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신자됨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믿었기에 유아세례를 반대했습니다.

그 러나 당시 유럽의 국가교회는 이를 반종교적 이단 행위로써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국법을 어기는 일로 간주했기에 아나뱁티스트 신자들은 수많은 핍박과 박해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아나뱁티스트 교회의 정체성은 성인세례를 바탕으로 한
“신자들의 교회”에 있으며 이는 카톨릭 교회뿐 아니라 루터와 칼빈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와도 구분됩니다.

아 나뱁티스트 교회는 기독교의 뿌리를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찾아야 한다고 믿었고 따라서 근본적 개혁(radical reformation)을 표방해왔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faith) 뿐 아니라 제자로서의 따름(following)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나뱁티스트 교회는 “자유교회(Free Church)”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성경말씀에 따라 세상적 권세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맹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명령과 국가에 주신 명령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다고 믿습니다.

아나뱁티스트 교회는 또한 “전통적 평화교회 (Historic Peace Church)”로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의 최고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며 사랑과 평화의 윤리적 삶을 살며, 비폭력적 갈등해결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아나뱁티스트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 중에는 메노나이트(Mennonites), 아미쉬(Amish), 후터라이트(Hutterites), 그리스도 형제단(Brethern in Christ) 등이 있습니다.

메 노나이트는 16세기 네덜란드의 재세례신앙 운동의 지도자였던 메노 사이먼스(Menno Simons)를 따랐던 재세례신자들을 일컬었던 말로써 오늘날에는 메노나이트 교회와 교인들로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후터라이트는 초창기에 16세기 모라비아에서 공동의 재산을 소유하고 물질을 나누던 제세례신자들로, 야곱 후터(Jacob Hutter)의 지도를 받았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아미쉬는 17세기 스위스 제세례신자들 중에서 야곱 암만(Jacob Ammanm)의 지도를 따라 나온 사람들에서 시작되었고, 세상의 죄악성에서 분리되어 신약성경적인 생활에 헌신하려는 사람들입니다.

Advertisements